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1958

 

‘낭만닥터 김사부’ 이전에 낭만 형사 박반장이 있었다. 1971년부터 18년 간 방영되며 최불암을 국민반장으로 만들었던 레전드 수사물 ‘수사반장’의 주인공 박영한이 바로 그다. 경찰 재직 기간 동안 1300여명의 범죄자를 체포해 ‘수사의 전설’이자 ‘포도왕’으로 불렸던 실존인물 고 최중락 총경을 모델로 한 박영한 형사는 당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그 인간적인 면모가 여전한 여운으로 남을만큼 낭만적이고 휴머니즘 가득한 형사였다. 오죽하면 ‘수사반장’이 수사극이 아니라 휴먼드라마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지금이야 범죄자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면 서사를 제공한다며 비난받기 마련이지만, 당대에는 극악범죄보다 생계형범죄가 많아 때로는 그 눈물겨운 사연을 들어주는 박반장의 따뜻함이 오히려 도드라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종영한 지 35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다시 돌아온 MBC ‘수사반장 1958’의 박영한은 어떨까. 먼저 이 작품은 ‘수사반장’ 박반장의 젊은 시절로 돌아간 프리퀄이다. 당시 드라마 속 박반장의 나이가 40세였기 때문에(당시 최불암은 30대 초반이었다), 훗날 국민반장으로 성장할 싹으로서의 20대 시절이었던 1958년을 시대배경으로 가져왔다. 여러모로 이제훈이 이어받는 박영한이라는 인물에 걸맞는 나이대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이 1958년은 전후 이승만 정권 자유당 시절이라는 시대적 어둠이 깃든 시기다. 60년에 3.15 부정선거가 있었고 4.19 혁명이 일어났으며 61년 5.16 쿠데타로 벌어진 격동기이기도 하다. 

 

극중 이미 등장한 것처럼 자유당을 비호하는 정치깡패 이정재의 존재는, 이 시대가 가진 치안부재와 부정부패가 일상이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장 상인들을 폭력으로 제압해 돈을 뜯어가는 건 물론이고, 경찰 조직부터 정계까지 손을 잡음으로써 범죄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풀려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나아가 아예 몇몇 부패 경찰들은 저들과 결탁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자행된다. 그러니 전국에서 소도둑을 가장 많이 잡은, 황천에서 올라온 시골뜨기 형사 박영한이 서울 종남경찰서로 올라와 ‘꼴통 형사’가 된 건 그저 본분을 지키는 일 자체가 특별해진 부패한 현실 때문이다. 도무지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 깡패들을 뱀을 풀어 제압하기도 하고, 미군 부대의 물자를 빼돌리는 조폭들과 협력하는 경찰들에 반기를 드는 등 박영한이 보여주는 모습은 현실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낭만’ 그 자체다. 

 

굳이 무거운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다소 낭만적인 방식을 택한 건 보다 폭넓은 대중성을 염두에 두겠다는 포석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더 살풍경한 무거운 현실이었겠지만, 드라마는 너무 무겁지 않은 활극을 선택했다. 박영한을 중심으로 그를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유대천 반장(최덕문)에 종남서의 미친 개로 불리는 김상순(이동휘), 쌀집 일꾼에서 종남서의 불곰으로 일하게 된 조경환(최우성) 그리고 유학을 준비하다 경찰의 꿈을 선택한 종남서 제갈량 서호정(윤현수)이 팀으로 뭉쳤다. 이들은 유비, 관우, 장비에 제갈량을 더한 삼국지의 영웅들처럼 이제 돈으로 권력마저 등에 업은 범죄와 맞서는 활극 수사 판타지를 그려낼 참이다. 

 

1958년이라는 복고적 감성이 허용하는 낭만은, ‘수사반장 1958’이 현재의 시청자들에게도 어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갈수록 살벌해지고 지능화되는 범죄 속에서 어딘가 무력해보이기도 하고 때론 신뢰할 수 없게된 공권력의 결핍을 1958년의 꼴통 형사들이 보여주는 낭만적인 활약이 채워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깡패와 부패경찰이 결탁하기도 했던 당대 실제 현실의 암담함 속에서 그들과 맞서는 박영한 팀의 대결은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현재에도 작지 않은 울림을 전한다. 

