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고되지만 위대한 모든 삶에 전하는 위로

폭싹 속았수다

“무쇠도 닳네. 닳아.” 손 꼭잡고 경사진 골목길을 내려가며 애순(문소리)은 절뚝거리는 관식(박해준)에게 말한다. 애순의 말처럼 어려서는 무쇠 소리 듣던 관식이었다. 하지만 어디 사람 몸이 세월에 장사 있을까. 게다가 열 살부터 지게를 지며 살았던 관식의 삶이라면 무쇠라도 당할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특히 애순을 위해서라면 어려서부터 따라다니며 몸이 부서져라 일해왔던 관식이었다. 그럼에도 관식은 걱정말라며 애순보다 더 오래 살거라 말한다. 두고가는 것보다 잘 보내고 따라가는 게 마음이 편해서란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무쇠 같던 관식의 몸처럼 한 때는 힘이 넘치는 봄날이었던 청춘이 모진 세월을 겪으며 닳고 닳아 이제 삐거덕 거리며 걸어가는 지극히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다. 물론 제주에서 나고 자라 그 고단함이 훨씬 더 컸던 애순과 관식이지만, 이런 삶은 누구나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일 게다. 왜 나이 들면 몸이 아프겠나. 그저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재게도 움직였던 삶이 아픈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쓸쓸하고 힘들며, 때론 억울하게도 느껴지지만 그래도 옆에 손 꼭잡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풍진 삶도 살아진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려 한다. 

 

우리네 삶 전체를 이야기하려 했기 때문일까. <폭삭 속았수다>는 봄여름가을겨울로 흘러가는 사계의 흐름에 빗대 삶을 풀어내려 한다. 넷플릭스답지 않게 4주에 걸쳐 4회씩 공개되는 방식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을 테다. 하지만 이렇게 나눠 놓은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한 번에 16회를 다 꺼내놓기 아까운 작품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한 주에 4회도 너무 많게 느껴진다. 기다리기 싫고 몰아서 다 보고픈 마음이 큰 시청자들이라면 이런 이야기가 엉뚱하다 싶겠지만, 적어도 <폭삭 속았수다>는 한 회 한 회 천천히 오래도록 음미하면서 보고싶은 작품이다. 그저 꿀떡 삼키기보다는 씹을수록 우러나는 맛이 느껴지고,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조차 즐거워지는 작품이다. 

 

1회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염혜란과 아역배우 김태연이 말그대로 ‘미친 연기력’을 보여준 이 첫 회는 토속적인 제주 방언을 기막히게 살려낸 대사 속에 제주 해녀들의 고된 삶이, 애순(김태연)과 애순 엄마 광례(염혜란)의 절절한 관계를 통해 그려진다. 자식들만큼은 이 험한 물질 안시키기 위해 허구헌날 점복 잡으러 무리하는 광례의 삶은 소설 한 권을 써도 될 정도로 신산하다. 그녀는 자신이 지게꾼 팔자란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는 빚잔치에 무너졌고, 첫 서방은 병수발을 하다 먼저 보냈으며, 새 서방은 하는 일 없는 한량이다. 모두가 그 지게에 올라타려고만 한다. 

 

그런데 허구헌날 점복 잡으러 물질 하는 엄마에게 툴툴대며 “이럴라면 점복을 낳지 나를 왜 낳았대”라고 말하면서도 엄마 걱정이 한 가득인 딸 애순만은 다르다. “전부 다 내 지게 위에만 올라타는데 이 콩만한 게 자꾸 내 지게에서 내려와. 자꾸 지가 내 등짐을 같이 들겠대.” 광례의 말처럼 애순은 엄마가 좋고 엄마가 힘들게 물질하는게 눈에 밟혀 ‘점복 팔아 버는 백환’을 대신 자기가 주고 엄마의 하루를 사고 싶다는 시를 쓴다. 먹고 살기 힘들데 무슨 놈의 시냐던 엄마는 그 시를 읽고는 그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왜 아닐까. 자기 힘든 걸 알아주는 자식이니 말이다.

