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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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뭉클한 유재석의 시청자 강박증

D.H.Jung 2013. 3. 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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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의 스트레스, 우리를 웃게 하는 힘

 

<무한도전> '스트레th' 특집에 나온 유재석은 자신의 장점을 ‘열심히 한다’, ‘잘 웃는다’로 표현했고, 단점을 ‘다소 우유부단하다’, ‘다른 사람이 잔소리로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고민거리를 묻는 질문에 “크게는 없었는데요. 이번 주 녹화 이거 재밌었나.. 다음 주에는 이런 걸 한다는데 이건 어떨까...”라고 답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 장점과 단점 심지어 고민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유재석의 스트레스가 모두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의 장단점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모두 그가 고민거리로 말한 방송에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 열심히 하고 잘 웃으며 때론 우유부단함(캐릭터로 나오는)을 볼 수 있었고 종종 그가 멤버들에게 잔소리를 해 잔소리꾼이라는 핀잔을 듣는 것에 익숙하다.

 

이 장단점과 고민거리 토로에는 유재석이 가진 시청자에게 어떻게든 웃음과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강박증을 읽어낼 수 있다. 그가 ‘잔소리꾼’이 된 것은 그가 말하듯이 ‘잘하자고’ 하다 보니 생긴 습관이다. 자신에 대해 그만큼 엄격한 그이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그만큼을 요구하는 셈이다.

 

그의 스트레스 지수를 진단한 정신과 전문의는 심지어 문진표 “체크란에 동그라미 어느 하나가 경계를 넘는 걸 보지 못했다”며 그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한 그의 성격을 설명했다. 비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거라 말했고, 그가 파란 풍선을 선택한 것을 통해 “본인 스스로는 사교성이 풍부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면에 외로움과 고독이 내재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정형돈이 “맞아 친구 없잖아”하고 맞장구를 치자 하하가 “하지마. 하지마. 나 그랬다가 6개월 욕먹었잖아. 있어, 있어. 대한민국.”이라고 장난스럽게 던지는 말이 짠하게 느껴진다.

 

유재석이 보이는 극도의 조심스러움과 우유부단함은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의 피해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 그의 유일한 친구가 ‘대한민국’이라는 하하의 농담 속에는 그가 가진 부담감과 책임감이 들어 있었다. 그의 말대로 방송 때문에 해외에 나간 적은 있지만 신혼여행을 빼놓고 개인적으로 동료들과 여행 같은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가 아닌가. 일주일 내내 <무한도전>, <런닝맨>, <해피투게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놀러와>까지 소화해내던 그에게 개인 시간이나 여유 같은 건 사치가 아니었을까.

 

<무한도전> '스트레th' 특집에서 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것’을 선택한 유재석과 멤버들의 모습은 그래서 뭉클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때 자신들의 스트레스가 비로소 사라진다는 것. 이 지독한 시청자 강박증이야말로 유재석의 가장 큰 스트레스이면서 그가 최고의 MC로 지목받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얼굴을 한껏 무너뜨리는 <무한도전>의 유재석이나 잔뜩 바보 분장을 한 채 바보 연기를 하는 <런닝맨>의 유재석은 어쩌면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런닝맨>의 조효진 PD는, 유재석은 말 그대로 ‘유느님’이라 불리는 게 맞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고 했다. 너무 잘 통하고 선수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제작자로서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유재석의 시청자 강박증의 강도를 미루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광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유재석의 완벽함을 ‘방송 바깥에서 더 철저한’ 모습에서 찾으며 “자기는 그렇게 살라면 자신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을 통해 우리의 웃음이 빵빵 터질 수 있는 것이 유재석의 남다른 시청자(를 웃겨야 한다는) 강박증 스트레스 덕분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뭉클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지난 주 뜬금없이 불거진 유재석 태도 논란은 너무 악의적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도 의사의 말대로 “전반적으로 경직”된 유재석이 “조금만 본인에게 느슨하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인에게 관대해야 남들한테 관대할 수 있다는 정준하의 말도 맞지만, 그것은 또한 무엇보다 좀 더 오래도록 도전하고 달리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