 

리메이크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 원작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원작의 아우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동시에 원작과 비교된다는 점이 단점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불암으로 드라마의 문을 열어 원작에 대한 예우를 담으면서도, 1958년이라는 새로운 시점으로 되돌아가 젊은 시절의 박영한이 그려나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허용해놓은 건 ‘수사반장 1958’의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이로써 중장년 세대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글:일간스포츠 사진:MBC)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냐?” 허명행 ‘범죄도시4’

범죄도시4

개봉 첫 날 82만 명. 5일째에 4백만 돌파. ‘범죄도시4’는 보통의 영화라면 상상하기 힘든 성적으로 문을 열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극장 관객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상황에 거둔 성적인지라 그 성적은 더욱 놀랍다. 5월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날 같은 연휴가 대목으로 이어질 걸 기대한다며 벌써부터 천만이 보인다는 섣부른 이야기까지 나온다. 

 

벌써 4편이나 나왔으니 더 할 게 남았을까 싶지만 마동석은 이 시리즈를 8편까지 이미 기획해놨다고 한다. 그럼 4편은 과연 새로울까. 사실 ‘범죄도시’는 첫 회가 새로웠고 그 후로는 크게 다를 바 없는 서사의 반복에 가깝다. 마석도라는 엄청난 괴력을 가진 형사가 극강의 빌런들을 때려잡는 이야기.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범죄도시’는 이토록 연달아 성공을 거뒀을까.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냐?” ‘범죄도시4’에서 완력으로 떼버린 철창 앞에서 마약범이 “왜 철창이 떨어져 있지?”하고 의아해할 때 마석도가 툭 던지는 이 말은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해준다. 극악한 범죄자들을 완력으로 시원하게 제압하는 마석도라는 캐릭터의 판타지가 그것이다. 무식하지만 약자를 위하고 빌런 앞에서는 무자비한 독보적인 캐릭터. 관객들은 곰같은 덩치에 걸맞는 웃음과 액션의 핵펀치를 날리는 이 서민영웅 앞에서 간만에 시원해진다. 

 

하지만 잇따른 흥행의 이유에는 천만 관객 영화 같은 엄청난 숫자가 주는 막연한 기대도 한 몫을 차지한다. 그렇게 많이 봤을 때는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영화를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볼만한 영화를 선택해 수치가 올라가는 게 아니고, 높은 수치가 볼만한 영화를 만드는 전도된 흐름이랄까. 화려한 숫자들이 압도하는 세상 속에서 숫자 너머의 진가를 보는 눈이 더욱 필요해졌다.(글:동아일보, 사진:영화'범죄도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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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산다’부터 ‘전현무계획’까지 가장 방송을 많이 하는 예능인

