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형사', 한 사람의 모범으로 엄청난 가치가 생기는 까닭
"은희야. 나 이대철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파. 쟤가 나 싫다고 도망가도 내가 붙잡고 매달려야 돼. 나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내가 은혜를 돌봐주는 게 아니라 은혜가 날 돌봐주는 거야."
JTBC 월화드라마 <모범형사>에서 강도창(손현주)은 동생 은희에게 그렇게 말한다. 은희는 은혜가 지병까지 갖고 있고 그것이 반복되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오빠 강도창에게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 아이를 데려왔냐고 추궁한다. 그런데 그런 추궁에 강도창은 은혜의 꿈이 미대라는 사실을 오히려 걱정한다. 그리고 동생에게 은혜라도 돌봐줘야 자신의 가슴에 박힌 이대철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강도창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는 파트너 오지혁(장승조)은 은혜가 눈이 멀지도 모르고 또 꿈이 미대라며 답답한 현실을 토로하는 강도창에게 은근히 기부의사를 밝힌다. 자신에게 세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기부를 하면 그만큼 세금혜택이 있다고 말한 것. 오지혁은 어느새 강도창의 든든한 파트너이자 지지자가 되어 있다.
강도창의 무식하게까지 보이는 '앞만 보고 돌진하는' 모습은 주변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범인을 잡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형사로서의 본분을 지킨다는 것. 그 '모범'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현재 진급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모범에 주변사람들은 흔들린다. 그건 마치 강도창이 억울하게 죽게 된 이대철(조재윤)을 떠올리며 갖게 되는 부채감 같은 것이다. 모범을 지키며 살아가는 강도창이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걸 옆에서 보던 이들은 양심의 가책 같은 걸 느끼고 그에게 조금씩 동조하기 시작한다.
강력2팀 형사들도 처음에는 여러 유혹에 흔들렸다. 우봉식(조희봉) 팀장조차 윗선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고 팀원들도 제 살길 걱정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들은 차츰 강도창이 걷는 길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심지어 여러 부정을 저지르기도 했던 문상범(손종학) 서장까지 이제는 나서서 이대철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파고드는 강도창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 뒤에 정한일보 유정석(지승현) 부장이 있고 그가 법무부장관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물러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어. 그물에 고래가 잡혔으면 잡아야지. 대신 그물이 뜯겨져 나갈 수도 있고 우리가 탄 배가 침몰할 수도 있다. 그건 명심해."
조직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대철 사건 재심에서 증거 관련 거짓 진술을 했던 윤상미(신동미) 역시 조직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자 강도창을 지지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자신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강도창의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또 강도창이 지켜내려는 정의를 위해서 그를 자기 위치에서 도우려 한다.
정한일보 진서경(이엘리야) 기자는 예전 자신을 도와주고 또 그 위치까지 끌어준 유정석 부장에 대한 신뢰 때문에 이대철 재심에 결정적인 증거를 알리지 않은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오지혁이 걸어가는 그 '모범'의 길을 조금씩 같이 걷기 시작했고 유정석 부장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모범형사>가 흥미로운 건 단지 형사물들이 담기 마련인 범인과 형사들 사이의 두뇌게임과 추격전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오로지 양심에 따라 모범을 보이는 자와 돈과 권력을 휘둘러 범법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살아가는 자의 대결구도 속에서 그들이 주변에 어떤 영향과 변화를 만드는가를 보는 재미도 들어있다.
한 사람의 모범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래서 진실과 정의를 찾아가는 그 길에 동조하는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면, 한 사람의 불법적인 행위는 그걸 가리기 위해 제시하는 유혹들에 넘어가 그 역시 범법자의 길을 가게 되는 또 다른 풍경이 그려진다. 그래서 이들의 대결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가 어떤 이들에 의해 그래도 살만한 사회가 되는가를 보여준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모범적으로 산다는 것. 그건 그 어떤 돈과 권력보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는 이야기.(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