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지배종’으로 새로운 얼굴 보여준 한효주

지배종

큰 키에 잘 관리된 몸 그리고 작은 얼굴에 빛나는 피부까지... 딱 봐도 우리와는 다른 유전자를 가진 것 같은 배우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영상으로 볼 때마다 감탄하게 만드는 아우라를 가진 배우들을 직접 만나보면 너무나 다른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그건 화면과 실물 사이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배우들이 그 모습 자체가 아니라 작품 속 캐릭터라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캐릭터에 몰입한 배우들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실제로 봤을 때 심지어 못알아볼 정도로 캐릭터의 색깔을 온전히 채우고 있는 배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효주는 그런 배우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때면 가볍게 차려 입고 여행을 다니는 걸 즐긴다는 이 배우는 그렇게 다녀도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동이’룰 촬영할 때 생긴 유명한 일화가 그걸 잘 말해준다. 어느 식당에 당시 함께 촬영했던 배수빈과 같이 갔는데 식당 아주머니들이 배수빈은 알아보면서 자신은 알아보지 못하더란다. 그래서 한효주가 머리를 묶으며 “저 동이에요”라고 말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그는 작품을 할 때마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다른 느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한다. 

 

물론 초창기 한효주 하면 우리에게는 인이 박혀 버린 하나의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건 바로 ‘미소천사’다. 특유의 건치에 환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한효주는 초창기 윤석호 감독의 ‘봄의 왈츠’나 ‘찬란한 유산’ 그리고 ‘동이’ 같은 작품들을 통해 건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배우로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주로 어려워도 슬퍼도 꿋꿋이 웃으며 살아가는 캔디형 이미지랄까. 특히 ‘동이’ 같은 사극으로 20대에 MBC 연기대상은 물론이고 백상예술대상 같은 상들을 휩쓸면서 한효주의 이미지는 바로 그 건강한 미소로 대변되는 단아하고 여성스런 이미지로 상당부분 굳어진 면이 있었다. 

 

하지만 한효주는 그 이미지 하나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2013년 영화 ‘감시자들’에서 그는 감시반의 신참에서 점점 전문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통해 설경규, 정우성 사이에서도 도드라진 연기를 선보였다. 또 2015년 개봉한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무려 123인 1역의 연인과 사랑에 빠지는 역할로 배우 21명과의 감정연기를 소화해냈다. 또 6년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던 ‘W’를 통해서는 웹툰 속에서 튀어나온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 장르의 연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한효주의 다양한 시도에도 한 가지 고정된 연기 영역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멜로다. 그는 자타공인 멜로퀸으로서의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그건 살짝 미소만 지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의 외모와 이미지가 만들어준 축복이었지만, 배우로서 그런 틀은 족쇄나 다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년과 올해 한효주의 행보는 이러한 족쇄를 확실히 끊어버리고 또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 시간들이 아닐 수 없었다. 디즈니+에서 작년에 방영된 ‘무빙’과 올해 방영되고 있는 ‘지배종’에서의 한효주는 이전의 멜로퀸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새로운 얼굴들이었으니 말이다. 

 

‘무빙’에서 한효주가 연기한 이미현이라는 인물은 젊어서는 안기부 엘리트 요원으로 활동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성장한 김봉석(이정하)의 어머니이자 김두식(조인성)의 아내로 돈가스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이다. 연령대의 폭이 넓을 수밖에 없고, 또 그 상황과 연령에 맞는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젊은 날의 이미현은 같은 안기부 엘리트 요원으로서 김두식과 함께 액션과 더불어 달달한 멜로를 그려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공중부양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그는 칩거해 평범한 돈가스 식당 사장이자 헌신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로 변신한다. 그렇지만 아들을 지켜내고 남편인 김두식을 구하기 위해 다시 총을 든 모습에서는 안기부 엘리트 요원다운 액션에 모성과 사랑이 더해진다. 그래서 그저 멜로 퀸이라는 평범한 수식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한 사람의 다양한 삶과 인생이 느껴지는 연기에 도전할 수 있게 됐고 한효주는 그걸 보기좋게 해낸다. 

