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예능과 코미디, 땅콩 회항 풍자에 빠지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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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과 코미디, 땅콩 회항 풍자에 빠지다

D.H.Jung 2014. 12. 2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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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부터 <코빅>까지, 눈에 띄는 땅콩 회항 풍자

 

때가 때인지라 <12> 제주도행 비행기에 탄 승무원들이 남다르게 보였다. 모든 서민들의 마음을 차갑게 얼어붙게 만든 이른바 땅콩 회항의 후폭풍 때문이다. 늘 밝게 웃는 승무원들. 하지만 모든 항공사의 승무원들이 그렇게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을 대중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보게 되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그래서일까. <12>이 기내에서 만난 승무원 고은미씨의 친절과 웃음은 더더욱 우리네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주스와 소금물로 나누어 준 깜짝 복불복은 그래서 마치 <12> 제작진이 이들 승무원들에게 선사하는 작은 즐거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릴 때 김종민과 승무원이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장면도 더더욱 흐뭇하게 다가왔다. 손님과 승무원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이런 예의가 필요한 세상이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는 땅콩 회항사태 때문인지 예능 프로그램들은 일제히 이 사안을 소재로 끌어들여 풍자에 참여하고 있다. <코미디 빅리그>사망토론에서는 ‘20년 후로 가는 알약을 먹으면 100억을 준다고 했을 때 당신은 이 약을 먹겠느냐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100억 있으면 비행기도 후진할 수 있어. 땅콩 내가 안 까먹어도 돼.”라는 멘트를 날렸다. 돈이면 뭐든 다 되는 것같은 행동을 보인 땅콩 회항을 비꼰 풍자다.

 

<무한도전>은 녹화전날 음주를 몰래카메라로 찍으면서 하하와 정형돈을 유혹하는 정준하와 서장훈의 연기에 이게 바로 진상에 대처하는 매뉴얼’, ‘대구로 차 리턴 시킬 환상의 진상연기라는 자막을 연거푸 내보냈다. 여러모로 땅콩 회항에서 운운했던 매뉴얼을 염두에 둔 풍자 자막인 셈이다.

 

<개그콘서트>는 여러 코너에 땅콩 회항을 풍자하는 내용이 실렸다. ‘도찐개찐2주 연속으로 땅콩 회항을 풍자했다. 지난 주 곽범이 부사장 탄 비행기와 초보운전 김여사가 도찐개찐. 지 맘대로 후진한다고 하더니 이번 주에는 박성호가 땅콩 한 봉지와 내리는 폭설이 도찐개찐이라며 모든 것을 다 덮는다고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후폭풍을 맞게 된 이번 땅콩 회항사태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박성호는 이례적으로 같은 코너에서 또 한번 이 사태를 꼬집었다. 갑자기 요즘 잘 나가는 사과라며 종이 쪼가리를 꺼내 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자 개가 나타나 개도 아닌 게 개소리를 낸다며 호통을 치는 장면을 선보인 것. 조 전 부사장이 했다는 진정성 없는 쪽지 사과에 대한 풍자다.

 

<젊은이의 양지>의 백수 김원효 역시 크루즈 여행이 꿈이라는 이찬에게 크루즈 여행 가면 뭐하냐. 땅콩 봉지로 준다고 말해 땅콩 회항풍자를 이어갔다. 땅콩 봉지를 까지 않고 줬다고 서비스 잘못을 운운했던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 섞인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코미디와 예능 프로그램이 이처럼 이번 땅콩 회항사태에 민감한 풍자를 쏟아내고 있는 건 그 사안이 건드린 대중들의 정서를 읽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이 사태에 대해 갖게 된 분노를 풍자를 통해서나마 시원스레 풀어내려 하는 것. 물론 풍자는 웃음을 주지만, 앞으로 이런 풍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게 대중들의 바람일 것이다. <12>이 잠깐 보여준 승무원과 손님들 사이의 모습처럼 우리 사회가 훈훈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