주간 정덕현

노는 언니', 박세리에 이어 한유미 같은 매력덩어리를 발굴한 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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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언니', 박세리에 이어 한유미 같은 매력덩어리를 발굴한 건

D.H.Jung 2020. 10. 1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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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언니', 볼수록 매력적인 이 여성예능의 무한한 가능성

 

씨름선수 양윤서가 지난해 초 갈비뼈 연골이 파열돼서 슬럼프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슬쩍 꺼내놓는 한유미는 박세리에게 슬럼프 극복을 위한 좋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박세리는 진심을 담아 기대치와 부담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조금 낮춰서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해준다.

 

그런데 남현희가 거기에 더해주는 한 마디가 의미심장하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을 때 뛰어가면 못 보고 놓치고 가는 것들이 많잖아. 위험하기도 하고. 걸어가면 많이 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그건 마치 스포츠 선수들이 겪기도 하는 슬럼프 극복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자 박세리는 1박2일 동안 '유미투어'로 마음껏 웃고 떠들고 했던 그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그런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슬럼프 극복에도 삶에도) 중요하다는 것. 한유미는 자못 진지하게 "너무 도움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하며 영혼은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던지고 그 모습에 모두가 빵 터진다.

 

E채널 <노는 언니>의 이 풍경은 이 볼수록 매력적인 여성예능이 아니면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스포츠선수들이라는 공유지점을 갖고 선배가 후배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며 또 나아가 스포츠에 빗대 우리네 삶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너무나 친해져 선후배라고 해도 서로 툭툭 건드리며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이 광경은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흡족하게 만든다.

 

사실 <노는 언니>는 많은 설정들이나 미션 같은 것들을 뺐다. 그래서 이번 '유미투어'나 지난 번 박세리네 집들이,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낸 캠핑 특집들은 어떤 면으로 보면 계속 되는 먹방의 연속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굉장히 먹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박세리 덕분에 한유미는 '노는 언니'가 아니라 '먹는 언니'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이 갈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들이 그 솔직한 면모만으로 깨 나가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여성의 모습'이 가진 틀 때문이다. 먼저 '먹는 언니'라고 해도 될 법할 정도로 '먹는' 이미지는 물론 '먹방' 등을 통해 몇몇 여성 연예인들이 깬 이미지지만, 이들은 스포츠선수로서 늘 체중조절에 신경 써야 했던 그 상황이 더해져 훨씬 더 큰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여성들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옷 사이즈에 대한 이야기들이나, 여성들의 몸에 대한 이야기, 생리에 대한 이야기 등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던져지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런 이야기들을 금기시했던 어떤 것들이 오히려 그걸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는 걸 이 여성예능은 그들의 진솔한 대화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키가 커서 기린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한유미는 그 큰 키에 의외로 싱거운 면모들을 보여줘 웃음은 물론이고 점점 인간적인 매력까지 보여주고 있다. 김치찌개 하나를 제대로 못 끓여 조미료를 잔뜩 넣는 모습이 그렇고, 본인이 했던 배구를 빼고 나면 다른 경기에는 영 재능이 없어 보이는 허당기도 그렇다.

 

양 어깨가 떡 벌어진 정유인과 이번 '유미투어'에 함께 참여한 씨름선수 양윤서가 호텔에서 벌이는 띠씨름 같은 장면은 '여성의 근육'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그 모습이 멋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다. 물론 이들도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와인을 호텔 바에서 마시고 고즈넉한 한옥에서 명상과 요가를 하며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명절 분위기를 내지만, 금세 드레스를 입은 채 회식 분위기를 만들고, 한복을 입고도 승부욕이 올라 한껏 치마를 들춘 채 제기를 차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단히 새로운 미션을 보여주진 않지만 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들은 그 자체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여성들의 역할이나 상을 자연스럽게 깨주고 있다. 그러면서 여성 스포츠인이라는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언니 동생 같은 편안한 사이가 주는 좋은 영향도 전파된다. 이 여성예능이 의외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여겨지는 이유다. 언니들의 조언 덕분인지, 아니면 1박2일 간 신나게 하고픈 대로 풀어낸 효과인지 양윤서 선수는 추석에 열린 씨름대회에서 매화급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슬럼프를 극복했다.(사진:E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