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마왕’과 ‘히트’의 추락, 이유는 정반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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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과 ‘히트’의 추락, 이유는 정반대

D.H.Jung 2007. 5. 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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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짜여진 ‘마왕’ vs. 너무 흐트러진 ‘히트’

‘하얀거탑’을 통해 미드와 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시청자들이 그 연장선 상에서 기대했던 드라마는 ‘마왕’과 ‘히트’였다. 하지만 이 두 유망주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마왕’은 그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연일 최저시청률을 경신하고 있고, ‘히트’는 수사물로서의 맥을 잡지 못하면서 시청률 추락을 맞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잘 짜여진 드라마, ‘마왕’
‘마왕’을 보고 있으면 이 드라마가 김지우라는 작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구성력에 있어서 이 정도면 거의 퍼즐 맞추기에 가까운데, 그 속에 인물들을 살려놓고 양파 껍질 벗기듯 조금씩 속살을 감질나게 보여주는 전개방식은 이것이 과연 드라마에서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만든다. 물론 미드를 한 편이라도 본 경험이 있다면 ‘마왕’의 전개방식이 그다지 낯설다고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작품에 수십 명의 작가들이 달라붙어 만들어내는 미드와 ‘마왕’은 그 대본의 제작환경이 백 프로 다르다.

미드의 경우, 에피소드 하나를 만드는 데 투여되는 인원은 최소 10명에서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메인 작가는 한 명이지만 공동 집필을 하는 경우 공동작가(co-writer)가 있고, 여기에 그들을 돕는 여러 보조작가(staff writer)들이 붙는다. 작가들의 분야도 각자 달라서 아이디어만을 내는 작가(creator)가 있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스토리 구성작가(story editor)들, 그리고 대본만을 집필하는 작가(teleplay)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어찌 보면 이 정도 작가군이 투입되는 드라마가 치밀한 완성도로 미드 폐인들의 혼을 쏙 빼는 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왕’의 작가는 김지우 혼자다. 그는 12년 전의 한 사건(혹은 사고)에서부터 비롯된 처절한 복수극을 혼자 생각해냈고, 수많은 인물들의 캐릭터와 캐릭터들이 가진 스토리를 혼자 만들어냈으며,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사건들에 혼자 질서를 부여했고, 그 복수극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주제의식도 스스로 세웠다. 실로 놀랍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역량을 통해 김지우 작가는 초라한 우리네 드라마 작가 시스템에 저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은 ‘마왕’을 좀더 많은 대중들이 즐기기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마왕’의 도전의식은 가치 있고 이 변화의 기로에 선 우리 드라마에서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사명이지만, ‘마왕’은 그 지점을 넘어서 너무 멀리 앞서가고 있다. ‘마왕’은 지금 미드에서도 좀체 시도하지 않는 20부 연작 추리극을 시도하고 있다. 미드가 그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도 맥을 놓치지 않는 것은 그 한 회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는 에피소드 형식을 안전망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왕’ 역시 그 형식을 취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왕’의 이야기는 어느 한 편, 아니 어느 한 신, 심지어는 그저 휙 지나가 버린 소품 하나까지 기억해두지 않으면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짜여져’있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매니아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지만 중간에서라도 보고 싶은 시청자는 처음부터 챙겨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것이다. ‘마왕’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잘 짜여져 있어’ 시청자들을 허락하지 않는 드라마가 되었다.

너무 흐트러져 있는 드라마, ‘히트’
반면 ‘히트’는 너무 허술한 구성과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배반한 드라마가 되었다. ‘히트’의 문제는 그것이 ‘멜로가 있어서’ 라든가, ‘리얼하지 않은 연기’라는 식의 단선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과 스토리, 캐릭터 등이 맞물려 생긴 총체적인 문제이다. ‘마왕’이 너무 에피소드별로 드라마를 자르지 않아 시청자들의 진입장벽을 높였던 것에 반해, ‘히트’는 너무 에피소드별로 잘라내면서 맨숭맨숭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미드가 가진 에피소드들이 시즌 드라마로서 힘을 받는 이유는 그 잘려진 에피소드들이 다음 에피소드와 맞물려 차츰 드라마의 긴장도를 높여간다는데 있다. 그러나 ‘히트’의 에피소드들 간에는 차츰 발전되어 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 접착력조차 약하게 느껴진다.

‘히트’가 이렇게 된 데는 드라마 진행에 있어서 캐릭터에 너무 천착한 결과이다. ‘히트’는 스토리와 구성 등에 많은 허점을 드러내지만 보기 드문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갖고 있는 ‘이상한’ 드라마이다. 보통의 경우 스토리란 캐릭터(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그것이 차츰 미궁에 빠지기도 하고 해결을 향해 나가기도 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마련인데, ‘히트’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극적인 긴장감을 일으킬만한 스토리가 부족하다.

강력 사건의 발생이 히트 팀 캐릭터들과 함께 벌어진다(장형사와 홍콩마약밀매 사건, 조과장과 최반장이 얽힌 증거물 도난 사건 등등)는 구조 역시 별로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사건에 캐릭터들을 포진시켜 좀더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던 시도는 캐릭터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했을 지는 몰라도,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좀더 디테일한 사건 전개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홍콩 사건을 예로 들면, 어느 순간 사건은 사라지고 장형사(최일화)와 그 딸의 애틋한 정으로 흘러가면서 급작스럽게 맥이 풀려버리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형사물로서 사건이 우선이 되고 그 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들이 부각되어야 하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탓이다. 좀더 치밀한 스토리와 에피소드 간의 강력한 접착력 그리고 그것이 중첩되면서 좀더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면 ‘히트’가 가진 캐릭터들은 좀더 사건 속에서 부각되었을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현재 드라마의 에피소드로 진행되고 있는 14년 전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는 이전 에피소드와는 다르게 치밀한 면모가 있다. 초반에 있었던 사족 같은 에피소드들 대신 바로 이 메인 에피소드에 천착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마왕’은 너무 잘 짜여져 있어서, ‘히트’는 너무 흐트러져 있어서 결과적으로 시청률의 추락을 만들었다. 하지만 과거의 드라마와 앞으로 변화될 미래의 드라마 사이, 과도기에 걸쳐 있는 이들 드라마들의 시도는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의미가 있다. 시행착오들이 좀더 탄탄한 성공의 길을 알려준다는 면에서 어쩌면 그것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