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들 속에서 소소한 ‘동백꽃’의 놀랄만한 매력의 비밀

 

“그냥 첫 눈에 반해버렸구요? 저는 뭐 작전이니 밀당이니 어우 난 이런 거 모르겄구 그냥 유부녀만 아니시면은 올인을 하자 작심을 혔습니다.”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황용식(강하늘)의 이 대사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잘 드러낸다. 조금 모자라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의외로 그 구수한 시골스러움과 순박함이 매력으로 보이기도 하는 인물. 그는 동백(공효진)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걸 대놓고 털어놓는다. 이를 애써 거부하며 신중하지 못하다는 동백의 말에도 그의 직진은 꺾일 줄 모른다. “저는요 신중보다는 전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혀요. 긴가 민가 간만 보다가는 옹산 다이아 동백씨 놓쳐요. 기다 싶으면은 가야죠.”

 

동백은 용식의 말이 ‘돌직구’ 정도가 아닌 ‘투포환급’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노상방뇨 금지’라고 적힌 담벼락 앞에서 이런 직진 고백이라니. 하지만 부양해야할 아이가 있고 혼자 살아내야 할 일만도 만만찮은 동백에게 용식의 이런 투포환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만일 멀쩡한 총각과 사귀게 됐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동네사람들이 그잖아도 술집을 하고 있는 동백에게 던지는 편견어린 시선은 더더욱 악의적이 될 게 뻔한 일이다. 그래서 먼저 선을 긋는다. “용식씨 저 미리 찰게요.”

 

하지만 그럼에도 용식의 투포환급 구애는 단념을 모른다. 동백은 결국 그를 단념시키기 위해 핵폭탄급(?) 발언을 한다. “인생, 드라마랑 달라요 용식씨. 미혼모는 뭐 취향이 없을까봐요. 생짜 총각이 애 딸린 여자 좋다고 그러면 다 노난 거예요? 결정적으로 황용식씨가 제 스타일이 아녜요.” 동백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에 자신이 그 스타일이 되겠다는 용식에게 동백은 결정적인 한 마디를 보탠다. 동백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공유’라는 것. “공유요 공유. 저는 그 나쁜 남자가 이상형이에요. 근데 용식씨는 돈도 막 꿔주게 생겼어요. 저는 차도남을 좋아하거든요. 센스 있고 세련되고 또 까칠하고 막 튕기고 그런 사람 남자 아시죠?”

 

그 장면은 다분히 tvN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를 염두에 뒀다. 그 특유의 배경음악이 흐르면서 용식은 마치 비수가 꽂혔다는 듯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는다. “사람이 어떻게 도깨비를 이겨요?”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용식이 아니다. 돌아가려던 용식은 그러나 다시 돌아서 이렇게 말한다. “동백씨 저어기 그 개도요, 젤로 귀여운 거는 똥개여요. 본래 봄볕에 얼굴타고 가랑비에 감기 걸리는 거라구요 나중에 나 좋다고 쫓아 당기지나 마요.”

 

이 시퀀스는 <동백꽃 필 무렵>의 이번 편 부제로 붙은 ‘똥개의 전략’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용식은 공유 같은 드라마 속 판타지는 아니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늘 옆에 있어주고 지켜주는 그런 인물의 매력을 어필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물주가 가게 가득한 낙서들이 지저분하다 지적하자 대뜸 동백의 가게에 페인트칠을 해주겠다고 나서고, 그렇게 칠을 하다 발견하게 된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메시지를 보고는 동백에게 “무조건 지킬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도깨비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늘 옆에서 지키는 남자가 되겠다는 것. 그것이 ‘똥개의 전략’인 셈이다.

 

그런데 이것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같은 몇 백 억 단위의 대작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동백꽃 필 무렵> 같은 상대적으로 소소한 작품이 취하고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도시의 세련됨도 없고 부와 능력을 겸비한 차가운 매력을 드러내는 판타지적인 인물도 없다. 하지만 의외로 용식 같은 시골스러운 순박함으로 무장한 인물이 주는 매력이 적지 않다. 이른바 ‘촌므파탈’이 용식의 전략이자 이 드라마의 전략이라는 것.

 

특종을 잡으려는 언론이 찾아와 보호해주겠다며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마지막 목격자인 동백에게 공익을 위해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하자, 동백은 그것이 보호가 아닌 낙인이 될 거라며 거부한다. 하지만 자꾸만 들이대는 언론에 용식은 한 마디로 일갈한다. “사람 같잖게 보지 마셔요. 이 카멜리아 그리고 동백씨 이렇게 아무나 와서 들쑤셔대는 그런 데 아닙니다. 동백씨 이제 혼자 아니고요. 내가 사시사철 불철주야 계속 붙어 있을 거니까...” 그래도 ‘언론탄압’이니 뭐니 하는 언론에 용식은 결국 화를 낸다. “동백이 건들지 말라고 했어. 앞으로 동백이 건드리면 다 죽어. 아슈?” 그 진심이 가득한 얼굴에 동백의 마음도 살짝 움직인다.

