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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기’가 그리는 청춘들의 화룡점정은 어떤 위로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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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기’, 청춘들을 통해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

홍천기

앞을 보지 못한다는 건 어떤 고통일까. 아마도 누구나 당연한 듯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진 채 태어난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고통일 게다. SBS 월화드라마 <홍천기>의 청춘들은 번갈아가며 앞을 못 보는 저주를 입은 채 살아간다. 마왕을 그림 속에 봉인하기 위해 영종어용을 그린 아버지 홍은오(최광일)로 인해 홍천기(아역 이남경)는 앞을 못 보는 마왕의 저주를 받은 채 태어난다. 한편 마왕의 봉인식을 주관했던 하성진(한상진)은 토사구팽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그로부터 9년 후 마왕의 저주로 인해 오랜 가뭄이 찾아오고 그래서 기우제를 올리는 날 홍천기와 하성진의 아들 하람(아역 최승훈)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성주청 국무당 미수(채국희)가 하람을 인신공양의 제물로 쓰려하고,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마침 주향대군(곽시양)이 봉인을 열어버린 마왕이 튀어나와 하람의 몸에 깃들면서 살아남게 된다. 대신 그 순간 삼신(문숙)이 등장해 하람의 몸에 마왕을 봉인하기 위해 눈을 가져가고, 대신 그 눈을 홍천기에게 맡긴다. 이로써 앞을 못 보던 홍천기는 눈을 뜨게 되고 하람은 앞을 못 보게 된다. 

 

마왕이 등장하고 그로 인한 저주를 막기 위한 삼신이 등장한다. 그러니 판타지라도 사극의 배경을 가져온 <홍천기>의 시작은 그 장면 자체가 낯설기 그지없다. 사극에 마왕을 CG로 표현해 넣는다는 건 제아무리 잘 표현해도 이질적인 느낌을 줄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장태유 감독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앞부분에 대놓고 다소 황당하고 이질적인 이 판타지의 면면들을 과감하게 채워놓는다. 마치 한 편의 설화처럼 전제해 놓고, 그 이질적인 판타지 이후에 차근차근 사극 특유의 색깔을 덧칠해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겠다는 연출의도다. 

 

기우제 날의 엇갈린 운명이 있던 날로부터 19년 후, 성인이 된 홍천기(김유정)와 하람(안효섭)은 저마다의 매력으로 이 사극의 시청자들을 다시금 몰입시킨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남다른 그림의 재주를 가진 홍천기는 모작을 그려 번 돈으로 마왕의 저주로 광증이 생긴 아버지를 어떻게든 고쳐보려 하고, 눈이 먼 하람은 그 와중에도 서문과 주부이자 신비로운 인물 일월성이란 이름으로 가족을 잃게 만든 왕실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그들은 저마다 아픔이 있고 그래서 그걸 넘어서기 위한 욕망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욕망에 눈이 머는 인물들은 아니다. 청춘이 마주한 만만찮은 고통 속에서 이를 벗어나려 애쓸 뿐. 

 

이 판타지 사극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앞을 못 본다’는 설정이나 눈이 갖고 있는 은유다. <홍천기>가 담고 있는 그림이라는 소재에서 ‘눈’은 우리가 화룡점정(畵龍點睛)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용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이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라 말했다는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장승요라는 화공의 이야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다. 그 고사성어를 <홍천기>는 정반대의 이야기로 끌어들인다. 눈을 그려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게 아니고, 눈을 그려 넣은 영종어용에 마왕을 깃들여 봉인하는 방식으로. 

 

<홍천기>에서 하람이 겪게 된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은 마왕을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 봉인의 의미를 갖는다. 그건 그가 원해 벌어진 일이 아니고 고통스런 형벌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세상은 구원받는다. 청춘에게 내려진 고통이 세상을 구원하는 희생의 의미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람에게 봉인된 마왕은 홍천기를 다시 만나게 됨으로써 깨어난다. 그런데 하람의 봉인에서 빠져나온 마왕이 노리는 건 홍천기의 눈이다. 삼신이 옮겨 놓은 그 눈을 가져와야 자신이 진짜 깨어날 수 있어서다. 

 

여기서 하람은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마왕과 본래 자신 사이를 오가며 치열하게 갈등하는 존재가 된다. 홍천기를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하람과, 그의 눈을 빼앗아야 하는 마왕이 그 한 몸에서 싸우게 되는 격이다. 과연 하람은 어느 쪽을 선택할까. 사랑일까. 욕망일까. 결말을 섣부르게 예단할 순 없지만 그 이야기에 화공인 홍천기의 그림이 한 역할을 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사람의 몸에 깃든 마왕을 그림으로 봉인해내는 것. 그 과정에서 하람과 홍천기는 어떤 운명적인 사랑을 그려내게 될까. 

 

판타지 사극이지만, <홍천기>의 이야기는 묘하게 현재의 청춘들을 위로하는 목소리가 얹어져 있다. ‘앞을 못 본다’는 그 설정의 은유가 그렇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청춘들은 그들 앞에 놓여진 어려움이 마치 자신들의 탓인 양 한탄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드라마는 시작부터 어린 하람(최승훈)과 홍천기(이남경)의 대화 속에 풀어놓는다. 

 

“너도 똑같애. 내가 앞을 보지 못해서,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치 못해서, 어머니가 날 낳자마자 돌아가셔서 난 친구가 없다.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 해 저주 받은 아이라고... 난 그냥 복숭아를 같이 먹고 싶었어.” 같이 복숭아 서리를 해 도망친 후 이를 질책하는 하람에게 홍천기가 그렇게 말하자 하람은 그것이 모두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미안해. 헌데 니 어머니가 널 낳고 돌아가신 것도, 네가 앞이 보이지 않게 태어난 것도,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도 네 탓이 아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너에게 벌어진 일이 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라구. 네 잘못이 아니란 말이다! 허니 어쩔 수 없는 일로 너를 탓하지 말아라.”

 

이 짧은 대사의 주고받음 속에 <홍천기>가 앞으로 펼쳐나갈 청춘들의 이야기에 머금은 위로의 정체가 숨겨져 있다. 그 현실 앞에 분노가 끓어오르지만(그것이 마왕이 튀어나오는 순간이 아닐까), 서로를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사랑이 있어(홍천기와의 로맨스가 그것일 게다) 해법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하람과 홍천기의 희생을 통해, 세상이 어려워도 그나마 살 수 있게 해주는 존재들이 바로 청춘이라는 걸 그려내는 것만으로 이 드라마가 주는 위로는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눈을 그려 넣어주지 못해 훨훨 날지 못하는 청춘이라는 용을 깨워낼 수 있기를.(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