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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시상식, 수상소감보다 뭉클했던 시국소감들

 

새해가 밝았다. 연말 시상식들도 모두 끝이 났다. 방송사들의 시상식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사의 한 해 성과들을 자축하고 그간 고생한 분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또 다음해를 기약하는 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 시상식 분위기가 과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드리워진 연말 시상식은 유독 시국소감들이 넘쳐났다.

 

'2016 SBS연기대상(사진출처:SBS)'

<무한도전>으로 <MBC 연예대상>을 수상한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통해 많은 걸 보고 배운다. 역사를 통해서, 나라가 힘들 때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소수의 몇몇 사람이 꽃길을 걷는 게 아니라 내년엔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뀌어서 모든 국민들이 꽃길을 걷는 그런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소감은 최근 <무한도전>으로 했던 위대한 유산특집을 통해 역사를 다시금 들여다봤던 것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지금 현재에 전하는 울림이 적지 않았다. 결국 역사란 과거가 아닌 현재를 반추하는 거울이 아니던가. 그의 개념 소감은 그래서 대상 수상만큼이나 많은 박수를 받았다.

 

<MBC 연기대상>에서 <W>로 황금연기상을 받은 김의성은 마지막 MBC 드라마가 1997년인데, 20년 만에 다시 출연하게 된 것도 영광인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집과 직장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부당한 이유로 집을 떠나고 직장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내년에는 그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미 SNS를 통해 수차례 현 시국에 대한 날선 발언들을 해왔던 김의성이었다. 또한 드라마 <W>에서 웹툰 작가 역할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주인공 못잖은 존재감을 드러냈던 그였다. 수상 소감에서도 자신보다는 현실에 상처 입은 대중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김의성을 올해 <MBC 연기대상>의 진짜 숨은 주역이라고까지 일컫게 된 건 연기와 개념 모두가 박수받을만 했기 때문이다.

 

<SBS연기대상>에서 5년 만에 대상을 수상한 한석규는 하얀 도화지, 검은 도화지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문득 직업란에 제 직업을 쓸 때가 있는데 연기자라고 쓰곤 한다. 그때마다 제 직업이 연기자구나 하고 생각한다. 신인 시절, 하얀 도화지가 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자신의 색깔을 마음껏 펼치라는 의미에서다. 검은 도화지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낯선 표현이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비참한 현실을 에둘로 꼬집는 이야기였다.

 

한 번 상상해보라. 밤하늘 같은 암흑이 없다면 별은 빛날 수 없을 것이다. 어둠과 빛은 한 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제 연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우는 문화종사자로서 엉뚱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 후, “이 다르다는 걸 불편함으로 받아들인다면 배려심으로 포용하고 어울릴 수 있겠지만, ‘위험하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사회, 국가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실로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시국 소감이었다. 그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기획의도가 된 시인 고은의 글의 한 구절로 수상 소감을 마쳤다.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지지 않기를...”

 

한편 <KBS연기대상>에서 라미란과 베스트커플상을 받은 차인표는 유머 섞인 시국 소감을 내놔 화제가 되었다. “50년을 살며 느낀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어둠을 빛을 이길 수 없다. 둘째,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셋째,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의 배삼도라는 유쾌한 인물이 바로 현실로 나온 듯한 느낌이라니.

 

연기는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연기자들 역시 그 현실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 현실이 대중들에게 주는 애환들을 그들은 연기로서 풀어내는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그 애환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연기자라면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상소감이 시국소감이 된 건 당연하다. 그들에게 박수를.

Posted by 더키앙

<땡큐>, 박찬호와 혜민스님은 어떻게 소통했을까

 

박찬호의 거대한 손가락이 하나에서 여섯까지 펴지면서 ‘귀요미’를 연발하자, 혜민스님도 초절정의 ‘귀요미’를 따라해 보여준다. 메이저 리그를 주름잡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 그리고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대중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준 혜민스님. 이 너무나 달리 살아온 두 사람이 ‘귀요미’ 동작 하나로 하나가 된다. 그걸 바라보는 차인표는 뜨악해 하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의 버전인 ‘분노의 귀요미(?)’를 보여준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무장해제 시킨 걸까.

