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영웅

사춘기 청소년들이 마주한 폭력적 현실은 글로벌 화두가 되고 있는 걸까.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국드라마 ‘소년의 시간’과, 최근 웨이브에서 넷플릭스로 옮겨 시즌1이 선공개되고 곧 시즌2 공개를 앞두고 있는 ‘약한영웅’ 이야기다. ‘소년의 시간’이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이 마주한 혐오의 폭력을 편집점 없는 원테이크로 그 막막한 현실 그대로를 담아냈다면, ‘약한영웅’은 범죄와도 맞닿은 학교폭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는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무력감을 전형적인 ‘너드 히어로물’의 틀로 그려냈다. 범죄와는 거리가 멀 것처럼 느껴지고 또 응당 그래야 할 아이들이 마주한 끔찍한 폭력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들은 자못 충격적이지만, 두 작품 모두 그 폭력의 밑그림을 제공하는 사회 현실의 문제들을 놓지 않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글로벌 화제작으로 떠올라, 글로벌 OTT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는 ‘소년의 시간’이 부동의 1위에 올라있고, ‘약한영웅’ 역시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3위까지 오르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특히 ‘약한영웅’이 넷플릭스 공개만으로 글로벌 흥행의 신호탄을 쐈다는 건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미 2022년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됐던 ‘약한영웅’은 당시에도 웨이브 구독자 유입에 혁혁한 성과를 낸 바 있다. 시즌2에 대한 요구들이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누적적자로 인해 웨이브의 투자가 어려워졌던 ‘약한영웅’은 넷플릭스에서 시즌2를 제작 공개하는 이례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그래서 복습 차원으로 넷플릭스에서 선공개된 ‘약한영웅’ 시즌1이 순식간에 글로벌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건 이 작품이 ‘국내용’ 그 이상의 콘텐츠였다는 걸 말해준다. 

 

사실 웨이브 오리지널로 ‘약한영웅’이 공개됐을 때, 이 작품은 토종 OTT의 영민한 선택으로 여겨진 면이 있었다. 즉 넷플릭스처럼 거대 제작비를 투여할 수 없는 토종 OTT로서 탄탄한 웹툰 원작을 대본화하고, 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훈, 최현욱, 홍경, 신승호, 이연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해 최적의 효과를 내는 결과물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로 옮겨진 후 복습의 차원으로 다시 ‘약한영웅’ 시즌1을 들여다본다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파괴력과 완성도를 다시금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글로벌 반응이 당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다시 보면 신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박지훈의 시종일관 공허한 듯한 반항적인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고, 최현욱의 액션과 홍경의 기막힌 내면 연기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박지훈이 ‘약한영웅’이 가진 무관심한 어른들에 대해 속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응축해냄으로써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면, 최현욱의 발랄한 액션은 그 무게감에 질식되지 않게 하면서 작품을 즐기게 해주고 여기에 홍경이 보여주는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는 엇나가는’ 모습을 정교한 내면연기는 작품에 밀도와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특히 국회의원의 이미지메이킹용으로 입양되어 마치 전리품처럼 이용만 당하는 오범석(홍경)이라는 인물이 마주하게 되는 막막함과 분노 그리고 탈선을 끝까지 막으려 하고 이해해주려 하는 이가 어른들이 아닌 친구인 연시은(박지훈)과 안수호(최현욱)라는 지점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찌르는 면이 있다. ‘약한영웅’이 흔한 학원액션물이나 너드 히어로물에 머물지 않고 진한 여운을 남겼던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소년의 시간’처럼 ‘약한영웅’ 역시 어른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아이들의 현실을 우리 눈앞에 던져 놓는다. 물론 ‘소년의 시간’이 보다 진지한 사회극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이라면, ‘약한영웅’은 훨씬 학원액션물의 타격감을 갖춘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시원시원한 도파민 액션이 매회 폭발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내재된 불안과 분노와 막막함이 주는 문제의식이 결코 약하다 말하긴 어렵다. 

