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읽는 드라마업계 위기극복법

지금 드라마업계는 위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제작비에 비해 장르화되고 공식화된 문법 속에서 차별화된 작품이 나오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성공은 눈에 띤다. 금기를 깨고 거둔 성취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범죄 스릴러는 성공 가능성 낮다? 천만에!

종영한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범죄 스릴러다. 시청률이 과거만큼 중요한 지표는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상파에서 스릴러는 그다지 유리한 장르는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이른바 고구마-사이다의 이분법으로 드라마를 선택하는 경향에서는, 뒷부분에 이르러야 겨우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고, 진범을 잡는 사이다 전개가 이어지기 마련인 범죄 스릴러는 불리하다. 사건이 터지고 시청자들을 복잡한 미로 속으로 빠뜨리는 그 과정은 자칫 긴긴 고구마 전개처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역시 초반 기대감이 그리 높진 않았다. 워낙 주인공인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가 처한 상황이 비극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장태수는 과거 어린 아들을 잃었고 그 때 함께 있었던 장하빈(채원빈)을 의심했다. 평범하지 않은 딸이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딸이었다. 하지만 이 의심 하나는 그의 가족을 파탄지경으로 몰고 갔다. 이혼한 아내는 자살을 했고, 딸은 장태수와는 말도 섞지 않은 채 엇나가기 시작했다. 딸에게서 무언가 일을 꾸미는 듯한 불안감을 느끼던 와중, 장태수는 수사하는 사건에서 자꾸만 딸의 흔적이 발견되는 일을 겪는다. 프로파일러로서 사건의 진실만을 냉철하게 바라봐야 하지만 그 정황과 증거들이 딸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 속에서 장태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런 비극이 가진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첫 시청률이 5.6%(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건 한석규 같은 대배우의 아우라가 작용한 면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초반 시청자들의 마음을 장태수라는 인물에 몰입하게 만드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스릴러의 고구마적인 성격 때문에 2회에 4.7%로 떨어졌지만, 한석규의 차분하면서도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이자 프로파일러인 인물의 심리를 제대로 표현해낸 연기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는 힘을 발휘했다. 그렇게 시청자들을 그 미로의 덫에 빠뜨리며 점점 텐션을 높인 드라마는, 갈수록 반전의 반전을 이어가며 열광적인 반응들을 이끌어냈고 마지막회에 이르러서는 최고 시청률 9.6%의 높은 수치로 마무리 됐다. 

 

무엇이 그 저력이었을까. 그건 스릴러라 처음부터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기는 어렵지만 차곡차곡 빌드업해나가다 보면 끝내 폭발력을 발휘할거라는 그 뚝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흐름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바로 직전에 방영됐던 변영주 감독의 범죄 스릴러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에서도 똑같이 발견된 결과였다. 첫 회 2.8%로 시작한 드라마는 마지막회 8.8% 최고시청률로 마무리됐다. 스릴러가 고구마 전개라 안되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빌드업을 제대로 했는가 아닌가가 성패의 관건이라는 걸 이 두 편의 범죄 스릴러는 수치로 확인시켜줬다.

 

신인 감독, 작가는 어렵다? 글쎄...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더더욱 놀라운 건 이 대본을 쓴 한아영 작가나 작품을 연출한 송연화 감독 모두 신인 작가,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한아영 작가가 2021년 MBC 드라마 극본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본래는 ‘거북의 목을 노려라’였지만 제목만 바꿨다. 신인이지만 워낙 촘촘한 심리변화와 반전의 묘미가 가득한 정교한 플롯으로 심사위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또 이 작품을 연출한 송연화 감독은 2021년 방영됐던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경험을 쌓고 그 다음해에 4부작 ‘멧돼지 사냥’을 연출했다. 아직까지 신인이라고 해도 무방한 경력의 감독인 셈이다. 

 

신인 작가의 대본에 아직은 경험이 많지 않은 감독에게 10부작의 범죄 스릴러를 맡겼다는 건 이 작품이 얼마나 도전적이었는가를 잘 말해준다. 드라마업계에서는 파격적인 선택인데다, 요즘처럼 업계가 힘든 상황에서는 더더욱 어려운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도전적인 선택은 오히려 식상함을 깨고 참신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범죄 스릴러지만 가족이라는 코드를 넣어 치밀한 심리 대결이 펼쳐지는 색다른 서사가 시청자들을 열광케 했다. 그리고 의심이 만들어낸 파국 속에서도 끝까지 진실을 찾아가고 나아가 불신했던 자신의 과오를 뉘우침으로써 가족이 신뢰를 찾아가는 그 과정이 작위적인 느낌없이 펼쳐졌다. 여기에 송연화 감독의 ‘미친 디테일’과 심리 묘사가 담긴 연출이 빛을 발했다. 자칫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 수도 있는 어두운 연출과, 반복되는 미장센을 통한 심리 묘사는 뚝심 있게 밀고 나감으로써 끝내 빌드업의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냈다. 