 

동백은 살아오면서 늘 자신이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어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용식은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다. “저도요 다이아나비가 살아온대도 임수정이가 저 좋다고 덤벼도요, 동백씨랑 안 바꿔요.” 그 말에 동백은 “뭐 내가 자기건가”라고 말하며 부정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걸 숨기지 못한다. 그것이 <동백꽃 필 무렵>이 취하고 있는 ‘똥개의 전략’이다. 판타지로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 옆에는 실제 없는 도깨비 대신, 늘 옆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용식이 같은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전략이 의외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사진:KBS)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골목식당’은 득이 아닌 독이 된다

 

‘총체적 난국’을 예고하듯 갑자기 쏟아져 내린 폭우 때문에 주방으로 물이 줄줄 흘러내릴 때 튀김덮밥집 사장님은 “어떡해”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비를 흠뻑 맞아가며 가게 밖 환풍구를 살핀 건 사장님이 아니라 그 어머니였고, 옥상까지 올라가 문제를 해결한 것도 사장님의 남자친구였다. 이 장면은 이날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둔촌동편 튀김덮밥집에서 백종원의 분노 섞인 조언의 전조가 되었다.

 

폭우로 인해 물이 새던 주방의 문제는 그렇게 일단락되었지만 총체적 난국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날 점심 장사로 단체 손님이 왔는데, 갑자기 튀김기가 작동을 하지 않은 것. 주문을 잔뜩 받아놨지만 켜지지 않는 튀김기 때문에 사장님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 문제를 해결한 건 자신이 아니라 남자친구였다. 문제는 음식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손님들에게 양해를 미리 구하지 않았다는 것. 11시 45분에 찾아온 손님들은 12시 반이 다 돼서야 겨우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늦어질 거라며 사과를 했지만, 그건 양해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그 장면을 보면서 백종원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가장 큰 문제는 사장님이 전혀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점심 장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었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후 거기에 대한 고민이나 죄책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남자친구와 다시금 주방에서 시시덕거리는 모습은 백종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백종원은 “혼 좀 나야 된다”고 말했다.

 

가게를 찾아가 백종원이 그 날의 문제들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낼 때도 사장님은 침묵하고 있었다. 대신 어머니가 나서서 애써 딸을 변명해주는 모습이었다. 사장님은 늘 뒤편으로 물러나 있는 모습이었다. 점심 때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한 것도 자신이 아닌 남자친구였다. “오빠가 가서 얘기하고 와”라고 시켰던 것.

 

“뭔가 하고 싶은 거 내가 하고 뒤처리는 남이 하는 거면 뭐 하러 일을 해요? 모든 거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지. 내 힘 들여가면서 즐겨야지 진정한 거지.” 백종원은 책임을 회피하는 사장님에게 일갈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장님이 자신을 도와주는 어머니나 남자친구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였다.

 

적자가 나지 않냐는 질문에 사장님은 애써 적자는 아니라면서 “제 수입이 없는 거죠”라고 답했다. 그 말 속에는 사장님이 아예 어머니나 남자친구가 도와주는 일에 대한 보상이나 급여 개념은 빠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머니에게는 남는 돈에서 반씩 나눠가지기로 했다는 사장님의 말에 백종원은 일갈했다. “엄마는 죄졌나? 급여는 안주고? 아니 그럼 동업이예요? 엄마랑? 그럼?”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친구의 급여를 묻는 질문에 사장님은 “오빠는 줘야 되는데 이번 달은...”이라며 말을 흐렸다. 최저임금으로 잡아도 한 달에 170만 원 정도를 한 사람당 줘야 하는 게 정당한 상황. 심지어 남자친구는 전 회사에서 월급으로 370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결국 어머니와 남자친구에 대한 급여를 170만원씩 총 340만원이 나간다고 치면 백종원 말대로 적자인 게 분명했다.

 

그러면서 방송은 그간 이것저것 소리치며 시키고 통제하려 했던 사장님의 모습을 편집해 보여줬다. 정작 월급은 주지 않으면서 일을 시키기만 했던 사장님의 면면이 고스란히 비춰졌다. 아마도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장이라는 위치가 어떤 것인가를 잘 몰랐을 게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모든 걸 책임지는 위치가 바로 사장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 아닐까.

 

“가게 분위기를 위해서 으쌰 으쌰 할려구 웃어가는 거라면 내가 이 얘기를 안 해. 그게 아니니까 지금 내가 막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있고 막 아무 준비 없이 그러는 게 보이니까.. 정말로 나와서 무릎 꿇고라도 해야지. 어떻게 온 손님인데. 그게 있어야만 마음에 있는 말이 나가고 마음에 있는 서비스가 나가고, 어떻게든 이 손님을 잡겠다는 그게 안 보이니까 지금 내가 이러는 거야.”