 

‘지배종’은 이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미소천사’로 불리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웃음기 빠진 모습으로 윤자유라는 인물을 설득시킨다. 2025년 생명공학기업 BF가 성공시킨 인공 배양육 기술을 두고 벌어지는 여러 각계의 욕망과 갈등을 다룬 이 작품에서 한효주는 이 새로운 근미래의 세계관을 단박에 몰입시키는 연기로 드라마의 문을 연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BF의 기술을 윤자유가 소개하는 장면을 위해 한효주는 테드 영상을 연구하고 모든 대사를 외워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이로써 윤자유가 보다 전문적이면서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면서 동시에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이 세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물론 우채운(주지훈)이라는 인물과의 섬세한 감정 교류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한효주는 ‘지배종’을 통해 그간의 멜로 이미지에서 자유로워진 연기를 선보였다. 웃던 얼굴이 굳게 입을 다물자 진지함은 더 깊어졌다. 또한 시시각각 벌어지는 위기 속에서도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모습은 윤자유라는 인물이 얼마나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소신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줬다. 

 

‘지배종’을 통해 한효주의 연기가 보여주는 페르소나는 이 작품의 배역인 윤자유라는 이름에 그대로 녹아 있다고 여겨진다. 그는 이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멜로는 물론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액션에, 치열한 심리를 보여주는 내면연기까지 자유로운 배우로 성장했다. 그 성장 과정이 우연이 아니고 매너리즘을 벗어난 부단한 도전과 치열한 노력 속에서 이뤄진 것이란 점에서 어떤 영역에서의 자유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이 배우의 페르소나는 보여준다. 그저 미소 한 번 지으면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걸 타고난 이가 그 미소를 거두자 거기 가려져 있던 단단한 내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어떤 영역에서 지배종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자유로움을 얻기 위한 노력의 시간들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걸 한효주의 페르소나는 말해주고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디즈니+)

‘무빙’, 자식 가진 부모들을 초능력자로 그린 건

무빙

“아 아 아빠 어 엄마 데리러 그 금방 갔, 갔다 올게. 강훈이 자, 자기 전에 올 게. 아빠 야 약속 꼭 지켜. 지, 진, 진짜 강훈이 자기 전에 올게. 저지지 진짜 약속 꼭 지킬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에서 재만(김성균)은 아들 강훈에게 재차 약속한다. 꼭 자기 전에 돌아온다고. 

 

재만은 바보다. 정신 지체를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도 또 아들 밖에 모른다는 의미에서도. 밤이 늦었지만 돌아오지 않는 아내가 걱정된 재만은 그토록 아끼는 아들을 혼자 집에 두고 아내를 찾으러 나간다. 자기 전 꼭 돌아온다는 약속을 연거푸 하면서.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노점상 강제철거 반대 시위에 나섰던 아내가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본 재만이 폭주하기 시작한 것. 

 

그는 초능력의 소유자다. 전경 1개 소대를 혼자서 때려 부술 정도로. 결국 이 사안이 보고되고 국정원의 민용준(문성근) 차장은 재생 능력을 가진 장주원(류승룡)을 부른다. 아내가 사망한 후 홀로 딸 희수를 키우고 있는 싱글 대디 장주원은 딸을 두고 작전에 나가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 잠든 딸이 혹여나 깰까 어둠 속에서 군화끈을 맬 때 틱 하고 현관 불이 켜진다. 잠에서 깬 딸이 아빠를 위해 현관문 불을 켜준 것. 그리고 “잘 다녀와”라고 말한다. 그런 딸을 아빠는 꼭 껴안는다.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무빙>이 14회 ‘바보’라는 부제로 그리고 있는 건 아빠들의 이야기다. 아빠들이 출퇴근길에 느끼는 감정들이 이 회차에서는 반복적으로 담겨진다. 아들 바보 재만도 딸 바보 주원도 현관 앞에서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홀로 자식을 두고 일을 나가는 그 발길에 우리네 샐리러맨 아빠들의 소회가 묻어난다. 