 

'땡큐'(사진출처:SBS)

<땡큐>, 이건 토크쇼일까. 버라이어티쇼일까. 이 파일럿 프로그램에 출연한 차인표와 박찬호 그들 스스로가 예능도 아니고 다큐도 아니고 교양도 아닌 프로그램이라고 말한 것처럼 <땡큐>는 그동안 넘어서지 않았던 수많은 프로그램의 경계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스님, 배우 그리고 야구선수가 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그렇고, 이들이 강원도 산골로 48시간의 여행을 떠나는 버라이어티쇼적인 요소와 중간 중간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적인 요소가 뒤얽혀 있는 것도 그렇다. 도대체 <땡큐>의 정체는 뭘까.

 

사실 정체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이 서로 이질적인 조합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차츰 차츰 그 사이에 놓여 있던 벽을 허물어뜨리는 그 소통의 과정을 본다는 것이다. 차인표의 기타 반주에 혜민스님이 ‘Perhaps Love’를 부르고 박찬호가 그 노래와 광경을 바라본다. 박찬호가 열등감이 많았던 어린 시절을 얘기하면 혜민스님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열등감 해소법을 알려준다. 물론 혜민스님이 늘 상담역만 해주는 건 아니다. 자신의 책에 대해 “값싼 힐링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는 혜민스님의 얘기에는 박찬호가 자신의 미국에서의 무명시절을 얘기하며 ‘그저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를 알려준다.

 

함께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으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결혼과 연애 이야기를 한다. 두 유부남의 결혼스토리와 스님의 출가 전 연애이야기까지. 사실 어디서도 듣기 어려운 이런 이야기들이 가능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갖는 독특한 방향성 때문이다. <땡큐>는 이질적인 인물들의 조합과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자체가 소통을 지향하고 있다. 스님과 배우 그리고 야구선수는 서로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이 48시간의 어우러짐 속에서 그것이 형태만 달랐지 삶의 양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 소통의 과정을 체험하거나 들여다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흔히들 토크쇼의 위기를 말하는데, 이것은 넓게 보면 소통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토크쇼는 그 형식이 무엇이든 소통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런 토크쇼가 소통하지 못하게 된 것은 지나치게 형식에 연루되거나 본래 목적인 소통이 어느 순간 희석되어 버리는 느낌 때문이다. 게스트가 단체로 나오면 신변잡기로 흐르기 십상이고, 일인 게스트로 나오면 자칫 그 사람의 홍보쇼가 되어버린다. 때로는 MC들이 너무 전면에 나서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형식을 파하고 카테고리화 되기 마련인 게스트 섭외를 파하고 또 심지어 게스트와 MC의 경계를 파한 <땡큐>는 작금의 토크쇼 위기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해준다. 이들은 스튜디오라는 답답하고 규격화된 공간을 벗어나 때론 산장에서 담소를 나누고 때론 계곡물에 입수를 하며 때론 산사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연예인과 비연예인 게스트로 나뉘던 기존 토크쇼와 달리 연예인이건 스포츠선수건 아니면 스님이건 상관없이 한 곳에 모여 어린아이처럼 뒹굴면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 직업적 편견은 사라져버린다.

 

가장 흥미로운 건 전체를 진행하는 MC 없이도 가능한 토크쇼라는 점이다. MC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토크쇼의 형식을 규정해버린다. 누가 MC가 되느냐는 그래서 토크쇼의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다. 하지만 MC가 없이 때로는 차인표가 때로는 혜민스님이 또 때로는 박찬호가 질문하고 답하는 이 자연스러운 대화는 우리가 토크쇼라는 형식에 매몰되면서 잃어버렸던 것이기도 하다. MC와 게스트를 구분할 수 없으니 중심과 변방이 있을 수 없다. 그저 툭툭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던지고 받는 것으로 충분한 셈이다.