이 달 25일 ‘약한영웅 Class 2’가 드디어 넷플릭스를 통해 돌아온다. 시즌1이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반응이 터진 것처럼, 이 시즌2가 불러일으킬 반향이 궁금해진다. 과연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글로벌 무대 위에 선 ‘약한영웅’은 어떤 글로벌 평가를 받게 될까. 박지훈이 새로 전학가게 된 은장고등학교에서 또 어떤 폭력과 마주해 싸우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글:일간스포츠, 사진:넷플릭스)

K-드라마 팬덤의 드라마틱한 변화

이른바 K-드라마를 만든 일등공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연히 열성적인 한국의 시청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K-드라마라는 위상은 비판적이며 까다롭기 유명한 한국의 시청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선재 업고 튀어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한국의 시청자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3년간 방영됐던 MBC ‘전원일기’가 종영하게 된 건 더 이상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농촌의 풍경이 현실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도시화로 인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는 이들이 급증했고, 이미 농촌조차 90년대부터 서서히 전원도시로 변모했다. 당연히 라이프스타일도 바뀌었다. 시청자들은 어딘가 구닥다리 같은 시골의 삶보다는 도시의 세련된 삶을 보고 싶어했다. 이러한 요구는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등장했는데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 붐이 생겨났다. 도시 남녀의 트렌디한 삶과 사랑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질투’부터 ‘사랑을 그대 품안에’, ‘별은 내 가슴에’ 같은 드라마들이 그 사례다. 이들 드라마들은 과거 신파적 스토리를 가진 멜로드라마와는 달리, 소비적인 도시의 삶에서의 가벼운 사랑 이야기로 채워졌다. 시골의 삶에서 도시의 삶으로 옮겨가고, 신파적 눈물의 서사에서 가벼운 웃음의 서사로 바뀌게 된 건 당대의 한국 시청자들의 달라진 욕망이 투영된 결과였다. 이들 드라마들은 중화권을 중심으로 한류드라마가 태동하게 되는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었다.

 

그런데 트렌디 드라마는 그 후로도 승승장구 했을까. 아니다. 한동안 트렌디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긴 했지만 생각만큼 한국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한국 시청자들은 이제 현실성이 결여된 적당한 배경을 채워놓고 그려나가는 가벼운 멜로가 식상해졌다. 그래서 병원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연애만 하는 드라마들을 ‘무늬만 의학드라마’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안판석 감독이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한 ‘하얀거탑’이 방영되면서 보다 전문적인 디테일에 대한 시청자들의 욕구를 채워주었다. 이후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 시대가 열렸다. 의사와 변호사 같은 직업군은 물론이고 요리사, 호텔리어 등등 다양한 전문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쏟아졌다. 물론 여전히 신데렐라 스토리를 담은 멜로드라마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당시 멜로의 대가인 김은숙 작가도 변화를 시도했다. ‘온에어’와 ‘시티홀’ 같은 작품은 전문직의 세계가 더해진 멜로드라마였다. 그 후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김은숙 작가는 멜로와 다양한 장르들을 엮어냈는데 이것 역시 이제 OTT 등의 글로벌 시대가 열리면서 보다 장르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의 시청자들은 까다로운데다가 쉽게 질리고 그래서 새로운 걸 계속 요구한다. 이미 성공한 드라마의 방정식은 그래서 그 공식이 나온 이후에 따라하게 되면 이미 지나간 트렌드가 되기 일쑤였다. ‘전원일기’가 종영하고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은 ‘갯마을 차차차’, ‘동백꽃 필 무렵’, ‘나쁜 엄마’, ‘웰컴투 삼달리’ 같은 다시 시골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련의 드라마들이 등장하고 있다. 도시의 삶에 지친 한국 시청자들이 이제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드라마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K-드라마가 나오기까지 그 상당 지분은 한국의 까다로운 시청자들이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드라마 만든 K-팬덤, 그 탄생과 변화

한국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는 일상에 맞닿아 있는 장르다. 과거에는 집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틀어 놓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누구나 한 마디씩 얹기 좋은 장르고, 또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데도 이만한 게 없다. 드라마 이야기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만만함은 시청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좋은 틈입을 만들어줬다. 

