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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꽃누나', 삼룡이 이승기의 시선이 중요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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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이승기가 발견시킨 김희애와 이미연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는 배낭여행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여행만큼 중요한 것이 인물의 재발견이다. <꽃보다 할배>가 재발견시킨 것은 어르신들이었다. 어딘지 고압적이고 권위적일 것만 같던 어르신들이 아이처럼 순수해지고, 심지어 청춘들에게 소통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대중들은 반색했다. 어르신들이 귀요미처럼 여겨지게 되는 순간 세대 간의 벽은 무너졌다. 여기서 짐꾼 이서진은 어르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세대 간의 소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꽃보다 누나(사진출처:tvN)'

그렇다면 <꽃보다 누나>가 재발견시킨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누나로 지칭되는 여자들이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인물은 이승기다. 그는 누난 내 여자니까-”를 외치며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김자옥이 여행 전 사전미팅에서 말한 것처럼 여자를 잘 모르는동생이다. 대표로 한 사람이 드라이기를 챙겨가자고 하자, 누나들은 그럼 줄 서서 기다려야 하니?”하고 일제히 그에게 핀잔을 줄 정도로.

 

터키 공항에 내린 지 한 시간 만에 이승기는 윤여정의 말처럼 별 쓸모없는 애가 되어버린다. 숙소까지 갈 교통편을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땀을 뻘뻘 흘리기는 하지만 그다지 성과는 없는 이승기가 짐꾼에서 으로 강등되는 순간, 그러나 누나들의 존재감과 캐릭터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윤여정은 특유의 센 이미지와 함께 유창한 영어로 똑 부러진 문제해결능력을 선보였고, 김자옥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초조해하지 않는 초긍정의 성격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 두 인물은 김희애와 이미연이다. 김희애는 사실상 자신이 다 찾아놓은 교통편을 은근슬쩍 이승기의 공으로 돌려놓는 모습을 통해 지혜로운 여성의 한 면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또한 모성애에 가까운 모습이기도 했다. 마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사실은 자신이 해놓은 일이지만 아이가 스스로 한 것처럼 느끼게 해주기 위해 한 발 물러서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는 그런 모습.

 

이미연은 특유의 급한 성격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주변 인물들을 살뜰히 챙기면서 동시에 이승기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려는 든든한 누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틀째 여행에서 사전답사를 가는 이승기를 따라가면서 등을 토닥여주기도 하고, 함께 윤여정과 걸어갈 때는 친근하게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팽이에 정신 팔린 이승기가 뿔뿔이 흩어진 누나들 때문에 멘붕을 겪는 사이에도 이미연은 누나처럼 그를 챙겨주기도 했다.

 

이승기는 이 과정에서 삼룡이가 되어버렸지만, 바로 그 빈 구석이 누나들의 여성성을 끄집어내주고 있다는 점은 어쩌면 <꽃보다 누나>의 캐스팅이 의외의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여자를 잘 모르는이승기가 여자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이야기는 <꽃보다 누나>의 핵심적인 재미이자 의미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이승기라는 시점을 통해 여배우들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면서 동시에 여성성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여행은 이승기의 성장담과 여배우들의 배우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발견을 동시에 그려낸다. 이승기와 여배우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중요하고, 그 시작점으로서의 이 된 짐승기는 최적의 캐릭터가 되는 셈이다. 센 이미지 뒤에 숨겨진 섬세함과 세심함을 보여주는 윤여정과,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소녀 같은 김자옥, 우아함과 지혜로움을 동시에 드러내주는 김희애, 그리고 털털하면서도 붙임성 좋은 사근사근함을 보여주는 이미연까지. 이승기의 빈 구석은 그녀들의 현명함을 끄집어내주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저마다 스크린과 TV를 통해 배우로서의 페르소나를 가진 네 명의 여배우들을 재발견한다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여성성의 특별함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보호본능처럼 그 여성성을 끌어내게 만드는 이승기의 허당기는 윤여정이 눈물을 쏟을 만큼 큰 웃음을 주는 <꽃보다 누나>의 핵심적인 재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이 중요했던 만큼, <꽃보다 누나>에서 이승기는 단연 주목되는 인물이다. 비록 누나들의 구박을 받고 있지만 바로 거기서부터 이 예능의 동력이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