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캐스팅’의 캐릭터 판타지, 스파이 액션은 덤이다

 

한국판 <미녀삼총사>처럼 보인다. 똘끼 넘치는 막강 요원 백찬미(최강희)에 싱글맘 요원 임예은(유인영) 그리고 보험아줌마로 살아가며 임무를 수행하는 황미순(김지영)이 그 삼총사. SBS 새 월화드라마 <굿캐스팅>은 <미녀삼총사>를 우리 식으로 해석했다는 게 그 인물 구성을 통해서 먼저 느껴진다.

 

이들이 앞으로 펼쳐나갈 이야기는 물론 국제적인 산업스파이이자 동료 요원들을 살해한 마이클 리를 잡기 위한 작전이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시청자들의 마음을 끄는 건 이들 캐릭터들의 면면이다. 작전 수행을 위해 교도소에 들어가 살인무기 같은 액션으로 순식간에 그 곳을 장악해버리는 백찬미가 통쾌한 걸 크러시의 매력을 보여준다면, 요원이라기보다는 보험아줌마에 가까운 황미순은 주부로서의 공감대를 끌어오며 웃음을 선사하는 인물이다. 또 현장보다는 안전한 데스크로 오래오래 버티는 게 꿈인 임예은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으로서의 면면이 시청자들을 더 공감하게 만든다.

 

즉 <굿캐스팅>은 스파이액션에 뛰어들게 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요원들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싱글맘이나 주부 같은 우리네 현실 정서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미녀삼총사>와는 궤를 달리한다. 어찌 보면 국정원 요원이긴 하지만 소외된 주변인물로 살아가는 아웃사이더들이 작전을 수행해가는 캐릭터 판타지를 이 드라마는 담으려 하고 있다.

 

<미녀삼총사>에 세 미녀를 관리하는 찰리가 있었다면 <굿캐스팅>에는 동관수(이종혁)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 식의 정서가 이 캐릭터에 들어간다. 백찬미와 사내커플이었다가 헤어진 동관수는 어딘지 팀장이긴 해도 이들 3인방에게 질질 끌려 다닐 것 같은 그런 캐릭터다. 3인방이 보여줄 통쾌하고 유쾌한 작전 과정 속에서 그들에게 짓눌리면서도 인간미를 보여줄 동관수의 코미디가 기대되는 이유다.

 

전반적으로는 코미디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드라마의 추진력은 권민석(성혁)이 마이클 리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임예은의 남자친구였고 그가 키우는 딸 소희(노하연)의 아빠였던 권민석이 사망한 그 사건현장에는 백찬미도 황미순도 있었다. 그의 죽음은 특히 당시 팀장이었던 백찬미에게 작지 않은 상처로 남았을 터였다. 그러니 마이클 리를 추격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이들 모두에게 추진력을 만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월화극으로 편성된 <굿캐스팅>은 그 편성 시점에 있어서도 운이 좋다. 동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경쟁작들이 이렇다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tvN <반의 반>은 12부작으로 조기종영을 앞두고 시청률이 1%대 밑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해있고 차기작인 <외출> 역시 2부작 단편이다. KBS <본 어게인>은 3%대 시청률에 머물며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JTBC는 드라마페스타 단편 2부작 <탁구공>을 재방송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적수가 없는 <굿캐스팅>은 첫 회부터 12.3%(닐슨 코리아)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물론 <굿캐스팅>에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전체적으로 코믹한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니 작전 과정에 있어서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들은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면이 있다. 이 드라마는 코미디가 맞지만 그 코미디가 진지한 작전 상황을 뒤집는 데서 나온다는 걸 염두에 두면 작전 자체가 갖는 긴박감과 개연성 또한 중요하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약점들을 보완해나간다면, <굿캐스팅>은 정서적으로나 캐스팅으로나 편성에 있어서나 괜찮은 결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사진:SBS)

