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보다 사건, ‘검법남녀’로 채널 돌아간 까닭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는 사실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별 기대감이 없는 드라마였다. 워낙 MBC드라마들이 그간의 방송사 파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연전연패를 해오고 있던 터라, 이번 작품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거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나 캐스팅만을 두고 봐도 <검법남녀>는 그리 눈에 띄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동시간대 방영되는 KBS <우리가 만난 기적>과 SBS에 새로 포진한 <기름진 멜로>는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될 만큼 화려했다. <우리가 만난 기적>은 <품위 있는 그녀>와 <힘쎈여자 도봉순>을 쓴 백미경 작가의 작품인데다, 믿고 보는 배우라 불리는 김명민에 김현주까지 캐스팅된 작품이다. 또 <기름진 멜로>는 <파스타>부터 <질투의 화신>까지 역시 스타 작가로 자리한 서숙향 작가의 작품으로, 장혁, 이준호, 정려원 같은 배우들이 캐스팅됐다. 여러모로 <검법남녀>를 쓴 신인작가 민지은, 원영실이나 정재영, 정유미 같은 배우들과 비교해보면 그들 작품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검법남녀>는 그 액면으로만 보면 채널에서부터 작가, 캐스팅까지 약하게 느껴지는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드라마는 스토리가 가진 힘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검법남녀>는 시청률 6%대를 넘어서며 동시간대 2위 시청률을 기록하던 <기름진 멜로>를 앞질러 버렸다. <우리가 만난 기적>은 이미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어 굳건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같이 시작한 <기름진 멜로>와의 경쟁에서 <검법남녀>가 순위를 뒤집는 이변을 만든 것.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걸까. 가장 큰 건 <기름진 멜로>의 부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애초 중국집이라는 소재를 가져왔고, 음식이 가진 그 비주얼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유입할 수 있을 거라 여겨졌지만, 어딘지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듯한 지지부진함 속에서 시청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됐다. 가진 자들이 모든 걸 가져가버리는 현실을 가져와 중국집과 사랑이야기로 엮어낸 그 틀은 나쁘지 않다 여겨졌지만, 그 사회적 복수극의 틀이 지나치게 홍콩 영화풍 코미디(사실 그리 웃긴 지는 잘 모르겠지만)로 풀어내지는 바람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기가 어려워졌다. 마치 시청자들은 짜장면을 원하는데, 작가는 중국 본토 음식이 진짜라며 꺼내놓는 듯한 느낌이다. 결국 그 음식을 먹어주는 건 우리 시청자들인데.
차라리 복수극의 틀을 잘 활용해 시원한 사이다를 제 때 넣어줬다면 더 좋은 흐름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기름진 멜로>는 ‘웃픈’ 상황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듯한 흐름이다. 슬프지만 웃음을 던질 수 있는 드라마가 되어야 하는데, 웃으면서도 고구마를 사이다 없이 먹는 듯한 퍽퍽함이 더 느껴지는 드라마가 되고 있는 것. 또 지나치게 멜로의 구도에만 갇혀 있는 것도 한계로 여겨진다.
반면 <검법남녀>는 멜로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흘러가고, 그 사건을 해결해가는 검사와 법의관의 케미가 흥미진진한 반전을 이루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다. 고인의 냉동정자를 통해 임신해 아이를 낳았다며 그 유산을 주장하는 한 여인의 사건은, 무덤에서 꺼낸 사체를 부검하면서 몇 단계의 반전 이야기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처음에는 사체가 타살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때 병원에 있었던 간호사가 의심되었지만 역시 누군가에 의해 타살된 간호사를 발견하고는 그를 죽인 범인이 바로 그 유산을 주장했던 여인으로 밝혀지는 과정은 법의학이 가진 증거들을 통해 소름 돋는 반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 사체가 뒤바뀐 사실과 아이가 본래부터 고인의 친자라 가만히 있어도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검법남녀>는 결국 그 과학수사라는 틀에 냉정함을 유지하는 법의관과 열정적인 검사라는 상반된 캐릭터를 엮어 두 케미가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수사과정을 담아냄으로써 안정감 있는 이야기를 구사해내고 있다. 결국 <기름진 멜로>라는 기대작을 <검법남녀>가 밀어낸 저력은 멜로 같은 공식이 아니라 매회 시선을 잡아끄는 사건들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기름진 멜로>로서는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에 박차를 가해야하는 이유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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