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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와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

“이거 궁예 아니신가?” 길거리에서 만난 아저씨는 김영철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KBS 대하 사극 <태조 왕건>에서 김영철이 연기했던 그 궁예 역할이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은 탓일 게다. 이른바 ‘관심법’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 정도로 세간의 화제가 됐던 캐릭터가 아니었던가. 그 궁예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살갑게 동네사람들에게 다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그려내는 풍경이다.

늘상 지나던 동네이니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또 새롭다. 세월의 더께가 앉은 노포들과 그 곳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서는 그 세월만큼의 이야기들이 묻어난다. 콩나물 비빔밥 집에서의 점심 한 끼는 어머니처럼 푸짐하게 챙겨주는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새롭고, 60년 째 가업을 이어 이용원을 하고 계시다는 아저씨와의 대화 속에서는 젊은 날의 방황을 거쳐 돌아와 이제는 자부심까지 갖는 그 마음이 느껴진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서 만난 수제화 장인에게서는 그 손을 거쳐 얼마나 많은 분들이 불편함을 덜어냈을 지가 엿보이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동네 구멍가게 아주머니에게서는 외국인들이 돌아가서도 그 아주머니를 통해 느꼈을 ‘한국의 정’이 느껴진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에 들어가 있듯, 김영철이라는 배우가 아니면 담아내기 힘든 느낌 같은 것들도 들어있다. 1973년 극단에 입단하며 시작된 배우의 길은 현재까지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작품들로 이어져왔다. <태조 왕건>의 궁예, <야인시대>의 김두한, <아이리스>의 백산, 영화 <달콤한 인생>의 강사장 역할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줘 왔지만, <아버지가 이상해> 같은 드라마의 변한수 역할 같은 따뜻하고 헌신적인 역할도 보여줬다. 그러니 이 많은 역할을 해온 배우가 연기라는 세계 바깥으로 나와 동네를 걷는 그 장면 자체가 이체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많은 인물들을 연기해온 그가 바로 그 실제 인물들을 만나는 순간들이 그렇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제작발표회에서도 나왔던 이야기지만, 그 구도가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다. 그건 바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370여회가 넘게 전국 각지를 찾아다니며 그 곳의 밥상을 소개했던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이다. <한국인의 밥상>같은 장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며 ‘동네 천 바퀴’를 돌고 싶다 포부를 밝혔던 데서도 드러나듯, 두 프로그램은 닮은 구석이 많다. 

먹방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 <한국인의 밥상>은 다소 진지한 접근으로 전국 각지에서 철마다 나오는 식재료들과 그것들을 특유의 방법으로 해먹은 요리법을 소개해왔다. 처음에는 너무 진지한 다큐 같은 느낌이 강했지만 보면 볼수록 그 깊이에 빠져들게 되는 프로그램. 마치 전국 각지에 존재하는 우리네 밥상을 마치 백과사전처럼 온전히 정리해내겠다는 그 포부도 좋지만, 그걸 현지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소박한 삶과 이야기로 전하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한국인의 밥상>이라고 해서 ‘밥상’만 보일 줄 알았더니 ‘한국인’이 보이는 것.

이걸 가능하게 하는 인물은 역시 프로그램을 지금껏 이끌어온 최불암이다. 우리에게는 <수사반장>의 캐릭터가 더 강렬하게 남아 있지만, 어쩌면 이 프로그램과 더 어울리는 모습은 <전원일기>의 김회장이 아닐까.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1088회를 방영했던 진짜 ‘국민드라마’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이 드라마를 통해 김회장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로 자리 잡은 바 있다. 그러니 그가 지방을 찾아다니며 쉽지 않은 노동에 두툼해진 아주머니의 손을 잡는 장면은 그 자체로 뭉클한 면이 있다. 맛깔나게 담아주는 내레이션 또한 빼놓을 수 없지만.

궁예의 김영철과 수사반장 최불암. 이들이 연기가 아닌 실제 현실 속 길을 걷게 된 건, 그들이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름 모를 서민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며, 만만찮은 삶의 경험을 공감대로 그들과 나눌 수 있는 인물로 이들 만한 배우들이 있을까. 두 프로그램이 모두 그들의 필모그래피처럼 장수하는 프로그램이 되길.(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완벽한 우리식 재해석, 리메이크라면 ‘라온마’처럼

진짜 OCN 주말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리메이크 드라마가 맞을까? 이젠 형제복지원 사건까지 등장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부산 형제복지원에 감금하고 가혹행위를 한 인권유린 사건’으로 12년 간 무려 513명이 숨졌지만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도 부른다. 

