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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어려지고, 빨라지는 스타탄생

 

저스틴 비버의 'Baby'로 직접 짠 안무와 랩을 새롭게 시도한 방예담의 오디션 영상은 방송 직후 15시간만에 100만뷰를 돌파했다. 방예담과 같은 조에서 경쟁했던 악동뮤지션은 안타깝게도 조 2위에 머물러 생방송 진출을 단번에 이루지 못했지만, 이것은 역시 과정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오디션 무대에서 발표(?)한 음원들이 모두 차트 상위에 오른 악동뮤지션은 이미 오디션 참가자라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상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음악적 세계와 스타일을 갖춘 악동뮤지션에게 혹평이 나온 것은 그 기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 기대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K팝스타2'(사진출처:SBS)

사실 지금까지 탈락하지 않고 올라온 <K팝스타>의 참가자들은 이미 어느 정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만들어진 상태다. 이 오디션을 통해 새롭게 결성된 라쿤보이즈, 피겨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화제가 되었던 신지훈, 독특한 감성과 필로 심사위원들을 그 매력에 빠뜨린 최예근 같은 참가자들 역시 그 영상이 100만뷰를 돌파한 바 있다. <K팝스타>라는 방송이 가진 힘과 거기에 얹어진 어린 참가자들의 놀라운 음악적 가능성, 그리고 여기에 기획사 3사의 트레이닝이 삼박자를 이루어 만들어낸 사건이다.

 

어쩌면 이 삼박자란 기존 기획사들이 가수들을 발굴하고 스타를 만들어내는 그 익숙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독특한 음악적 가능성을 갖춘 예비 가수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게 트레이닝을 시킨 후 데뷔와 함께 방송의 힘을 덧붙이는 것. 하지만 이건 엄연히 <K팝스타>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지 신인가수의 데뷔무대가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웬만한 신인가수들보다 더 빨리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오디션 무대는 그 자체로 신인들의 데뷔무대가 되고 있는 인상이다.

 

과거 <슈퍼스타K>가 처음으로 서인국을 우승자로 뽑아놓고도 그가 가수로서 대중들에게 인지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슈퍼스타K2>에서 그 어느 때보다 대중들을 열광시켰던 허각과 존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다고 해도 그 후 음악활동은 다시 원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획사에 소속되고 트레이닝 받고 음반을 내고... <슈퍼스타K2>에서 화제가 되었지만 지금껏 이렇다 할 음악활동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강승윤은 오디션과 실제 가요데뷔 사이에 놓여진 간극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박명수가 <무한도전>에서 작곡한 ‘강북멋쟁이’가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는 현재 방송의 힘을 극대화하기 마련인 오디션 프로그램 그 자체가 데뷔무대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오디션의 과정 그 자체가 신곡 발표의 장이 되고 있는 악동뮤지션은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줬고, 오디션을 통해 그 짧은 기간에도 놀라운 음악적 성장을 보여준 방예담 역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새로운 변화다.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은 가능성을 발굴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 자체가 가수인 무대가 연출되고 있다는 것.

 

<K팝스타>가 스웨그(Swag)를 외칠 때부터 이런 변화는 감지되었다. 독특한 개성과 끼라는 것은 이제 다듬어지지 않았다 하더라고 그 자체가 가수로서의 존재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대중들이 ‘만들어진 스타’보다는 본래 그가 가진 것으로 ‘이미 스타’인 이들을 더 발견하고 싶은 욕망이 들어 있다. <K팝스타>는 만들기보다는 발견하려고 했고, 그 발견은 이제 그 자체로 가수 데뷔와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다. 오디션은 따라서 그 자체로 데뷔무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 유리해진 건 기성 가요계에 ‘손이 타지 않은’ 끼와 개성의 소유자들이다. 따라서 악동뮤지션이나 방예담처럼 주목받는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것은 바로 그 트레이닝이라는 인위적 손길을 거의 거치지 않은 개성 덩어리들을 거기서 만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만이 갖고 있는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주고 기획사 3사는 그 개성을 어떤 틀에 넣기보다는 그 자체로 극대화시키고 살려내는 작업을 해주며 방송사는 그것을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의 영상으로 보여준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 점점 더 어려지고, 또 그들의 데뷔 과정이 점점 더 빨라지는 건 이제 오디션이라는 형식이 대중들에게 이미 익숙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들은 이제 결과의 우승자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승자가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과정에서 자신들의 감성을 건드린 누군가를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노래가 좋다면 기꺼이 음원을 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버스커버스커는 작년 한 해 가요계의 파란을 일으킨 인물들이지만, 정작 <슈퍼스타K3>에서는 톱10에도 들지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물론 그는 2위를 차지했지만).