 

애순과 광례의 끈끈한 모녀관계가 보여주는 건 숨막히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서로 기대고 지지해주는 누군가가 있어 그 모진 삶도 살아진다는 것이다. 그건 애순과 어려서부터 그녀를 따라다녔던 관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죽고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만 같던 애순이 아픔을 잊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건 엄마의 말처럼 “손톱이 자라듯이 매일” 살아야할 삶이 밀려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옆에 소처럼 묵묵히 애순을 지지해준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바로 이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말하는 드라마다. 복어처럼 독하게 숨이 턱턱 막혀올 때까지 물질을 하고 쇠도끼처럼 밭을 갈아 생계를 꾸려오다 겨우 스물아홉에 세상을 떠버린 광례지만 “넌 요런 딸내미 있어?”라고 자랑하던 봄날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어려서 아빠를 여의고 엄마마저 잃은 채 작은아버지 집과 엄마 집을 오가며 ‘식모살이’를 하면서 문학의 꿈도 저버릴 수밖에 없던 애순(아이유)이었지만 그녀에게도 사랑하는 관식(박보검)과 결혼해 가진 아기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여겼던 봄날이 있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 방언으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그 의미처럼 이 드라마는 세상의 모든 닮아버린 고단한 삶에 대해 수고하셨다고 보내는 헌사다. 때론 누군가를 먼저 보내야 하는 힘든 시간들을 버텨내야 했지만, 그럼에도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있어 우리의 삶을 살아질 수 있었다. 그 저마다의 위대함 앞에 <폭싹 속았수다>는 수고했다며 어깨를 토닥여준다. 호로록 지나버리는 봄날을 거쳐 꽈랑꽈랑(햇볕이 쨍쨍)한 여름과 그 후의 가을, 겨울의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참으로 오랜만에, 기다리는 게 즐거울 정도로. (사진:넷플릭스)

초심 잊지 않은 유산슬 굿바이 콘서트, 트로트와 가요계 위한 헌사

 

유산슬(유재석)의 굿바이 콘서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간 유산슬이 인연을 맺어온 선배와 전설들을 위한 콘서트였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김태호 PD는 역시 지난 ‘유플래쉬’ 드럼독주회가 그러했듯이 ‘뽕포유’ 프로젝트의 유산슬 굿바이 콘서트에서도 더 큰 그림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뽕포유’ 프로젝트의 본래 취지였던 트로트업계를 붐업 시키겠다는 그 뜻에 딱 맞는 그림이었다.

 

노래가 ‘합정역 5번출구’와 ‘사랑의 재개발’ 이렇게 딱 두 곡밖에 없는 유산슬이 어떻게 콘서트를 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콘서트가 의아하고 걱정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마도 토크를 길게 하거나 다른 노래를 부르거나 하면서 노래보다는 버라이어티쇼에 가까운 콘서트를 하겠지 싶었다.

 

하지만 웬걸? 전설이라 불러도 좋을 윤영인 단장이 이끄는 베테랑 연주자들이 거창한 오프닝 무대를 열어주자 무대에 오른 유산슬은 연달아 ‘합정역 5번출구’와 ‘사랑의 재개발’을 불러 단 10분 정도 만에 레퍼토리를 소진시켜버렸다. 흥미로웠던 건 이 무대 연출을 아주 예전 쇼프로그램 무대처럼 복고적으로 재연해냈다는 점이다. 단장의 지휘에 악단이 나와 연주를 하고 음악에 맞춰 댄싱팀이 나와 맞춰진 안무에 따라 춤을 추는 방식은 1970~80년대의 쇼 프로그램을 향수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레퍼토리가 다 소진된 유산슬이 무대 바깥으로 나가고 앵콜 요청에 다시 올라 ‘사랑의 재개발’을 ‘애타는 버전’으로 부르고 나자 진짜로 콘서트는 할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건 이 날 콘서트의 진짜 무대를 열기 위한 일종의 밑그림에 해당했다. 유산슬이 퇴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 후 이제 MC로서 출근한 유재석이 무대에 나와 그날 콘서트 제목인 ‘인연’에 맞게 그간 인연이 되었던 트로트 선배들을 한 명씩 소환하기 시작했다.

 

유산슬이라는 이름을 사사한(?) 진성 사부가 첫 무대에 나와 ‘안동역에서’를 부르며 진짜 트로트의 맛을 전해줬고, 이어서 박상철의 ‘무조건’과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로 한껏 흥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김연자가 등장해 ‘아모르파티’로 콘서트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렸다. 유산슬의 무대는 물론 그 자체로 좋고 의미가 있었지만, 진짜 프로 트로트 가수들의 무대가 이어지자 트로트의 세계가 가진 맛을 더더욱 느낄 수 있었다. 유산슬의 무대가 일종의 비교점이 되어준 것이다.