<라이프 온 마스>는 사고를 당한 경찰이 깨어나 보니 과거라는 영국 드라마 원작의 설정을 가져오면서 1988년도를 소환했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그 사회적 분위기를 드라마 속에 담아놓은 것. 형제복지원 사건이 이야기 속에 담겨지게 된 건 그래서 너무나 적절한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결국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사회정화’가 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라이프 온 마스>는 김민석의 친형인 김현석(곽정욱)이 저지른 일련의 살인들의 이유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소환해왔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때려잡아 복지원에 집어넣은 경찰과 3년 간 그 곳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며 자신과 환자들을 학대했던 간호사, 그리고 그 형제복지원의 원장까지 김현석이 살해했고 살해하려던 이들은 모두 그 시대가 만들어낸 악마 같은 인물들이었다. 결국 악마는 김현석이 아니라 살해당한 그들이었다는 것. 

<라이프 온 마스>는 1988년에 맞는 ‘쌍팔년도식’ 수사방식을 담아 넣는 방식으로도 이러한 우리식의 재해석을 시도한 바 있다. 강동철(박성웅) 형사의 다소 강압적이고 주먹구구식의 수사방식은 한태주(정경호)와 부딪치면서도 묘하게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러한 수사방식은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네 정서를 이끌어낸다. 이미 <살인의 추억> 같은 작품에서 봤었던 그 시대의 공기 같은 것이 거기에서는 묻어난다. 

과거로 간 한태주가 TV에서 계속 <수사반장>을 보고 거기 주인공이었던 최불암이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장면도 독특하다. 그건 원작이 가진 장치를 가져오면서도 우리들에게 친숙한 <수사반장>의 최불암을 오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은 <라이프 온 마스>의 버터 냄새를 우리 식의 된장 냄새로 바꿔주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재해석들이 들어가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원작을 이미 본 시청자들도 이제 후반부로 접어들며 도대체 한태주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어디선가 계속 걸려오는 전화와 그 목소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한태주가 겨우 붙잡은 김현석이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한 이야기는 시청자들을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또 원작에 대한 재해석이 결말도 바꾸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하게 만든다.

원작이 있는 리메이크작품의 가장 큰 한계가 ‘정서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면, <라이프 온 마스>는 그것을 극복하는 차원을 훌쩍 넘어서 완전한 다른 작품 같은 재해석을 해내고 있다. 리메이크도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라이프 온 마스>는 보여주고 있다.(사진:OCN)

Posted by 더키앙

‘라이프 온 마스’에서 ‘수사반장’ 감성이 느껴진다는 건

OCN 토일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 최불암이 등장했다. 그것도 과거 <수사반장>의 한 장면 속에서 TV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이다. 물론 그건 사고 이후 1988년으로 가게 된 한태주(정경호) 형사가 보는 환영 속에서다. 흑백화면의 <수사반장>에서 튀어나온 최불암은 한태주를 다독이며 “자넬 도와주러 왔네”라고 말했다. 

아주 짧은 장면이지만 <수사반장> 속 최불암이 이런 방식으로 <라이프 온 마스>에 들어왔다는 건 실로 의미심장한 까메오이자 오마주가 아닐 수 없다. <라이프 온 마스>는 현재에서 과거로 가게 된 인물이 겪는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혼돈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1988년의 복고적 감성을 담고 있는 수사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수사물은 과연 지금의 수사물과 무엇이 다르고 또 달라야 하는 걸까. 

지금의 수사물은 MBC <검법남녀>가 보여주듯, CSI류의 과학수사가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들이 담겨지는 게 당연하지만, 198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담는 수사물이라면 사건도 또 그 사건의 수사과정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라이프 온 마스>가 가져온 정서는 바로 최불암으로 대변되는 <수사반장>의 감성이다. <라이프 온 마스>의 사건은 마치 <수사반장>의 시그널이 흘러나올 것 같은 우리 식의 정서가 깔려 있다. 

