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밤'의 부활, 폐허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가 결국 특단의 조치를 감행했다. 현재 하고 있는 '오빠밴드'와 '노다지', 두 프로그램 모두를 폐지하기로 한 것. 물론 '오빠밴드'는 폐지를 반대하는 팬층의 목소리가 만만찮기 때문에 실제로 폐지될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나올 게 나왔다는 반응들이다.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시청률 3%를 밑돈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동시간대의 경쟁 프로그램이 막강하다고 해도 말이다.
먼저 '일밤'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그 안이한 현실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밤'은 전신인 '일요일 밤에 대행진'에서부터 현재까지 무려 2백여 개가 넘는 코너를 선보였던 일요일 예능의 명실공히 최강자였다. 공개코미디와 콩트코미디가 주류를 이루던 80년대 후반 이 프로그램은 버라이어티쇼를 정착시키며 새로운 예능의 다양한 실험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예능에 불어온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경향을 '일밤'은 재빠르게 간파해내질 못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효시가 되는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중복되는 콘셉트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한도전'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창조적으로 해석해 새로운 형식들을 창출해낸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의 일요일 침공은 '일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부랴부랴 이에 맞서는 버라이어티쇼들을 내놓았지만 이미 구축된 아성 앞에서는 저마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대망'은 큰 희망을 갖고 내놓은 제목이 무색하게 '크게 망하기' 시작한 '일밤'의 전조가 되었고, 이어 '퀴즈 프린스', '공포영화제작소', '힘내라 힘', '몸몸몸' 등이 거의 몇 주를 버티지 못하고 생겼다가 사라졌다.
문제는 그 형식들의 식상함 혹은 지나친 낯설음이다. 어떤 것은 너무 낯설어 그 웃음 포인트에 적응하기도 전에 고개를 돌리게 되었고(강력한 경쟁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어떤 것은 너무 식상해(이미 경쟁 프로그램에서 했던 것들이니까!)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잦은 프로그램의 교체는 더더욱 시청률 하락을 부추겼다. 고정팬을 만들고 그 위에 차츰 팬층을 부가시켜야 하는데 될 만하면 사라지고 심지어 어느 정도 성공한 형식은 타 시간대로 독립편성되어 내보내니 '일밤'은 산고만 치르다 지쳐버린 산모꼴이 되어버렸다. '우리 결혼했어요'나 '세바퀴'는 그 참신한 실험적 형식이 '일밤'의 새로운 얼굴로 충분한 자질을 가졌지만 아쉽게도 저 살길을 찾아가버린 자식이 되었다.
경쟁 프로그램인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가 물론 형식 상의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소재, 즉 여행이라는 소재를 갖는 버라이어티쇼라는 점은 '일밤'에게 더 큰 짐을 지운다. 이들 프로그램들이 대중들에게 이 시간대가 여행 버라이어티를 보는 시간대라는 인식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일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고 여행 버라이어티를 또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또 따라한다는 비판은 물론이고 결국 후발주자라는 인상만 남길 뿐이니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주병진, 이경규로 이어지는 '일밤'만의 대표 MC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1박2일'의 강호동, '패밀리가 떴다'의 유재석에 대항할만한 MC가 '일밤'에는 없다. 결국 프로그램 형식도 선점하지 못했고, 내놓는 것마다 식상한데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일요일 주말 저녁 시간대를 여행 버라이어티의 시간으로 만들어낸 강력한 경쟁 프로그램들 앞에서 이렇다 할 대표 MC가 없는 '일밤'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인 셈이다. '오빠밴드'와 '노다지'의 폐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오빠밴드'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으로 보였지만, 헝그리 정신이 잘 보이지 않는 점이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물론 그들도 힘겹게 촬영에 임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경쟁 프로그램들이 보이는 야생에 가까운 생고생 앞에서는 무색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미 성장이 다 되어있는 멤버들(게다가 대부분 가수라는 점)은 이 성장 버라이어티의 어떤 한계점을 만들어낸다.
'일밤'의 침몰 그 원인은 경쟁 프로그램의 선전 때문으로만 치부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거의 총체적인 부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는 건물에 몇 개 기둥 새로 세우는 것으로는 힘만 부칠 뿐, 무너지는 건물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예 이럴 경우 할 수 있는 것은 현재를 다 무너뜨리고 그 폐허 위에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일 것이다. 필요하다면 '일밤'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조차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밤'은 즐거워야할 그 일요일 밤이 고통의 시간으로 되어버린 현재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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