전현무계획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예능인은 누구일까. 유재석도 신동엽도 아니다. 바로 전현무다. 그는 현재 고정출연하는 프로그램만 무려 21편이다. 이게 가능한 건 그가 감당하는 프로그램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그는 ‘히든싱어’나 ‘팬텀싱어’, ‘트로트의 민족’ 같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맛깔나게 진행하는 MC이면서,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의 메인 출연자다. ‘강심장VS’나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웃음과 재미에 특화된 프로그램에서도 특유의 깐족과 재치를 자랑하지만, ‘톡파원 25시’나 ‘성적을 부탁해:티처스’,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진행 능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 예능가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하면 몇 개 중 하나는 전현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그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특유의 이력 때문이다. 흔히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이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하듯 그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놀라운 추진력을 보여줬다. 손범수를 롤모델로 삼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꿈을 일찍이 갖게 된 그는 그가 다니는 연세대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선배 손범수가 했던 것처럼 대학방송국(YBS)에서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 조선일보 공채로 입사했지만 1주일만에 그만두고 YTN에 들어가 1년 간 앵커로 활동했고 2006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들어갔다. 결국 손범수처럼 되겠다는 꿈을 끝없는 도전 끝에 이루게 된 셈이다. 기자부터 앵커, 아나운서를 모두 섭렵한 이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향후 그가 정보나 지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특출난 진행능력을 선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나운서가 된 후 그는 그 직종의 역할이 방송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뉴스 앵커가 되려는 거라면 모를까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의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아나운서들의 자리를 연예인들이 점점 차지하기 시작했고, 프로그램을 여러 개 해도 같이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수입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작은 출연료(방송사에 소속된 직장인이라 당연한 일이지만)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벗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려는 아나운서들이 생겨났고 그 중에는 연예인들처럼 교양은 물론이고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진출하는 이른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들이 탄생했다.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프리 선언을 한 김성주는 그 성공사례가 됐다. 특유의 스포츠 진행 능력이, 대결과 결과발표가 이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데서 유용한 능력이 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전현무는 KBS 아나운서 시절부터 차분히 아나테이너로의 전향을 준비한다. 마침 ‘비타민’이나 ‘스타골든벨’ 같은 교양과 맞물린 예능프로그램들이 나오던 시절에 그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을 전담하다시피하며 자신의 이력을 쌓는다. 그러면서 때때로 아나운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촐싹대는 이른바 ‘깝’을 보여줘 그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방식으로 오히려 큰 웃음을 준다. 그리고 2012년에 드디어 프리선언을 하고 KBS를 퇴사한 후에는 본격적인 예능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나운서라면 피해야 할 비호감, 밉상 캐릭터를 선보이면서 초반에는 팬과 더불어 많은 안티팬도 생겼지만 차츰 캐릭터가 정착되고 적당하게 선을 넘는 방법들을 찾아나가면서 전무후무한 방송인이자 예능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경연 프로그램의 진행 능력을 인정받았고,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토크쇼는 물론이고 리얼 버라이어티, 관찰 예능까지 섭렵한 예능인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의 ‘트민남’ 캐릭터가 가장 도드라진 건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프로그램을 시대의 조류에 맞는 형태로 이끌어낸 점이다. ‘나 혼자 산다’는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1인가구로 들어온 시대에 혼자 사는 삶을 관찰카메라 방식으로 들여다 본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가 갖는 명분의 이면에는, 연예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겠다는 리얼리티쇼의 태동이 있었다. 즉 리얼리티쇼를 하기 위한 명분으로서 1인 라이프를 앞세웠던 것. 하지만 점차 관찰카메라로 불리는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명분보다 중요해진 건 더 리얼한 내용들이었다. 노홍철이 하차하고 시청률이 떨어지는 추락기를 거치면서 일찍부터 합류해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전현무를 중심으로 기안84, 박나래, 이시언 같은 인물들이 영입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고정 출연자들을 중심으로 세우고 간간히 새로운 인물들을 소개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고정 출연자들 간의 케미가 리얼하게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담기게 됐다. 리얼리티쇼에 캐릭터쇼가 더해진 느낌이랄까. 이 두 가지 형식 모두에 최적화된 전현무는 여러 위기 국면을 돌파하며 최근 다시 ‘나 혼자 산다’의 부흥기를 만든 장본인이 됐다. 트민남, 무스키아, 무든램지, 프레디 무큐리 같은 캐릭터들을 탄생시켰고, 박나래, 이장우와 함께 이른바 ‘팜유라인’을 만들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먹방여행을 다니는 모습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최근 그는 여행유튜버인 곽튜브와 함께 무작정 길을 떠나 맛을 즐기는 ‘전현무계획’에 출연했다. ‘길바닥 먹큐멘터리’라는 프로그램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무계획’과 ‘계획’을 넘나드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 예능의 영향을 받아 대본대로 움직이는 계획적인 프로그램들보다는 계획 없이 돌발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프로그램들이 더 주목받는 상황이다. ‘전현무계획’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예능 트렌드에 발맞추면서 동시에 기존 예능의 방식(계획이 있는)을 오가는 형태로 기획되었다. 그래서 ‘전현 무계획’을 바탕으로 길거리에서 아무 곳이나 무작장 찾아들어가 먹방을 선보이며 사람을 만나다가, ‘전현무 계획’으로 미리 계획한 누군가를 특정 장소에서 만나는 모습 또한 보여준다. 

 

‘전현무계획’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은 여러모로 아나운서에서 예능인으로, 캐릭터쇼에서 관찰예능으로 뻗어나가는 전현무의 강점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 같다. 계획을 하면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끈질긴 추진력을 보여주면서도, 때론 계획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유연함을 갖는 일.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분들이라면, 계획과 무계획을 넘나드는 전현무의 행보가 시사하는 점이 분명 있을 게다. (글:국방일보, 사진: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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