 

일찍 돌아올게. 금방 갔다 올게. 아빠들이 그렇게 다짐하듯 자식들에게 남기는 말들은 번번이 지켜지지 못한다. 가족을 위해서 어떻게든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에 야근에도 또 일의 연장으로 벌어지는 회식자리도 빠지지 못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 갖게 되는 그 미안함과 쓸쓸함이 이 초능력을 가졌지만 바보 아빠들인 재만과 주원의 얼굴에 교차된다. 

 

아이러니한 건 가족을 위해 야밤에도 불러내면 일을 하러 나가야 되는 아빠들을 세상은 맞붙여 싸우게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붙잡혀 가는 아내를 구하겠다는 일념에 폭주하게 된 재만도 그를 체포하기 위해 투입된 주원도 그 일에 서로에 대한 사적 감정 따위는 없다. 그저 가족을 위해 그 생계를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이다. <무빙>이 이 회차에서 포착하고 있는 건 바로 이런 현실이다. 저마다의 생계를 볼모삼아 사회의 전장에서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서로 싸워야 하는 현실. 

 

하지만 이 싸움은 한 아이로 인해 그 양상이 바뀐다. 맨홀에 빠져 살려 달라 애원하는 아이를 발견한 주원과 재만은 서로 싸우기 위해 날렸던 주먹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날리기 시작한다. 벽을 부수고 아이를 구해낸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이 누군가의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는 걸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아이를 구해내고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약속보다 늦게 귀가했지만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아이들 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그들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기막힌 한국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자식 가진 부모는 모두 초능력자가 된다는 서사가 이 ‘바보’라는 부제를 가진 14회에 담겨있다. 그들은 자식만 보이는 바보가 되고, 세상에 나가서는 ‘괴물’이 되기도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이가 안아주는 것만으로 모든 걸 위로받는 아이 같은 존재가 된다. 지금껏 그 어떤 작품이 이만큼 짠한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적이 있을까. <무빙>이라는 한국적 슈퍼히어로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다.(사진:디즈니+)

‘무빙’, 재생 능력자 류승룡의 피, 땀, 눈물에 빠져드는 건

무빙

등짝에 칼이 수십 개씩씩 박혀도, 총알이 팔뚝을 뚫고 심지어 얼굴을 관통해도 툭툭 털고 일어나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재생 능력자 장주원(류승룡). 하지만 이 초능력자도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는 오열하며 무너져 내린다. 모든 걸 재생시키고 회복시키는 능력을 가졌지만, 한 사람 앞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이 초능력자는 그것으로 자신이 결국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한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이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지점이다. 초능력자가 가진 인간적 상처와 고뇌. 물론 이건 슈퍼히어로물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슈퍼맨도 배트맨도 스파이더맨도 인간적 고뇌는 모두 갖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무빙>이 다루는 초능력자들의 인간적 고뇌는 그 서사의 깊이도 다르고, 보다 현실감이 부여되어 있다. 

 

<무빙>의 초능력자들이 저 할리우드 초능력자들과 달리 슈트를 입지 않는 건 그런 현실성을 더 반영한다.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비행기를 향해 날아가는 공중부양 능력자 김두식(조인성)이나 북한에서 남파된 무장공비(북한 능력자가 포함된)를 막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 장주원 역시 특별한 슈트를 입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점퍼 하나를 걸치고 총칼이 난무하는 작전에 투입된다.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물이면서, 그 서사에 실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을 굳이 연결해 놓은 것도 이런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무빙>은 안기부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던 시절부터 권한이 축소되고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다시 힘이 커지는 그 변화의 과정을 북한과 관련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과 연관지어 풀어낸다. 칼기 폭파사건, 김일성 사망, 남북정상회담, 강릉 앞바다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등등이 그것이다. 남북 간의 치열한 대결구도 속에서(미국의 간섭도 포함해), 국가 간 힘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를 초능력자들의 서사로 풀어낸 것이다. 

