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일로 만난 사이'에 담긴 유재석 토크의 변화

 

사실 MBC <무한도전>을 전면에서 이끌면서 특히 몸 쓰는 일(몸 개그부터 리얼 성장드라마까지)을 많이 해왔지만 유재석의 주력은 애초부터 토크에 있었다. 아주 오래 전 <토크박스>에 출연해 에피소드를 털어놓던 때부터 조금씩 진화해온 유재석의 토크는 <해피투게더>나 <놀러와>로 오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리얼 토크쇼’라는 트렌드 속에서 <무릎팍도사>나 <강심장>처럼 독한 토크들이 쏟아져 나올 때도 유재석은 ‘햇볕 토크(바람보다는 햇볕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듯 배려하는 토크)’로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놀러와>의 골방토크나 <해피투게더>의 목욕탕토크는 그 공간이 갖는 편안함에 유재석의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햇볕 토크’가 더해져 빛을 보았다.

 

하지만 <놀러와>는 이미 오래전 종영했고, <해피투게더>도 시즌4를 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화제를 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건 그간 해왔던 토크쇼의 틀이 이제 한물 지나간 트렌드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의 토크쇼들을 보면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과 정확히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카메라가 전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로 나가는 와중에 밀폐된 스튜디오에 머물고 있고, 일반인들이 스타가 되고 있는 1인 미디어의 시대에 여전히 연예인이라는 직군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파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이런 상황이니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에 유재석의 행보는 토크보다는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무한도전>식의 몸 쓰는 일에 집중되지 않을까 예상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재석의 행보를 보면 놀랍게도 그가 가진 장기인 토크를 지금의 트렌드에 맞게 진화시키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가장 도드라지는 건 역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길거리로 나가 그 곳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과 토크를 나누는 이 프로그램은 그간 토크쇼들이 해왔던 틀의 한계를 모두 깨고 있다. 즉 스튜디오를 벗어나 우리네 일상의 공간에 카메라를 드리우고 연예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을 만나 진솔한 토크를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 여기서 유재석은 그간 연예인들을 무장해제 시켰던 그 토크 능력을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만난 분들의 짧지만 인생 전체가 묻어나는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데 발휘한다.

 

무명의 연예인들을 특유의 토크 능력으로 캐릭터까지 척척 잡아 스타덤에 오르게 해주기도 했던 유재석의 언변은 이제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삶의 현장에서의 보통 사람들에게 햇살처럼 뿌려진다. 그렇게 끄집어내진 그 분들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한편의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고 스펙터클하다는 걸 알게 된다. 시청자들은 누구나의 삶이 그렇게 저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걸 경청해주는 ‘유느님’ 유재석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tvN <일로 만난 사이>는 유재석 토크의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라면, <일로 만난 사이>는 그 서민들이 하는 노동 속으로 깊게 들어가 그 분들의 삶을 체험을 통해 전해주는 토크를 구사한다. 이효리, 이상순과 함께 제주의 녹차밭에서 일하며 끊임없이 투덜대고 힘겨워 하는 유재석의 토크는, 우리가 편안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마시는 녹차 한 잔에 담긴 저분들의 노고를 체감하게 해준다. 차승원과 함께 무안에서 생고생을 하며 고구마를 캐며 나누는 이야기나, 쌈디, 그레이, 코드쿤스트와 함께 KTX 청소를 하며 나눴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유재석의 토크는 진화하고 있다. 토크쇼는 이미 한물 간 형식이지만, 유재석의 진화된 토크는 그래서 흥미롭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연예인들만이 아닌 서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려는 토크의 방향이 우리의 마음을 잡아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결국 토크라는 것이 말 자체가 아니라 마음부터 열려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먼저 말하고 싶고 듣고 싶은 대상을 만나러 찾아가는 길. 유재석은 그 길 위를 걷기 시작했다.(사진:tvN)

‘유퀴즈’와 ‘일로 만난 사이’, 유재석의 다른 토크 방식

 

유재석은 바른 이미지를 벗으려 하는 걸까. 최근 유재석의 토크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 징조를 가장 먼저 보여줬던 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조세호와 함께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유재석은 조세호와 이야기할 때와 보통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의 톤이 다르다. “자기야-”하고 조세호가 하는 말을 툭 자르기도 하고, 대놓고 구박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보통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우리가 늘 봐왔던 그 바른 유재석으로 돌아간다. 지적하고 구박하는 모습과 경청하고 공감하는 모습이 수시로 바뀌는 것.

