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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을 그냥 넘길 순...”, ‘저수지게임’ 그 질깃함의 이유

다큐 영화 <저수지 게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무려 5년째 추적해온 주진우 기자는 스스로 실패했다고 말했다. 모든 정황들이 있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 

사진출처:영화<저수지게임>

그리고 이런 결과는 이미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영화관에 들어온 관객들은 알고 있다. 만일 주진우 기자의 추적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영화관이 아닌 뉴스를 통해 봤을 것이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민들 대다수가 의구심을 갖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속 시원한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주진우 기자 말대로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저수지 게임>이 담고 있는 것은 속 시원한 성공담이 아니다. 실패담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은 좀체 시원해지지 않는다.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저 정도라면 포기했을 거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경우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진우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5년을 추적했고 지금도 그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결과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 담긴 집념을 담는다.

<저수지 게임>의 주진우 기자는 MB의 비자금을 추적하며 하나의 패턴을 발견한다. 해외 투자라는 명목으로 망할 투자를 공기업들이 나서서 하고 그래서 적게는 수백억에 이르는 투자금을 공중분해시켜 버린다. 사라진 돈의 출처가 불분명한 가운데, 이상하게도 손실을 본 투자자인 공기업들은 이를 회수하려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고소도 하지 않는다. 주진우 기자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진우 기자가 스스로 “열이 받는다”고 말하고 그 말에 관객들도 공감하는 까닭은 그 많은 돈들이 사실은 국민의 세금이라는 점이다. 결국 우리 돈을 가져가 망할 투자를 하고 돈을 날려버린 뒤 찾으려는 노력도 또 책임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바보로 전락한다. 정부는 혹 대책이 없는 게 아니라 공범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주진우 기자가 끊임없이 관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통해 어려운 진술을 받아내고, 또 해외로 직접 날아가 관련자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에 우리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제발 증거가 나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주진우 기자와 함께 사건을 추적했던 김어준은 말했다. 자금 추적을 하면 사라져버리는 일이 일상이었다고.

그러니 5년여의 추적이 실패로 돌아올 이 일을 그들 또한 몰랐을 리 없다. 심지어 고소도 당했다. 그런데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 일에 집착하냐고 감독이 묻는다. 기자정신 같은 건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눈앞의 “부정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외면할 수는 없다는 거다. 적어도 이렇게까지 “뒤쫓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것. 

그래서 관객들이 실패담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수지 게임>을 들여다보려는 건 적어도 주진우 기자의 그 질깃질깃한 집념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에 지지를 표하고 싶어서다. 어떤 안도감이라도 갖고 싶어서다. 보는 내내 화가 나고 허탈한 한숨이 터지지만 그래도 영화관을 나오며 어떤 뭉클함 같은 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하는 그 의아함에 담겨지는 놀라운 집념에서 어떤 작은 희망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 그래서 그의 실패담에는 단서가 붙었다. ‘아직까지는’이라는.

Posted by 더키앙

‘더 플랜’, 합리적 의혹의 자격, 답해야 할 의무

만일 내가 찍은 투표지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경쟁 후보 쪽으로 집계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사실 김어준의 다큐영화 <더 플랜>이 던지는 질문은 아직까지 그다지 의심해보지 않았던 사안이다. 설마 컴퓨터가 하는 집계인데 그런 오류 혹은 나아가 부정이 있었을까. 

사진출처:영화<더 플랜>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의혹 쪽으로 기울어가는 걸 어쩔 수 없다. 그 의혹은 막연히 정황만 가지고 쓰는 소설이 아니라 데이터들이 일관되게 보이고 있는 숫자가 주는 의혹이라는 점에서 더 현실감을 부여한다. 그 숫자들은 통계학적인 분석을 통해 나온 것들이다. 지난 대선, 투표 분류기가 미분류한 표에서 박근혜와 문재인 두 후보 간의 득표율을 분석해보자 전국의 미분류 표에서 1.5라는 일정한 비율로 박근혜 후보의 표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 비율로 논문까지 쓴 통계학자는 이러한 일정한 비율이 나온다는 건 중앙의 통제가 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미분류표의 비율이 1의 비율에 최대한 가까워야 상식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1.5라는 수치는 지나치게 많은 비율이고, 만일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거기에 대해 이를 관리하는 주체는 합당한 답변을 내 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다큐영화는 이런 문제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해외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안들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독일 등지에서 전자개표기를 두고 벌어졌던 소송들의 사례를 보여주며 이러한 컴퓨터 방식의 개표가 간단한 해킹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에서는 결국 그 신빙성을 문제 삼아 제기된 소송에 의해 전자개표기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됐다는 것. 

