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플루언서’가 꺼내 보여준 인플루언서들의 민낯

최근 넷플릭스에서 흥미로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내놨다. ‘더 인플루언서’가 그것이다. 77인의 인플루언서들이 한 자리에 모여 특정 미션을 수행하며 끝까지 살아남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이들이 어떻게 성공했고 살아남았는가가 엿보인다. 

더 인플루언서

관심으로 생존하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더 인플루언서’의 포스터에는 ‘관심으로 생존하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 한 줄이 사실상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아프리카TV 등 소셜 플랫폼에서 내로라하는 인플루언서 77인이 한 자리에 모여 끝까지 살아남는 1인을 뽑는 프로그램이다. 인플루언서들은 각자의 구독자수에 비례해 3억원이라는 총상금 액수를 나눈 수치가 ‘몸값’으로 찍히는 목줄을 차고 한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시작된 서바이벌. 그건 소셜 플랫폼에서 구독자와 조회수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삶을 보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축소판처럼 보인다. 

 

77인이 저마다 ‘좋아요’ 15명, ‘싫어요’ 15명씩 투표하는 첫 번째 미션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 같은 보통의 상식으로 본다면 ‘좋아요’를 얼마나 많이 받고 ‘싫어요’를 적게 받느냐가 이 미션의 관건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즉 ‘좋아요’ 수에서 ‘싫어요’ 수를 빼서 누가 더 많은 수를 얻느냐가 이 미션의 승리자일 거라 여겨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그걸 이러한 서바이벌 게임을 많이 제작해옴으로서 브레인 중의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진용진은 정확히 꿰뚫어본다. 결국 관심을 얼마나 많이 끄느냐가 관건인 인플루언서들에게 ‘좋아요’든 ‘싫어요’든 많이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이 관점은 실제로 이 미션의 진짜 목표가 된다. 그걸 간파한 이들은 이제 ‘좋아요’가 아닌 ‘싫어요’를 받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 구독자수가 많아 가장 많은 상금을 가진 이들이 ‘싫어요’의 타깃이 되었지만, 진용진의 이 생각이 전파되면서 이제는 ‘싫어요’를 요구하는 이상한 풍경들이 생겨난다. 치열하게 ‘싫어요’를 받아낸 장근석과 빠니보틀은 그래서 이 미션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한다. 

 

‘관심으로 생존하라’는 그 문구가 사실상 이 서바이벌의 색깔이라는 걸 이 첫 번째 미션이 드러낸다. 재미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인플루언서들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이 미션은 말해준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그 후 9년

2015년 MBC에서 방영됐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이러한 인플루언서들의 세계가 이미 도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전조였다. 물론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지상파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인터넷 방송으로 넘어가는 그 과도기의 겹쳐지는 부분이 상당부분 담겨진 예능이었다. 거기에는 김구라, 초아, 홍진영 같은 연예인들이 참여했지만 동시에 이말년이나 황재근, 차홍, 정샘물 같은 인플루언서적인 파워가 느껴지는 비연예인들도 참여했다. 스튜디오에 꾸려진 여러 방들에 들어가 저마다 인터넷 방송을 하고 가장 시청률이 높은(평균 시청률과 최고 시청자수로 계산) 출연자가 우승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현재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박진경 PD와 함께 연출했던 이재석 PD가 기획, 연출한 ‘더 인플루언서’는 그간의 시간만큼 변화된 콘텐츠의 환경을 보여준다. 일종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넷플릭스 버전처럼 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이제는 소셜 플랫폼에서 유명해져 많게는 연간 수십 억의 수입을 얻게 된 인플루언서들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두 번째 미션으로 치러진 라이브 방송 미션을 보면 그 위상을 실감하게 된다.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 미션을 위해 몇몇 인플루언서들은 이제 거꾸로 연예인들을 섭외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도서관은 배우 설인아를 섭외했고, 준우는 가수 에일리를 섭외했다. 무엇보다 이 거꾸로 뒤집어진 영향력을 말해주는 건 장근석이 초보 크리에이터로 참여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전에 뛰어들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연예인들에게도 인플루언서는 이제 하나의 워너비가 되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콘텐츠보다 관심이 더 앞서는 현실