 

신인이어서 리스크가 크다는 드라마업계의 오랜 금기는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깨버려야할 어떤 틀에 박힌 공식이라는 걸 드러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중견이어서 갖게 되는 리스크 또한 클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도망치고 추격하는 범죄 스릴러의 그 흔한 공식은 이제 시청자들도 식상해하는 것이 아닌가. 또 어디서 본 듯한 적당한 고구마와 사이다를 반복하는 연출방식도 마찬가지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그래서 이러한 금기로 여겨진 틀들이 어쩌면 우리네 드라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걸 드러내줬다. 

 

한국 드라마 업계의 위기, 결국 작품으로 돌파해야

최근 한국 드라마 업계는 ‘위기’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었다. K드라마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그만큼 제작비도 급상승함으로써 제작하면 할수록 손실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높아진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하지만, 글로벌에서 통하는 배우들도 한정적이다. 출연하기만 해도 해외 판권이 팔리는 배우들이 있는 반면, 연기력으로는 국내에서 누구나 인정받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팔리지 않는 배우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양극화는 출연료의 양극화도 만들어내면서, 전반적인 제작비 상승을 부추긴다. 이건 물론 액수의 차이는 있지만 스타 작가나 스타 연출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처럼 해외에서 이른바 ‘팔리는 배우’를 세우고 들어가는 제작은 작품의 부실을 가져올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 과거 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가 욘사마 열풍을 타고 한류 바람을 일으켰을 때, 몇몇 스타 배우들을 앞세운 기획들이 연달아 실패하는 일들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스타 배우에 집중한다는 건, 제작비의 쏠림 현상도 만들어 상대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는 부실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글로벌 OTT를 상대로 이른바 잘 나가는 제작사들이 내놓은 일련의 작품들이 들인만큼의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건 어쩌면 이러한 기형적 흐름이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도드라져 보이는 건 그래서다. 특정 장르가 어렵다거나 혹은 신인은 안된다는 관행들을 깨고 그것이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서다. 결국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본질로 다시 돌아가는데서 나올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재기발랄한 신인들을 찾아내 작품 본질에 집중할 것인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글:시사저널, 사진: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의심과 불안이 겹치자 생겨난 기막힌 심리 스릴러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정말로 엄마가 범인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 너 때문이겠지. 엄만 너 볼 때마다 힘들었을 거야. 시신 묻은 게 떠올라서 괴로웠을 거고. 피하지 말고 똑바로 봐. 그거 못견디겠어서 누구라도 죽이고 싶은 거잖아. 너. 장하빈. 엄마 그렇게 만든 건... 사람 때문 아니고... 의심이야.”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보는 시청자들이라면 대부분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프로파일러인 아버지 장태수(한석규)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점점 그 현장에 딸 하빈(채원빈)의 흔적들이 나오자 불안해진다. 혹여나 딸이 범인이 아닐까 의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이 진행되면 될수록 사건의 실체가 아주 조금씩 드러난다. 하빈은 범인이 아니라 엄마를 죽게 만든 이들을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출팸에 접근했다. 하빈의 친구였던 이수현(송지현)이 그 가출팸에 있었고, 무슨 일인지 엄마가 이수현의 사체를 땅에 묻은 사실을 알게 됐다. 하빈은 누군가의 협박으로 엄마가 죽게 됐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 누군가를 찾아 자기 손으로 복수하려 했다. 

 