 

사실 소통에는 형식도 구분도 필요 없다. 그저 통하면 되는 것이다. <땡큐>는 파일럿 프로그램이지만 그런 점에서 기존 토크쇼의 위기에 한 가지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토크쇼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소통의 즐거움이다. 그것을 위해서 이질적인 게스트들을 한데 모아놓거나, 산사나 계곡 어디든 못갈 것이 무엇인가. 굳이 이야기에 강박증 걸린 것처럼 취조하듯 좁은 스튜디오에 몇 시간씩 감금(?)시켜놓고 어떻게 진정한 소통에 이를 것인가. 대중들은 이제 진짜 이야기를 원한다. <땡큐>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Posted by 더키앙

<남격>, 멤버교체보다 중요한 것

 

<남자의 자격>이 시즌2를 준비 중이다. 기존 멤버였던 전현무, 윤형빈, 양준혁이 하차하고 새 멤버로 차인표, 김준현, 심태윤이 합류할 예정이다. 기존 멤버들 중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은 그대로 남기로 했다. PD도 교체됐다. 조성숙PD 대신 <해피투게더> 등을 연출했던 정희섭PD가 수장을 맡았다. 벌써부터 새 멤버에 대한 찬반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로써 <남자의 자격>은 변화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변화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지경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신원호PD가 프로그램을 이끌었을 때는 확실히 <남자의 자격>만의 색깔이 분명했다. 중년 아저씨들을 전면에 내세운 예능으로서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역력했고, 도전 과제 자체도 ‘전투기 조종’이나 ‘지리산 종주’, ‘마라톤’ 같은 좀 더 땀의 진정성을 갖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제작에 있어서도 확실히 달랐다. 소재 기획에서만 봐도 ‘하모니’나 ‘자격증’ 같은 굵직한 장기 아이템들이 시도되었고,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촘촘히 채워 넣음으로써 중년의 도전 그 자체가 전하는 의미를 분명히 해주었다. <남자의 자격>은 그간 어딘지 소통되지 못하는 듯 여겨졌던 중년 아저씨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예능이었다.

 

하지만 신원호PD가 퇴사하고 조성숙PD 체제로 넘어오면서 프로그램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귀농’ 미션은 어느 날 갑자기 뚝 끝나버렸고, 대박 소재였던 ‘하모니’의 후속편인 ‘청춘합창단’은 지나치게 의도 과잉으로 편집되면서 전편만큼의 성과를 갖지 못했다. 특히 합창단의 어르신들을 주목한다는 이유로 멤버들이 실종된 것은 큰 문제로 지목됐다. 한껏 기대를 갖게 했던 ‘탭댄스’ 미션도 대거 편집되어 수개월을 준비해온 멤버들의 과정이 생략되는 파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즉 소재가 나쁘지 않았으나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멤버들의 열의도 점점 식어간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되다보니 의욕이 상실될 수밖에 없었고 그저 한 회 한 회를 때우는 인상이 짙어졌다. 변화는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의미와 재미에 있어서 좋은 아이템이 이대로는 사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멤버 교체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먼저 중요한 것은 새롭게 재정비된 제작진들의 마인드다. 전체적으로 멤버들의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제작진이 이들을 장악하고 콘트롤하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뛰어난 새 멤버가 수혈된다고 해도 요령부득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경규가 양날의 칼이라는 점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사실상 이경규 없는 <남자의 자격>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경규라는 대선배에 휘둘리는 <남자의 자격>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멤버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선후배 관계의 수직구조가 프로그램의 전면에 나서게 되면 <남자의 자격>의 핵심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아저씨들의 권위 깨기 같은 수평적 시선이 흐트러지게 된다. <남자의 자격>이 작금의 위기에 봉착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이 수평적 시선이 깨지면서 어딘지 선배의 후배 가르치는 분위기가 프로그램의 뉘앙스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젊은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불쾌감마저 느낄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의 새 멤버들을 갖고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이윤석에게 있다. 이들이 공고하게 갖고 있는 수직적인 관계구조가 깨지지 않는다면 <남자의 자격>은 그 어떤 새 멤버가 들어온다고 해도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군림하려 하려는 이경규나 그것을 잘 받쳐주는 이윤석, 그리고 2인자로서 안주하고 있는 김국진과 김태원이 갖고 있는 안정적인 틀은 그래서 <남자의 자격>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결국 열쇠는 정희섭PD에게 달려있다. 얼마나 멤버들의 진심을 잘 끌어내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중년을 다루는 예능에서 더 중요한 건 그들과 적당하게 유지되는 긴장감이다. 그것이 없다면 <남자의 자격>은 시즌을 거듭해도 달라지는 느낌을 주기가 어렵게 된다. 알다시피 시즌을 바꾼 후에 달라지지 않는 예능이란 살아남기 어렵다.

