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극단에서 주최한 '명동인문학'에서 스토리텔링 관련 강연을 했다.
강연장소는 내가 자주 찾는 명동예술극장.
그 곳에서 이봉련 배우가 출연했던 '햄릿'을 봤고
올해에는 지춘성 배우의 호연에 가슴이 뜨거워졌던 '삼매경'을 봤다.
그 무대에 내가 오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명동예술극장에서 하는 강연이라는 국립극단측의 이야기에 단박에 하겠다고 나섰다.
1시간 일찍 도착해 사전 리허설 때문에 무대에 오르자
내가 연극을 보곤 했던 객석이 새삼스러워 보였다.
간단한 마이크 테스트와 자료화면 점검을 한 후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 곳은 연기자들의 분장실이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혼자만 앉아 있다가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바라봤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새삼 내가 이렇게 내 얼굴을 오래도록 보고 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나이 먹었네. 희끗희끗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마침 그 날 강연 주제가 스토리텔링이어서였는지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봤다.
어쩌다 너는 거기 있는 거니. 조금 있으면 저 무대 위에 올라서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해야 하는데...
너는 어쩌다가 먼 길을 돌아서 그 자리에 서게 된 거니?
어려서 자물쇠가 챙겨진 바보상자 안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하던 소년이 떠올랐고
그 후로 서울에 올라와 주말만 되면 극장을 돌아다니던 그 아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대학을 나와 직장에 들어갔지만 IMF로 해고된 후
글쟁이로 전전하다 어느 날 대학동기가 비평 글 하나를 써보라고 한 게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그 일을 하고 있는 그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당시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스쳐지나간 일들에 불과했다.
되돌아보니 그런 파편적인 일들이 하나의 연결고리를 만들면서 작은 스토리를 구성했다.
아 삶이라는 게 이렇게 스토리로 구성되는 순간 드디어 의미를 갖는구나 싶었다.
스토리텔링 관련 강연을 하러 갔지만
오래도록 거울 앞에 앉아서 나의 스토리를 되짚어본 시간이었다.
스산한 가을 날 조금은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절이 돌아왔다.
바쁜 나날들일 테지만 저마다 오랜만에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를 갖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