하지만 장태수는 엄마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이수현의 시신을 묻은 것 때문에 괴로워하다 결국 자살을 한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엄마가 그런 짓을 한 이유는 다름 아닌 하빈 때문이었다. 하빈이 혹여나 이수현을 죽였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불안이 이유였다. 그래서 이를 은폐하기 위해 엄마가 대신 시체를 묻었다며 장태수는 그것이 ‘너 때문’이라고 딸에게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은 너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며 딸을 질책하는 말이 아니다. 엄마가 딸을 그만큼 사랑했다는 의미다. 너무 사랑해서 조금 다른 아이이긴 하지만 보통 아이처럼 키우고 싶어했던 엄마였고, 그럼에도 이수현의 사체를 보고는 딸이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걱정, 불안이 겹쳐지면서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거였다. 그 결과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파멸이었다. 장태수의 말처럼 하빈의 엄마를 그렇게 만든 건 사람(하빈도 아니고 또 누군가의 협박 때문도 아닌) 때문이 아니고 의심(딸이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때문이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시청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미로 속에 빠뜨리는 이유는, 단순한 사건의 흐름과 범인을 잡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밑에 깔려 있는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누군가 범인처럼 보이고, 이상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런 행동을 하는 감정과 심리들이 숨겨져 있다. 가족이 범인일 수 있다는 데서 생겨나는 의심과 걱정이 뒤섞인 불안은 하빈의 엄마가 사체를 암매장하는 그런 일까지 벌이게 만든다. 

 

그런데 이건 하빈의 가족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제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는 사건의 진실 속에서 또 한 축을 차지하는 박준태(유의태)와 그의 숨겨져 왔던 아버지 정두철(유오성) 그리고 박준태의 연인 김성희(최유화)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그것이다. 박준태가 술에 취한 채 잠든 후 깨어보니 옆자리에 죽어있던 송민아(한수아)를 보고 자신이 죽였다 착각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김성희에 의해 조작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그 순간 등장한 김성희가 “차라리 술 때문”이라고 하라며 그의 아버지가 사람을 때려 죽였다는 사실을 꺼냄으로써 박준태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처럼 자신도 그런 사람일 수 있다고 믿게 만든 것이다. 

 

기막힌 건 그의 아버지 정두철이 이 일이 진짜 아들의 짓이라 부정하면서도 의심하며 자신이 송민아의 사체를 토막내 처리했다는 점이다. 저 하빈의 엄마가 이수현의 사체를 처리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다. 즉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그리려 하는 건, 가족에 대한 작은 의심, 불신이 얼마나 큰 뼈아픈 사건들로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자식이기 때문에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거라 부인하면서도, 혹여나 그것이 사실일 수 있다는 의심이 만들어내는 작은 틈. 그 틈으로 이 부모들은 범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저 벌어지는 사건의 끔찍함이나 그 범죄자를 잡아내는 순간의 카타르시스 같은 것들을 담는 범죄스릴러와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그보다는 하나의 사건 위에서 여러 인물들이 이를 통해 갖게 되는 감정과 심리상태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촉발시키는 사건의 파장들을 따라간다. 

 

아마도 범인은 하빈도 박준태도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들보다는 김성희가 더욱 의심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든 그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보는 건 하빈과 박준태 같은 가족이 의심과 불안 사이의 틈에서 괴로워하며 겪게되는 고통스런 과정들이고, 그럼에도 그걸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만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장태수 같은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들을 표정 하나 말 하나로 표현해내는 한석규와 채원빈을 비롯한 연기자들의 호연과, 같은 대사라도 뉘앙스 차이에 의해 달리 들릴 수 있는 걸 정확히 알고 있는 한아영 작가의 섬세한 대본, 그리고 이 복잡해보이는 미로 같은 사건들을 길을 잃지 않게 연출해내면서 그 위에 인물의 심리까지 영상언어로 담아낸 송연화 감독의 삼박자가 합쳐져 실로 기막힌 심리 스릴러가 탄생했다. (사진: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팀장님은 피곤하시겠어요. 남들보다 많은 게 보이는 사람은 모른 척 할 게 그만큼 많아지는 거잖아요.” 신입 프로파일러 이어진(한예리)의 이 말은 장태수(한석규) 팀장이 처한 난감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설명해준다. 늘 사건을 대하며 범죄행동을 분석하는 게 일인 그는 딸 장하빈(채원빈)이 하는 말이나 어떤 행동 하다못해 그녀가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팬던트 하나도 그냥 지나쳐 지지가 않는다. 그것들이 말해주는 의미들이 프로파일러인 그에게는 남다르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자꾸만 범죄의 냄새가 난다. 그것도 자신이 지금 수사하고 있는 살인사건과 연루된 냄새가.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프로파일러 장태수가 사건을 추적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를 그려낸다. 그의 이런 직업병(?)은 이미 그를 비극의 수렁 속에 빠뜨린 바 있다. 과거 캠핑을 갔다가 어린 하빈과 그의 동생 하준이 산에서 실종됐고 수색 끝에 발견된 건 죽은 하준과 피투성이가 된 하빈이었다. 장태수는 직업적 감각으로 하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추궁했고 그녀를 의심하게 됐다. 그의 아내 윤지수(오연수)는 그런 장태수를 못견뎌하다 이혼했고, 그녀에게 덥친 비극 속에 서서히 무너져 결국 자살했다. 장태수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하빈과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 애쓰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수사하는 범죄와 자꾸만 연루된다.