 

김태호 PD와 함께 시작한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은 훨씬 더 직설적이다. 김태호 PD와 툭탁대거나 유희열, 이적과 서로의 공이 크다고 허세를 부리는 모습은 물론 캐릭터의 냄새가 나지만 유재석의 토크는 확실히 전보다 강도가 높아졌다. 물론 여기서 유재석의 변화는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강도가 높아졌을 뿐 그건 <무한도전> 시절에도 자주 보였던 캐릭터의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tvN <일로 만난 사이>에서 유재석은 좀 다르다. 여전히 ‘투 머치 토커’의 면모를 보이지만 그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다. 첫 회에 제주의 녹차밭에서 이효리, 이상순 부부와 고된 일을 하게 된 유재석은 말 그대로 투덜이의 면면을 드러낸다. 그건 의외로 이런 일들이 익숙한 이효리, 이상순과 달리 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재석의 모습이 극명히 대비되면서 그가 연실 힘겨움을 토로하는 대목에서 보여진다.

 

일 자체의 노동 강도가 높다보니 괜한 웃음을 만들기 위한 캐릭터 설정 같은 것들은 보여질 여유도 없다. 대신 노동 자체가 주는 힘겨움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차승원과 함께 고구마밭에 대기 위한 해수를 퍼 담는 장면은 마치 과거 <무한도전> 초창기 시절의 연탄 나르던 모습을 연상케 하지만 확연히 다른 건 이것이 게임이나 미션이 아니라 진짜 일이라는 점이다.

 

강도 높은 노동 후에 잠시 갖는 휴식 시간에 유재석과 차승원은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50줄에 들어선 차승원에게 그 나이가 실감 되냐고 묻고, 차승원은 몸에서부터 느껴진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는 유재석이 토크쇼나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출연자와 나누는 대화와는 살짝 다르다. 그건 아마도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힘겨운 노동을 함께 한 사람들이 갖게 되는 남다른 유대감이 더해지기 때문일 게다.

 

흥미로운 건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이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과 달리 <일로 만난 사이>에서는 그런 시도를 좀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승원과 함께 한 고구마 밭 사장님이 일일이 지적하는 통에 유재석은 자신들끼리 일하게 좀 놔두라는 요구까지 한다. 그건 그 일이 너무 힘들다는 표현이지만 유재석이 늘 보여 왔던 ‘바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일로 만난 사이>의 유재석이 그렇다고 일터에서 만난 보통 사람들을 도외시하거나 소외시키는 건 아니다. 즉 <일로 만난 사이>에서 유재석이 그 분들의 노동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은 그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스스로 체험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으로 보여주는 방식. 이것이 <유퀴즈 온 더 블럭>과 다른 방식으로 <일로 만난 사이>에서 유재석이 진심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 깊숙이 들어가게 되자 유재석의 바르기만 하게 느껴지던 이미지는 살짝 벗겨져 나간다. 물론 여전히 그의 배려는 몸에 배어있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어 투덜대거나, 남 탓을 하거나 하는 자신의 감정들이 조금씩 바깥으로 나온다. 이런 변화된 면모를 보다보면 최근 유재석이 자신을 새로운 환경 속에 집어넣어 바른 이미지로 꼭꼭 잠가두었던 솔직한 감정들을 끄집어내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과연 바른 이미지를 벗어버리려는 것일까.(사진:tvN)

'일로' 이효리에게 한 수 배운 유재석, 이 기묘한 힐링의 실체

 

마치 유재석이 이효리에게 한 수 배우는 느낌이다. tvN <일로 만난 사이>에서 유재석은 그간 방송에서 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른바 스타 MC로서 끝없이 ‘토크’에 ‘토크’를 이어가고, 틈만 나면 웃음을 주기 위해 갖가지 게임을 진행하던 유재석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 습관은 하루 종일 녹차 밭에서 일하는 이 프로그램에서도 여전하지만, 이효리는 그런 그의 진행병을 잔가지 치듯 툭툭 잘라내며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 그대로인 일에 집중하려는 상반된 모습으로 의외의 케미를 만들었다.

