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상사’, IMF판 ‘미생’ 혹은 ‘이태원 클라쓰’의 잔상이건 일까 아니면 일까. 어쩌면 그 둘 다를 껴안는 IMF 버전의 청춘의 성장기는 아닐까. tvN 토일드라마 에는 많은 명작들의 잔상들이 느껴진다. IMF로 위기를 맞은 상사를 배경으로 이를 극복해 갈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점에서는 이 떠오르고, 철없던 청춘이 그곳에서 바닥부터 시작해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릴 거라는 점에서는 가 떠오른다. 탄탄한 알짜기업으로 태풍상사를 일궈낸 아버지 강진영(성동일)의 그늘 아래서 철없이 누리기만 했던 강태풍(이준호)은 IMF의 엄혹한 시기를 맞아 회사가 위기에 처하고 아버지마저 갑자기 돌아가시자 날선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의 회사를 되살려야 하고 가족 같은 직원들도 챙겨야 한다. 늘 놀기만 하는 철없는..
-
웃다 보면 눈물 나는 또 하나의 천성일표 민초 사극, ‘탁류’
‘탁류’, 이 혼탁한 세상을 이들은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까“우리 아버지 머슴이여.” 디즈니+ 드라마 에서 무덕(박지환)의 안사람 작은애(오경화)는 남편이 왈패의 엄지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시율(로운)을 앉혀놓고 다짐을 받아 놓으려 한다. 무덕이 엄지가 된 건 바로 남다른 완력과 싸움 기술을 가진 시율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려서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무덕의 아내가 되어 살게 됐고 그를 살게 해준 무덕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기위해 먼저 자신의 기구했던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근디 흉년에 너무 먹을 게 없어 갖고 울 큰언니 갖다 팔았어. 고다음 보릿고개엔 둘째 언니를 갖다 팔고. 아들은 팔 수 없응께 내 차례가 됐지. 대감집 종으로 팔려 갔는디 역병에 걸려 갖고 피를 토항께 그냥 길바닥에 픽 버리..
-
김은숙 작가가 직물처럼 짜낸 인간 증명의 대서사시
‘다 이루어질지니’, 사탄 김우빈과 사이코패스 수지가 그려낸 천년의 사랑이건 마치 김은숙 작가가 모래로 쌓아 만들어낸 거대한 세계 같다. 태초와 현재, 고려와 아라비아, 한국과 두바이, 현실과 상상... 같은 무수한 씨실과 날실을 엮어 짠 이야기의 직물 같다. 그것이 모래 같은 상상의 이야기를 재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기처럼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야기는 구체적인 물질이 아니어도 보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 의 샤흐라자드가 그 힘을 보여줬듯이. 아무 것도 없이 바람에 서걱거리는 모래만 가득한 사막에 모래바람을 타고 나타나는 지니의 이야기가 탄생한 것도 그래서일 게다. 김은숙 작가의 넷플릭스 드라마 는 바로 그 지니의 이야기를 가져와 시공을 뛰어넘는 대서사시로 재해석했다. 마술램프..
-
더듬이 달고 나온 장윤주, 얼굴 갈아 끼운 전여빈
색다른 인생 리셋, ‘착한 여자 부세미’ 반응 예사롭지 않다장윤주는 자신의 이미지를 작품에 따라 어떻게 연출해야 하는지 아는 것 같다. ENA 월화드라마 에서 그녀가 맡은 가선영이라는 인물은 악역이다. 그것도 피도 눈물도 없는 소시오패스 악역. 그래서였을까. 장윤주는 딱 붙여놓은 머리에 마치 곤충의 더듬이 같은 모양으로 머리카락 한 가닥을 늘어뜨린 모습으로 등장했다. 마치 사마귀의 형상 같은 그 모습은 등장만으로도 섬뜩한 인상을 준다. 는 제목에 이 주인공의 ‘착함’을 내세웠다. 정반대로 말하면 이 부세미(전여빈)라는 이름으로 3개월을 생존해내야 하는 김영란의 반대편에는 ‘악함’이 있다는 뜻이다. 장윤주가 등장부터 섬뜩한 인상으로 구현해낸 가선영이라는 인물이 그 악의 중심이다. 그녀는 피 한 방울 섞이..
-
박찬욱 감독의 야심 찬 풍자 코미디,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 곰곰 생각하면 빵빵 터지는 박찬욱표 블랙코미디“다 죽여버려.” 재취업 면접에 나가는 남편 만수(이병헌)에게 미리(손예진)는 그렇게 말한다. 면접 경쟁 상대들을 이기라는 말이지만, 박찬욱 감독은 이 말을 실제 사건으로 만들어냄으로써 블랙코미디로 그려낸다. “다 이루었다” 생각했던 중년의 가장이 졸지에 정리해고되어 재취업 전쟁에 뛰어들게 되고, 도저히 그 문턱을 넘을 수 없다 생각 하자 엉뚱하게도 경쟁 상대를 제거하는 일에 뛰어들게 되는 것. 이것은 라는 블랙코미디가 가진 웃음의 코드를 드러낸다. 그건 세상에 대한 풍자다. ‘다 죽여버려’ 같은 말이 이제 별 섬뜩함도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경쟁 사회에서 그걸 실제로 감행하는 인물을 통해 그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쿡쿡 웃..
Essay
-
다리 위와 다리 밑소소하지만 빛나는 일상의 리뷰 2025.01.09 16:10
삶이 흘러가는 곳, 천변을 걸으며 다리 밑에 서니 다리 위가 보였다. 그 위에서 사람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어간다. 출근 시간이라 대부분이 정장차림이다. 다리 밑에도 사람들이 천변을 따라 걸어간다. 그들은 다리 밑을 가로질러 천을 따라 오르거나 혹은 내려간다. 다리 위를 지나면 전철역이 나온다. 아침이면 사람들은 거기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한다. 다리 밑을 지나 천을 따라 오르면 저 앞에 북한산이 보인다. 사람들은 그 천변을 따라 구불구불 나 있는 산책로를 뛰거나 걷는다. 딱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다리 위를 지나는 사람보다 다리 밑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들의 나이가 많은 편이다. 아마 그들도 조금 젊어서는 그 다리 위를 매일 같이 지나갔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 날 '어 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