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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수가 화영을 이해하는 까닭
    옛글들/명랑TV 2007. 6. 19.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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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영이 보여주는 ‘내 남자의 여자’의 진실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는 지수(배종옥)만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 드라마는 자극과 신파로만 치닫는 한심한 불륜드라마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지수의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진 화영(김희애)과 그들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준표(김상중)가 그 나머지 주인공들이다. 준표야 그렇다 쳐도 화영이란 캐릭터를 그저 멀쩡한 친구 남편 꼬드긴 ‘쳐죽일’ 불륜녀로만 생각하는 건 이 드라마의 나머지 축을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참 사랑하기 어려운 여자, 하지만 이해는 되는 화영이란 캐릭터가 이 드라마를 통해 말해주는 진실은 무엇일까.

    어떻게 지수는 화영을 이해하는 걸까
    화영에 대해 지수는 “딱하다”고 “이해가 된다”고 말한다. 어떻게 자기 남편과 바람이 나 가정까지 버리게 한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그녀들의 관계를 준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받기만 했지, 누군가에게 무엇을 줘본 기억이 별로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다르다. 입장이 서로를 반대쪽에 세우게 했을 뿐이지 그녀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온 몸을 던진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지수는 20년 간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화영은 준표를 얻기 위해 1년 동안 겪을 수 있는 모든 수모를 겪었다. 이 공유점에서 지수는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을 갖게 된다.

    준표가 화영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지수에게 “당신네 우정은 참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 지수는 ‘경민의 엄마로서 고맙다’고 말한다. 화영을 절망에 빠뜨린 준표의 ‘아이거부’를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엄마로서는 또한 고맙기도 하다는 것. 이런 상반된 감정이 가능한 것은 지수에게도 이른바 관계의 역할이라는 것이 다양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자로서 20년 동안 헌신한 대가로 돌아온 고통을 겪은 지수는, 1년 동안 자신을 버려가며 얻으려 했던 사랑이 무의미해진 화영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된다. 지수의 마음은, 또한 시청자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는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화영이란 캐릭터에 문득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수가 이해하고, 시청자들이 안됐다고 생각하는 화영의 고통은 도대체 무엇일까.

    관계의 거미줄에 걸린 화영
    화영은 관계라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같다. 그녀가 미국사회에서 생활하다 국내로 들어왔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토록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가족과 사회란 관계에 진저리를 칠만 할 것이다. 그녀 자신의 미국생활조차도 가족들의 뒷바라지에 자신이란 개인적 존재는 없었던 시간들이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한 남자에게 빠져들고 그것은 개인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일깨우는 것이었기에 앞뒤 가리지 않는 절실함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녀가 몰랐던 것, 아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있다. 준표라는 남자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계의 거미줄들이 쳐져 있었다는 것. 화영은 먼저 친구인 지수와 연결된 거미줄을 잘라야 했고, 지수의 언니, 은수(하유미)와 아들 경민, 그리고 준표가 그다지도 끊기 어렵게 생각했던 부모와의 거미줄조차 잘라야 했다. 그렇게 준표를 거미줄로부터 떼어내어 둘만의 공간으로 오자, 이제는 준표의 속에 남아있는 거미줄의 기억과 습관이 그녀를 괴롭힌다. 준표는 지수의 밥에 끌리고, 경민에게 끌리고, 사회적 관계, 부자지간의 관계에 어쩔 수 없이 끌린다.

    문제는 준표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안타깝게도 화영은 지수 같은 아버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 화영을 옭아매고 있는 거미줄들은 그 둘의 관계를 자꾸만 뒤틀어버린다. 1년 동안 그녀가 해온 일은 바로 그 복잡한 관계의 거미줄들과의 사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자식을 원치 않는 준표는 그간의 관계를 부부관계가 아닌 정부관계로 돌려놓고, 그녀가 발견한 처리되지 않은 준표와 지수의 이혼서류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준표 속에 있는 관계의 거미줄은 여전히 튼튼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 게다가 결혼을 가족과 가족의 결합으로 여기는 사회적 풍토와 그 풍토 속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준표에 화영은 더 이상 자신이 없어진다.

    화영의 분노가 이해되는 것은
    “내가 겁나는 건 당신부모도 당신도 아냐. 바로 내 자신이야. 조심해. 잠잘 때도. 내가 당신 목을 조를 지도 몰라. 밥에도 독을 탈지도 몰라.” 화영이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그녀가 겪었던 “모욕, 수치, 경멸을 아무 의미 없게 만들어버린” 준표 때문이다. 그녀는 “내 사랑, 내 선택, 당신이란 남자, 당신 사랑의 의미를 찾는 중”이라 말한다. 살면서 보상해주겠다는 준표의 말에 그것은 “오히려 지긋지긋한 올가미가 아닐까”하고 쏘아댄다. 준표가 원하는 것은 영원히 친구처럼 연인처럼 사는 것이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그 관계의 거미줄의 일원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화영이 말한다. “당신 사랑은 비겁해. 아주 아주 비겁해.”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치 지수의 주부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준표의 사고를 깨버리는 화영의 존재다. “나를 지수로 만들려고 하는 게 화가 나. 나 자신도 지수처럼 되가는 거 싫어. 아내는 아내지 종이 아냐. 밥해주기 싫은 날이 있어. 그런데 해줬어. 그래서 지수가 되가는 거 같애.” 화영은 지수 같은 천사표 아내의 삶을 당연시 생각하는 이 시대 남성들의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냄비를 내주며 해장국을 사다달라고 한다. 준표 같은 남자가 평생 해보지 않았을 그 일을.

    화영이 지수와 전화통화를 하는 내용은 한국이란 사회에서 결혼해 살아가는 여자들이 새로운 가족이란 관계 속에서 당해야하는 관계의 부당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는 이해 받지 못하면서 왜 이해해야하는 지 모르겠어. 네가 경탄스러워.” “나는 모자라잖아. 모자라서 그렇겠지.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 별거 아니잖아. 자꾸 파면 좋을 거 없잖아.” 그녀들이 공유하는 이 부당한 대접은 과거 가부장적 가족의 틀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관계와 서열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가족의 틀. 김수현 작가는 이 불륜극을 통해 바로 그 틀의 견고함과 그 안에서 개인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여성의 삶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불륜이란 두 가지 힘의 충돌을 말한다. 그 하나는 사회가 가진 규범, 틀의 힘이고, 또 하나는 그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힘이다. 김수현 작가는 이 두 힘의 충돌을 그리면서 그 화학작용 속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관계의 거미줄들을 잡아낸다. 비굴하고 치사하게 만드는 그 관계들 속에서 결국 그녀들이 얻은 것은, 관계 속에 매몰된 삶이 아닌 자신의 당당한 삶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홀로 서서 마주보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남자의 여자’가 불륜극에서 시작해 심리극으로 치닫다가 말미에 사회극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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