<더 플랜>은 영화 말미에 자막을 통해 선관위에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밝혀두었다. 영화가 나오고 난 후 지난 19일 선관위는 드디어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표지 현물을 직접 검증하는 것”이고 “<더 플랜> 제작진의 요구가 있다면 조작 여부 검증에 필요한 범위에서 제3의 기관을 통해 공개 검증을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결과를 조작한 것이 밝혀진다면 선관위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 선관위는 한 가지 단서를 덧붙였다. “반대로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의혹을 제기한 분들은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김어준은 이러한 대응이 “일종의 협박”이라고 밝혔다. 

<더 플랜>이 제기하는 의혹은 한 마디로 끔찍하다. 만일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투표가 부정한 누군가에 의해 간단히 조작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영화 뒷부분에 <더 플랜> 제작진은 당시 사용됐던 전자개표기를 어렵게 구해 박근혜와 문재인으로 나뉘어진 표를 넣고 개표감시를 해온 ‘시민의 눈’ 활동가들이 보는 앞에서 해킹 실험을 선보인다. 놀랍게도 표에 찍혀진 도장과 상관없이 해커가 집어넣은 수치의 비율대로 정확히 표가 나뉘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한 그들은 너무나 허탈하고 황당해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나 화가 나고 황당했으면 심지어 그들 중에는 눈물까지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더 플랜>이 던지고 있는 건 질문이다. 수치들과 조작 가능한 전자개표기의 해외 사례와 국내에서의 실험이 모두 합리적 의심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주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투표에 대한 이러한 합리적 의혹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선관위 같은 공공기관은 이러한 의혹을 해소해줄 수 있는 확실한 답변을 던질 의무가 있다. 그것이 그저 의혹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선관위는 <더 플랜> 제작진의 요구가 있다면 제3의 기관을 통해 공개검증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더 플랜>이 던진 질문은 그것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나온 미분류표의 1.5라는 일정한 수치의 비율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직 확실히 나오지 않았다.

Posted by 더키앙

<잉여들><능력자들>, 소재가 아까운 청춘 예능

 

잉여 혹은 덕후. 우리네 청춘들에게 익숙한 두 단어는 어떻게 MBC의 파일럿 예능의 키워드가 되었을까.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잉여라 비하되기도 하는 청춘들의 무일푼 유럽 여행기를 다루는 것이었고, <능력자들>은 이른바 덕후라고 불리는 마니아들을 스튜디오로 소환해 그들의 덕질이 의외로 놀라운 전문가적 식견과 결과들을 만들어낸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사진출처:MBC)'

물론 이 두 파일럿 프로그램은 안타깝게도 괜찮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결과를 보여줬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콘셉트와 맞지 않는 출연자들이 나와 그 진정성이 애매해졌고, 무엇보다 노홍철의 복귀작이라는 점이 여러모로 부담이 되었다. <능력자들>은 오드리 햅번 마니아, 치킨 마니아 그리고 사극 마니아 같은 흥미로운 일반인 출연자들을 등장시키고도 예능적인 재미를 뽑아내지 못했다. 물론 파일럿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하나의 결과를 향한 과정일 수 있다.

 

어찌 보면 정규화되기 힘든 파일럿 프로그램의 결과를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건 그 소재가 지금껏 지상파 예능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청춘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잉여와 덕후. 사실 약간의 비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지만 그것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청춘의 긍정으로 그려질 수도 있는 소재였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좀 더 깊게 이 단어들이 가진 의미를 되새겼다면 프로그램의 공감대는 커졌을 수 있다.

 

잉여란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만 느껴지지만 사실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긍정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즉 잉여는 어떤 기준점이나 중심점을 세워뒀을 때 그 자투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중심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다. 하지만 애초에 기준과 중심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가하는 의구심을 갖는다면 잉여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뀔 수 있다. 기성사회가 세워놓은 성공의 시스템과 기준점들이 있기 때문에 잉여라 치부되는 것이다. 그것 자체를 무시하거나 무너뜨리면 잉여란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단어가 된다.

