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 앞에 서 본 적이 있는가.
천 년이 넘는 시간을 한 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나무가 주는 여러 감정들이 있다.
얼마나 외로울까,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그 아래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명들을 겪으며 나무는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영화 <침묵의 친구>는 바로 나무의 시선이라는 그런 관점을 담은 신비로운 영화다.

영화는 1832년 한 독일 대학의 식물원에 뿌리내린 한 그루의 은행나무의 시점으로
서로 다른 시대의 세 인물의 이야기를 병치한다.
첫번째 인물은 1908년 이 대학 최초의 여학생으로 식물학과에 입학한 그루타(루나 웨들러)다.
그녀는 입학 면접에서부터 모욕적인 성희롱을 당할 정도로
남성중심적 사회(학교도 가정도 직장조차도)에 고립되어 있다.
새벽에 숲에 들어가 나무와 교감한 것 때문에 방탕하다며 하숙집에서 쫓겨난 그녀는
숙식을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조수를 구하는 사진관에서 일하려 한다.
여성이 조수로 일한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시대에
사진관 사장은 처음엔 반대하지만 결국 그녀를 받아들여 사진기술을 알려준다.
그루타는 사진기술로 식물들을 찍기 시작하며
사진이 그림보다 식물의 구조를 기록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된다.
남성중심적 세상에 고립되어 잔뜩 위축되어 살아가던 그녀는
사진으로 식물을 연구하면서 자신감을 찾아가고
그 기술로 해외 식물연구를 하는 프로젝트에 유일한 여성으로 지원하게 된다.
배타적이고 남성 권력 중심적인 세상이지만 그녀를 세상과 연결시겨준 것들이 있다.
사진관 사장이 그렇고, 사진기술이 그러하며, 그녀가 늘 관심 있었던 식물에 대한 애정이 그렇다.

그리고 그녀 같은 여성들의 이런 노력은 두번째 인물로 등장하는
1972년 하네스(엔조 브룸)가 짝사랑한 군둘라(마를레네 부로우) 같은 여성의 자유로운 시대로 연결된다.
1970년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히피 운동이 펼쳐지던 시절에
군둘라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루타가 겪었던 여성으로서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그녀는
제라늄을 키우며 거기 연결된 전극으로 식물이 인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한다.
어찌보면 그루타의 사진기술이 포착해낸 식물에 대한 연구가
군둘라의 연구로 발전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인물의 주인공은 군둘라가 아니라 하네스다.
그녀를 짝사랑하지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다만 그녀의 정원을 맴도는 청년이다.
본래 농촌에서 자라나 식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지만
공학도인 그는 여행을 떠난 군둘라를 대신해 제라늄을 돌보면서
이 생명체와 교감하기 시작한다.
하네스의 제라늄에 대한 애정은 군둘라에 대한 짝사랑의 다른 표현일 수 있는데
하네스는 결국 제라늄의 전자기적 반응을 기계적으로 연결해(문을 열고 닫는 것 같은)
자신의 행동과 말에 식물이 반응하고 소통하는 장치를 개발한다.
짝사랑하는 이성이 떠난 외로운 정원에서 홀로 있지만
하네스는 그렇게 식물을 통해 그녀와 연결되고 싶어한다.

세번째 인물은 2020년 코로나 19로 그 대학에 시설 관리인과 단둘이 고립되어 버린 토니(양조위)다.
신경과학자로 이 대학에 부임해 인지과학을 가르치다 팬데믹으로 고립된 그는
식물원의 거대한 은행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다.
본래 아기의 뇌활동을 디지털 이미지로 포착해 연구하는 토니는
세계적인 식물학자 엘리스(레아 세두)에게 화상통화로 도움을 받아
나무와 소통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낸다.
어찌보면 이 기술은 저 하네스가 외로운 정원에서 짝사랑의 마음으로 만들었던
기계장치로부터 진화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이한 연구를 하는 토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편해하던 시설 관리인은
어느 날 나무에 설치된 장치들을 모두 끊어버린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행동도 이해하지 못하는 토니와 관리인은 그렇게 단절되어 있다.
하지만 시설 관리인이 점점 토니를 이해하게 되고
끊어버린 장치를 다시 연결해주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다시 이어진다.
스마트폰 통역기로 대화를 이어가며 두 사람은 어느덧
나무 앞에 함께 앉아 나무가 전하는 소리들을 기다리는 연결된 존재가 된다.

1908년을 담은 흑백필름으로 찍힌 그루타의 이야기와,
1972년을 담은 16미리 컬러 필름을 촬영된 하네스의 이야기는 그렇게
2020년 펜데믹 속 토니로 상징되는 현대인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100년이 넘는 시간을 다루고 있어 각각이 분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고립과 단절을 넘어서려 했던 행위들(누군가를 만나고 식물을 연구하는 등)이
그 긴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영화는 나무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침묵의 친구'는 그래서 고립과 단절 속에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연결된 존재들인가를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큰 위로를 주는 작품이다.
여기서 '침묵의 친구'란 명시적으로는 나무를 뜻하는 것이겠지만
좀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그건 아직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가 서로 소통할 가능성을 지닌 '침묵의 친구'라는 의미도 있을 게다.
물론 그 친구는 사람만이 아닌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을 포함하는 이야기다. (사진:영화 '침묵의 친구')
202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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