 

사장님의 책임감 부재는 고스란히 음식에도 손님들에게도 전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백종원은 준비 안 된 자에게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로또가 아닌 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없는 사람한테 이런 골목식당에서 로또를 줬을 것 같아서 배 아파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줘도 못 먹을 거 같고 준 게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이건 독이 된다니까. 사장님 인생에 독이 돼요.”

 

지금껏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준비 안 된 식당들이 나올 때마다 어째서 저런 집을 선정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터져 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열심히 일하는 다른 식당들에게는 그 자체로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백종원은 그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로 남의 밑에서 남의 가게에서 십 몇 년 이십 몇 년 준비를 하고 정말 없는 돈을 긁어모아서 남보란 듯 좋은 가게 번듯한 가게보다도 골목 안에 들어와서 준비한 사람 많아요. 그래도 빛을 못보고 망한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에 비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아요? 준비 하나도 안하고 들어왔잖아 지금. 눈에 불을 켜고 준비해도 지금 될까 말까인데..”

 

백종원이 말한 것처럼 방송에 나간다고 해도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독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사장님이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책임감 없는 상황에서 덜컥 방송 덕분에 장사가 잘 된다고 해도 그건 결코 자신의 성공이라 말하기 어려울 게다. 결국은 그 일시적인 성과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독으로 돌아올 거라는 것. 공감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사진:SBS)

‘위대한 쇼’, 문제의식은 나쁘지 않은데 단순한 해결이 문제

 

tvN 월화드라마 <위대한 쇼>는 이른바 가족 코스프레 소동극으로 초반 시선을 잡아끌었다. 무엇보다 송승헌의 내려놓고 망가지는 모습이 웃음을 줬고, 정치쇼와 가족극을 코미디로 엮어놓은 부분이 절묘했다. 또한 드라마 초반부터 지금까지 코미디에 더해 육아문제나 미혼모와 낙태 이슈, 동네 상권 문제, 학교 집단 따돌림 문제 같은 현실 문제들을 끌어온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위대한 쇼>는 초반의 주목 이후에 지속적으로 관심이 빠져나갔다. 이것은 시청률의 지속적인 하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 회 3%(닐슨 코리아)로 기대감을 주며 시작한 드라마는 10회까지 계속 하락해 지금은 간신히 2%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이 이런 문제를 만들었을까.

 

<위대한 쇼>는 근간이 코미디 장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시트콤을 장편으로 이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매 번 시추에이션이 있고 거기서 특정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그대로 쓰이고 있다. 이 코미디의 핵심은 가족 때문에 ‘국민 패륜아’ 딱지를 붙이게 되고 정치에서도 실패한 위대한(송승헌)이 딸이라고 찾아온 한다정(노정의)과 아이들은 물론이고 한다정이 가진 아이의 아빠 최정우(혁)에 아이들의 친아빠까지 점점 많은 부양가족들을 갖게 되는 상황 그 자체다.

 

이 상황은 현실 문제들 때문에 아이 하나도 갖는 걸 꺼리는 현 세태와 맞물리며 건강한 가족극의 웃음을 준다. 결국 정치에 복귀하기 위해 가족 코스프레를 하던 위대한이 점점 가족에 동화되고 그들을 통해 만만찮은 행복을 느끼는 과정은 그래서 현실을 뒤집는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상황 속에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생각보다 너무 쉽게 해결되고 처리되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한계로 지목된다. 즉 예를 들어 육아는 결국 현실적인 돈 문제라는 만만찮은 문제의식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해결됐는지 드라마는 보여주지 않는다. 갈수록 식구는 늘어나는데 한때 선거에서 지고 대리기사 일을 하며 지내던 위대한은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걸까.

 

한다정이라는 인물을 통해 끌어온 미혼모의 문제도 드라마는 너무 쉽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임신을 한 채 학교를 다니는 걸 선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다정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임신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온라인을 통해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그런데 이 심각한 문제의 해결이 너무 단순하게 이뤄진다.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에게 다가가 자신은 다를 뿐 틀린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휴대폰을 던지면서 이제 할 얘기가 있으면 직접 하라는 말 한 마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

 