 

결과가 아닌 과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변화시키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하나의 데뷔무대가 되어가고 있다. 방송이 만들어내는 서바이벌 경쟁의 강한 스토리텔링 위에 꾸며지지 않았지만 그 자체가 매력인 친구들이 매 회 등장해 노래를 발표한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조금씩 만들어낸 변화지만 <K팝스타2>는 그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이제 기획사들이 발굴해 트레이닝시켜 방송에 내보내는 과정은 너무 구식이 되어버렸다. 이제 오디션은 기획사가 방송사와 함께 그 과정을 통해 트레이닝하고 방송에 데뷔시키는 새로운 장이 되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대중의 시대로 접어든 음악, 이제 주인은 대중이다

 

“방송사의 프로그램 인지도를 앞세워 음원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것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국내 음원시장의 독과점을 발생시켜 제작자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고 내수시장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으며 장르의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와 한류의 잠재적 성장 발전에도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크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단법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이하 연제협)가 최근 음원차트를 장악하고 있는 <무한도전> 음원에 대해 내놓은 성명이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한 논리다.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활용해 음원을 내놓으면 그것이 기존 음반 제작자들이 내놓는 음원들과 비교해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제작자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내수시장을 교란하게 되며 또 방송 스토리텔링과 연관된 특정 장르의 음원들만 쏟아져 나와 다양성을 해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류의 성장에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논리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이 논리가 정당하려면 지금껏 기획사들은 방송의 힘을 빌어 자신들의 음원을 홍보하거나 소속 가수들을 방송 프로그램에 내보내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 활동만 해왔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그들 역시 방송의 힘을 활용해 음원 수익을 극대화하려 노력해오지 않았나. 지금껏 우리네 음원시장이란 몇몇 기획사들과 방송사 간의 담합에 가까운 관계 속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 음원시장의 독과점은 이미 몇몇 대형 기획사들과 방송사의 밀월관계 속에서 유지되어 왔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르의 다양성? 당연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연말특집으로 기획된 쇼 프로그램에서 몇몇 아이돌 그룹들이 타 그룹의 노래를 콜라보레이션하며 불렀는데 그다지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는 웃지 못할 뼈있는 농담이 있듯이, 늘 비슷비슷한 코드와 춤의 반복이 있었을 뿐이다. 결국 연제협의 이 얘기는 무언가 대단한 대의를 갖고 얘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연제협의 논리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비판이 <무한도전>을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품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연제협의 논리 속에 ‘대중’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대중음악이 아닌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대중들의 선택은 그 자체로 옳을 수밖에 없다. 음악의 퀄리티를 얘기하지만 퀄리티가 높다고 해서 대중들이 반드시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것은 전문가들의 오만이다. 도대체 음악의 퀄리티를 순위 매길 수 있는 기준이란 것이 어떻게 존재한단 말인가.

 