어느 조그마한 마을 갈대밭에서 청산가리가 들어간 막걸리를 마시고 죽은 이장의 살인자를 추격하는 사건이 그렇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유순희(이봉련)가 용의자로 지목되었고, 그 스스로도 자신이 이장을 죽였다고 증언해 사건은 그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를 뒤집는 한태주의 끈질긴 수사과정.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한태주는 순희의 딸 영주(오아린)가 이장에게 지속적인 추행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그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이장에게 갖다 준 건 영주지만 그걸 시킨 건 이장의 딸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장의 딸은 남편마저 락스를 지속적으로 먹여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고, 심지어 운신이 불편한 엄마까지도 음식에 락스를 타 먹이고 있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비정하고 치밀한 존속 살인사건이었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비정한 사건 속에서도 <수사반장>식의 따뜻한 감성을 더했다는 점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했지만 순희는 딸이 잘못될까봐 거짓진술을 했고, 딸은 엄마가 잘못될까봐 침묵하고 있었다는 모녀 사이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 그렇다. 

이런 식의 수사는 과거 <수사반장>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그저 엽기적인 사건만을 해결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는 것. 최불암이 구축한 캐릭터는 그래서 그 비정한 현실 앞에서 잔뜩 인상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 인간에 대한 연민이 담겨진 그 시선을 보여주곤 했다. <수사반장>이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라 휴먼드라마 같은 느낌을 줬던 건 그래서다. 

이번 최불암과 <수사반장>에 대한 오마주는 <라이프 온 마스>가 그저 1988년으로 되돌아가 사건을 해결해가는 그 독특한 장르적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사건에 있어서도 또 그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사건만이 아닌 사람이 보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은 <라이프 온 마스>가 영국 드라마의 리메이크지만 완전히 우리네 드라마처럼 해석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최불암이 <수사반장>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드라마라니.(사진:OCN)

Posted by 더키앙

브로맨스 터지는 ‘터널’의 형사들 어딘가 다르다

30년 시간의 터널을 훌쩍 통과해온 형사 박광호(최진혁). 30년 전 그를 따르던 막내 전성식(조희봉)이 어느덧 강력 1팀장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팀에서 박광호는 이제 막내 처지다. 그러니 박광호는 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팀의 위계질서 속에서 투덜댈 수밖에. 그런데 워낙 그를 따르던 막내였던 탓일까. 전성식은 박광호가 바로 그 30년 전 실종된 선배라는 걸 알아보고는 길거리에서 누가 보는 지도 모르고 껴안고 반가워한다. 

'터널(사진출처:OCN)'

OCN 주말드라마 <터널>의 이 풍경은 사실 조금 낯설다. 흔히 형사물 스릴러 장르에서 남자들의 세계는 거친 면들만 부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심지어 차갑게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터널>은 이런 스릴러 장르의 폼을 잡는 대신, 형사들의 인간적인 면을 더 부각시켰다. 박광호와 헤어지며 전성식이 “이번엔 그냥 훅 사라지면 안돼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마치 애인에게 하는 말처럼 살갑다. 브로맨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대목이다. 

그렇게 박광호가 사실은 30년 세월을 뛰어넘어 나타난 선배라는 걸 알면서도 강력1팀으로 돌아오면 두 사람의 선후배 관계는 뒤집어진다. 박광호는 그럭저럭 존댓말을 하는 게 익숙해지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성식은 좀체 그게 어려워졌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막내 박광호에게 존댓말이 튀어나온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팀원들은 마침 교육을 갔다 온 전성식이 후배들에게 존대를 하라는 교육을 심하게 받은 것 아니냐고 묻는다. 

사실 이런 깨알 설정들은 형사물 스릴러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질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이전 OCN 드라마였던 <보이스>의 경우, 이런 코믹한 깨알 상황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살인사건의 연속과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들의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가 이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터널>은 다르다. 똑같이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범인을 추격하는 이야기가 계속되지만 중간중간에 형사들의 애환이 코믹한 상황으로까지 연출되어 있다. 

강력1팀의 곽태희(김병철)와 송민하(강기영)는 그래서 마치 만담 콤비처럼 나누는 대화를 통해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숨 쉴 여지를 제공한다. 특히 <수사반장>을 좋아하는 마니아로 설정된 송민하는 주목할 만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서 나타난 박광호의 구식 스타일을 오히려 멋있게 느끼며 <수사반장>을 흉내낸다며 촌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나타난 송민하라는 형사는 <터널>이 형사들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려 하고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물론 <터널>에는 미드 [CSI]를 연상케 하는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박광호와 한 팀을 이루고 있는 김선재(윤현민)가 그렇고, 범죄심리학자로 범죄자들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신재이(이유영)가 그렇다. 하지만 <터널>이 추구하는 방향은 스릴러이고 형사물이면서도 어떤 따뜻한 인간미라는 건 명백해 보인다. 부검의로 등장하는 목진우(김민상) 같은 캐릭터를 보면 냉철한 분석을 해내면서도 박광호에게 농담을 툭툭 던질 정도로 인간미를 보여준다. 

