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예능 <사남일녀>에서 효도 생색내는 김구라
MBC <사남일녀>에서 김구라는 독특한 캐릭터다. ‘효도 예능’이라고 기치를 내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저마다 새로 생긴 엄마 아빠에게 효도를 하려고 애쓴다. 아빠에게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드리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을 돌고 도는 박중훈, 김민종과, 아빠의 귀지를 파줄 정도로 살가운 애교와 정을 보여주는 이하늬 그리고 시골 일에 있어서 뭐든 묵묵히 척척 해내는 김재원과는 사뭇 다르다.
'사남일녀(사진출처:MBC)'
서장훈과 함께 엄마를 모시고 군산 시내에 단팥빵으로 유명한 빵집을 찾은 김구라는 길게 늘어선 줄에서 이렇게 어렵게 빵을 사가는 자신들이 진정한 효자라고 생색을 냈다. ‘생색 브라더스’로 캐릭터화 된 서장훈과 김구라는 사실은 자기들이 먹고 싶어 사는 빵에 자꾸 효도를 꺼내 덧붙이는 모습으로 웃음을 만들었다. 빵을 사갖고 나오면서 갖은 ‘절차적 정당성’을 이유로 붙여 빵을 나눠먹는 모습은 그 진짜 속내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아침 준비를 하는 엄마를 돕는다고 반찬을 상에 나르거나, 뻘 밭에 나가 조개를 캐오는 일을 할 때나 늘 다른 출연자들보다 더 힘든 모습을 일부러 보이는 게 김구라의 캐릭터다. 그래서 다른 출연자들은 그 때마다 “누가 보면 대단한 일 한 줄 알겠다”고 반응한다. 생색 브라더스의 한 명이지만 서장훈은 이런 점에서 김구라와는 조금 다르다. 서장훈은 투덜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김구라처럼 내놓고 생색을 내지는 않는다.
서장훈이 “지자체에서 다른 건 몰라도 마을 회관만큼은 잘 지었으면 좋겠다”는 훈훈한 발언을 하자 그런 인기발언이 불편한 듯한 기색을 보이며 김구라가 사실은 서장훈이 그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불편한 시골화장실 대신 마을 회관 화장실을 자주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여기서도 김구라의 색다른 캐릭터가 드러난다. 그는 다른 출연자들의 효도를 내세운 인기발언이나 인기행동이 진심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이런 김구라의 캐릭터는 <사남일녀>라는 효도를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욕 먹기 딱 좋은 모습이다. 야외 버라이어티인데다 시골 어르신들을 부모로 모시는 프로그램에서 생색을 내려하고 타인의 효도가 과연 진짜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캐릭터가 긍정적으로 보일 수는 없다. 하지만 김구라의 이런 캐릭터는 <사남일녀>라는 가상 부모 자식 설정 버라이어티에 현실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사실 진짜 부모 자식 간에도 효란 그렇게 대놓고 하기가 쑥스러워진 것이 요즘의 세태다. 하물며 가상의 부모 자식 설정에서 하는 효도의 모습이 진짜로 비춰지기는 결코 쉽지 않다. 김구라의 생색내기나 진정성에 대한 의문 제기는 그런 점에서 현실적이다. 거기에는 효도가 익숙지 않은 본인의 진심도 들어가 있고, 또 그럼에도 방송을 통해서나마(그것이 일이기 때문에) 효도를 실천하고 있는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그 진짜 속내를 드러내는 모습이 보인다.
즉 어색하지만 반은 어쩔 수 없이(물론 나머지 반은 진짜 효의 마음이 있을 것이지만) 하는 모습이 바로 김구라의 캐릭터인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요즘의 자식들이 부모를 대하는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같이 사는 부모라도 늘 살가울 수는 없다. 또 안하는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김구라의 캐릭터가 현실성이 있고 또 진심이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바라보는 대중들의 마음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사남일녀>는 사실상 현대인들이 잘 하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대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거기에는 약간의 죄책감이 깔려 있고 대리 충족의 판타지도 들어가 있다. 출연자들이 대신 해주는 효도의 모습에서 위안과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그 판타지를 자꾸 들춰내 진짜 속내를 끄집어내는 김구라의 캐릭터는 불편하게 보여질 수 있다. 즉 리얼 예능으로서 김구라의 모습은 답이 될 수 있지만, 예능의 판타지적인 측면에서 그런 캐릭터는 답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그간 김구라가 많은 예능을 통해 쌓아왔던 캐릭터 때문이다. 그렇게 독하고 직설적인 모습을 보이던 김구라가 하루아침에 효도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건 자칫 가식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남일녀>의 성패는 어쩌면 김구라 같은 도무지 효도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가 진정으로 변화하는 지점에서 생겨날 수 있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프로그램이 김구라의 강한 캐릭터를 변화시키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사남일녀>는 다음 주를 마지막으로 시즌1을 정리한다. 재정비 기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시즌2를 하게 된다면 현실성과 판타지 사이에 어색하게 놓여진 김구라 같은 캐릭터가 보여주는 딜레마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옛글들 > 명랑TV'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때론 박명수가 유재석보다 멋질 때가 있다 (0) | 2014.05.20 |
---|---|
'무도' 참여한 정관용, 박원순 박수 받는 까닭 (0) | 2014.05.19 |
카라의 멤버 충원, 팬 반응 싸늘한 까닭 (1) | 2014.05.16 |
독해지고 게임화 되고, '정법'의 야심 통할까 (0) | 2014.05.11 |
악동뮤지션의 ‘얼음들’, 유독 울컥했던 까닭 (0) | 2014.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