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블록버스터 시대, 드라마 ‘동백꽃’이 찾아낸 틈새

 

사실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방영되기 전까지 KBS 드라마는 심각한 위기였다. 심지어 KBS 같은 공영방송에서 굳이 상업적인 드라마 출혈 경쟁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론까지 생겨났다. 그도 그럴 것이 KBS 드라마는 장르물 같은 새로운 트렌드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편성했지만, 연거푸 실패를 거듭했다. 2~3% 시청률에 머무는 드라마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동백꽃 필 무렵>은 이런 위기의 KBS 드라마의 상황을 단번에 뒤집어 버렸다. 첫 방에 6.3%(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서서히 시청률 상승이 이어지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는 14.5% 시청률을 기록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모든 드라마들을 통틀어 가장 높은 시청률이다. 게다가 화제성도 뜨겁고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호평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동백꽃 필 무렵>은 어떻게 이런 드라마틱한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걸까.

 

<동백꽃 필 무렵>은 최근 이른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대가 열리면서 드라마에 있어서 점점 강박으로 다가오고 있는 대작, 물량공세, 볼거리, 세련된 장르물 같은 그 흐름에서 모두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그건 오히려 그 흐름의 정반대를 보여준다. 대작이라기보다는 소소한 작품이고, 물량공세를 했다기보다는 대본과 연기, 연출에 충실한 작품이다. 볼거리라고 해봐야 옹산이라는 가상의 동네의 따뜻한 시골 풍광 정도다.

 

게다가 세련된 장르물과도 거리가 멀다. 마치 농촌드라마를 보는 듯한 구수한 사투리에 정감 넘치는 캐릭터들이 가득 채워져 있으니 말이다. 물론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캐릭터를 투입해 멜로에 적절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효과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이 드라마는 스릴러 장르라기보다는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동백꽃 필 무렵>은 그 소외된 이들에 대한 지지와 응원이라는 드라마의 메시지와 똑같이, 이런 조금은 규모가 작아 소외된 드라마라도 무엇보다 절절한 진심을 전하는 드라마에 대한 응원이 담겨 있다. 따라서 <동백꽃 필 무렵>의 성취는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OTT 시대에 글로벌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또 하나의 대안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OTT 시대에 어울리는 글로벌한 작품으로 tvN <미스터 션샤인>이나 SBS <배가본드> 같은 대작 드라마들이 기획되는 게 당연하다 여겨지곤 하지만, 결코 대작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이 찾아낸 틈새는 보여준다. 글로벌을 얘기할 때 오히려 로컬에 충실하고 인물에 더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글로벌한 공감대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은 예감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넷플릭스에서 투자해 제작된 <좋아하면 울리는> 같은 드라마도 결코 물량 공세나 볼거리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보다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드라마가 전하려는 진심어린 메시지, 그리고 그걸 구현해내기 위한 충실한 대본, 연출, 연기의 완성도가 오히려 승부수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동백꽃 필 무렵>은 KBS라는 공영방송의 플랫폼에도 최적화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어정쩡한 장르물보다는 휴먼드라마가 훨씬 KBS 고정시청층에 소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 세대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소외된 이들에 대한 지지’가 메시지로 채워져 있어 이 드라마는 폭넓은 세대를 끌어안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동백꽃 필 무렵>은 OTT 시대를 맞아 ‘규모’에만 집중하는 드라마의 시선을 한 번쯤 재고해보게 만들고, 이 변화의 시기에도 저마다의 플랫폼에 맞는 시도 또한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다.(사진:KBS)

‘유퀴즈’가 중계도 안한 전국체전 선수들을 찾은 까닭

 

선수들은 자기가 경기를 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했다. 전국체전이 100주년을 맞았지만 모든 경기 종목이 중계가 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지금까지 해왔던 길거리로 나서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방식을 잠시 벗어나, 굳이 이번 전국체전에 참가했던 선수들을 찾아갔다.