<터널>의 형사들이 여타의 스릴러 장르물들과 달리 따뜻한 느낌을 주는 건 의도된 장치다. 결국 이 드라마는 범인을 잡는 형사물이 분명하지만 그 범인을 어떻게 잡는가 하는 그 방식에 더 집중시킨다. 즉 3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타임리프 설정은 과거의 아날로그적인 형사 박광호를 현재로 소환시켜 이른바 과학수사라고 불리지만 과학적 수치에 가려진 인간애나 생명에 대한 간절함 같은 걸 드러내기 위함이 아닌가. 

그래서 <터널>이 추구하는 건 [CSI]가 아니라 오히려 <수사반장>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간절함. 마치 가족 같고 형제 같은 느낌을 주는 형사들의 관계. 때론 웃기고 때론 짠해지는 동료애 같은 것들이 <터널>의 형사들에게서는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주제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무한도전> 탐정특집에 담긴 결코 작지 않은 의미

 

영국드라마 <셜록>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마치 스캐너를 두뇌 속에 내장하고 있는 듯 한 번 훑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했는가 까지 척척 알아내는 셜록의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그 능력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마도 사건의 진실을 알고픈 욕망은 시대와 장소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인간의 본능일 게다. 그러니 19세기 말 영국을 배경으로 등장한 이 인물에 대한 관심이 100년도 훌쩍 지난 현재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처럼 트렌디한 예능 프로그램이 이 셜록 열풍을 그냥 넘길 리 없다. 그래서 탐정 특집이라는 새로운 도전과제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무한도전>은 그 먼 나라의 킬러 콘텐츠에 매몰되기 보다는 우리 식의 재해석에 더 초점을 맞췄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굳이 출연시켜 탐정 수업을 시킨 데는 영국 드라마 <셜록>에는 빠져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정서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표창원에 대해 대중들은 권력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서슴지 않는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많은 사건들에 대해 대중들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썩 속 시원한 답변들이 나오지 않고, 때로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마저 덮여지고 부정되는 현실 속에서 표창원에 대중들이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 말하고, 명쾌하지 않은 것은 명쾌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때문일 것이다.

 

사실 많은 의혹을 남기는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도 벌어지지만 그것은 그 사건이 풀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권력에 의해 덮여지고 있으며 또 거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건 셜록 같은 존재가 가진 명석한 두뇌가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던질 수 있는 차가운 두뇌와 뜨거운 가슴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표창원이란 존재는 셜록보다 더 대중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표창원이 이른바 탐정 아카데미에서 유재석에게 확신할 수 있나?”하고 버럭 호통을 친 사실이 화제가 되는 것은 감히(?) 유재석에게 호통을 쳤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사건과 범죄를 다루는 일이 얼마나 진지하고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중대함을 담고 있는 지를 일갈을 통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린이처럼 질문하고 백지처럼 선입견 없이 추리하며 엄한 처처럼 샅샅이 캐물어라고 하는 표창원 교수의 탐정 수사 법칙은 그래서 우리네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 대중들이 어떤 자세로 바라봐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사반장>의 최불암을 흉내 낸 박불암박명수, <CSI>의 길 그리섬을 따라한준 그리섬정준하, <명탐정 코난>하코난하하, <살인의 추억>돈강호정형돈, <형사 가제트>노제트노홍철 그리고 유셜록까지. <무한도전>이 탐정특집으로 패러디한 다양한 캐릭터들을 들여다보면 우리네 형사가 가진 독특한 특징을 알아챌 수 있다. 외국의 캐릭터들이 명석한 두뇌와 과학적인 수사력을 바탕으로 사건을 수사한다면 우리네 캐릭터들은 그것과는 사뭇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

 

<수사반장>은 형사물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추리나 범인 검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왜 범인이 사건을 저질렀는가 하는 그 휴먼스토리에 더 집중하는 드라마였다. “왜 그랬어?”하고 특유의 톤으로 묻는 최불암의 안타깝고 안쓰러운 인간적인 눈빛은 그래서 셜록의 화려한 추리와는 거리가 멀다.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가 보여준 캐릭터는 어떤가. ‘미칠 듯이 잡고 싶었다는 그 열정으로 오히려 더 기억되는 인물이 아닌가. 이들 캐릭터들은 사건 해결보다는 그 사건이 벌어졌던 당대 사회의 정서를 더 많이 보여주는 인물이다.