그런데 막상 ‘더 인플루언서’에서 여러 미션들을 통해 살아남는 생존자들을 보니 그것이 콘텐츠의 경쟁력이라기보다는 오로지 ‘관심’이 우선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예를 들어 라이브 방송 미션에서 진용진은 콘텐츠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뉘앙스를 풍기거나, 자신의 수익을 공개한다거나 하는 식의 관심 끌기에 집중했다. 장근석이 매운 음식들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방을 하고, 뷰티 크리에이터인 이사배가 분장에 가까운 화장술을 보여주는 콘텐츠로서의 방송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결과는 영알남(영어 알려주는 남자)이나 차홍처럼 콘텐츠로 승부하는 이들은 탈락하고, 진용진은 살아남았다. 또 벼랑 끝에 몰려 넷플릭스 욕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채운 장지수는 끝내 살아남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이른바 시쳇말로 ‘어그로’를 끄는 것이었다. 

 

이런 미션 방식과 결과들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2인1조 팀전으로 치러진 피드 사진 미션에서도 평가단 100인의 시선을 가장 오래 머무르게 하는 건 사진의 내용이 아니었다. 궁금증을 자극하는 모습이나 글귀들이 더 높은 주목도를 낳았고, 인플루언서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자극적인 사진을 시도하기도 하고 나아가 아예 사진이 아닌 글귀로만 채워진 피드도 올라왔다. 또 SNS를 통해 최대한 많은 댓글을 받는 미션에서도 선물 공세를 한다거나, 고양이 사진을 올리고 이름을 다는 이벤트를 하는 등의 시도들이 이어졌다. 댓글을 유도하기 위한 이들의 노하우가 드러나긴 했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콘텐츠를 통해 주고받는 소통이라는 댓글 본연의 기능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마지막 최종 라운드에 올라온 오킹, 장지수, 빠니보틀 그리고 이사배 중 끝까지 살아남은 이사배와 오킹의 대결에서 결국 오킹이 3억원 상금의 주인공이 된 사실은 인플루언서들에게 콘텐츠만큼 중요한 게 관심을 유도하는 노하우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화장법을 알려주는 콘텐츠로 승부한 이사배는 즉각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오킹의 선거전을 방불케 하는 방송과 먹방, 즉석 소개팅 등에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또한 ‘더 인플루언서’는 우승자가 된 오킹이 그간 인기만큼 크고 작은 논란의 주인공이고 최근에도 코인 관련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라는 점에서도 들여다볼 지점이 있다. 이것은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조차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 세계의 높은 영향력에 비해 갖는 낮은 책임감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건 상대적으로 연예인들보다 이들의 영향력이 낮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이야기지만, 최근 방송이 이제 유튜브 같은 소셜 플랫폼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실제로 피식대학이 지역 비하 논란으로 순식간에 많은 구독자들의 이탈을 경험한 건 영량력이 높아진 이들에게도 그만한 책임을 요구하게 된 현실을 잘 말해준다. 

 

엄청난 관심을 받고, 그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천문학적인 돈을 벌기도 해서 부러움을 사지만 ‘더 인플루언서’를 통해 보는 그들의 세계는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야 하는 SNS 시대의 씁쓸한 현실이다. 인플루언서는 그 극단화된 사례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글:시사저널, 사진: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 몸값 놓고 한 판 붙는 신개념 서바이벌

더 인플루언서

“싫어요 순위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공개된 순위표에는 77명의 참가자 중 1위 자리에 장근석의 이름이 적혀 있다. ‘아시아 프린스’ 장근석이 ‘싫어요’ 순위 1위라고? 그런데 2위 자리에 빠니보틀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도대체 이 서바이벌은 뭐길래, ‘싫어요’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들조차 이렇게 많은 ‘싫어요’ 버튼을 받은 걸까. 

