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증외상센터’, 의사가 쓴 웹소설이 넷플릭스를 만났을 때이주의 드라마 2025. 2. 1. 08:30728x90
‘중증외상센터’, 의학드라마가 활극을 더해 얻게된 것들
중증외상센터 이거 의학드라마 맞아?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첫 시퀀스를 보고는 많은 시청자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척 봐도 국내가 아닌 풍광이고,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백강혁(주지훈) 위로 전투기가 날아가며 미사일을 쏴대는 장면이 등장한다. 폭탄이 터지며 난장판이 된 분쟁지역의 도시를 질주하던 오토바이는 결국 폭격에 날아가고 간신히 살아남은 백강혁은 무사히 병원에 혈액을 전달한다... 이건 급박한 수술 장면이 채워지곤 하던 의학드라마의 오프닝 시퀀스와는 너무나 다르다. 국제 분쟁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활극이다.
하지만 이건 <중증외상센터>가 아예 내걸고 있는 ‘활극 의학드라마’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잘 보여주는 오프닝이다. 백강혁이라는 인물은 실제로 병원보다 야전이 더 잘 어울리고, 그래서 수술만큼 활극에 더 적합해보이는 외상외과의다. 이런 인물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한강대학교 중증외상팀과 어울리게 되는 건 이 골든타임에 따라 삶과 죽음이 오가는 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응급실의 정경이 저 전쟁의 한 가운데 있는 분쟁지역의 그것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어서다. 이 지점에서 활극은 의학드라마와 어색하지 않게 봉합된다.
그리고 백강혁 교수가 1호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양재원(추영우)와 처음 손발을 맞추는 북한산 등산로 실족사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과정은 이 활극과 의학드라마의 접합이 제대로 됐다는 걸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백강혁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양재원을 헬기로 태우고 절벽까지 날아가(심지어 안개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자 헬기 조종까지 한다) 위급환자가 있는 절벽 아래로 레펠을 하는 광경을 연출한다. 심지어 양재원을 안고 뛰어내리는 레펠이다.
의학드라마에 ‘활극’이라는 장르적 요소가 더해졌으니 다분히 <중증외상센터>는 허구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백강혁 교수가 보여주는 액션(?)들은 묘하게도 중증외상센터라는 우리에게는 이국종 교수로 잘 알려진 현실적인 소재와 정서적으로 연결된다. 즉 환자들에게는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중증외상센터라는 곳이 경영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병원에 의해 소외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오로지 환자의 생명만을 구하기 위해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하는 이 의사의 판타지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의 답답함 속에서 시청자들은 이 슈퍼히어로를 암묵적으로 응원하게 된다. ‘백강혁, 하고 싶은 거 다 해.’ 라고.
여기에 너무나 힘들어 아무도 오지 않아 ‘사명감 있는 또라이’나 간다는 외상외과에 어쩌다 슬금슬금 합류하게 된 양재원이나 특유의 낙천적인 데다 똘끼까지 있는 간호사 천장미(하영)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흘리는 박경원(정재광) 같은 성장캐들이 팀을 이룬다. 백강혁의 말도 안되는 수술을 함께 해나가면서 이들도 조금씩 성장한다. 환자를 살리면 살릴수록 누적되는 적자 때문에 병원측에서 갖가지 정치와 언론 공작으로 방해를 하려 하지만 그 때마다 백강혁은 언론을 역이용해 국민들을 중증외상센터편으로 돌림으로서 문제를 해결한다. 한 마디로 고구마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시원시원한 사이다 활극이 넘쳐나는 의학드라마가 그려진다.
그런데 이 작품이 거의 활극에 가까운 허구적 캐릭터와 서사들에 중증외상센터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더해지고, 특히 다양한 수술 케이스들이 소재로 등장할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그건 현실과 허구가 적절히 이어지고 그것이 영상으로 현실화하게 되는 독특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중증외상센터>는 이국종 교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실제 이비인후과 의사인 한산이가(이낙준) 작가가 쓴 웹소설이 그 원작이다. 그래서 다양한 수술사례들이 가능해졌고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던 이국종 교수의 실제 사례를 담은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 기반의 서사는 웹소설과 웹툰이라는 장르를 만나면서 특유의 허구성이 가미됐을 것으로 보인다. 백강혁이 활극의 주인공처럼 그려지고, 나아가 ‘신의 손’에 가까운 외과 천재의로 그려지게 된 것이 이만한 허구들을 요구하고 허락하는 웹소설과 웹툰 특유의 색깔이 가미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건 이 현실에서 소재를 가져왔지만 활극에 가깝게 그려진 작품이 넷플릭스라는 제작을 통과하면서 갖게 된 블록버스터와한 장르적 색깔이다. 좀더 그럴듯한 허구가 장르적 완성도로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중증외상센터>를 보면 최근 드라마의 새로운 경향과 색깔이 어떻게 생겨나고 있는가가 엿보인다. 실제 의사나 변호사 같은 현장인력들이 직접 작품의 원작을 쓰는 새로운 흐름과, 웹소설과 웹툰이라는 보다 상상력의 틈입을 넓혀주는 공간에 의해 생겨난 색다른 성격의 창작물들의 등장, 그리고 이들을 원작으로 삼아 리메이크되는 드라마라는 흐름(물론 여기에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성격의 서비스가 갖는 특징도 더해진다)이 더해지면서 만들어지는 경향과 색깔이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 속에서 최근 <중증외상센터>같은 현실과 허구가 장르적 틀 안에서 적절히 봉합되어 개연성을 넘어서도 그럴 듯하게 보이는 작품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전문성이 더해지지만 동시에 상상력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기묘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연출과 대본, 연기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직업군이 대본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웹툰과 웹소설을 통해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저 백강혁 같은 천재적인 봉합술이 요구되는 시대에 들어왔다.(사진:넷플릭스)
'이주의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리거’, 가짜뉴스 판치는 세상에 던지는 속 시원한 일침 (0) 2025.02.17 공부에 미친 맑은 눈의 광인 황민현 포텐 제대로 터졌다 (0) 2025.02.04 차주영의 쓸쓸한 눈빛이 ‘원경’을 살렸다 (0) 2025.01.22 예사롭지 않은 이준혁과 추영우의 급부상, 그만한 이유가 있다 (1) 2025.01.18 ‘오징어 게임2’, 이 배우들이 있어 한국적 정서가 짙어졌다 (0) 2025.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