 

이것은 덕후도 마찬가지다. 물론 <능력자들>은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이 덕후들을 전문가 못지않은 능력자로 담아내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무언가 현실과 유리된 채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식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 게 덕후라는 단어라면, 이제 그것은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것처럼 청춘들의 삶의 열정이 되어주고 심지어는 삶 자체를 바꿔놓기도 하는 힘이 된다.

 

만일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보다 진정성을 살려 진짜 잉여로 내몰린 청춘들의 긍정을 담아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능력자들>이 그 좋은 기획의도를 잘 살려내 청춘들을 긍정하면서도 그저 이런 인물들이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좀 더 예능적인 포인트들을 잘 살려냈다면? 아마도 이 두 프로그램의 성취는 다른 평가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능력자들>은 실로 소재가 아까운 파일럿 예능이다. 하지만 이 두 프로그램은 소재만으로 프로그램이 세워질 수는 없다는 걸 잘 보여주었다. 잉여의 긍정성을 담으려던 의도도 그 진정성을 담지 못하니 프로그램의 잉여가 되어버리고, 덕후들을 능력자로 담아내려는 의도도 그 보편적인 재미를 담보하지 못하니 마니아 프로그램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 프로그램들이 정규화 된다면 청춘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이 좋은 소재와 기획의도가 갖고 있는 의미들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세세한 노력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더키앙


'천일'의 긍정론, '브레인'의 부정론

'브레인'(사진출처:KBS)

공교롭게도 월화극 두 편이 모두 뇌 질환을 다뤘다. 종영한 '천일의 약속'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서연(수애)과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지형(김래원), 그리고 그녀를 이해하고 같이 아파하는 주변인물들을 통한 인간애를 다뤘다. 반면 '브레인'은 어린 시절 뇌수술을 받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뇌수술 전문의가 된 이강훈(신하균)이 역시 뇌종양에 걸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그 죽음을 바라봐야 하는 과정을 다뤘다.

두 사람 다 죽음을 맞이하거나 목도해야 했지만, 바로 그 죽음을 다루면서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시선을 사뭇 다르다. '천일의 약속'이 서연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그래도 인간적인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이고, '브레인'이 죽은 어머니 앞에 오열하는 이강훈을 통해 보여주는 건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판타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연은 점점 기억이 사라져가고 결국에는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참혹한 상황을 겪지만 이것을 '새드 엔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드라마는 결국 죽음이 아니라 기억의 문제를 다룬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지형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는 서연은 비극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진짜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물론 '천일의 약속'이 제시한 서연의 삶이 전혀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담담하고, 예의 있는 주변인물들의 모습들은 분명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다는 걸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즉 '천일의 약속'은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지만 그것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브레인'은 다르다. 이 도무지 웃음이라는 걸 잊어버린 듯 잔뜩 찡그리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살아가는 이강훈은 지독한 현실을 아무런 판타지 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자신이 연구한 치료제로 어머니가 살아나는 '기적' 같은 것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다. 만일 의사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더 담담했을 수 있었겠지만, 스스로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봐야 하는 무력감은 더 컸을 것이다. 그는 심지어 아버지의 죽음과 연루되어 있다 여겨지는 김상철(정진영) 교수 앞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를 살려 달라" 애원하는 인물이 아닌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 "수술해 달라"고 애원하며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이강훈의 아픔이 드러나는 장면이 더 슬픈 건 그 때문이다.

'천일의 약속'이 죽음 속에서도 남긴 긍정적인 미소보다, '브레인'의 이 처절한 눈물이 더 슬프고 공감되는 건 아마도 작금의 현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디 지금 우리가 밟고 사는 세상이 긍정적인 미소로 바뀌어질 수 있는 세상인가. 그런 긍정론마저 사치로 여겨지는 세상이 아닌가. 그래서 '브레인'의 이 처절할 정도로 무너지고 부서지는 이강훈이란 캐릭터에 우리의 마음이 빼앗기는 것을 게다. 그의 독기 오른 모습에서 우리는 그를 그렇게 만든 이 지독한 세상을 읽어내는 것이니까.

