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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윤균상, 사적 복수에서 공적 소명으로

“성님, 어리니를 봤소. 어리니가 임금님이 무섭다며 울고 있었소. 성님, 나 그동안 못된 짓 많이 하고 살았소. 충원군한테 복수도 하고 금주령 때 술 팔믄서 건달들 제끼느라 손에 피도 많이 묻혔소. 억울한 사람들 도와준답시고 미운 놈들 다리도 숱하게 분질러 줬소. 야, 나는 화 많이 내고 살았소. 그런디 성, 워째 지금은 화가 안 나고 맴이 슬프요. 집 뺐기고 가족 잃은 사람들 눈물이, 우리 어리니 눈물 같고, 가령이 눈물 같고, 소부리 아재 눈물 같소. 나는 툭하면 화가 나는 존재인데, 지금은 어째 화는 안 나고 눈물만 난답니까?”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에서 드디어 길동(윤균상)이 세상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가족과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에 대한 사적인 복수와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울분으로 억울한 백성들 괴롭히는 이들을 응징해왔다면, 연산(김지석)의 폭주로 망가져가는 세상 앞에 그는 조금씩 공적인 소명의식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분노하기보다는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게 됐다. 핍박받는 이들이 세상과 싸우지 않고 울기만 한다는 것에 오히려 화를 내고 보기 싫다 했던 그가 아니던가. 그랬던 그가 이제 쓰러져 가는 백성들의 피를 보며 그 아픔이 타인의 것이 아니라 마치 가족의 아픔인 것으로 느끼게 됐다. 그의 그릇은 세상을 품을 만큼 커졌다. 처음에 그 그릇의 크기는 가족을 담는 정도였지만 그 후 익화리 사람들을 담는 정도로 커졌고 이제는 세상을 담을 정도로 커졌다. 

<역적>은 우리에게 고전의 인물로 남아있는 ‘홍길동’을 재해석한 작품. 연산군 시절 실존했던 도적 홍길동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런데 어째 그 옛 시절의 이야기가 그저 옛날이야기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연산군이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이 권력자의 불통과 폭주로 그려지면서 그것이 어떻게 백성들의 고혈을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고, 길동이라는 애기장수라는 메시아의 등장이 마치 백성들 하나하나의 소망이 만들어낸 거대한 힘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폐비되어 사약을 받은 어머니를 가진 불행한 과거사는 연산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연산의 주변에는 그래서 비선실세들이 넘쳐난다. 그의 아픔을 건드리고 그 고통을 촉발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이들. 연산의 폭주를 막기 위해 대간에서 나서 왕의 잘못을 고하지만, 그들을 모두 처벌하는 풍경은 언론의 입을 막으려는 권력의 행태와 무엇이 다를까. 

위를 범했다는 이유로 노비들의 혀를 자르고 발목을 잘라내는 그 행태들을 낱낱이 기록한 행록과 그것을 뒤에서 조종하는 송도환(안내상)을 위시해, 충원군(김정태), 참봉부인 박씨(서이숙) 같은 이들이 바로 비선실세다. 그들은 왕을 위한답시고 충언을 말하지만, 사실은 권력 시스템을 공고히 하고 양반의 백성 수탈을 정당화해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유지하려는 인물이다. 불통하고 폭주하는 왕, 그리고 주변을 에워싼 비선실세들. 이러니 <역적>의 홍길동 이야기가 옛 이야기로 보일 리가 없다. 

길동을 잡아 힘줄을 끊고 뼈를 부숴 애기장수의 힘을 없애버린 연산은 그를 갖고 사람사냥 놀이를 한다. 연산은 스스로를 사냥꾼으로 그리고 길동을 그가 언제든 잡을 수 있는 짐승으로 다룬다. 연산은 왕이고 길동은 한갓 도적이다. 그런데 <역적>은 그 실상이 정반대라는 걸 보여준다. 과연 누가 진짜 왕이고 누가 도적이며,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짐승인가. 백성들의 고혈을 빼먹는 이가 도적이고, 사람을 향해 화살을 겨눈 자가 짐승이 아닌가.

“난 인간을 믿지 않는 인간이다. 폭력만이 유일한 길이라 믿는 정치인이다. 난 오래 전부터 인간은 폭력을 써야 다스려지는 존재라는 것을 깨우쳤을 뿐이다.” 연산이 길동에게 하는 이 말이 주는 울림은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온다. 인간을 믿지 않는 존재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정치의 유일한 길을 폭력이라 여기는 이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결코 다스려지는 존재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역적>은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통해 지금의 대중들에게 전하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혁명가 홍길동, ‘역적’의 재해석이 흥미로운 까닭

“상전나리 나리께선 아내를 죽인 남편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이 나라의 법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 같은 일자무식 무지랭이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겠는데 똑똑하신 웃전들께선 진정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모르신단 말입니까?”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윤균상)은 상전 김자원(박수영)에게 그렇게 묻는다. 간통했다며 아내를 살해한 정중부에게 죄를 묻기는커녕, 그에게 복수를 한 장인 김덕형을 한성부 서윤 조정학(박은석)이 오히려 신문을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부당함을 되묻는 질문이다. 