Posted by 더키앙


'힐링'의 진면목을 보여준 가슴 차인표 선생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소셜테이너, 기부천사, 개념연예인 등등. 사회적인 기여나 참여를 하는 연예인들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너무 과하기 때문일까. 이 용어들은 애초의 순수함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적 성향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소셜테이너가 정치적으로 포장되는 경우도 많고, 기부천사라는 상찬 속에는 너무 드러내놓고 보여주려는 불편함도 존재하며, 개념연예인이라는 호칭 속에 인기에 대한 집착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연예인들이 대부분일 것이지만, 누군가의 호명으로 이런 지칭이 붙여질 때 그것은 자칫 본질을 흐릴 수 있다.

그리고 차인표가 있었다. '컴패션'이라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오토바이와 색소폰으로 기억되는 남자, '분노시리즈'로 더 많이 회자되던 연기보다는 열정의 배우로 기억되는 남자. 그런 그가 '힐링캠프'에 나와 들려주고 보여준 두 시간은 그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차인표의 진솔함과 소박함에 깃든 따뜻한 가슴은 소셜테이너나 기부천사, 개념연예인이라는 포장 따위 자체가 오히려 부끄럽게까지 여겨지게 만들었다. 차인표는 그런 호칭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그만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작은 실천'이다.

'힐링캠프'의 서두에 끄집어 낸 '가슴'에 대한 그의 일화는 대단히 흥미롭고도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뭐 하나 잘 하는 게 없어 의기소침했던 그가 어느 날 탄탄한 가슴 근육의 남자에게 매료되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몸을 만들 수 있냐"고 물었던 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어쩌면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는 그러나 그 안에 단순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가슴 근육이 도드라지기 시작했고, 그러자 그만큼 자신감도 생겼으며 친구들도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그 탄탄한 가슴은 또한 무명의 자신이 배우가 될 수 있었던 차별점이 되기도 했다는 것. 물론 이 이야기가 전하는 진짜 핵심은 다른 것이다. 작은 행동 하나가 그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

"(턱걸이를) 한 번 할 수 있는 사람은 50번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을 하지 못하면 하나도 하지 못하게 되죠." 턱걸이를 예로 들어 한 이 이야기의 울림이 큰 것은 우리가 흔히 거창하게 말하는 나눔이나 기적 같은 것에 대한 편견을 깨기 때문이다. 무언가 거대한 것으로 생각해왔던 그런 것들이 결국은 작은 실천 하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딸을 입양한 후, 사회적으로 칭찬을 받고 상금까지 받게 된 차인표가 그 상금 전액을 온전히 다시 더 많은 힘겨운 아이들을 위해 사용했다는 일화는 이 비유가 그저 듣기 좋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게 작은 손길이 기적으로 돌아오게 해준 딸에 대한 차인표의 가슴은 얼마나 벅차올랐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차인표가 이런 사회적으로 귀감이 되는 행동들을 실천하면서도, 스스로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유흥업소에 가지 않는 이유로 자신이 그런데서 쓰는 돈이면 한 아이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렇다고 자신처럼 행동하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자세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의 활동이 우월한 존재로서 거창한 사회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작은 인간으로서의 작은 실천일 뿐이라는 몸에 밴 겸손 때문일 게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빵빵한 가슴뿐이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그 가슴을 실룩거리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가 결국 대중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그 우스꽝스럽게까지 보이는 행동 속에 담겨진 따뜻한 가슴을 우리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힐링캠프'는 비로소 차인표를 통해 진정한 '힐링'의 진면목을 보여준 셈이 되었다. '힐링'이란 단지 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만을 포괄하는 개념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생각하는 영적인 부분도 들어가 있다. 차인표는 '나를 위한 것'은 진정한 힐링이 아니며, '타인을 생각하는 힐링'이야말로 진정 자신을 힐링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거창한 지칭이 아닌 실천으로.