방송사가 늘 비슷비슷한 음악만 음원차트에 올라오던 것을 교란(?)한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방송사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내놓는 음원들이 그렇다. <나는 가수다>가 그랬고, <슈퍼스타K>가 그랬으며, 지금도 <K팝스타>나 <위대한 탄생>은 계속해서 새로운 음원들을 차트에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음원들은 과연 ‘교란’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기존 가요계에 악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중들이 이들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했던 것은 매번 판에 박은 듯이 찍혀져 나오는 기획사 음악들에 지치고 식상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엄청난 가창력의 가수들을 복원해냈고 ‘듣는 음악’을 되살려냈다. <슈퍼스타K>나 <K팝스타>는 기획사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직은 미완의 보석들을 대중들과 함께 찾아냄으로써 진정한 ‘대중가수’의 탄생을 가능케 했고 음악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했다. 버스커버스커 같은 밴드를 어떻게 기존 기획사가 발굴해낼 수 있을 것인가. 발굴했다 해도 기존 트렌드에 맞춰내느라 본래 색깔을 다 지워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음악의 다양성 운운하거나, 음악의 퀄리티를 운운하기 전에 가슴에 먼저 손을 얹을 일이다. 다양성과 퀄리티를 떨어뜨린 것은 오히려 기존 기획사들일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한류와 K팝을 만든 장본인들이 누구냐는 식의 질문을 던질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시 그 질문을 되돌려보자. 과연 한류와 K팝을 만든 장본인들은 진정으로 몇몇 기획사들과 거기 소속된 가수들일까. 아니다. 그들 이전에 대중이 있었다. 우리의 한류를 만든 것은 그것을 소비해주고 때로는 꼼꼼한 비판과 애정어린 시선으로 꾸준히 관심을 가져준 대중들이다.

 

그리고 바야흐로 그 대중들이 생산된 것을 그저 소비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스스로 생산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누구나 카메라로 찍고 편집하고 올릴 수 있는 미디어 변화가 영상의 대중화 시대를 만들었듯이, 이제는 누구나 프로그램 몇 개를 받아 간단하게 작곡을 할 수 있는 음악의 대중화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이제 음악을 즐기는데 있어서 전문가와 일반인의 경계는 그만큼 얇아졌다. 문화의 일상화 경향은 대중의 시대가 보여주는 가장 특징적인 현상이다. 당연히 연제협 같은 기득권을 누리던 전문가 집단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번 박명수가 만든 일련의 곡들은 전문가가 같이 하지 않았던 순수 초보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불안감을 더 증폭시킨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의 시대는 수직적 사회 체계 속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그들은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일종의 필터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나 문화에 있어서 순위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과거 1등 짜리 곡이 음악적 성취도에 있어서도 1등이라고(사실 이런 순위 자체가 어렵다)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저 수직적 사회 체계에 대한 대중들의 수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누구나 작곡을 하고 싶으면 간단한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컴퓨터만 갖고도(심지어 스마트폰으로도) 곡 하나쯤은 뚝딱 만들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니 순위 같은 수직적 개념은 무의미해진다. 다만 모든 것이 수평적으로 나열되고 그것이 다양성의 가치로 평가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번 <무한도전> 음원이 음원차트 상위에 랭크되면서 생겨난 논란과 잡음은 이미 접어든 음악의 대중화 시대로 인해 수직적 차트의 개념이 무의미해져 가는 시대의 징후처럼 보인다. 이미 많은 대중들은 음원차트 1위를 그 곡의 가치 순위로 바라보진 않는다. 100위의 곡이 나열되어 있다면 그저 다양한 100곡이 있을 뿐이다. 그 중에 일 년에 한두 번 올라오는 <무한도전>의 음원이 있은들 무슨 큰 문제일까. 제발 이른바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은, 대중들의 음악을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을 이번 기회에 다시 보길 바란다. 대중음악은 결국 대중들의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방송콘텐츠의 힘과 아티스트에 대한 주목

 