 

이것은 넷플릭스 예능 ‘더 인플루언서’라는 신개념 서바이벌의 독특한 색깔을 잘 보여준 첫 번째 미션이다. 첫 미션은 참가자 77명이 저마다 ‘좋아요’ 15명, ‘싫어요’ 15명씩 투표하는 것. 상식적으로 보면 ‘좋아요’를 많이 받고 ‘싫어요’를 적게 받는 것이 이기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역시 브레인 중의 브레인인 진용진은 이 미션의 진짜 목적을 꿰뚫어 본다. 결국 관심을 얼마나 많이 끄느냐가 관건인 인플루언서들에게 ‘좋아요’든 ‘싫어요’든 많이 받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래서 이 미션 또한 둘다를 합산한 것이 최종결과가 될 거라는 것이다. 이른바 ‘싫어요’도 관심이라는 것. 

 

진용진은 정확히 이 미션을 간파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팔로워가 많은 수치대로 상금이 책정되어 가장 많은 상금을 갖고 있는 이들이 ‘싫어요’의 타깃이 되었지만, 진용진의 이 생각이 전파되면서 이제는 ‘싫어요’ 좀 달라고 찾아다니는 이상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장근석과 빠니보틀이 ‘싫어요’ 순위 1,2위를 차지하게 된 건 바로 그런 이유였다. 결국 이들은 ‘좋아요’와 ‘싫어요’를 합산한 결과로 무난히 1라운드를 통과했다. 

 

이 미션이 보여주는 것처럼, ‘더 인플루언서’는 유튜브, 틱톡,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막강한 구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들 77명이 한 자리에 모여 주어진 미션에서 생존해 최종 1인이 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일단 섭외부터가 만만찮다. 빠니보틀은 물론이고 진용진, 오킹, 대도서관, 장지수 같은 유명 스타급 인플루언서들은 물론이고, 코스프레 최강자로 불리는 마이부, 틱톡으로 유명한 시아지우, 유튜버들의 유튜버로 추앙받는 이사배 등등 유명하다는 인플루언서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총 상금 3억원을 이들이 갖고 있는 구독자수에 비례하게 나눠 저마다 다른 몸값으로 서바이벌이 시작됐다. 평소 많은 구독자수를 갖고 있어 몸값이 높은 게 좋은 것 같지만, 그건 자칫 다른 출연자들의 타깃이 될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이 서바이벌의 최종 목표는 몸값을 높이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총 상금 3억원을 가져가는 것이다. 

 

미션은 우리가 인플루언서들의 영상을 통해 경험했던 그들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들로 제시된다. 첫 번째 미션으로 제시된 ‘좋아요’, ‘싫어요’ 수치를 놓고 벌이는 게임은 인플루언서에게 가장 중요하다 여기는 ‘관심’을 끄는 힘을 알아보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미션인 전후반으로 나누어 치러진 라이브 방송 미션은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해야 살아남는 방식으로 인플루언서의 라이브 능력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미션으로 사진을 올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시선을 잡아끄느냐를 보는 미션 역시 인플루언서들이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능력을 보는 것이다. 

 

인플루언서들의 서바이벌을 다루는 것이지만, 두 번째 미션 같은 라이브 방송을 보다 보면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이재석 PD가 과거 박진경 PD와 함께 했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그 때보다 스케일을 엄청나게 키운 방식으로 치러지지만 ‘더 인플루언서’가 시청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때론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그 처절함에 뭉클한 눈물이 나기도 한다. 

 

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있지만 인플루언서들이 자기 존재감을 몸값으로 내세워 맞붙는 서바이벌은 새로운 면이 있다. 자극적인 맛이 있지만 동시에 이들이 그런 인플루언서가 되기까지 있었을 치열한 노력들이 이 과정에서 엿보이는 면이 있다. 4회까지 공개되었지만 향후 어떤 미션들이 등장할지 또 거기서 누가 끝까지 살아남아 최종 생존자가 될지 못내 궁금하다. 그 끝에 이르러 어쩌면 우리는 관심이 생존처럼 되어버린 현 시대의 자화상을 여운으로 마주하게 될 지도. (사진:넷플릭스)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이 하면 멜로도 이렇게 다르다

