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 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삶을 꿰뚫는 멀티버스 가족코미디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일단 제목이 너무 길어 머릿속에 단번에 입력되지 않는다. 포스터만 봐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마치 만다라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 포스터에는 중심에 주인공 에블린(양자경)이 서 있는데 그 뒤로 눈알을 이마에 붙인 복면의 존재가 마치 그를 조종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양자경 주변으로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 세무국 직원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 아버지(제임스 홍)가 원형으로 포진되어 있다.
멀티버스를 소재로 한다는 것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포스터만으로 그 세계의 복잡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영화는 시작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며 국세청 조사에 시달리게 된 에블린의 복잡한 상황을 보여준다. 세무조사 준비로 정신이 없지만,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식사를 챙겨야 하고, 어딘지 현실성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감성적인 남편의 이혼 요구를 받는다. 하지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성 소수자로 여자친구를 인정해달라는 딸 조이다. 에블린의 정신은 마치 세계 하나가 붕괴되기 직전의 상태 같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민자 가족의 가족드라마처럼 시작하던 영화는, 그러나 이렇게 붕괴되기 일보 직전에 놓은 에블린 앞에 ‘멀티버스’ 우주를 펼쳐놓는다. 알파 지구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가 이 우주에 있는 웨이먼드에 접속해 들어와 에블린에게 이 멀티버스를 설명해준다. 무한한 우주가 있고 여러 선택을 통해 다른 에블린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그라는 것. 반면 알파 지구의 에블린은 다른 우주와 접속하는 기술을 개발한 인물이다. 알파 웨이먼드는 그 기술을 통해 자신이 이 우주의 웨이먼드 속으로 들어와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이제 에블린도 다른 우주의 에블린과 접속해 그 능력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갑자기 펼쳐지는 이 멀티버스는 영화를 B급 코미디가 가미된 SF 판타지 액션 장르로 만들어버리지만, 어찌 보면 어떤 삶의 위기에 봉착한 에블린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펼쳐놓은 상상이나 백일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멀티버스 안의 설정들은 마치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과 연결고리를 갖는 것처럼 연결되어 있는 지점들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다른 우주의 자신과 접속하기 위해는 엉뚱한 행동들을 해야 한다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이를 테면 신발 양쪽을 바꿔 신거나 손가락 사이를 종이로 베기, 립밤 먹기, 심지어 항문에 트로피를 끼우기 같은 이상한 행동들이 그것이다. 즉 현재의 자신과 전혀 맥락이 없는 행동을 해야 다른 우주의 새로운 자신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이 설정은, 에블린이 지금껏 해보지 않은 엉뚱한 행동들이나 가보지 않은 길로 나간 적이 별로 없다는 걸 말해준다. 결국 삶에 있어서 어떤 새로운 가능성은 현재까지 걸어온 길 바깥으로 슬쩍 빠져나가는 것에서부터 생겨날 수 있다는 걸 그 설정이 보여주고 있는 것. 즉 이런 지점은 가족드라마로 시작한 영화가 멀티버스의 판타지 액션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도 그 설정들 속에서 삶에 대한 어떤 통찰이 발견하게 해준다.
갑자기 알파 지구에서 접속해 들어온 웨이먼드가 조부 투파키라는 우주를 붕괴시킬 위기를 몰고온 존재에 대해 말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그 조부 투파키는 다름 아닌 알파 지구 에블린의 딸 조이가 흑화한 인물로 그를 그렇게 만든 건 바로 그 엄마다.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늘 윽박지르기만 하자, 조이는 멀티버스에 빠져들었고 그 곳에 있는 모든 조이들의 능력을 끌어와 뭐든 할 수 있고 파괴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는 것. 웨이먼드가 들려 준 이 이야기에도 역시 이 세계에서 에블린이 딸 조이에게 느끼는 감정들이 녹아있다. 에블린은 성 소수자인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딸과 갈등하고 그건 마치 세계의 붕괴처럼 다가온다.
즉 이 멀티버스의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에블린과 흑화한 딸 조부 투파키의 대결은 판타지 액션으로 펼쳐진다. 서로 다른 우주의 (다른 선택을 한) 또 다른 자신들의 능력을 서로 불러와 대결을 펼치는 것. 그 와중에 에블린은 다른 우주에서 화려한 영화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에블린과 접속한다. 그건 아버지가 반대했던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면 살 수 있었던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화려한 삶이다.
가족과의 갈등과 세무조사 같은 복잡한 주변 상황들 때문에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기며 극단으로 몰렸던 에블린이 빠져보는 백일몽.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것을 멀티버스 판타지 장르로 변환해 보여준다. 중요한 건 그 상상력이 단지 재미 차원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깨달음의 차원으로까지 나간다는 점이다. 그건 마치 보리수 아래서 온갖 가능성의 세계들이 욕망과 맞물려 만들어내는 번민 속에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영화라는 영상을 통해 구현해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의 현재를 실패한 삶이라 규정하고, 그래서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화려하게 성공한 삶을 살았을 거라 말하는 것 같은 에블린의 멀티버스는 바로 그 번민의 근원이다. 그 세계는 지금을 초라하게 만들고 저편으로 자신을 자꾸만 끌어당긴다. 하지만 멀티버스 속에서 에블린과 맞서는 조부 투파키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우주의 가능성과 능력들을 마음대로 끌어와 뭐든 할 수 있게 됨으로써 흑화된 인물이다. 뭐든 다 할 수 있는 세계란 결국 아무 것도 의미가 없는 공허와 허무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늘 최악의 선택을 해서 모든 것들이 엇나가버린 듯한 에블린과, 모든 걸 마음대로 다 선택할 수 있어서 지독한 공허와 허무에 빠져버린 조이. 에블린은 깨닫게 된다. 마음대로 다 되지 않는 어떤 선택들로 만들어진 삶이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이고, 다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기준에 맞춰 평가하기 때문에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것으로 그 삶을 재단하게 된다는 것을.
갈등하고 부딪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서로 상처주기도 하는 삶이지만, 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건 그래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다정하게’ 대하는 그 소소한 친절에 있다는 걸 에블린은 깨닫는다. 그건 마치 돌이나 행성처럼 도무지 합쳐질 수 없을 것 같은 두 세계가 부딪쳐 빅뱅을 일으키는 정도의 깨달음이다. 이 다정함이 공허와 허무로 가득한 세계와 싸우는 장면은 그래서 우습고, 통쾌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마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은 이 소소하고 자잘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이 작품의 이야기에 놀라워할 것이다. 또한 이 통찰의 과정을 거대한 멀티 버스의 소동 속으로 끌어들였다가 어느 순간 깨달음으로까지 이어가게 만들면서도 그것이 전하는 위로에 뭉클해질 것이다. 그걸 결국 이 거대한 우주 속 자잘한 우리의 존재 하나하나가 모두가 소중하고 결코 잘못된 선택이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까. (사진: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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