 

직업적으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파고 들어야 하는 게 그의 직업이다. 장태수는 딸이 설혹 범인이라고 해도 결코 물러서거나 포기할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하빈 역시 만만치가 않다. 범죄현장에 자꾸만 하빈이 있던 정황과 증거들이 발견되고, 하빈 역시 그것들을 은폐하려는 것 같은 행동을 한다. 프로파일러의 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나 숨막히는 일이 아니냐고 친구가 말했을 때 그녀는 “거짓말을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진실을 파고드는 프로파일러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며 더 정교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 딸과의 대결구도가 생겨난다. 

 

그래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장태수가 진실을 추적하는 범죄스릴러이면서, 동시에 그의 가족에 닥친 비극의 진실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그 의심의 대상이 가족이라는 점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그래서 끝없이 가족 간의 갈등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과연 장태수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며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가족이면 무조건 믿어줘야 한다는 죽은 아내 윤지수의 말이 자꾸만 그의 귓가에 울려퍼지지만, 장태수는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또한 이 드라마는 프로파일러들이 사건을 봐야 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져 놓는다. 이를 대변하는 두 인물은 장태수의 팀에 들어온 이어진과 구대홍(노재원)이다. 이어진은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사건만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구대홍은 피해자든 가해자든 그 마음을 들여다봐야 사건의 진실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 프로파일링의 선택지가 아니다. 사건과 동시에 사람도 봐야 하는 게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장태수처럼 그 사건이 가족과 관계되어 있다고 여겨질 때 이런 직업적인 균형감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장태수는 과연 의심하면서도 가족이라 회피했던 딸을 이제 마주하고, 그녀의 굳게 닫힌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바로 이 딜레마에 빠져 있는 장태수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갈수록 미로 속에 갇혀 버린다. 딸을 끝까지 의심해야 하는 장태수의 그 미칠 것 같은 갑갑함과 궁금증이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이된다. 그래서 시청자들의 추리가 시작된다. 갑자기 자살하기 전 윤지수가 백골사체로 발견된 수연을 땅에 묻는 장면까지 떡밥으로 제시되자 시청자들은 또다시 충격에 빠진다. 하빈만이 아니라 윤지수 또한 과거 사건들과 연루된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태수가 어서 딸 하빈의 굳게 닫힌 방을 열고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주기를 바라게 된다. 또 이 가족의 비극과 맞닿아 있을 것 같은 윤지수에게 과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밝혀주기를 바라게 된다. (글:일간스포츠, 사진:MBC)

한석규의 고통 가득 인간적인 얼굴에 대책없이 빠져든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어두운 밤 구불구불한 도로 위를 차 한 대가 달려나간다. 부감으로 비춰지는 그 광경 속에서 이 차는 어떤 방향으로 갈 지를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헤드라이트의 불빛만이 거기 차가 있고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 차가 한 참을 지났을 때 저 편에 온통 불빛들이 모여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건 딱 봐도 사건 현장이다. 어둠 속을 뚫고 그 차들이 모여 빛이 겹쳐져 있는 사건 현장을 향해 달려가는 차의 모습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어둡지만 계속 나아가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첫 회의 오프닝 시퀀스다. 그 차를 몰고 진실을 향해 가는 인물은 바로 베테랑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다. 현장을 슬쩍 훑어 보기만 해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척척 알아보는 이 인물은 어딘가 이 일이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오정환(윤경호) 강력1팀 팀장이 투덜대게 만들 정도로 퉁명스럽게 현장을 훑어본 후 곧바로 귀가한다. 그의 마음에는 아내가 죽고 하나 남은 유일한 가족인 딸 장하빈(채원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딸이니 챙겨야 한다는 부성애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는 딸을 의심한다. 

