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영화 악당들의 전성시대, 더 지독한 놈들을 잡으려면

 

한 마디로 ‘악당들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종영한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에서 나이제(남궁민)는 주인공이지만 액면으로 보면 범죄를 수시로 저지르는 악당 중의 악당이다. 교도소 VIP들을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게 하려고 약물을 주입하거나 갖가지 몸을 망가뜨리는 처치를 내려 심지어 죽을 위기에까지 환자를 몰아넣는다. 의사지만 ‘활인(活人)’이 아닌 ‘살인(殺人)’을 하는 의사.

 

하지만 그런 악당을 지지하고 더 악독하게 하라고 만드는 건 그보다 더 지독한 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민식(김병철) 같은 교도소 의료과장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치부를 해온 인물이 그렇고, 이재준(최원영)처럼 욕망을 위해 존속살해도 서슴지 않는 싸이코가 그렇다. 그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악독해지는 주인공이 허용된다는 것.

 

OCN 수목드라마 <구해줘2>에도 비슷한 악당이 등장한다. 김민철(엄태구)가 바로 그 악당이다. 툭하면 사고치고 동네 사람들 괴롭히고 얼마나 지독했으면 감옥에서 나와 고향에 돌아오자 고향사람들이 보고 화들짝 놀랄 정도다. 하지만 그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이렇게 된 건 이 수몰예정지구 마을에 슬쩍 들어와 그 보상금을 통째로 털어먹으려는 사기꾼 최경석(천호진)이라는 악마 같은 인물이 있어서다.

 

김민철은 악당이지만 그가 최경석과 맞붙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게 ‘구라치는 놈’이기 때문이다. 최경석은 갖가지 감언이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래서 영혼까지 빼먹으려는 사기꾼.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심지어 목사까지) 그에게 하나둘 넘어가기 시작하는 상황, 김민철만이 이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처럼 보이는 건 워낙 최경석이 용의주도한 사기꾼이어서다.

 

최근 개봉해 화제가 되고 있는 마동석 주연의 영화 <악인전>의 사정도 똑같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에 보이는 이들을 마구 죽이고 다니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조직 보스 장동수(마동석)와 강력반 미친 개 정태석(김무열)이 손을 잡고 공조한다는 이 범죄액션은 ‘악당이 악마를 잡는다’는 그 지점이 가장 매력적인 관전 포인트다.

 

장동수는 조직의 보스로서 주먹으로 피떡을 만들고 살해를 사주하기도 하는 잔인한 인물이지만 이 끔찍한 연쇄살인마 앞에서 어딘지 ‘든든한’ 느낌을 주는 주인공이 된다. 정태석도 형사지만 나쁜 놈이기는 마찬가지다. 살인범을 잡기 위해 뭐든 하는 이 형사는 어떨 때는 장동수보다 더 잔인한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이들이 공조(?)를 하는 장면 속에서 누가 형사이고 누가 조폭인지 알 수 없는 유머러스한 장면까지 연출된다. 그래서 <악인전>의 대결구도는 두 명의 나쁜 놈들(조폭과 형사)이 악마 연쇄살인범을 잡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악당이 악을 잡는 이런 스토리들이 부쩍 늘고 있는 건 왜일까. 그건 우리네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누가 봐도 뻔히 아는 범죄자들조차 법망을 빠져나가고, 갈수록 흉악한 범죄들이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는 요즘, 이런 악들과 대적하기 위해서 더 이상 ‘순진한 선이나 정의’가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대중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악당조차도 좋게 보일 정도로 더 악독한 현실. 그것이 악당들의 전성시대를 불러온 이유다.(사진:영화'악인전')

‘현지먹3’, 이연복이 보여주는 한식보단 한국식의 가능성

 

이건 한식이라기보다는 한국식(코리안 스타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tvN 예능 프로그램 <현지에서 먹힐까>가 지난 시즌에 중국에서 짜장면과 깐풍기를 팔았듯, 이번 시즌에서는 미국에서 치킨에 이어 핫도그를 팔고 있다. 그런데 그 반응들이 흥미롭다. 단지 ‘맛있냐. 맛이 없냐’는 차원의 흥미로움이 아니라, 이 음식들을 현지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대한 흥미로움이다.

 

포털사이트 다음 백과사전을 들여다보면 치킨은 프라이드치킨의 줄임말로 18-19세기 미국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돼지나 소보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닭을 요리해 먹으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물론 ‘닭튀김은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을 통해 미국에 전해진 스코틀랜드 전통요리’다. 이 닭튀김은 별 양념 없는 요리였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여기에 조미료와 향신료를 첨가해 프라이드치킨을 만들었다는 것. 물론 훨씬 대중적인 이름이 알려진 건 커넬 샌더스가 개발한 양념으로 탄생한 KFC지만.