 

이러한 현실감 위에 초능력자들을 세워 놓은 건, <무빙>이 진짜 하려는 이야기가 세상을 구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비정한 현실을 그리기 위함이고, 그래서 이들의 대결상대는 북한이나 미국의 초능력자라기보다는 저들과 맞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이들을 인간이 아닌 괴물처럼 마음대로 이용하는 안기부 특별부서의 민용준(문성근) 차장 같은 인물이다. 

 

재생 회복 능력을 가진 장주원의 서사가 더 절절한 현실감을 주는 이유는 이 초능력자의 능력이 그저 깔끔하게 상대를 처리하는 그런 방식으로 발휘되는 게 아니어서다. 이 캐릭터는 한 마디로 ‘가진 건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자’가 살벌한 현실에서 생존해가는 서사를 담고 있다. 지극히 서민적이고, 피와 땀과 눈물이 서려있다. 그래서 그가 작전에 투입되어 발휘하는 능력의 과정은 멋있다기보다는 짠한 느낌을 준다. 뭐든 온 몸으로 받아내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제 살갗을 찢는 그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회복 능력을 가졌다는 건, 단번에 이 고통이 끝나지 않고 연거푸 계속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는 ‘천형’의 의미가 담겨있다. 조직에 배신당하고, 안기부에서 이용당하면서도 그가 원한 건 단 하나, 아내와 함께 하는 행복이었다. 안기부 특별부서가 해체되고 하루하루를 생활고를 걱정하며 살게 된 이 평범해진 샐러리맨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꼭 안아주던 아내 때문이었다. “행복하다, 이러면 되는 거다. 이렇게 살자.”고 그는 생각한다. 

 

류승룡은 장주원이라는 재생 회복 능력을 가진 이가 겪는 피, 땀, 눈물을 공감시키는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어딘지 계산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 캐릭터는 류승룡을 만나 액션과 멜로에서 일관성을 느끼게 해준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계속 직진하는 액션과 멜로라니. 초능력자라도 이토록 인간적인 냄새가 느껴지게 된 건, 이 캐릭터의 독특한 현실은유와 더불어 이를 구현하고 표현해낸 류승룡의 공이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특히 이 캐릭터는 <무빙>이 그리려 하는 세계, 즉 초능력자라는 판타지를 가져와 그들이 마주한 비정한 현실을 그리려는 그 세계를 납득시키는 존재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장주원에 설득되면 <무빙>이 가진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속에서는 초능력자들이 날아다니고 총에 맞아도 재생되는 그런 장면들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보다 더 깊은 이들의 내면에 공감했으니 말이다. 류승룡의 미친 연기는 바로 이런 점에서 <무빙>의 든든한 반석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사진:디즈니+)

‘무빙’, 초능력보다 공감 능력!

무빙

“초능력 그게 뭔데? 사람의 진짜 능력은 공감 능력이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그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야.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게 그게 무슨... 그게 무슨 영웅이야? 용기 내서 한 행동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마치 네가 더 잘났다는 듯이 친구들 앞에서 뽐내듯이 보여 줬잖아. 봉석이가 한 행동은 하나도 멋있지 않아. 히어로? 아니야. 다른 사람 마음 헤아리지도 못하는 거 그건 아무 것도 아냐.”