헤어질 결심

죽어가는 자들의 눈에는 그 마지막 순간이 담긴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가 하는 일은 어쩌면 그 죽어가는 자들의 눈에 담긴 그 마지막 순간을 찾아내는 일이 아닐까. 그 마지막 순간에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으며 그건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런 것들을 건조하게 의심하고 추적하는 일이 아닐까.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의 형사 해준(박해일)의 그런 시선을 따라간다. 산 정상에서 추락해 사망한 남자. 남편이 죽었는데도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는 아내 서래(탕웨이). 해준은 의심의 시선으로 서래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잠복근무를 통해 서래의 주변을 맴돌며 사진을 찍는 그 의심의 시선은 점점 관심으로 바뀌어간다.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여자. 아픈 엄마를 스스로 죽였다는 서래에게 그가 관심을 갖는 건 그 ‘결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음 같은 것 때문이었을 게다. 죽음 앞에서야 사는 의미가 찾아지는 해준.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갖게 된 이런 상태는 주말부부로 만나 건강을 위해서 의무적으로 섹스를 하는 아내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그에게 삶은 죽음 같은 ‘헤어질 결심’까지 하게 만드는 그런 순간에야 비로소 느껴지는 어떤 것이다. 

 

해준의 이런 관심은 고스란히 서래에게도 전해진다. 해준의 집 벽에 붙여져 있는 사건 관련 사진들 속에 자신의 일상이 담겨진 사진들을 보면서 서래는 느낀다. 이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단지 형사가 용의자를 바라보는 시선 그 이상이라는 걸. 서래는 해준의 ‘반듯함’과 ‘젠틀함’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형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래서 그 자긍심마저 깸으로써 “완전히 붕괴됐다”고 말하는 해준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의심에서 관심으로 넘어가고 그래서 자신이 붕괴되는 것마저 감수하는 해준의 마음과, 자신을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거기에서 어떤 보호받고 이해받는 느낌까지 받다 그의 마음이 그의 모든 걸 붕괴시킬 정도로 강렬하다는 걸 알게 된 서래의 마음. 그들은 조금씩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형사와 용의자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중국인이라 부족한 말 표현을 넘어선다. 

 

이처럼 우리가 명확하게 선이 그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경계들은 마치 안개가 낀 듯 흐릿해지고 이 편과 저 편이 구분가지 않을 정도로 뒤섞인다. 법적인 부부와의 관계는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고, 사실상 불륜이자 그것도 형사와 용의자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는 서로 나누는 눈빛이나 숨소리, 핸드크림을 발라주는 손길만으로도 에로틱하고 감정을 툭툭 건드린다. 

 

불면으로 잠 못드는 해준의 눈은 마치 죽은 후에도 부릅뜨고 마지막 순간을 애써 보려하는 시신들의 눈을 닮았고, 안구건조증에 넣는 안약으로 흐르는 눈물에는 물리적 고통과 감정적 고통이 뒤섞여 있다. 그런 눈이 세상의 경계를 어찌 분명히 볼 수 있을까. 안개 가득한 이포의 바닷가에서 애타게 서래를 찾는 해준의 모습이 분명하다 여겼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져 헤매는 인간의 실존처럼 비춰진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정훈희와 송창식의 ‘안개’가 이들의 사랑을 더욱 애틋하게 만드는 이유다. 

 

히치콕의 ‘관찰자의 시선’을 가져온 박찬욱 감독은 그 용의자를 바라보는 형사의 의심을 ‘관심’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틀어 수사극을 멜로로 풀어낸다. 관찰자가 대상에 빠져들고 관찰되던 자 역시 자신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이건 박찬욱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시선은 그렇게 카메라에 담길 대상에 대해 의심하고 관심을 갖게 되다가 어떤 ‘결심’의 순간을 발견하곤 자신이 생각했던 굳건한 경계들이 붕괴될 정도로 매료되었던 건 아닐까. 