 

하지만 우리는 물론 한국전쟁 이후 미군을 통해 치킨이 유입되긴 했지만, 1970년대 식용유가 양산되면서 치킨이 본격화됐고 이미 1980년대 양념치킨이 등장했다. KFC가 1984년에 들어와 성행했지만, 최근까지 무수히 많은 치킨의 실험(?)이 이뤄지면서 한국 스타일의 치킨이 완성됐다. <현지에서 먹힐까>의 이연복이 내놓은 양념치킨과 간장치킨(이건 사실 깐풍기에 가깝지만) 같은 치킨은 그래서 한식이라기보다는 한국식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인들도 이 치킨을 ‘코리안 스타일 치킨’으로 받아들인다. 치킨이지만 무언가 좀 더 바삭하고 거기에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단짠 혹은 매콤달콤한 소스가 얹어져 그들이 먹던 치킨과는 사뭇 다른 맛을 내는 음식.

 

에릭이 만들어 놀이공원에서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국식 핫도그도 마찬가지다. 본래 핫도그는 비엔나프랑크 소시지를 사용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독일계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본다. 처음에는 소시지만 먹던 방식이었는데 뜨거워 이를 싸는 빵을 더해 핫도그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식의 핫도그는 옥수수가루 반죽으로 만든 콘도그에서 시작했지만 최근 들어 다양한 형태로의 진화를 겪었다. 마치 치킨이 진화하듯 한국식 핫도그도 비슷한 진화를 겪었던 것.

 

미국으로부터 전파되어 온 음식이지만 거기에 한국식의 맛들이 개발되고 더해져서 만들어진 한국식 핫도그에 미국인들이 흥미를 느끼는 건 그것이 익숙하지만 색다른 조합이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먹힐까>의 미국인들이 그 맛이 “흥미롭다”고 표현하는 건 그래서일 게다. 바삭한 식감이 더해진데다 케찹, 머스타드에 설탕까지 더해져 독특한 맛을 내고 있으니.

 

<현지에서 먹힐까>는 프로그램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그 형식 때문에 국적을 뛰어넘어 경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어떤 지점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만든다. 물론 독특한 그 나라만의 음식문화가 있는 건 사실이고 또 중요한 일이지만, 이미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음식의 국적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누가 원조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것이든 그 위에 저마다의 색깔을 더해 경쟁력 있는 어떤 걸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최근 들어 한류를 지칭하면서 앞에 K를 붙이는 일들이 부쩍 늘었다. K팝, K뷰티, K푸드, K패션 등등. 그런데 여기서 K는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것은 원조의 의미보다는 ‘코리안 스타일’이라는 우리식의 해석의 의미가 강하다. 이미 있었던 팝이고 화장품이고 음식이고 패션이지만 거기에서 우리식의 스타일이 더해져 독특한 색깔을 낸다는 것. <현지에서 먹힐까>는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코리안 스타일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닥터 프리즈너’, KBS도 이런 웰메이드가 가능한데 어째서

 

KBS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가 종영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전개였다. 나이제(남궁민)와 이재준(최원영)의 대결은 결국 나이제의 승리로 돌아갔다. 되돌아보면 약자들 위에 군림해 권력을 휘두르며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던 이재준 같은 인물이 제대로 처벌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겨운 싸움이 필요한가를 보여준 드라마였다. 엔딩에 이르러 감옥 속에서 이재준이 끝까지 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히고, 나이제가 “그냥 거기서 죽어”라며 짓는 미소는 사이다 엔딩이면서도 씁쓸함을 줬다. 결국 복수를 끝내고 성공한 나이제 역시 어딘가 저들을 닮은 미소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닥터 프리즈너>는 최고 시청률 15.8%(닐슨 코리아)를 기록했고 방영 내내 화제성도 뜨거웠다. 처음에는 나이제의 선민식(김병철)과의 대결을 보여주더니 그 다음에는 이재준과의 대결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재준이 공동의 적이 되면서 나이제와 선민식이 손을 잡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선민식이란 캐릭터는 극을 뻔하지 않게 만들었다.

 

감옥과 병원이라는 공간을 이어 붙여 이 두 공간이 만들어내는 장르적 특징을 이색적으로 결합한 면도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였다. 흔히 감옥드라마라고 하면 탈옥 혹은 탈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두 장르를 이어 붙이자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감옥은 VIP들의 형 집행 정지가 시도되는 공간이 되었고, 누군가를 살리는 의사가 아닌 죽이는 의사들이 등장했다.

