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킴 콘서트 ‘로이 노트 Roy Note’에서 발견한 로이킴의 진심
“화려한 불빛들 그리고 바쁜 일상들 뒤에 숨겨진 초라한 너의 뒷모습과/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너의 무거운 어깨를 위해/ 너의 발걸음이 들릴 때 웃으며 마중을 나가는 게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선물이었지-” 로이킴이 ‘Home’을 부를 때 그 가사 한 줄 한 줄이 스크린에 판서처럼 써진다. 부드러운 음색이 귓가에서 가슴까지 소리의 통로를 내며 들려오고, 가사가 머릿 속에 그림 같은 풍경들을 끄집어내자 그 공명에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먹먹해진다. 음률도 음률이지만, 스토리가 그려지는 가사와 어우러지는 무대가 주는 애틋함이라니. 2023 로이킴 콘서트 ‘로이 노트 Roy Note’의 한 풍경이다.
‘로이 노트’ 왜 콘서트의 콘셉트를 노트로 가져왔을까 싶지만, 로이킴과 노트는 잘 어울린다. 로이킴을 말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 ‘싱어 송 라이터’이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그가 직접 쓴 가사와 어우러져 우리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Home’을 부르기 전, 그 곡에 대해 로이킴이 초등학교 시절 함께 했던 반려견 싼쵸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소개해준 이야기는 그 가사들을 하나하나 더 곱씹게 만든다. 퇴근길을 재촉하는 곡으로 잘 알려진 이 노래는 그래서 지친 나를 기다려주는 집과 하염없이 보호자를 기다리는 반려견의 그림을 겹쳐 놓는다.
노트가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처럼 로이킴의 노래는 디지털화되어 더 빨리 움직이는 시대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매력이 있다. ‘Love Love Love’나 ‘봄봄봄’ 같은 컨츄리와 포크풍의 단순하지만 흥겨운 리듬에 맞춰진 곡은 저 클럽과는 거리가 먼 목가적인 정경을 떠올리게 만들고, ‘북두칠성’ 같은 오케스트라가 어울리는 곡을 듣다보면 어두운 밤길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쏟아지는 별이 보이는 듯하다.
살갗에서 울려대고 눈과 귀를 한없이 자극하는 노래들 속에서 한껏 피로해지고 때론 방어적인 우리를 발견하게 될 때, 로이킴의 노래는 쌩쌩 부는 바람이 아닌 따뜻하게 내리 쬐는 햇살처럼 우리를 무장해제시켜 놓는다. 고음을 애써 진성으로 불러 자신의 목소리를 강조하기보다는, 가성으로 불러 바깥의 빈 공간들로 나머지를 넉넉히 채워주는 특유의 창법은 실크 같은 부드러움으로 아무런 저항감없이 심장까지 파고든다.
견디는 세상이다. 버텨야 하는 삶이다. 그래서 이른바 ‘존버’의 시대라고들 한다. 그런데 견디고 버티는 힘은 자신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넉넉히 받아들이면서 ‘타격감 제로’로 만드는 거라는 걸 로이킴은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똑같이 힘든 그 삶들을 꺼내놓고 함께 공감하면서 때론 ‘얼마나 아팠니’ 하고 묻고 그럼에도 ‘괜찮을 거야’라고 위로해준다.
아티스트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며 그 세상의 영향을 받아 작품을 내놓지만, 동시에 아티스트의 작품이 세상에 영향을 미쳐 작더라도 세상을 바꿔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로이 노트’ 콘서트 커튼콜 엔딩 곡에서 최근 앨범 ‘그리고’의 타이틀곡인 ‘괜찮을거야’가 남긴 여운은 깊고도 길었다. ‘괜찮을거야’라는 가사를 거의 50번은 넘게 반복해서 외치는 로이킴의 외침은 마치 주문처럼 콘서트장을 빠져나온 관객들이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그건 힘든 현실을 잘 버텨낸 우리들에게 로이킴이 건네는 위로면서, 또 잘 살아내고 있는 우리가 스스로를 토닥이는 다짐 같은 것이었으니.(사진:웨이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