 

그리고 콘서트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선생님의 무대로 이어졌다. ‘유플래쉬’ 드럼 독주회에서 故 신해철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었듯이, ‘뽕포유’ 유산슬 굿바이콘서트에서도 심성락 선생님을 위한 무대가 마련된 것. 유산슬 굿바이 콘서트라는 명목으로 그간 인연을 맺게 된 고마운 트로트 선배들과 대중음악의 전설을 위한 무대를 만들려 한 것이 김태호 PD가 그린 큰 그림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사실 유산슬은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그러니 그 붐을 만든 <놀면 뭐하니?>나 유재석 그리고 김태호 PD가 온전히 자신들을 위한 콘서트로서 자축연을 해도 별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애초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무엇이었는가를 잊지 않았다. 그건 본인들이 주목받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트로트라는 업계 나아가 우리네 대중음악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것이었다. 유산슬 굿바이콘서트가 재미를 넘어 가치 있는 의미까지 전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본래 취지를 잊지 않고 콘서트로도 구현해낸 그 초심 때문이었다.(사진:MBC)

초심 잊지 않은 유산슬 굿바이 콘서트, 트로트와 가요계 위한 헌사

 

유산슬(유재석)의 굿바이 콘서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간 유산슬이 인연을 맺어온 선배와 전설들을 위한 콘서트였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김태호 PD는 역시 지난 ‘유플래쉬’ 드럼독주회가 그러했듯이 ‘뽕포유’ 프로젝트의 유산슬 굿바이 콘서트에서도 더 큰 그림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뽕포유’ 프로젝트의 본래 취지였던 트로트업계를 붐업 시키겠다는 그 뜻에 딱 맞는 그림이었다.

 

노래가 ‘합정역 5번출구’와 ‘사랑의 재개발’ 이렇게 딱 두 곡밖에 없는 유산슬이 어떻게 콘서트를 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콘서트가 의아하고 걱정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마도 토크를 길게 하거나 다른 노래를 부르거나 하면서 노래보다는 버라이어티쇼에 가까운 콘서트를 하겠지 싶었다.

 

하지만 웬걸? 전설이라 불러도 좋을 윤영인 단장이 이끄는 베테랑 연주자들이 거창한 오프닝 무대를 열어주자 무대에 오른 유산슬은 연달아 ‘합정역 5번출구’와 ‘사랑의 재개발’을 불러 단 10분 정도 만에 레퍼토리를 소진시켜버렸다. 흥미로웠던 건 이 무대 연출을 아주 예전 쇼프로그램 무대처럼 복고적으로 재연해냈다는 점이다. 단장의 지휘에 악단이 나와 연주를 하고 음악에 맞춰 댄싱팀이 나와 맞춰진 안무에 따라 춤을 추는 방식은 1970~80년대의 쇼 프로그램을 향수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레퍼토리가 다 소진된 유산슬이 무대 바깥으로 나가고 앵콜 요청에 다시 올라 ‘사랑의 재개발’을 ‘애타는 버전’으로 부르고 나자 진짜로 콘서트는 할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건 이 날 콘서트의 진짜 무대를 열기 위한 일종의 밑그림에 해당했다. 유산슬이 퇴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 후 이제 MC로서 출근한 유재석이 무대에 나와 그날 콘서트 제목인 ‘인연’에 맞게 그간 인연이 되었던 트로트 선배들을 한 명씩 소환하기 시작했다.

 

유산슬이라는 이름을 사사한(?) 진성 사부가 첫 무대에 나와 ‘안동역에서’를 부르며 진짜 트로트의 맛을 전해줬고, 이어서 박상철의 ‘무조건’과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로 한껏 흥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김연자가 등장해 ‘아모르파티’로 콘서트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렸다. 유산슬의 무대는 물론 그 자체로 좋고 의미가 있었지만, 진짜 프로 트로트 가수들의 무대가 이어지자 트로트의 세계가 가진 맛을 더더욱 느낄 수 있었다. 유산슬의 무대가 일종의 비교점이 되어준 것이다.

 

그리고 콘서트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선생님의 무대로 이어졌다. ‘유플래쉬’ 드럼 독주회에서 故 신해철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었듯이, ‘뽕포유’ 유산슬 굿바이콘서트에서도 심성락 선생님을 위한 무대가 마련된 것. 유산슬 굿바이 콘서트라는 명목으로 그간 인연을 맺게 된 고마운 트로트 선배들과 대중음악의 전설을 위한 무대를 만들려 한 것이 김태호 PD가 그린 큰 그림이었다는 게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사실 유산슬은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그러니 그 붐을 만든 <놀면 뭐하니?>나 유재석 그리고 김태호 PD가 온전히 자신들을 위한 콘서트로서 자축연을 해도 별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애초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무엇이었는가를 잊지 않았다. 그건 본인들이 주목받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트로트라는 업계 나아가 우리네 대중음악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것이었다. 유산슬 굿바이콘서트가 재미를 넘어 가치 있는 의미까지 전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본래 취지를 잊지 않고 콘서트로도 구현해낸 그 초심 때문이었다.(사진:MBC)

망가진 자들의 연대 ‘나저씨’, 괜찮다고 진짜 괜찮은 걸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선균) 앞에는 두 개의 세계가 병치되어 있다. 그 한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도 서슴없이 하는 회사. 왕전무(전국환) 측이 박동훈을 상무로 올리려는 것도 반대파인 도준영(김영민) 대표 측과 대결하기 위함이다. 심사를 대비해 왕전무의 측근들은 박동훈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이지안(이지은)과의 관계를 미리 추궁한다. 그들에게 사실관계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또 이지안을 잘라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그 관계를 설명할 그럴 듯한 스토리를 짜서 박동훈에게 대비하라고 한다. 