 

90년대 이후부터 서서히 진행된 디지털 혁명은 이렇게 저마다 수다로 휘발되던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들을 인터넷으로 결집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그 목소리들은 이제 하나의 여론이 되어 제작자들에게 압력을 미쳤다. 심지어는 방영도중 주인공이 바뀌거나 스토리 전개가 달라지게 될 정도였다. 특히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민주화 과정을 겪은 대중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했고, 인터넷은 그 목소리를 더욱 결집시키는 장이 되어주었다. 그러면서 디지털 공간은 저 너머의 미국드라마, 일본드라마 같은 당시 우리보다 앞서 있던 해외의 드라마들을 섭렵하게 했다.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미드가 국내의 방송사에서 소개되기도 전에 인터넷을 통해 화제가 됐고, 심지어 미국드라마는 ‘미드’로 또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마이클 스코필드는 한국식 이름 ‘석호필’을 갖게 됐다. ‘일드’도 마찬가지였다. ‘노다메 칸타빌레’나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롱 베케이션’ 같은 일드가 한국의 시청자들의 눈을 높였다. 당연히 한국드라마들과 비교하게 되고, 좀더 세련된 드라마에 대한 요구도 거세졌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단단해진 K-드라마는 충분한 자본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OTT와 만나면서 드디어 저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성공을 거뒀고, ‘킹덤’ 같은 독특한 좀비물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OTT를 만난 K-드라마의 팬덤은 이제 국내만이 아닌 전 세계로 넓혀졌다. 그래서 OTT에 세워지는 작품들에 대한 국내 팬덤과 해외 팬덤 사이의 갭도 생겨났다. 넷플릭스에서 대자본으로 만들어진 다소 자극적인 판타지 장르물의 경우 그 호불호가 특히 갈리는 경향이 생겼다. 국내 드라마 팬들은 ‘스위트홈’ 같은 판타지 장르가 처음에는 워낙 새로워 열광했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자극적인 흐름에 지쳐갔다. 제작진들도 국내 팬덤만이 아닌 글로벌을 겨냥하는 경향도 생겼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내놓은 모완일 감독의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같은 작품은 세련된 스릴러로 해외에서는 좋은 반응들이 나왔지만 국내 팬덤에서는 괜찮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국내 드라마 팬들은 그간 OTT의 등장으로 지나치게 판타지화하고 자극적으로 변한 K-드라마에 식상함을 느끼고 오히려 ‘순한 맛’ 드라마를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앞서 언급한 시골향 드라마들이 다시 등장하고 로맨틱 코미디류의 가볍게 볼 수 있는 드라마들이 새삼 주목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이처럼 국내 팬덤과 해외 팬덤 사이에 정서적 차이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OTT가 가진 글로벌 가능성을 밑바탕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선재 업고 튀어’가 바로 그것이다. 국내에서는 최고시청률이 겨우 5%에 머물렀지만, 이 작품은 OTT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방영됨으로써 강력한 코어 팬덤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형성됐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K팝 아이돌인 선재(변우석)와 그의 열성팬인 임솔(김혜윤)이 만들어가는 판타지 로맨스를 통해 마치 K팝 팬덤이 만들어지는 흐름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코어 팬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져나가고 이것이 라이트 팬덤으로 이어지면서 ‘선재 업고 튀어’는 방영 후에도 변우석이 아시아 투어를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이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게 된 K-드라마는 국내 팬덤과의 관계만이 아닌 해외 팬덤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서적 차이로 인한 호불호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로컬 사회의 정서적 틀에 묶여 있던 국내 팬덤들도 글로벌 감수성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내 팬덤이 가진 로컬의 정서 또한 글로벌 팬덤에 전파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K-팬덤은 로컬과 글로벌 정서가 부딪치고 화학작용을 내는 새로운 장이 되고 있다.  (글:N콘텐츠 매거진, 사진:tvN)

방탄소년단이 2년 반 동안 찾은 자신, BTS 그 자체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신선한 충격이다. 방탄소년단의 리패키지 앨범 LOVE YOURSELF 結 ‘Answer’의 타이틀곡 ‘IDOL’에는 이례적으로 국악 장단과 ‘얼쑤’, ‘지화자’ 같은 추임새가 들어갔다. 그래서 처음 들으면 신나는 EDM과 ‘사우스 아프리칸 댄스 스타일의 곡’처럼 들리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이상하게도 어깨가 들썩이는 흥겨움이 묻어난다. 그건 국악 장단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런 느낌이다.