 

이른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에서 벗어난 기획이고 지금까지 봤던 현장 인터뷰와 사뭇 다르지만 차츰 어째서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이런 전국체전 특집을 마련했는가에 공감할 수 있었다. 중계조차 하지 않아 자기 경기를 자신들도 처음 본다는 선수들에게 <유 큐즈 온 더 블럭>은 제작진들이 직접 경기장에서 찍어온 영상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유재석과 조세호는 롤러스포츠 스피드 선수 이예림, 씨름판에 새로운 붐을 일으키고 있는 ‘씨름계의 아이돌’ 박정우, 황찬섭 선수, 카누 현역 최고령 이순자 선수, 철인3종경기 김지환 선수, 지난 올림픽공원편에 출연했던 8명의 한체대 선수들 그리고 ‘육상계의 김연아’라 불리는 양예빈 선수를 직접 찾아가서 만났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감동적이었던 건 ‘직업이 국가대표’라 불리는 카누 국가대표 이순자 선수였다. 그는 26년째 카누를 타고 있는데, 21년째 국가대표고 전국체전은 26번째라고 했다. 올해 금메달 30개를 채우는 것이 목표였는데 29개를 땄다며 꼭 30개를 채우고 떠났으면 한다고 했다.

 

딱 봐도 다부진 모습에 체격. 단단한 활배근이 인상적인 이순자 선수는 처음 카누를 하겠다고 했을 때 집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했다. 당시 사진을 보니 지금과는 다르게 왜소한 모습이었다. 이순자 선수는 부모님이 반대를 한 것이 “당시 풍족하게 못 먹이고 지원을 못해줘서”였다고 했다. 제대로 지원해주기 어려워 그 힘든 길을 만류했다는 것이다.

 

이제 42세의 나이지만 이순자 선수는 놀라운 근력을 보여줬다. 무게를 달지 않고는 하루 종일 턱걸이를 할 수 있다며 척척 해내는 모습에서 그의 지금도 여전한 연습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일과는 실로 놀라웠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7시 50분에 아침식사, 9시부터 12시까지 오전 훈련,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오후운동, 5시에 저녁식사 그리고 6시부터 다시 야간훈련 그리고 11시에 취침이란다. 웬만한 수험생 시간표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순자 선수의 열정이었다. 손목이 안 좋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아팠는데 그럼에도 노를 놓을 수가 없더라고 했다. 그는 굳은살을 일주일마다 가위로 오려낸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이 제대로 접히지 않아 노를 잡는 느낌이 달라진다고. 그건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그렇게 한다고 그는 말했다. 거북이 등짝처럼 너덜너덜한 손바닥에서 그걸 26년째 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외국에 나가면 카누가 그렇게 인기종목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관심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그는 안타까움을 표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더 노력해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실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후배들에게 ‘왕언니’, ‘할머니’라고 불린다는 이순자 선수에게 유재석은 ‘영원한 국대’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지금껏 해왔던 방식들과 사뭇 다른 전국체전 특집이었지만, ‘사람 여행’이라는 큰 줄기로 보면 이번 특집 역시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중계방송도 되지 않아 자기 경기도 보지 못하는 선수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선수들을 애써 조명해내려 한 프로그램의 마음이 느껴졌다.(사진:tvN)

설리 같은 젊은 아이돌을 둘러싼 위태로운 환경들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라 현실감이 들지 않을 정도다. 이제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 무엇이 이 젊은 나이의 청춘을 이렇게 허망하게 스러지게 했을까.

 

스케줄이 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 자택을 찾은 매니저가 숨진 설리를 발견해 신고했다고 한다. 경찰은 현재 그가 자필로 쓴 노트를 발견해 분석중이라고 했다. 타살 혐의점은 보이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찰은 밝혔다.

 

설리의 사망 소식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악플’이다. 유독 악플 때문에 힘겨워했었고 2014년에는 그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걸그룹 에프엑스를 탈퇴한 후 연기자로 활동했다. 영화 <해적>, <패션왕>, <리얼>에 출연했고,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이어 아이유와의 우정으로 <호텔 델루나>에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 방송에서 한 때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던 설리는 최근에는 JTBC2 <악플의 밤> 메인MC를 맡아 출연하기도 했다. 자신의 악플에 대해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의 행보는 자신이 처한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 애써왔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이돌들이 처한 환경들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그 화려한 만큼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투명한 정도로 모두 대중들 앞에 보여진다는 사실이다.

 

SNS라고 하면 사실 사적인 내용들이 대부분 채워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연예인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공공연한 사안으로 바뀌게 되는 일도 적지 않다. 사진 한 장이 기사화되어버리고 그것은 심지어 이슈화되어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설리의 경우, SNS에 올린 사진들이 기사화되는 일이 잦았다.

