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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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선데이' 최대 손실, 이우정 작가

D.H.Jung 2012. 3. 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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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에서 저평가된 작가라는 존재의 진가

'1박2일'(사진출처:KBS)

'해피선데이'의 최고 전성기는 재작년일 것이다. 그 때 '1박2일'은 강호동을 위시해 전체 예능의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었고, '남자의 자격' 역시 '하모니'편을 통해 그 정점을 찍고 있었다.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PD까지 주목받게 할 정도였으니 그 팬심이 어디까지 닿아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사실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으면서도 전면에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은 '해피선데이'의 숨은 공신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이우정 작가다.

당시 '1박2일'과 '남자의 자격', 두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를 하고 있던 이우정 작가는 그 엄청난 수의 남자들(이 두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모두 남자들이 아닌가)을 사실상 만들어낸(물론 억지로 캐릭터를 부여한다는 뜻은 아니다) 장본인이지만 인터뷰를 꺼려했다. 그것은 작가, 그것도 리얼 예능의 작가라는 지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얼 예능에도 작가가 있었어?'하는 오해는 이우정 작가라는 발군의 재원이 대중들에게 잘 소개되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우정 작가의 기획력과 순간 순간 상황에 따라 만들어내는 아이템들은 이미 당시 '해피선데이'의 CP였던 이명한PD나 PD인 나영석PD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의 전면에 나서 있지만 사실상 프로그램을 이끄는 건 이우정 작가라는 것에 모두 동의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남자의 자격'이 갑자기 프로그램의 매력을 잃게 된 데는 물론 PD 교체의 원인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이우정 작가가 빠져나오면서 생긴 변화라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이것은 어쩌면 시즌2로 만들어지는 '1박2일'에도 해당되는 얘기일 수 있다.

작가들은 직업의 특성상 방송사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이직(사실상은 이직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프리랜서니까.)이 그만큼 잦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우정 작가를 놓친 것은 '해피선데이' 최대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문제 그 차원을 넘어선다. 즉 작가는 어찌 보면 프로그램의 인력(제작진에서부터 출연진까지)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유출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타 인력들의 유출(때로는 출연진들까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KBS처럼 스타를 키우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덩치가 커진 PD들이 타방송사로 떠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소속PD들이 이런 상황인데, 소속도 아닌 작가들은 오죽할까. 실제로 '1박2일'과 '남자의 자격' 두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라는 강행군을 해오면서 이우정 작가가 그만한 대우를 받았을까는 의문이다. 소속되지 않은 작가는 좋게 말해 프리랜서지만 현실적으로 얘기하면 비정규직이나 마찬가지다.

이우정 작가가 '1박2일' 시즌1을 끝으로 '해피선데이'를 떠나게 된 상황은 그래서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브레인을 잃은 것이면서 동시에 인맥을 잃은 결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보면 어떤 PD를 세우는 것보다도 작가 하나를 제대로 붙잡아 두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예능과 교양 같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방송작가들에 대한 방송사들의 인식은 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제 아무리 리얼이라고 해도, 프로그램의 얼개와 기획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툭하면 자르고 교체하는 지금의 작가를 대하는 방식으로는 프로그램의 핵심인 작가들의 성장을 가로막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결국 프로그램의 질적인 저하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