 

<무한도전>의 이 의미 있는 도전은 탐정이라는 아이템을 갖고 오면서도 거기에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진실에 대한 특별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셜록>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그래서 표창원 전 교수의 출연을 통해 우리네 현실감을 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네 정서를 바탕에 깔아놓은 탐정 특집은 이제 저 이국의 셜록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대한 관심을 훌쩍 뛰어넘어 그저 탐정 놀이가 아닌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우리를 이끌어낸다.

 

실로 놀라운 접근이며 시도이고 도전이 아닌가. 탐정물이라는 장르가 가진 고유의 재미와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그 사건 해결의 의미가 단지 재미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얼마나 현실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중대한 일인가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일. <무한도전>이 아니면 도무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더키앙

<내연애>가 그저 그런 멜로라고? 실험작이다

 

신하균이 이처럼 달달했던 적이 있었나. 과거 신하균이 했던 작품들 속 인물들을 보면 어딘지 신경쇠약 일보직전의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중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이미지는 그래서 아마도 하균신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강렬했던 <브레인>의 이강훈이라는 캐릭터일 게다. 그런 신하균이 눈웃음을 살살 치고 심지어 애교를 떤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김수영 의원을 연기하는 신하균의 모습은 확실히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물론 초반에는 예전 신하균의 이미지 그대로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는 차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연애의 모든 것'(사진출처:SBS)

반면 이민정은 신하균과는 정반대의 이미지 변신이다. 늘 풋풋한 사랑의 아이콘이었던 이민정은 이 드라마 속 노민영 의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 붓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국당, 민우당, 녹색진보당이 룸싸롱에서 술판을 벌이고 밀실회의를 하는 광경을 보고는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에 그녀는 컵을 집어던지며 이렇게 일갈한다. “애국이 국어사전에서 썩어 빠지겠다 이 개자식들아! 이러니까 국민들이 정치가 정치인들이 국민 뜯어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사실 이 드라마에서 연기변신을 하고 있는 건 신하균과 이민정만이 아니다. 김수영 의원의 수석보좌관 맹주호 역할을 연기하는 장광이나 김의원의 비서 김상수 역할을 연기하는 진태현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둘 다 강렬한 악역을 주로 해왔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보다 더 웃길 수 없고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내고 있다. 신하균과 진태현 또 신하균과 장광의 연기 합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만큼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고 보면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간 우리가 생각해왔던 정치라는 소재가 가진 상투적인 이미지를 뒤집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치만큼 대중들에게 첨예하고 무겁고 심지어 역겹게 느껴지는 것은 없지만, 실상 그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도 결국 개인으로 돌아오면 우리와 똑같이 사랑에 빠지고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국가나 정당을 위한 선택과 소신 같은 공적인 결정은 그래서 누구나 다 똑같을 수밖에 없는 사적인 연애가 생겼을 때 그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김수영 의원과 노민영 의원의 연애가 쉽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정치와 로맨틱 코미디의 결합은 그래서 대단히 신선한 화학적 실험이다. 정치가 가진 무거움과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가벼움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존재가 연애하는 사적 존재와 공존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청률이 낮은 건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 이야기를 원하는 시청층과 로맨틱 코미디를 원하는 시청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물> 같은 드라마의 성공을 빗대 대중들이 정치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게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격 정치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줌마의 정치인 성장담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고, 정치 역학보다는 대중정서에 더 어필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사반장>이 수사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80% 범죄자가 된 사연을 소개하고는 나머지 20% 그 범죄자의 등을 최불암이 두드려주는 <수사반장>은 인간극장이자 휴먼드라마일뿐이다. 즉 우리네 드라마의 특성상 본격적으로 정치 역학을 소재로 활용해 성공한 드라마는 많지 않다.

 

따라서 본격적인 정치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 위에 멜로라는 사적인 문제를 얹어 놓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저 그런 멜로가 아니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달달한 로맨스를 전면에 보여주려 하는 것은 그것이 좀 더 대중적이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는 얘기는 아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꽤 많은 것들을 뒤집는 실험작이자 문제작이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연기 변신을 통해 그 화학작용이 만들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청률이 좀 낮다 해서 이 작품을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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