이제 최단기간 뮤비 몇 천만 뷰 돌파나 전 음원 차트 점령 같은 기록들은 그리 놀랍지도 않은 결과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이번에는 어떤 새로움을 갖고 왔는가에 대한 궁금증과 놀라움이 더 크다. 그런 점에서 보면 2년 반 동안 이어진 LOVE YOURSELF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앨범, LOVE YOURSELF 結 ‘Answer’의 타이틀곡인 ‘IDOL’은 그간의 고민에 대한 해답처럼 다가온다. 결론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들 자신, BTS라는 게 그 해답이다.

EDM에 아프리칸 댄스 스타일의 음악을 가져왔고 거기에 국악을 접목하고 방탄소년단 특유의 거침없는 랩 스타일이 더해졌지만, 그 어느 하나가 튀지 않고 잘 어우러져 있는데다, 이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방탄소년단 스타일이라는 걸 잘 말해주는 곡이 바로 이 ‘IDOL’이다. 글로벌과 로컬이 이어지고, 랩과 댄스, 국악이 접목되는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는 축제의 한 마당. 방탄소년단은 어느새 이 곳과 저 끝을 연결하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완결해내고 있다. 

K팝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이 있지만, 그들 스스로 자신들만의 음악 스타일을 추구하고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아티스트로 성장했고,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음원 발표와 함께 전 세계가 들썩이게 되는 글로벌 뮤지션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국내보다 해외의 반응이 더 뜨거워서인지 그 정체성이 K팝이 아닌 그냥 팝의 장르가 아니냐는 일부 시선들에 대해 ‘IDOL’은 자신들의 문화적 DNA가 다름 아닌 한국이라는 걸 국악과의 접목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You can call me artist, You can call me idol, 아님 어떤 다른 뭐라 해도, I don’t care-”로 시작하는 곡의 도입부분이 방탄소년단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정의해준다. ‘artist’든 ‘idol’이든 ‘I don’t care’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 세 구절의 절묘한 랩 라임이 그들의 음악 스타일까지를 말해준다. 후렴구로 붙여진 “You can’t stop me lovin’ myself”에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가 더해지는 부분도 재미있다. 그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영어와 우리식의 국악 추임새가 기묘하게 엮어져 흥을 돋는 지점이다. 

뮤직비디오는 이 곡이 말하려는 방탄소년단의 음악적 정체성을 영상으로도 담아냈다. 디지털 세계로 구현된 가상의 공간, 테이블에 앉아있는 방탄소년단 저 뒤로 마치 아프리카를 연상시키는 붉고 큰 태양과 기린의 모습들이 뒤섞이고, 방탄소년단의 아이돌스러운 춤사위 뒤로 어떤 아티스트가 그려놓은 듯한 그림들이 펼쳐진다. 가장 흥겨운 부분으로 들어가서는 역시 사이버 세계의 이미지로 구현된 한국식 정자 속에서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 팬들로 어우러지며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뮤직비디오의 백미는 후반부에 방탄소년단이 여러 군중들과 함께 군무를 추는 대목이다. 화려한 색감으로 치렁치렁 머리카락처럼 움직이는 그 색감 앞에서 한 명씩 노래 부르던 장면들은 그 머리카락 같은 색감의 형체가 봉산탈춤의 사자 형상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그 일사분란하면서도 자유로워 보이는 흔들림은 마치 방탄소년단과 군중들이 함께 군무를 추며 축제를 벌이는 그 장면처럼 화려한 색감으로 어우러진다. 제 각각의 문화적 코드들과 색깔들이 하나로 묶여지는 축제의 현장을 영상으로 구현해낸 것. 

