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트>, 왜 하필 고슴도치 세대의 사랑을 그릴까
고슴도치의 사랑이다. 누군가 다가서면 잔뜩 가시를 세우며 경계하고,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마저 찔리게 하는 그런 사랑. tvN 월화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의 유정(박해진) 이야기다. 홍설(김고은)에게는 그토록 다정할 수 없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차갑고 때로는 그 치밀함에 두렵기까지 한 존재 유정.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가 없다는 홍설의 마음처럼 시청자들 역시 그가 왜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는지가 못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백인호(서강준)와 있었던 과거사를 홍설에게 털어놓는 유정의 이야기에는 왜 그가 그토록 가시를 세우며 살아야했는가에 대한 이유가 들어 있었다. 관계 장애를 겪고 있는 유정이 유일하게 믿고 있던 백인호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깊은 배신감을 느꼈던 것. 게다가 아버지가 백인호를 입양하려고 하자 유정은 다른 친구들을 이용해 그가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유정의 이야기는 그가 지금껏 해온 이상한 행동들, 때로는 너무 과해서 폭력적이라고까지 느껴지게 하던 그 행동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것은 공격성이 아니라 거꾸로 ‘자기 보호 본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무표정 역시 차갑게 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약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안간힘처럼 느껴진다. 친구처럼 다가왔지만 결국은 자신을 이용하려고만 했던 사람들. 자신의 아버지조차 자신을 믿지 못하고 친구들을 붙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이런 과한 자기 보호 본능을 만들어낸 큰 상처다.
홍설 앞에서 드디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유정은 한 마리의 상처 입은 고슴도치였다. 다행스러운 건 그 유정 앞에 홍설이라는 마치 그의 모든 걸 끌어 안아주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홍설이 유정을 끌어안고 “많이 좋아 한다”고 털어놓는 장면은 그래서 아프면서도 아름답다. 이상한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존재가 심지어 가시를 세우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끌어안아줄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니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치즈 인 더 트랩>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일 것이다. 유정은 홍설에게 “넌 처음부터 다른 사람하곤 달랐다”고 말한다. 사실 홍설은 처음 유정 같은 완벽해 보이는 선배가 자신에게 사귀자고 할 때 도대체 왜 자신인가에 대해 의아해했었다. 하지만 유정이 홍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그런 그를 끌어안는 홍설의 모습에서 사랑이란 그런 겉면으로 드러나는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서로의 가시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유정이 바랐던 사랑이니 말이다.
그런데 왜 <치즈 인 더 트랩>은 유정 같은 상처투성이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는 것일까. 그 이중적인 캐릭터가 갖는 멜로드라마에서의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또한 작가는 작금의 젊은 세대들이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상처들과 그로 인해 고슴도치처럼 자기 보호 본능으로 가득해진 그들 세대의 아프지만 절절한 사랑법을 얘기하고픈 것은 아닐까. 친구조차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적인 현실을 살아오며 그들은 어쩌면 모두 고슴도치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던 그들에게 가시를 뛰어넘는 사랑은 구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유정을 끌어안아주는 홍설이 그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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