 

나이제라는 인물은 ‘복수의 화신’으로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독특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래서 드라마는 단순한 선악구도 혹은 갑을대립의 형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바라보는 현실인식이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한 선의로만 바뀌지 않는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었다. 저들처럼 독해지지 않으면 성실한 악을 결코 처단할 수 없다고.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는 KBS 드라마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최근 들어 KBS 드라마라고 하면 뻔한 멜로거나 흔한 출생의 비밀이거나 여전히 가족드라마의 범주 안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어떤 성취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지난해에는 그래도 실험적인 장르드라마들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시청률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올해는 수목 시간대에도 <왜그래 풍상씨> 같은 주말에 어울릴 법한 드라마를 편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험적이면서도 완성도도 높은 <닥터 프리즈너>의 성공은 KBS 드라마도 그만한 투자가 전제된다면 좋은 장르물을 편성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KBS라고 해서 뻔한 드라마들만 세워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소 복잡해 보이는 장르물이라도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에는 채널과 상관없이 시청자들이 찾아본다는 걸 <닥터 프리즈너>의 성공은 말해준다.

 

<닥터 프리즈너>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KBS 드라마는 위기다. 물론 이건 KBS만이 아니라 지상파들이 모두 처한 위기지만, 그걸 깨칠 수 있는 건 역시 보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닥터 프리즈너>의 성취가 KBS 드라마에 시사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사진:KBS)

1000회 맞은 ‘개콘’, 전유성의 조언 곱씹어야하는 이유

 

“시청자들이 재미없다고 하면 프로그램은 없어질 수밖에 없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보는 수밖에 없다.” 오는 19일 1000회를 맞는 KBS <개그콘서트>를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유성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1000회를 축하하는 자리로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개그콘서트>에 대한 기자들의 쓴소리가 쏟아져 나왔고 결국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나온 날카로운 현실인식이었다.

 

원종재 PD는 노력하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아” 제작진이나 개그맨들 모두 힘들어한다고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왜 추락하고 있는가에 대한 현실을 토로했을 뿐,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 현실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유튜브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해 웃음의 코드도 달라지고 있고, 인권의식이나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과거에 대부분의 개그코드를 차지하던 여성, 외모 비하, 가학, 피학 등등의 소재들을 사용할 수 없으며, 능력 있는 개그맨들과 연출자들의 이탈 등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제작진과 개그맨들이 그런 현실 인식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개그콘서트>를 보는 기자들을 포함한 시청자들 모두 내고 있는 한 목소리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과거 <개그콘서트>가 잘 될 때는 코너 하나하나가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가득 채워진 바 있고, 그 개그맨들도 유행어로 스타가 되는 일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 코너가 어디서 웃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특히 유튜브의 짧지만 강력한 현장형 코믹 짤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한 마디로 ‘노잼’이라고 말한다.

 

물론 실제로 최근 인권감수성이 높아지며 제약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특히 KBS라는 공영방송의 위치는 tvN <코미디 빅리그>가 상대적으로 수위 높은 개그 코드를 자유롭게 선보이면서도 별다른 논란을 맞지 않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든다. 작은 대사 하나나 캐릭터 하나에도 예민한 시청자들의 질타가 쏟아지기 일쑤다. 그러니 어떤 개그를 짜면서 재미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런 논란의 여지들을 스스로 검열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제약을 잘못됐다 보긴 어렵다. 그건 어쩌면 지금껏 잘못 해온 코미디의 코드들을 이제야 바로잡아가고 있는 과정에서 나오는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이를 뛰어넘는 부분에서 새로운 개그의 코드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지금의 <개그콘서트>는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가가 의문일 정도로 매주 분량 채우기에 급급한 느낌이 아닌가.

 

<개그콘서트>는 딸린 식구들이 많고, 그 개그맨들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네 예능의 중요한 자원들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폐지를 얘기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 방치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다면 결국 폐지될 수밖에 없다. 전유성의 말이 아프지만 직시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것.

 

매주 코너들을 준비해 내놓는 이 꽉 짜인 일정 속에서 <개그콘서트>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현재의 문제들을 제대로 직시하고 새로운 동력을 찾아낼 수 있는 휴지기를 가지는 일은 어쩌면 향후 더 오래도록 <개그콘서트>가 시즌을 거듭할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그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프로그램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유튜브 1인 미디어 시대에 무대개그 형식이 과연 지금도 어울리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인권감수성이 시대적 요구로 떠오르는 시대에 바람직한 웃음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숙고해야할 시점이다. 이런 고민과 숙고를 위한 준비과정이 지금의 <개그콘서트>에는 절실하다. 단지 1000회에 과거 레전드 코너들을 소환해 “그 때는 좋았지”하는 향수에 젖어 있다가는 진짜 고사할 수 있으니.(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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