또 갑자기 나타는 아이들의 친부가 위대한에게 돈을 요구하는 그 긴박한 상황들이 전개됐지만 그 이야기도 별다른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이 이뤄지지 않은 채 넘어가 버렸다. 이렇게 꽤 심각한 현실을 담는 문제제기는 나쁜 게 아니지만, 그렇게 문제를 단순화해버리는 식의 해결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건 실제 그런 심각한 상황을 맞닥뜨린 이들에게는 비현실성 때문에 오히려 허탈감만 줄 수 있고 또 보통의 시청자들도 공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제기와 너무 쉬운 해결은 그래서 드라마가 어떤 갈등이나 위기상황이 전개될 때 만들어져야 할 긴장감을 흩트리는 요인이다. 문제가 생겨도 결국 쉽게 해결될 거라는 예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위대한 쇼>는 정치쇼라는 소재를 가져와 우리 시대의 대안적 가족의 모습을 제시한다는 꽤 괜찮은 기획의도를 갖고 있지만 그걸 풀어내는 과정이 너무 단순하게 그려짐으로써 맥 빠지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tvN)

‘아간세’, 유튜브 본방의 예고편 같았던 5분 방송

 

5분짜리 정규편성. tvN 예능 <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단 5분짜리 분량으로 정규편성을 얻었다. <삼시세끼> 산촌편이 끝나고 이어지는 <아일랜드 간 세끼>의 정확한 프로그램명은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다. 방송 분량은 짧은데 제목은 길다.

 

이렇게 길어진 제목은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말해주면서 동시에 그 성격도 드러내준다. tvN <강식당3>에서 강호동이 <신서유기 외전>을 <삼시세끼> 뒤에 매주 5분씩 붙여 내보내자는 말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신서유기6>에서 게임으로 아이슬란드 여행권을 상품으로 얻게 되면서 현실화됐다.

 

그러니 이 <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이수근이 방송 초입에 말했듯, <신서유기>, <삼시세끼>는 물론이고 <강식당> 등의 프로그램들의 색깔이 더해진 프로그램이다. 이수근과 은지원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은 <신서유기>의 형식을 가져가지만 5분이라는 분량은 이 방송의 실체가 사실상 전체 분량이 방영되는 유튜브 본방의 예고편 같은 성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시작부터 5분이라는 분량을 강조하고 5분 후에 끝난다는 그 상황 자체가 묘한 웃음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그래서 유튜브를 통해서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유튜브에 ‘채널나나나’를 개설한 나영석 PD는 방송 첫 방에 맞춰 직접 라이브 방송을 하기도 했다.

 

초보 유튜버의 어색함이 가득한 그 라이브 방송에서 나영석 PD는 지금의 방송 환경 변화에 대한 고민이 만만찮다는 걸 드러냈다. TV를 켜놓고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본방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유튜브 반응을 체크하며 이어진 라이브 방송에서 나영석 PD는 자꾸만 그 방송 속 TV의 볼륨을 높여달라는 요구에 당혹스러워했다.

 

집에서 TV를 켜놓고 유튜브 방송을 봐달라고 요청했지만 실시간으로 올라온 댓글들을 읽은 나영석 PD는 “TV가 없다”는 분들이 많다며 놀라워했다. 즉 젊은 세대들은 TV보다는 모바일이나 태블릿PC 등으로 본다는 것. 나영석 PD는 우리의 일이 이렇게 암울하다며 우리도 이쪽(유튜브)으로 가야 되는 거 아닌가 하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 라이브 방송에서 나영석 PD가 TV와 노트북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은 그래서 꽤 상징적인 풍경처럼 보였다. 그건 지금 방송 환경이 TV에서 인터넷,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 그 중간에 놓인 현역 PD의 고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초보 유튜버인 나영석 PD는 100만 구독자를 넘기면 은지원과 이수근을 ‘달나라 여행’ 시켜주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공약까지 얼떨결에 내걸기도 했다.

 

이어진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유튜브 방송은 이 인터넷 방송만이 할 수 있는 특징들을 온전히 담았다. 이를 테면 아시아나 비즈니스를 탄 은지원과 이수근의 대놓고 하는 ‘언박싱’ 방송이 그렇다. 노골적인 PPL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유튜브에서는 하나의 방송 트렌드인 ‘언박싱’으로 이들은 아시아나 항공 비즈니스 클래스의 체험을 상세하게 전해주었다.

 

최근 들어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인한 변화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예능 PD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시대의 트렌드에 가장 앞장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예능 PD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기존 방송사의 틀에 맞춘 프로그램들만 제작하고 있다가는 순식간에 바뀐 트렌드에 한참 뒤쳐질 수밖에 없고 결국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들도 시청자들의 이탈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5분짜리 예고편 같은 내용이 TV로 방영되고 사실상 본방은 유튜브에서 방영되는 <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이 역전된 미디어의 상황을 표징하는 사건처럼 보인다. 김태호 PD도 또 백종원 같은 스타 방송인도 유튜브를 통해 어떻게 하면 지금의 대중들을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대. 나영석 PD도 그 고민과 실험을 더하고 있다는 건 우리네 대중문화에서 어떤 미디어가 결국 중심을 차지하게 될 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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