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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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때론 안녕하지 못한 까닭

D.H.Jung 2013. 8. 1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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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세상은 넓고 이상한 가족도 많다?

 

“아빠 니 방에서 야동 볼 거니까 들어 오지마.” 상식적으로 아빠가 아들에게 야동 운운하는 장면은 보통 가족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충분히 개방적인 가족도 있을 게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지상파에 나와 공공연하게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이 고민남은 아빠 못지않게 엄마도 술과 놀기를 너무 좋아해 고민이라고 했다. 술 마시고 무단횡단하다 사고를 당해 허리 부러지고 이가 빠졌지만 그 상황에서도 몰래 병실을 빠져나가 술을 마셨다는 것.

 

'안녕하세요(사진출처:KBS)'

물론 이런 고민남의 고민 토로에도 불구하고 이 부모는 당당했다. 애들이 다 컸고 자기 인생을 즐기면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 그럴 수 있다. 각자 자기 집안만의 교육법이나 분위기가 있으니 그것을 갖고 뭐라 할 수는 없을 게다. 하지만 그 고민의 내용도 어느 정도는 지상파의 수위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전국고민자랑’이라는 테마가 붙어 있지만 그것이 가족 간의 사적인 일들을 마구 파헤치고 드러내게 만드는 장치로만 기능해서는 곤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날 출연한 막말 남편의 사연은 너무 지나쳐 보기에 불편한 수준이었다. 밥 먹을 때 “소가 여물 먹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자고 일어나 부어있으면 “붕어 대가리 같다”고 말하는 남편. “진짜 못생겼다. 얼굴 치워라. 밥맛 떨어진다.” “주름 자글자글한 것 좀 봐라. 살이 디룩디룩 쪄서 굴러다니겠다.” “덩치도 남자 같고 너한테 깔려 죽겠다.” 아내가 폭로한 남편의 막말은 부부가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거의 언어폭력에 가까웠다.

 

여기에 대해서 남편은 “아내가 관리를 안 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세게 말했다고 변명했지만 거기에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결국 이 막말 남편의 사연을 소개한 고민녀가 이 날 방송에서 새로운 1승을 거두었다. 어찌 보면 막말 남편의 사연을 버젓이 온 국민에게 얘기한 부인 역시 상식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의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내밀한 이야기들을 공공연하게 떠벌리게 만드는 걸까.

 

이것은 사실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이 굴러가는 동력이기도 하다. 서로 앞 다퉈 좀더 센 고민을 털어놓는 것으로 그들은 승리의 상금을 가져간다.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긍정적인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것은 가족의 사생활 폭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지상파, 그것도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화성인>처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가족 사생활을 폭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폭로의 대상이 되는 다른 가족을 출연시킨다. 일방적인 폭로가 아니라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살리는 것.

 

이것은 훌륭한 장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려는 의도가 보일 때도 많다. 결국 고민이 소통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과정을 그려내는 것과, 지나친 폭로가 그저 자극적인 재미에 머무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이 프로그림은 그 수위가 아슬아슬하다는 점이다.

 

내용보다 중요한 게 형식일 수 있다. 당당하게 야동 보는 아빠나 막말하는 남편 같은 내용보다 더 자극적일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경쟁적으로 방송에 나와 쏟아낼 수 있는 방송의 형식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 간의 소통이라는 좋은 기획의도로 시작했던 <안녕하세요>. 하지만 때로는 그 의도가 무색하게 이상한 가족들의 쌍방향 폭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피로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은 전혀 안녕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