'천일의 약속'보다 '브레인'이 더 공감되고 더 슬프게 여겨지는 건 바로 이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한 사람이 기억을 통째로 잃어가는 치매와 그것을 주변사람들이 이해하고 희생해주는 삶의 이야기는 분명 아름다운 것이지만, 자신을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 뛰어다니는 아들에게 "그냥 가게 내버려 둬"라고 말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한 가난한 어머니가 주는 생생한 현실의 느낌은 느끼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과연 그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브레인'은 이강훈을 통해 그걸 질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더키앙

나영석 PD의 부정에 모두가 공감하는 이유

"안됩니다!", "땡!", "강호동 실패!" 이승기의 나영석 PD 흉내 내기는 나영석 PD와 제작진은 물론이고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까지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자막이 적혀진 대로 아마도 연예인이 최초로 시도하는 PD 흉내 내기일 것이다. 그런데 '1박2일'의 2010년 마지막 미션으로 주어진 제작진 없이 떠나는 여행에서 이승기는 왜 나영석 PD를 흉내냈을까.

처음 그 뉘앙스는 뒷담화(?)였다. 제작진이 빠진 여행이니 제작진에 대한 뒷얘기가 나올밖에. 멤버들끼리 떠나는 차 안에서 이승기의 "안됩니다!" 한 마디가 팀원들에게 빵 터진 것은 아마도 그 부정어법과 나 PD가 이미지적으로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1박2일'은 늘 제작진과 출연진이 대립각을 세워왔고(그래서 때로는 복불복에서 진 제작진 전체가 야외취침을 하기도 했다), 나 PD는 출연진이 복불복의 함정에 빠질 때마다 "안됩니다!", "땡!"을 외쳤다. 그래서 이승기의 성대모사는 한 치의 틈을 보이지 않는 나 PD에 대한 소극적인 복수(?)처럼 보였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제작진 없이 떠난 '1박2일'의 마지막 미션은 후반부에 나머지 반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카메라 조작조차 미숙한 그들은 심지어 사운드가 되지 않는 영상을 열심히도 찍어댔으며, 카메라만 놓여진 시골 빈 집에서 커다란 빈자리마저 느꼈다. 평상시라면 제작진들에 의해 북적거렸을 그 공간에 그들만이 덩그마니 남아있다는 사실. 어찌 보면 제작진 없이 떠난 여행은 "안됩니다!"가 아닌 뭐든 "됩니다"의 여행이었지만 그들은 "땡!"을 외쳐주는 제작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안된다고 소리치는 제작진이 있어야 프로그램이 생기를 갖게 된다는 것. 나 PD의 성대모사는 뒷담화라기보다는 그 그리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자정 12시 복불복 미션으로 불을 끄고 모두 방에 있으라는 나 PD의 제안은, 그래서 어딘지 밋밋해져버린 이 2010년 마지막 여행 미션에서 "안됩니다!"라고 늘 그들에게 부정하는 나PD의 출연을 기대하게 했다. 안된다고 얘기하지만 바로 그런 빈틈없는 나 PD(로 대변되는 제작진들)가 있어야 '1박2일'이 '1박2일'다워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런데 그렇게 기대감을 갖고 나타난 나 PD는 이제 그 예상을 뒤집는다. '안된다'고 말하려 나타난 것이 아니라, "너무 보고 싶어서" 왔다는 나 PD의 말은 그래서 출연진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들었다.

늘 부정하고, 악역을 도맡는 나 PD의 진심이 살짝 엿보였기 때문. 프로그램을 위해 "미션 실패!"를 외치며 엄동설한에도 야외취침을 강행시키는 그의 마음 속에는 분명 그렇게 고생하는 출연진들에 대한 애정이 한 가득이었음을 그 반전을 통해 보여주었다. 어찌 그라고 고생하는 출연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없었을까.

하지만 쇼는 계속되어야 하고, 그러기 때문에 나 PD의 "안됩니다!", "땡!", "실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음을 전한 연후에 '1박2일'은 또 한 번의 반전으로 마음을 다졌다. 1년을 잘 보낸 감사의 케이크에 매운 겨자를 넣어 결국 잠자리 복불복 미션으로 이어지게 한 것. 최대의 반전이지만 이미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연후였다. 이승기가 나 PD를 흉내내고 그 모습을 보며 나 PD는 물론이고 제작진이 포복절도하는 모습은 결국 그들이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는 한 팀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1박2일'의 2010년 마지막 미션은 그래서 제작진과 출연진이 늘 대립각을 세우며 복불복을 수행하는 이 프로그램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아주 쿨한 방식으로. 한쪽에서는 "안된다"고 부정해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투덜대지만 서로가 그래야 프로그램이 산다는 것을 그들은 긍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심지어 한 편이 없으면 서로를 그리워할 정도로. 이승기가 나 PD를 흉내낸 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2011년에도 나 PD의 부정어법이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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