 

결국은 사랑이야기지만, 박찬욱 감독이 그려낸 <헤어질 결심>은 죽음을 결심하는(죽이거나 죽거나) 그 순간의 강렬한 삶을 전제하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일상적으로 쉽게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진짜일까를 생각하게 되고, 진짜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은 ‘사랑’을 말하지 않고도 다른 표현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한다. 그 방식이 색달라 낯설고 결코 쉽지 않은 안개 같은 영화지만, 다 보고 나면 그 안개 깊숙이 전해지는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작품이다. (사진: 영화 '헤어질 결심')

‘아무도 모른다’, 어른이 어른다워야 아이도 아이다워진다

 

은호(안지호) 같은 착한 아이가 있을까. 버려졌다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자식 돌보는 일도 내팽개쳤던 엄마 정소연(장영남)을 마치 보호자처럼 챙긴 것도 은호였고, 윗층 사는 차영진(김서형)의 사막 같은 삶에 들어와 화초를 놓고 물을 줘 피어나게 했던 것도 은호였다. 길을 가다 쓰러진 장기호(권해효)를 외면하지 않고 살려낸 것도 은호였고, 시험지 답안을 유출해온 친구 민성(윤재용)에게 사실을 밝히라 했던 것도, 또 엇나가는 동명(윤찬영)을 친구로서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준 것도 은호였다.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는 사건을 추적해가는 스릴러 장르를 갖고 왔지만, 그 추적의 과정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은호 같은 착한 아이와 대비되는 추악하거나 미성숙한 어른들의 현실이다. 그런 착한 은호가 어느 날 호텔 옥상에서 추락했다는 사실에서 시작한 그 진실에 대한 추적은 은호를 둘러싼 어른들의 어른답지 못한 면면들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어른들도 변화한다. 정소연은 자신보다 더 은호를 챙기는 차영진(김서형)이 그 어떤 것도 엄마를 대체할 수 없다는 말에 변화한다. 뒤늦게 밝혀진 것이지만 윤희섭 이사장(조한철)이 은호의 숨겨진 아버지일 거라는 증거가 등장하면서, 정소연이 은호를 방치했던 것이 사실상 자포자기였다는 게 드러났다. 뒤늦게 정소연은 자신이 은호라는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아차리고 변화한다. 은호의 담임인 선우(류덕환)도 마찬가지다. 그는 차영진과 사건을 함께 수사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과 거리를 뒀던 자신을 후회한다.

 

하지만 백상호(박훈)는 아이들까지 선물 등으로 꿰어 이용하려 하는 나쁜 어른이다. 그와 일당들에 의해 은호는 쫓기다 완강기 끝에 매달려 스스로 뛰어내리게 되었다. 그는 ‘신생명의 복음’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 안에 무언가 숨겨야할 비밀이 존재하는 것.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가 어린 시절 서상원(강신일)으로부터 그 ‘신생명의 복음’을 학대받으며 외웠다는 사실은 그 역시 나쁜 어른이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서상원이 살인을 ‘구원’이라 말하며 자신이 저지른 악행들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니라 믿는 것처럼, 그 나쁜 어른에 의해 백상호 또한 아이들의 약한 면을 파고들어 이용해 먹는다. 나쁜 어른이 만드는 또 다른 나쁜 어른이다. 하지만 은호는 부모에게 방치되다시피 자란 불우한 현실 속에서도 누구보다 속 깊은 착한 아이로 클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차영진이라는 착한 어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무도 모른다>는 ‘신생명의 복음’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백상호의 범죄와 과거 성흔연쇄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건 은호라는 아이를 통해 투영된 우리네 어른들의 상반된 면면이다. 착한 어른이 있는 반면, 나쁜 어른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착한 어른과 나쁜 어른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차영진을 착한 어른으로 만든 건 성흔연쇄살인사건으로 사망하게 된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파고 든다. 그래서 은호 같은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결국 <아무도 모른다>가 이런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그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는 건 ‘관심’과 ‘배려’가 아닐까 싶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 치부하며 지나치는 게 아니라 내 일처럼 들여다보려는 관심과 배려. 그런 어른들이어야 아이들도 아이다워지고, 그 아이들 역시 남다른 관심과 배려를 가진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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