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블랙독', 우리 모두가 서현진의 고군분투를 응원했다는 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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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독', 우리 모두가 서현진의 고군분투를 응원했다는 건

D.H.Jung 2020. 2. 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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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독’의 질문,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학교는 과연 어떤 곳이어야 할까. tvN 월화드라마 <블랙독>이 끝까지 답을 찾으려 했던 질문은 바로 그것이었다.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행복해야할 학교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던 대치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정교사와 기간제로 나뉘어 차별받고, 그래서 기간제 교사들은 어떻게든 정교사가 되기 위해 동료와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곳이 학교였다.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성적 상위그룹만 모아 운영하는 특별심화반 이카로스에 들어간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차별받고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러야 하는 곳.

 

<블랙독>은 고하늘(서현진)이라는 기간제 교사가 대치고등학교에 들어와 그 현실을 겪어가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 역시 기간제라는 차별을 고스란히 느끼고, 심지어 낙하산이라는 누명까지 씀으로써 포기까지 생각했지만, 진학부 박성순(라미란) 선생님의 도움으로 버텨내게 된다. 이카로스반을 맡아 처음으로 한국대 의대생을 배출하는 교사로서의 성취감을 맛보기도 하지만, 이듬해 그는 그 성과가 이카로스반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얻어진 거라는 걸 깨닫는다. 고하늘이 박성순에게 이카로스반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모습은 그가 어떤 성장을 하게 됐는가를 잘 보여준다.

 

정교사가 되기 위해 뭐든 하는 그런 경쟁이 아니라 그 현실에 적응해가면서도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성장한 것.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건 두 인물이었다. 학생 때 그를 구하고 사망한 선생님이 그 첫 번째 인물이다. 그 선생님이 그에게 남긴 질문.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그 질문이 늘 고하늘의 뇌리 속에 남겨져 선생님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게 했다.

 

또 다른 인물은 반에서 눈에 띄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들어오게 된 황보통이라는 아이였다. 학교에 친구가 없고 배울 것도 없다 여기는 황보통이 결국 자퇴원을 냈을 때 고하늘은 성취에만 멀었던 눈을 드디어 뜨게 됐다. 그 이름처럼 ‘보통’의 학생들이 자기 반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들 또한 저마다의 미래를 위해 똑같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알았던 것.

 

그래서 <블랙독>은 위로는 자신을 선생님이 되게 이끌었던 죽은 선생님에 대한 무거운 부채감을 더하고, 밑으로는 신경써주지 못했던 보통의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을 더해 고하늘의 성장기를 그려냈다. 막연한 교육의 이상을 그리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입시교육의 현장으로 들어와 그 안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하늘이라는 선생님의 처지와 황보통 같은 아이의 처지가 동일한 경쟁 시스템 위에 놓여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끄집어냈다.

 

우리가 <블랙독>을 보며 고하늘과 박성순이 학교의 현실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버텨내는 그 모습을 응원했던 건 그 선택들이 정답이라서가 아니었다. 다소 이상적인 선택일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좀 더 많은 학생들과 교사들이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노력을 끝없이 추구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학교의 입시경쟁 현실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하늘과 박성순 그리고 진학부의 그 선생님들처럼.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드라마적으로도 <블랙독>은 리얼리티와 스토리텔링을 적절히 잘 묶어 놓은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할 수 있다. 실제 경험에서 묻어나는 에피소드들을 큰 과장이나 비약 없이 풀어나간 박주연 작가는 신진작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되고 능숙한 필력을 보여줬다.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되는 작가가 아닐 수 없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