‘IDOL’은 메시지와 음악과 영상이 모두 방탄소년단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 보여주는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은 나라의 작은 아이돌 그룹이 이렇게 넓고 다양한 문화적 코드들을 그 품에 넉넉히 담아 한바탕 축제의 마당을 펼쳐놓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아이돌이라 불리든 아티스트라 불리든 무슨 상관일까. 이제 방탄소년단이라고 하는 그들만의 장르가 만들어졌으니.(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최인선 감독이 말하는 <우리동네 예체능>

 

덕장이라는 표현이 아마도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현재 <우리동네 예체능>의 농구팀을 이끌고 있는 최인선 감독은 유독 을 강조했다. 한두 명 잘 하는 친구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팀 전체가 다 같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경기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물론 이기려는 경기를 해야 하지만 너무 거기에 집착하다보면 더 큰 걸 놓치게 되요. 한두 번 당장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즉 모두가 자기 역할을 하게 되고 만족스런 경기를 해냈을 때 승리는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실제로 이번 <우리동네 예체능>의 농구팀은 실력 편차가 크다. 줄리엔 강이나 서지석, 김혁이 에이스 중에 에이스라면, 부상으로 주춤한 최강창민이나 아예 농구공을 잡아 본 경험이 별로 없던 강호동은 말 그대로 구멍이다. 아마추어의 강호인 창원팀을 만나 1쿼터에 무려 170이라는 스코어를 내줬을 때 최인선 감독은 골고루 선수들을 뛰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남겼다. “가비지타임이라 그러죠. 이미 패했어요. 그걸 그냥 버리면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되는 거죠....기량이 약하다고 해서 그걸 무시하면 농구 경기가 짝짝이가 되요.”

 

기량이 약한 선수를 무시하면 팀은 균형을 잃는다는 것. 이것은 최인선 감독이 말하는 팀스포츠 농구에 대한 철학이다. 그가 말하듯 농구는 기록만 갖고 선수를 평가했을 때 큰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기록 바깥에서 열심히 뛰어주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기록을 내는 선수들도 있다는 것이다. 최인선 감독의 이 말은 농구라는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 울림을 준다. 우리 사회를 하나의 팀으로 생각해보라. 세계 몇 위의 경제를 수치적으로 자랑하며 몇몇 대기업들의 위상을 말하곤 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노동자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우리사회는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가.

 

최인선 감독의 농구 철학이 단지 농구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대목은 그가 강조하는 로컬에 대한 애정이다. 즉 그는 과거 농구대잔치가 농구 붐을 만들었던 이유가 우리 식의 농구와 우리 식의 팬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식축구가 미국에서만 하지 다른 나라에서는 안하잖아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인기가 있다는 겁니다. 즉 농구도 꼭 해외랑 겨루려고 할 게 아니라 우리 식으로 재밌게 하면 되는 거죠.” 해외 용병들이 들어오면서 몇몇 용병들의 기량에 따라 성패가 좌지우지되면서 다른 선수들이 전부 가려졌다고도 했다. “그런 용병들은 사실은 팀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죠.”

 

최인선 감독이 말하는 로컬은 90년대 우리네 사회가 온통 글로벌로 들썩거리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화가 화두였던 그 시절, 결국 우리가 놓쳤던 것은 로컬이 가진 가능성들이 아니었던가. 결국 세계화의 끝자락에 IMF라는 철퇴를 맞았던 것처럼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최인선 감독은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 식의 농구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변했다. 실로 우리가 굳이 NBA를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슬램덩크가 아니라 어쩌면 슛도사슛쟁이가 아닐까.

 

최인선 감독의 이 로컬은 그래서 <우리동네 예체능>이라는 프로그램의 취지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생각이다. 생활체육이 살아야 스포츠가 살아난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동네 예체능>이 보여주는 건강한 로컬 스포츠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로 스포츠라고 하면 늘 거대한 국가 스포츠로만 생각하던 우리에게 이 프로그램은 우리동네라는 일상 속의 스포츠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국가 스포츠가 오로지 승패와 메달 수와 순위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동네의 스포츠는 함께 하는 팀워크나 그를 통한 배려 같은 스포츠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진정한 스포츠 정신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최인선 감독의 리더십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하나의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안녕들 하십니까운동이 보여주고 있는 안녕하지 못한 사회는 어쩌면 팀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잘못된 팀 운용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오로지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으로 국가경제 몇 위의 순위에만 집착하면서 정작 로컬을 챙기지 못하는 잘못된 국가 운용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건 어쩌면 최인선 감독 같은 덕장의 리더십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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