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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의 알 수 없는 속내, 모성애일까 살인 본색일까옛글들/이주의 드라마 2025. 9. 12. 08:16
‘사마귀’, 표정 하나로 스릴러를 끌고 가는 고현정의 저력
사마귀 고현정이 돌아왔다. 그것도 살인자의 섬뜩한 얼굴로. SBS 금토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이하 사마귀)>가 그 작품이다. 물론 최근 들어 고현정이 맡은 역할들은 ‘평범’이나 ‘사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그간 해왔던 이미지를 깨려 안간힘을 쓰는 게 느껴지는 역할들이다. <마스크걸>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사건으로 수감 된 죄수 김모미 역할을 연기했던 고현정을 떠올려 보라. 이번 <사마귀>의 정이신이라는 희대의 살인마 역할과의 연결고리가 느껴진다.
물론 정이신이라는 인물은 훨씬 더 복합적이다. 교미 후 수컷을 뜯어먹는 암컷 사마귀의 생태를 제목으로 삼은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톱으로 목을 썰어 죽일 정도로 잔혹한 연쇄살인마지만 정이신은 그렇다고 아무나 죽이는 그런 인물처럼 보이진 않는다. 아동학대나 아내에 대한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적어도 정이신이라는 연쇄살인마에게 그런 이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이신은 ‘사적 정의’를 추구하는 그런 인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살인 자체를 즐기는 듯한 말들 속에는 잔혹한 사이코패스의 성향이 엿보인다. 그래서 이 인물이 아들이자 형사인 차수열(장동윤)을 대하는 모습은 그 속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아들을 지키려고 하는 행동인지, 아니면 심지어 아들까지 이용해 철창 안에서도 누군가를 조종해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즐기려는 행동인지 알 수가 없다.
정이신과 차수열의 관계는 <사마귀>라는 범죄스릴러가 가진 독특한 지점이다. 정이신은 이미 20년 전 5명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갔고, 살아남은 그의 아들 차수열은 형사 최중호(조성하)의 보호 아래 성장해 형사가 됐다.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로 차수열은 여전히 그 악몽 속에서 살아가는데 애써 외면하려 했던 그 사건을 똑같이 모방한 사건들이 터지면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정이신은 모방범 서구완(이태구)이 이름까지 바꿔 경찰로 살아가는 차수열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말하자 그를 죽이려 한다. 그러면서 차수열에게 서구완을 지금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그의 정체가 세상에 드러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정이신의 이 행동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성애일까, 아니면 그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살인 본능일 뿐일까.
정이신의 등장으로 차수열 또한 혼란에 빠진다. 마약중독자 엄마 때문에 그 아이가 위험에 처하자 그는 아이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총을 쏘는데 그건 어딘가 과잉된 행동처럼 보인다. 스스로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리화하지만 속에는 그 엄마를 죽이고픈 살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의심한다. 정이신이라는 연쇄살인마의 핏줄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차수열을 뒤흔든다.
2회까지 방영됐지만 2회 모두 엔딩 장면에 담겨진 고현정의 얼굴이 기막힌 잔상으로 남는다. 1회 엔딩의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 짓는 모습은 섬뜩하지만 그 눈빛은 어딘가 처연한 느낌이 있다. 2회 엔딩의 미소 속에는 어린애 같은 장난기가 묻어나지만 여전히 섬뜩하다. 그 표정은 살인 본능을 다시 꺼내놓은 연쇄살인마의 얼굴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어딘가 숨겨 놓은 꿍꿍이가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는 것처럼도 보인다.
<사마귀>는 그 독특한 생태를 가진 곤충의 은유에서 알 수 있듯이 정이신이라는 살인마의 속내가 너무나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연쇄살인마가 보여주는 모성애인지, 아니면 모성애를 가장한 연쇄살인마의 살인 본능인지가 궁금하다. 그 복잡 미묘한 얼굴을 통해 고현정은 그 궁금증의 멱살을 쥐고 끌고 간다. 고현정이 돌아왔다. 섬뜩하지만 어딘가 숨겨진 무언가가 느껴지는 얼굴로.(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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