 

기분이 좋거나 너무 슬프거나 하는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면 몸이 허공으로 붕 뜨는 공중부양을 하는 봉석이(이정하). 어린 봉석은 정글짐에서 ‘번개맨’을 흉내내며 뛰어내려 아이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는 친구를 보며, 자신도 마음껏 공중부양을 뽐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들 앞에서 보인 공중부양은 그 친구를 상처받게 하고 따라하다 다치게 만들었다. 봉석의 엄마 미현(한효주)은 봉석에게 그런 건 히어로의 행동이 아니고 멋있지도 않다고 선을 긋는다.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의 이 장면은 이 슈퍼히어로물이 가진 특별한 색깔을 보여준다. 그저 날아다닐 수 있고, 다쳐도 치유능력이 있어 다시 회복되거나, 미세한 소리까지 다 듣거나, 투시능력 같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무빙>에는 등장한다. 당연히 이들이 보여주는 판타지 액션들이 펼쳐지고 스펙터클한 영상들이 매회 채워진다. 하지만 <무빙>이 이러한 슈퍼히어로들을 등장시켜 보여주려는 건 그런 외면적인 액션들만이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이지만, 이들을 통해 <무빙>이 하려는 이야기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봉석에게 미현이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초능력 이전에 사람의 진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감 능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남과 다른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무거운 덤벨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고, 혹여나 몸이 뜰까봐 잔뜩 먹어 살을 찌우며 감정 동요가 올 때마다 원주율 3.14를 애써 주문처럼 외우는 봉석이. 친구 하나 없던 그는 전학 온 희수(고윤정)와 가까워진다. 

 

늘 남을 배려하고 응원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봉석의 가치를 알아주는 희수에게 자신이 공중부양을 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들킨 봉석은 그것이 ‘비결’이 아닌 ‘비밀’이라는 걸 알려주고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방을 보여준다. 공중부양에 대비해 천장 가득 쿠션들이 붙여져 있는 방. 그 봉석이 부딪쳐 낡아버린 방은 꼭 봉석 자신을 닮았다. 그런 봉석에게 희수는 그의 능력이 놀랍긴 하지만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것이며 특별한 거라고 말해준다. “넌 이상하지 않아. 조금 다르고 특별할 뿐이야.”

 

<무빙>은 이처럼 봉석과 희수 같은 저마다의 가능성을 지닌(그것이 초능력으로까지 은유되는) 존재들을 그리면서, 이들의 능력을 애써 감추려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은퇴한 초능력자들인 부모들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일상적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겪어서 알고 있다. 게다가 누군가 자신들을 하나하나 제거해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더더욱 아이들이 능력을 드러내는 막으려 한다. 

 

봉석과 희수 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의 세계와, 이런 능력들을 무기화해 써먹고는 다 쓰고 나면 폐기처분 하려는 어른들의 세계. <무빙>은 이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는데, 흥미로운 건 여기에 봉석과 희수 같은 입시 전쟁에 들어 있는 고3 학생들 같은 한국적인 현실도 들어 있다는 점이다. 꿈을 마음껏 펼칠 나이에 이를 억압당하는 고3 학생들의 처지는 그래서 날 수 있지만 날개가 강제로 접힌 채 무거운 짐을 가방 가득 지고 다니는 봉석과 겹쳐진다.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선별해내 육성하고 요원으로 쓰려는 국정원 비밀세력이 있고, 거기서 파견된 이들이 선생님이 되어 특별한 아이들을 테스트 한다. 이들의 능력은 그러나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북한 같은 한국을 둘러싼 나라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미국은 그 능력의 싹을 자르려 하고, 북한 역시 이를 도발로 느끼며 모종의 움직임을 보인다. 

 

놀라운 능력을 가진 초능력 슈퍼히어로들의 액션이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이들이 꾸려가는 이야기들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일상적인 면모들로 채워진다. 게다가 이 소박한 이야기는 미국과 북한 같은 글로벌한 스파이전으로까지 확장되어 있다. 실로 디즈니가 무려 500억이 넘는 제작비를 쾌척할 만한 신박한 세계관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그 어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시원시원한 시각적인 만족감만큼, K콘텐츠 특유의 몽글몽글하고 귀엽고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른바 ‘K슈퍼히어로’라고 해도 될 법한. (사진: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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