 

제주도의 녹차밭에서 이효리와 그녀의 남편 이상순과 함께 하루 동안 일하게 된 유재석은, 7년 동안 방치되어 키 높이 이상으로 자란 녹차밭의 잡초와 넝쿨 그리고 풀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토크를 이어가려는 유재석과, 그런 그를 지적하며 일에 집중하라는 이효리. 하지만 단 10분 정도 일하고도 허리가 아파오는 결코 쉽지 않은 그 노동 속에서 유재석이 나누는 대화는 ‘근황 토크’나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라 일 자체의 고단함과 가끔 느껴지는 즐거움 같은 것들로 채워졌다.

 

역시 늘 예능프로그램 첫 번째 게스트를 전담한다는 이효리는 유재석마저 당황스럽게 만드는 만만찮은 센 기운의 출연자였다. 과거 SBS <패밀리가 떴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티격태격하는 오누이 케미를 선보인 바 있던 두 사람은 여기서도 깨알 같은 관계의 재미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일로 만난 사이>의 재미는 이효리와 유재석의 그런 케미 만큼 그 일에 몰입하는 것과 그 일터 자체가 주는 기묘한 힐링이 적지 않았다.

 

제주의 오름이 보이는 푸르른 녹차 밭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줬고, 그 풀숲에서 그들이 힘겨운 노동을 하는 그 모습은 ‘단순 반복 작업’의 연속이 주는 몰입감이 있었다. 녹색을 계속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시원함과 풀을 먹는 말이 내는 ASMR이 주는 단순함이 만들어내는 몰입감. 도시의 삶이 주는 그 복잡함이 그 단순하지만 눈과 귀를 열어주는 영상과 소리 속에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장면 자체가 주는 자극적인 재미가 아니라, 멍하게 자연과 단순한 노동을 바라볼 때 얻어지는 편안한 즐거움이 거기에 있었다.

 

그 힘겨운 녹차 밭에 길을 내는 작업을 하며 괜스레 ‘살아온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힘들게 단순 작업만 반복한 것 같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훤하게 나있는 길을 보며 기분 좋아지는 시간. 그건 우리가 컴퓨터 앞에 앉아 주로 일을 하면서 종종 잊고 있었던 육체노동이 주는 단순한 몰입감과 성취감 그리고 힐링 같은 것들이 되살아나는 시간이었다.

 

물론 이 단순해 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을 흥미진진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유재석과 이효리, 이상순 같은 그 인물들만으로도 주목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나와 보여준 건 사뭇 다른 것이었다. 특히 유재석과 이효리가 과거 <패밀리가 떴다> 시절에는 이런 녹차 밭에 와서 일이 아닌 게임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를 실감하게 했다. 이제는 게임 같은 설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진짜의 모습을 시청자들이 더 원하게 됐다.

 

유재석과 그 시대를 함께 풍미했지만 이효리는 <효리네 민박>이나 <캠핑클럽> 등을 통해 지금의 달라진 예능 프로그램에 더 최적화된 자신을 발견해낸 바 있다. 그래서일까. <일로 만난 사이>의 첫 게스트로 나온 이효리는 유재석에게 마치 한 수 가르쳐주는 느낌을 줬다. 그리고 그것이 진행과 게임을 내려놓고 일에만 좀 더 몰두하는 유재석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했다.

 

예능을 위한 무언가를 해야만 하던 예능의 시대가 지나갔다. 대신 뭘 해도 보다 진정성을 갖고 제대로 하는 걸 보여주는 데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내는 예능의 시대가 왔다. 노동 자체가 주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이며 나아가 촉각적이기까지 한 즐거움을 찾으려 하는 <일로 만난 사이>. 특히 유재석이 이런 새로운 예능의 시대에 맞는 또 다른 도전을 이어가는 걸 보는 건 실로 반가운 일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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