 

SNS의 특성상 보여지고픈 욕망이 투영되지만, 그것이 기사화되어 좋은 반응만이 아닌 악플들까지 붙게 되면 심적 고통은 더 커질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이런 문제들은 친구나 가족 같은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어느 정도 풀어질 수 있지만, 연예인들의 경우에는 그 같은 해결방식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계속되는 스케줄, 대중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자신과 실제 자신 사이의 거리감, 풀어지지 않는 스트레스 같은 것들은 우울감이 우울증이 될 수 있고 공황장애 같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대인기피증까지 야기한다.

 

이것은 설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 나이에 일찍이 사회를 경험하게 되는 아이돌들의 경우 대부분 미처 정신적으로 성장하기도 전에 겪어야 하는 이 힘겨운 상황들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이 일찍이 성공의 길에 들어선 그들의 유명세로 감당해야 할 몫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스물다섯의 나이에 허망하게 떠나버린다는 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악플’의 문제는 늘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잠깐 반짝하며 이슈화되곤 하다 사라지곤 한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의 댓글문화 전체를 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들어 연예인만이 아니라 정치인, 일반인에게도 악플의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졌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자정의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또 아이돌이나 연예인만이 아니라 우리네 보통의 대중들을 위해서도 정신 상담 같은 심리적 문제를 상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시급하다. 점점 디지털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요즘, 정신적 문제는 육체적 문제보다 더 취약해진 게 사실이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듯, 정신적인 우울감에도 편안히 상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해진 사회다. 스물다섯 청춘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사진:JTBC2)

‘같이펀딩’ 유준상의 진심이 되찾아준 태극기의 진짜 이미지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 참가한 유준상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서도 MBC 예능 <같이 펀딩>이 하고 있는 태극기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새롭게 디자인된 실내에서도 세우는 게 가능한 태극기함을 준비해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 유준상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완전히 상상을 뛰어넘네. 디자인의 혁명이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다소 긴장되고 형식적인 만남이 될 수도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유준상은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 태극기함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걸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들려주었다. “평창올림픽에 참여한 이석우 디자이너가 디자인했습니다. 국기는 20년 동안 부부 두 분이서 수작업으로 태극기 깃대를 만드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과 중소상공인들이 만들어서 12억을 모금했습니다. 수익금은 전부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돌아갈 예정입니다.”

 

게다가 자기 자랑이 섞인 유쾌한 농담까지 덧붙였다. “저는 참고로 삼일절에 결혼해서 태극기를 걸고 결혼하고 아내와 상해임시정부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런 의미로 태극기가 제대로 걸리지 않는 게 답답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태극기함을 만들게 됐습니다. 대통령님 저희 군가 잘했죠?” 그 날 행사에서 유준상과 같이 뮤지컬을 하는 동료들이 엄기준, 민영기, 김법래가 군가를 불렀던 걸 말하는 대목이었다.

 

유쾌한 웃음과 덕담이 오가는 자리, 유준상은 엉뚱하게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셀카’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선뜻 응낙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함께 유준상을 비롯한 그 날 행사에 참여한 뮤지컬 동료들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태극기함에 목숨을 건 것처럼 뛰어다니던 유준상의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돌이켜 보면 <같이 펀딩>에서 유준상이 시도하고 있는 태극기함 프로젝트는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사안일 수 있었다. 그건 최근 태극기의 이미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퇴색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특정 정치적 목적으로 상징화하는 일이 그렇다. 또 한편으로 보면 애국이라는 표현 또한 최근에는 ‘국뽕’이라는 말로 선입견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목적도 아니고 국뽕도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준 건 다름 아닌 유준상의 진심이었다. 그가 말하는 ‘애국’은 정파적 의미와 전혀 상관없는 말 그대로 순수한 열정에 가까웠다. 게다가 <같이 펀딩>이라는 프로그램의 방식 자체가 애국을 훨씬 더 세련된 방식으로 실천하는 장을 만들어준 점도 유준상의 태극기함 프로젝트가 빛날 수 있었던 이유가 됐다.

 

무엇보다 유준상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건, 그간 정파적 의미가 더해지며 퇴색되어 버린 태극기의 진짜 이미지를 되찾아줬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갖는 게 당연한 순수한 나라 사랑의 의미가 유준상의 행보를 통해, 또 거기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통해 전해졌다는 것. 그것이 아마 <같이 펀딩>이 추구하는 ‘같이 만들어가는 가치’의 길이 아닐까.(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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