건물의 안전을 진단하고 대비하는 일을 하고 있는 회사지만, 이 회사의 내부는 무너질 듯 불안하다. 경영진들이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살길에만 더 몰두하고 있어서다. 도준영파와 왕전무파의 정치대결은 상대방에게 미행을 붙일 정도로 극에 달해있다.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정치 싸움 속에서 회사가 하는 안전진단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다. 건물주들의 뒷돈을 받아 대충 안전하다 서류를 만들기도 하고, 제대로 안전진단을 한 박동훈 같은 사람을 앞뒤 꽉 막힌 인간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이 세계에 가치 따위는 없다. 오로지 돈과 권력이 가치가 되는 세계다. 

하지만 박동훈의 앞에는 또 다른 한 세계가 있다. 그건 정희네 선술집이다. 그 곳에는 ‘망가진 자들’ 혹은 ‘끝난 자들’이 모여든다. 그 술집을 운영하는 정희(오나라)가 그렇다. 그는 스님이 된 겸덕(박해준)과 연인 사이였지만, 이젠 그렇게 홀로 남아 선술집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매일 술에 취하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들고, 모두가 돌아갈 집이 있지만 자신은 그 일터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삶이다. 그래서 괜스레 퇴근을 해보기도 하고, 빨래와 세수를 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아직은 “괜찮은 삶”이라고 말한다. 

그 곳을 찾는 아저씨들은 한 때 그래도 번듯한 직장에 지위까지 있었던 인물들이지만 지금은 한 마디로 ‘망가진 자’들이다. 그런데 그 망가진 자들이 함께 모여 술판을 벌이는 그 곳은 왠지 따뜻하고 훈훈하다. 세상에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 하나의 연대가 되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그런 세상 밖에 세상이다. 연기력이 없어 늘 구박받고 살아가는 최유라(나라)가 그 곳을 찾아 아저씨들이 “망가진 게 너무 좋다”거나 “끝난 사람들이라 부럽다”거나 하는 건 그래서다. 망가졌어도 끝났어도 그렇게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박동훈은 그 망가진 자들 중 한 명이면서 동시에 저 이전투구의 세상에 발을 디딘 자다. 세상의 더러운 일들이 벌어져도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삼아 살아온 인물이다. 하지만 도저히 희생이라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 아내 윤희(이지아)가 도준영 대표와 바람을 피운 일이다. 그는 친구인 겸덕을 찾아가 마음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겸덕은 말한다. 희생 말고 좀 이기적이라도 먼저 행복해지라고. 

박동훈이 힘겨운 건 모두가 포기하며 살아가는 가치를 지켜내며 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냥 쉽게 적당히 타협하고 가진 권력을 이용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면 쉽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에게는 ‘정희네’ 사람들이 가진 그 ‘망가진 자들’을 이해하고 때론 존경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춘대(이영석)가 이지안을 보살펴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존경합니다”라고 말하고, 이지안이 할머니 봉애(손숙)를 보살피며 사는 모습을 보고는 “착하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받는 불이익들을 그는 감수한다. 이지안은 박동훈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그가 그런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해고하라고 하지만 박동훈은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한다. 그런데 과연 현실에서 그 누가 이렇게 홀로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을 알아봐 줄까. 또 망가진 자들이 한 때는 저마다 빛나는 존재였다는 걸 그 누가 말해줄까. 

<나의 아저씨>는 그래서 세상이 버린 가치를 지키다 망가져간 이들을 위한 헌사를 담고 있다. 이지안에게 봉애가 박동훈은 어떻게 지내냐고 묻자 그는 박동훈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윤희가 한 불륜이 “넌 이런 대접 받아도 싼 인간”이며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박동훈의 말을 떠올린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가치를 지키려 애쓰는 이들을 가치 없는 인간으로 치부하는 세상. 이지안의 눈물은 그들의 가치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주는 따뜻한 위로를 담고 있다. 왜 우냐는 봉애의 질문에 이지안은 이렇게 말한다. “좋아서.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인간의 가치가 무너진 갑질 세상 속에서 그 가치를 봐주는 이가 있다는 위로만큼 큰 게 있을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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