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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이병헌은 우울증에 빠진 신민아를 어떻게 꺼냈나(‘우리들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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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우울증의 심연 속으로 손을 내민 해녀 같은 

우리들의 블루스

“고등어 고등어- 오징어 오징어- 계란 계란- 순두부 순두부- 비지 비지- 시금치 시금치 윗도리 아랫도리...” 트럭을 몰고 제주 구석구석을 다니며 갖가지 물건을 파는 동석(이병헌)은 그렇게 녹음을 해 가져온 물품들을 알린다. 아마도 저마다 하루의 노동 속에 있던 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트럭으로 달려올 게다. 고등어도 사고 계란도 사고 옷도 사고... 그 순간을 놓치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외진 동네에서 나중이란 너무 멀다.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동석이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일이다. 그런데 그가 깊은 우울증에 빠져버린 선아(신민아)를 마주한다. 어려서 서울에서 내려왔던 선아를 동석은 좋아했다. 재가한 엄마를 따라 함께 살던 배다른 형제들은 매일 같이 동석을 두들겨 패곤 했지만 동석은 그저 참고 맞기만 했다. 선아도 엄마가 죽고 나락에 빠져 있는 아빠 때문에 힘겨워하며 자신을 망가뜨리려 한다. 그래야 아빠가 정신을 차릴 거라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건 동석에게도 잊히지 않는 상처가 된다. 

 

결혼을 했지만 우울증 때문에 힘겨워하던 남편과 결국 이혼하고, 아이까지 빼앗기자 선아는 살 의미를 잃어버린다. 아이만이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었지만 그마저 사라진 것. 그래서 제주도에 온 선아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우울증 증상이 물에 빠진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선아에게 물은 죽음과 심연의 이미지다. 그 깊은 어둠 속으로 저도 모르게 빠져든다. 

 

그런데 그렇게 바다 속에 빠졌을 때 마침 그 곳을 지나던 해녀들이 그를 찾아내 구해낸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동석은 119를 부르고는 괜한 심술을 부리듯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괜스레 차 안에 있는 침구들의 먼지를 거칠게 털어낸다. 바다에 빠진 선아를 해녀가 구해냈지만, 물밖에 나왔다고 선아는 산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우울의 심연 깊숙이 빠져 있다. 그게 못내 걱정된 동석은 그를 병원에도 데려다주고 모텔 방도 잡아주고 때때로 전화해 “살아있냐?”고 묻는다. 바다는 아니지만 지금 동석은 우울의 심연 깊숙이 빠진 선아를 끌어내려 안간힘이다. 

 

선아는 매 번 ‘나중’을 이야기한다. 나중에 아이를 다시 데려와 함께 살 집을 고치고, 나중에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말을 함께 탈 생각을 한다. 그런 선아에게 동석은 나중은 없다며 지금 당장 말을 타러 가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당장 말 탈 시간이 있으면 아들 열이와 함께 살 집을 더 짓고 싶다 말하는 선아에게 동석은 자기 말 타는 사진을 찍어 달라 한다. 막상 즐겁게 말 타는 동석을 보니 선아도 웃는다. 그리고 동석의 강권에 못 이겨 말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별 일 아닌 것처럼 찍은 말 사진은 그 날 아이를 만났을 때 의외의 즐거움으로 돌아온다. 수족관에 갔지만 아이는 거기 수조를 유영하는 가오리보다 말이 더 좋단다. 그래서 그날 동석 때문에 억지로 찍은 말고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즐거워한다. 그 때 동석이 ‘지금 하자’고 했던 그 일이 없었으면 선아가 말하는 지금 같은 ‘나중’도 없었을 일이다. 

 

동석은 선아에게 나중은 없다는 이야기를 어려서 죽은 누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아버지가 죽고 엄마랑 누나랑 셋이 살 때, 없는 형편에 엄마가 돼지 내장을 얻어다 볶았는데 그걸 누나가 다 챙겨먹어 화가 나서 요강 단지를 누나 얼굴에 부어버렸다고 했다. 그게 미안해서 다음날 학교 갔다 와서 미안하다 하려 했는데, 그 날 누나가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게 누나랑 나랑 마지막. 그 때 알았지 썅. 나중은 없구나...”

 

배를 타고 제주에서 뭍으로 나오면서 선아는 하염없이 바다만 쳐다본다. 그러면서 계속 파도만 보고 있으니 멀미가 난다는 선아에게 동석은 이렇게 말한다. “너도 울 엄마처럼 바보냐? 뒤돌아. 나중에도 사는 게 답답하면 뒤를 봐 뒤를. 이렇게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 있잖아. 그저 바다만. 바보처럼. 아 우리 엄마 얘기야. 아버지 배타다 죽고 동희 누나 물질하다 죽고 엄만 매일 바다만 봤어. 바로 등만 돌리면 내가 있고 한라산이 저렇게 떡하니 있는데, 이렇게 등만 돌리면 아부지 동희누나 죽은 바다 안볼 수도 있는데, 매일 바다를 미워하면서도 바다만.”

 

엄마 얘기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 선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일 터였다. 양육권을 두고 남편과 벌인 소송에서 진 선아는 절망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밥도 먹지 않는다. 점점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선아를 동석은 애써 잡아 끌어올리려 하지만 제아무리 설득해도 먹히질 않는다. 결국 동석은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선아를 인정하며 “그래 이렇게 살다가 죽든 말든 니 맘대로 해”라고 쏘아댄다. 그러면서 선아가 가장 아파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아들도 우울증에 빠진 엄마처럼 될 거라는 것. 

 

너무 아픈 이야기지만 부정할 수 없는 말. 그래서 오열하는 선아에게 동석은 말한다. “슬퍼하지 말란 말이 아니야. 울엄마처럼 슬퍼만 하지 말라고. 슬퍼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러다가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썅. 어쩌단 웃기도 하고 행복도 하고 애랑 같이 못사는 것도 대가리 돌게 승질나 죽겠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엉망진창 네가 망가지면 니 인생이 너무 엿 같잖아 새끼야!”

 

선아는 동석과 함께 걸으며 우울증을 치료해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석의 끝없는 너스레에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 물건 파는 걸 녹음하는 동석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프라이판 프라이판 뺀찌 망치 도라이바 윗도리 아랫도리-” 그건 제주 구석구석에 사는 주민들에게 물건 파는 트럭이 왔다는 목소리지만 또한 지금 아니면 나중은 없다는 목소리처럼도 들린다. 자잘한 일상의 욕망들을 일깨우는 소리.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던 선아를 마치 해녀처럼 포기하지 않고 찾아낸 동석은 그렇게 그를 현실로 끌어올리는 중이었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