Posted by 더키앙

'대물', 정치 바깥에서 정치를 할 수는 없다

'대물'이 다루는 세계는 정치다. 물론 실제 정치와 정치드라마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현실에서 신물이 나게 봐서 이제는 혐오증까지 생겨버린 그 놈의 현실정치를 그대로 반복해서 보여준다면 그 누가 드라마를 볼 것인가. 따라서 드라마에는 현실정치가 결여한 부분들을 채워줄 필요가 생긴다.

'대물'의 서혜림(고현정)과 하도야(권상우)가 마치 국민들의 대변인인 것처럼, 그간 침묵하고 있던 바람들을 대사를 통해 언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서혜림이 유세장에서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하고 외치고 잘못하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회초리를 들어 달라"거나, 하도야가 검찰청 로비에서 검사윤리강령을 소리 높여 외치는 장면은 그래서 속절없게도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런 돈키호테 같은 대변인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서혜림과 하도야를 정의의 편에 세우고 그 반대편에 조배호(박근형)를 위시한 정치꾼들을 마치 협잡꾼처럼 세워놓자 실제 정치는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기왕에 정치판에 뛰어든 마당에 서혜림이 하는 행동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서혜림은 정치판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그저 "제가 잘은 모르지만"하면서 여전히 정치 바깥에서 그 너머를 그저 끔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정치가 권력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 드라마의 순진한 선악구도는 지나치게 판타지로만 보인다. 드라마가 현실일 필요는 없지만 또 너무 현실성을 결여하게 되면 시청자들은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이 서혜림과 하도야라는 얼룩 하나 존재하지 않는 순수 무결점 캐릭터들이다. 정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정의로운 행동이 단지 뜻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고 그 안에 다양한 욕망들이 장치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의 진짜 모습은 이 욕망과 정의와의 팽팽한 긴장감에서 생겨난다. '대물'이 진정 대중들에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존재할 법한 어떤 것을 다뤄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이런 개인적 욕망 자체가 거세된 캐릭터로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물'은 지금 현실 어디에선가 봤던 것 같은 민감한 사안들을 끌어들여 관심을 끌고는 있지만, 그 상황 속에서 서혜림과 하도야는 말 그대로 '공자님 말씀'만 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마치 모든 일이 해결된 듯한 인상을 지우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사실은 문제 자체에 들어가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대물'의 주인공은 어차피 진창인 정치권 싸움에서 진흙 한 점 묻히지 않고 싸우려는 서혜림이나 하도야 보다는, 그래도 그 진창 속에 발을 딛고 있는 강태산(차인표)이 리얼하게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좌절된 희망 앞에서 폭발하는 강태산의 분노는 그래서 서혜림과 하도야의 눈물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그 속에는 정치인으로서의 야망과 개인적인 욕망이 현실적으로 얽혀 있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여전히 이상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강태산은 마치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처럼 그 끝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끝까지 달려보려 한다. 드라마가 굳이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착한 주인공을 내세워 주제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잘못된 길이라도 달리는 주인공을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는 더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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