방송콘텐츠의 힘이 갈수록 커져간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음원차트다. <무한도전>에서 방영된 ‘박명수의 어떤가요’에서 정형돈이 부른 ‘강북멋쟁이’가 1년2개월만에 소녀시대가 새로 발표한 신곡 ‘I got a boy'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고, 유재석이 부른 ‘메뚜기 월드’는 5위, 길성준이 부른 ‘엄마를 닮았네’는 10위에 각각 올랐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를 두고 <무한도전>이 음원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저 이벤트로 만들어진 음악이 1년여를 준비해서 내 논 음반을 무색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한 기획사들의 허탈감이 묻어나는 얘기다. 물론 너무 오버할 필요는 없다. 그저 박명수의 꿈에 대한 도전을 통해 그 도전의 가치를 담으려는 기획의도가 있었을 뿐이다. 수익 전부를 좋은 일에 쓰겠다는 <무한도전>의 선의를 굳이 왜곡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번 논란이 보여주고 있는 가요계의 달라진 환경과 그 환경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방송콘텐츠의 힘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강북멋쟁이’의 음악적 가치에 대한 논란에 갑작스레 등장한 소녀시대가 내놓은 ‘I got a boy'에 대한 비교에는 현 아이돌 시장의 위기감이 사뭇 느껴진다. 달라진 대중들의 취향 속에서 아이돌 그룹은 점점 힘든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가요를 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이제 가수 개개인의 아티스틱한 면모를 찾게 되었다. 작년 가요계에서 주목받은 버스커버스커와 싸이는 바로 그 대중들의 달라진 취향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었다. 대중들은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져 보이는 아이돌 그룹에서 아티스트적인 면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아티스트적인 면모란 차별화된 음악성, 독특한 목소리 혹은 창법의 개성, 음악에 분위기를 부여하는 스타일 등이 모두 겹쳐져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면모는 개개인을 자세히 바라볼 때 발견될 수 있다. 그룹은 그 자체로 이 발견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뿐이다.

 

물론 대중의 취향이라는 것이 언제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지만 바로 이런 음악가적인 면모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기획사들이 지금껏 가수들과 음악을 만들어왔다면, 이제는 발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작년 YG가 우연히 발견한 싸이 열풍은 이제 앞으로 기획사들의 변화를 만들어낼 공산이 크다. 심지어 아이돌에게서도 아티스트적인 면을 요구하는 현 상황에서 기획사가 기존처럼 가수들을 퍼포먼서에 머물게 하는 건 자칫 시대착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K팝스타2>에서 YG의 양현석 대표는 쏟아져 나오는 아이돌의 피로감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K팝스타2>가 발굴한 악동뮤지션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에서 양현석이 악동뮤지션을 캐스팅하면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악동뮤지션은 아무것도 가르칠 게 없다. 우리는 연습실과 밥만 제공하겠다. 자작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만 달라.” 이 말은 만들기보다는 이미 본인들이 갖고 있는 개성과 끼와 음악성을 그저 극대화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겠다는 얘기다. 양현석은 악동뮤지션을 지금 대중들이 원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요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본 것이다.

 

<K팝스타2>가 발굴한 악동뮤지션이 오디션 무대에서 부른 곡들(‘다리 꼬지마’와 ‘매력 있어’)은 일찌감치 음원시장 1위를 차지함으로써 현 대중들의 달라진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거기에는 자작곡의 매력으로 대중들을 움직이는 아티스트가 있었고 그것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방송 콘텐츠의 힘이 있었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만든 일련의 곡들의 가치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이 곡들이 지금의 달라진 대중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면은 분명히 있다고 여겨진다. 어쨌든 그것이 박명수와 <무한도전> 멤버들이 함께 만든 곡이라는 점이고(개성은 분명히 있다) 그 곡이 <무한도전>이라는 엄청난 파워를 가진 방송 콘텐츠로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박명수의 곡들과 소녀시대가 발표한 신곡의 퀄리티를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번 ‘어떤 가요’에 나온 곡들은 이전 <무한도전>이 해왔던 일련의 가요제 곡들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전의 곡들은 전문가들이 붙어서 함께 만든 곡들이라 노래의 퀄리티가 분명 있었지만 이번 곡은 어쨌든 초보 작곡가의 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원차트의 ‘강북멋쟁이’와 ‘I got a boy'의 순위를 질적인 가치 차이로 보는 건 넌센스다. 다만 이 차트의 순위가 말해주는 건 질적 차이가 아니라 작금의 달라지고 있는 대중들의 취향이다. 따라서 이 순위를 가지고 단순 비교해 굳이 기획사에서 위기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차트가 말해주고 있는 대중들의 취향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가요계는 만들던 시대에서 발견하는 시대로, 또 음원만큼 다양한 스토리 콘텐츠가 중요해진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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