‘화양연화’, 청춘은 유지태와 이보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찾았다. 윤지수. 내가 더 일찍 찾았어야 됐는데 너무 늦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기차역. 막차가 끊겨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해하는 윤지수(이보영)에게 한재현(유지태)은 그렇게 말했다. 윤지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 항상 가슴 한 편에 두고 있던 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너무나 긴 시간이 흘렀고 그들은 그 시간 동안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윤지수는 도망치듯 역사를 빠져나오지만, 역시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다. 그런 그에게 다시 한재현이 다가와 말한다. “기억 나는 거 별로 없는 선배라도 길잡이로는 쓸 만 할 거야.” 소리도 없이 쏟아지는 눈 길 위를 한재현이 앞서 걸아가고 윤지수는 그 시간의 거리만큼 떨어져 그를 따라 걷는다. 발자국을 따라서 잘 쫓아오라는 한재현의 말에 윤지수는 대학시절 앞서 걸어간 재현의 발자국을 밟고 따라 걷던 때를 떠올린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치열한 삶이 자신을 마모시키기 전 풋풋하고 설렜으며 순수했던 시절.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가 보여주는 이 눈 내리는 날 재회한 윤지수와 한재현의 만남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시적이고 은유적인 장면으로 보여준다. 대학 시절 눈처럼 벚꽃이 날리던 봄날 윤지수를 찾아냈던 한재현과 달리, 그들은 쏟아지는 눈 속에서 차도 끊겨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재회한다. 과거의 만남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던 밝은 설렘의 순간이었다면, 현재의 만남은 막막한 길 위에서 어디도 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순간이다.

 

그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윤지수와 한재현은 모두 감옥에 갔다 왔다. 하지만 그들이 감옥에 간 이유는 너무나 다르다. 윤지수는 유족들을 모욕한 이들에게 어떤 소신있는 행동을 보인 일로 감옥에 갔고, 한재현은 그의 장인이자 회장인 장산(문성근) 대신 감옥에 갔다 왔다. 윤지수는 노동자들의 편에서 여전히 길거리 투쟁을 하고 있지만, 한재현은 장산의 지시대로 사측이 되어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등 손에 피를 대신 묻히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현실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겪는 심경의 고통은 비슷해 보인다. 두 사람은 모두 결혼해 또래 아이를 둔 부모지만, 윤지수는 이혼해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고, 한재현은 마치 자신을 사냥개처럼 부리려는 장인과 그런 위세 그대로 마음대로 하려는 아내 장서경(박시연)과 불화를 겪고 있다. 윤지수가 현실에 치여 힘겨워하는 반면, 한재현은 자신의 부유한 삶에 별다른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삶이 꽃이 되는 순간’. 즉 ‘화양연화’는 이미 지나간 청춘의 시절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화양연화>는 힘겨운 현재와 꽃처럼 피어났던 청춘 시절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책방에서 그리워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그러다 만나기만 해도 행복했던 그 시절. 그런 시절은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꽤 오래도록 우리네 삶에는 차디 찬 눈들이 쌓였고 그래서 그 때의 이야기들을 덮어버렸다.

 

윤지수와 한재현은 이제 다시 만나 그 눈 위를 걸어간다. 그 장면은 아마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화양연화를 추억하게 했을 게다. 너무나 멀리 와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추억으로만 남겨 뒀던 저마다의 화양연화를. <화양연화>는 바로 이 지점에 슬며시 발자국을 찍어 놓는다. “발자국 따라서 잘 쫓아와.” 한재현이 던지는 그 말이 윤지수의 가슴에 발자국을 찍어 놓은 것처럼.

 

과연 이들의 청춘은 그들이 현재 처한 현실을 구원해낼 수 있을까. <화양연화>는 이제 좀 먼 길을 걸어와 다시는 그 때로 갈 수 없다 절망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그 때의 기억들이 현실의 구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를 묻는 드라마다. 과연 윤지수는 한재현을 통해 현재의 그 불면의 삶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한재현은 윤지수를 통해 현재의 그 사냥개의 삶을 벗어날 수 있을까. 두 사람이 현재에 복원해내는 청춘의 화양연화는 어쩌면 이들을 구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보는 정통 멜로의 설렘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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