 

장태수가 딸을 의심하게 된 건 하빈이 어려서 겪은 비극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캠핑을 갔다가 남동생과 함께 산으로 들어간 어린 하빈이 동생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벼랑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남동생과 피투성이로 나타난 하빈. 장태수는 하빈이 하는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적 감각으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왜 거짓말을 했냐고 닦달하지만 끝내 하빈은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이 일로 장태수는 아내 윤지수(오연수)와 틀어지게 된다. 결국 이혼하고 윤지수는 자살하고 마는데, 그렇게 남겨진 장태수와 장하빈은 결코 원만한 부녀 관계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마침 산 속의 어느 허름한 집에서 발견된 2리터에 가까운 피로 사체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 곳에 무슨 일인지 장하빈이 왔다 간 흔적들이 발견된다. 마지막 핸드폰이 켜졌던 위치가 바로 그 사건이 발생한 대화산 부근으로 찍혔고, 현장에서 발견된 빨간 섬유가 장하빈이 가방에 매달고 다니던 팬던트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장태수는 딸을 의심하게 된다. 그 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이 바로 딸이었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이처럼 프로파일러인 장태수가 사건을 추적하면서 그 용의자가 자꾸만 딸 장하빈으로 좁혀지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갖게 되는 복잡한 심리를 다루고 있다. 공적으로는 프로파일러로서 진실을 추적하는 것이 그의 일이지만, 그 화살이 자신의 가족을 향할 때 갖게 되는 고통이 그것이다. “범죄자 마음을 귀신 같이 읽으면서 애 마음을 그렇게 몰라?” 아내 윤지수가 아들의 죽음에 딸을 의심한 장태수를 나무란다. “무조건 믿어야지. 그게 그렇게 어려워?” 아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장태수는 도무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한다. 

 

아들의 죽음이 딸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그것 때문에 이혼한 아내가 자살하게 된 것까지 장태수는 모두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자책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 또다시 딸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딸을 믿고 싶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잘 보이는 프로파일러라는 직업 앞에서 장태수는 괴로워한다. 

 

“팀장님은 피곤하시겠어요. 남들보다 많은 게 보이는 사람은 모른 척 할 게 그만큼 많아지는 거잖아요.” 신입으로 들어온 프로파일러 이어진(한예리)가 하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들여다보고 진실을 보기 위해 의심하는 게 일이 되어버린 장태수는 범죄 현장에서는 베테랑이지만 가족까지 의심하게 되는 사건을 마주하면서 가족은 물론이고 자신마저 파탄지경의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신입으로 들어온 구대홍(노재원)은 장태수와도 또 그를 롤모델로 삼는 이어진과도 다른 따뜻한 성품의 프로파일러다. 사람보다 사건을 우선시하는 저들과 달리, 그는 피해자들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제대로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 사건에 장태수와 그 딸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도 쉽게 그 일을 발설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사건 이면에 무언가 저들이 겪었을 아픔이나 고통을 들여다보려 한다. “가출한 아이들이요. 어떻게든 범죄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열악한 환경에 피해자가 되거나 아니면 가해자로 생존하려는 거죠.” 가출팸을 그저 잠재적 범법자로 보는 시선과 달리 그는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들여다보려 한다. 

 

그래서 장태수는 그의 신입들인 이어진과 구대홍의 서로 다른 사건에 대한 접근방식을 통해 자신 또한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사건 현장의 증거들이나 정황을 통해 합리적으로 딸을 의심하지만, 딸이 어떤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어떤 심리적 고통이나 아픔을 갖고 있는가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그건 장하빈이 아버지 장태수를 한 집안에서 함께 있는 것조차 힘겹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하준이 말야 정말 사고였을까? 엄마는? 엄마가 정말 자살했다고 생각해?” 장하빈의 그 말은 장태수에게는 마치 그들의 죽음에 장하빈이 연루된 것처럼 들리지만, 그건 어쩌면 장하빈에게는 그들의 죽음이 아빠의 가족에 대한 소홀함이 만든 것이라는 토로일 수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 헤드라이트 하나를 켜고 달려나가는 자동차처럼, 장태수는 막막한 어둠 속에 놓여 있다. 그건 도무지 진실을 알 수 없는 범죄현장 앞에 서 있는 모습이면서, 동시에 도무지 알 수 없는 딸의 마음을 마주하고 그 문앞에 서서 문을 열까 말까 고심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서도 끝내 진실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장태수의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고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그러져 있지만 고통을 감내하면서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어두운 공간 속에 놓여진 장태수의 모습을 연출적으로 보여주는 건 그의 심리를 이만큼 정확하게 담아내는 미장센이 없어서다. 여기에 그 역할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한석규의 내면 연기가 묻어난 얼굴과 표정이 대책없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음영에 도드라진 고통스러운 얼굴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과연 이 인물은 가시덤불 가득한 그 어둠의 길들을 헤치고 끝내 진실을 향해 나아가 그걸 마주하게 될까. 그것이 어떤 고통과 두려움을 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가진 매력적인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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