헬조선. 남편이 아내를 때려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 세상이다. 양반은 양인을 때려죽여도 죄를 묻지 못하는 세상. 그것이 바로 대명률에도 들어있는 헬조선의 법도란다. “해서 간통한 아내는 임금을 저버린 신하를 벌주듯 남편이 벌주게 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자라는 것은 본시 집안에서는 아비를 따르고 시집을 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는 것이지요.” 충원군 이정(김정태)은 이것이 나라가 바로 서는 길이라고 강변한다. 

충원군의 그런 생각의 뒤에는 사실상 유자를 내세워 국정을 농단하는 송도환(안내상)이라는 비선실세가 존재한다. “어찌 인간에게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이 없겠습니까.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구분이 있는 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죠. 이런 구분이 없는 세상이란 무질서이고 무질서란 곧 뭐다? 혼란을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 해서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을 부리고 천한 사람은 귀한 사람을 따라야 하는 것이오. 이러한 이치가 이루어지면 나라는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고 이러한 이치가 이루어지면 집안은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며 임금은 임금다워지고 신하는 신하다워지고 남편은 남편다워지고 아내는 아내다워지는 것입니다.”

송도환의 요설은 신분사회, 차별사회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런 반상의 계급 안에서 질서가 유지되어야 나라가 저절로 다스려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결국 ‘다스린다’는 표현 안에 이미 숨겨져 있듯이 권력자들이 말하는 ‘통치의 기술’을 교묘한 유자의 논리를 통해 풀어낸 요설일 뿐이다. 

홍길동은 한성부에 억울하게 끌려간 김덕형을 구해내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전소설 속에 등장하는 홍길동이야 복면 쓰고 당장 한성부 감옥을 공격했겠지만 그러는 대신 그는 김자원에게 부탁해 연산(김지석)을 활빈정에 오게 하고는 그의 어머니 폐비 윤씨가 억울하게 죽어간 이야기를 듣게 만든다. 폐비 윤씨의 억울함을 통해 김덕형의 딸의 죽음에 동정심을 갖게 만들기 위함이다. 

결국 홍길동의 이런 마음을 흔드는 지략으로 연산은 신하들에게 묻는다. “정중부가 아내를 죽인 것이 마땅하다 이 말인가. 진정 그대들 모두 그리 생각하는 것인가.” 그리고 마침 자신과 함께 수학해온 조정학이 자신의 집안을 풍비박산 낸 조참봉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길현(심희섭)은 분연히 나서 사건의 부당함을 피력한다. 

“허나 아내 김동이 이미 죽어 참으로 남편을 배신했는지 알 수 없지 않사옵니까. 헌데 아내를 죽인 후에 그 아내가 투기하였다 간음하였다 빠져나간다면 죽은 아내의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하겠나이까. 그럼에도 한성부 서윤 조정학이 정중부의 죄상은 밝힐 생각도 하지 않고 외려 딸을 잃은 김덕형만을 신문하고 있나이다.” 길현의 이 말에 동조한 연산은 김덕형을 풀어주고 정중부의 죄를 낱낱이 밝히며 한성부 서윤 조정학을 다른 직으로 좌천시키라는 명을 내린다. 

억울하게 남편에게 맞아죽은 한 처자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것이지만, 이 안에는 <역적>이 재해석하고 있는 홍길동의 흥미로운 면면이 드러난다. 물론 괴력을 사용하는 홍길동의 모습이 간간히 등장하고는 있지만 <역적>은 그렇다고 홍길동은 그런 의적으로만 해석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의적이라기보다는 사업가의 외피를 쓴 혁명가에 가깝다. 

그가 혁명가로 보이는 까닭은 이른바 ‘삼종지도’ 운운하며 임금과 신하가 아비와 자식이 또 남편과 아내가 차별받는 세상에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큰 어르신으로도 불리고 길동이로도 불리며 또 발판이라도 불렸던 홍길동은 이러한 수직적인 계급구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채수빈)에게 “여자라 하여 밥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길동이 아닌가. 

<역적>이 단순히 홍길동을 탐관오리 혼내주는 의적으로 그리지 않고 헬조선의 잘못된 시스템과 대적하는 혁명가로 그리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더 이상 탐관오리 혼내주는 의적이 보여주는 판타지가 지금의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속 시원한 해결책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그깟 탐관오리 몇을 혼내 준다한 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지금의 대중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적>이 그리고 있는 의식 있는 혁명가로서의 홍길동이라는 캐릭터가 흥미로운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역적’, 초반의 속도감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MBC 월화드라마 <역적>은 어느새 반환점을 돌았다. 전체 30부작 중 15부가 지나간 것.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홍길동(윤균상)의 비상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앞부분의 대부분을 아모개(김상중)라는 길동의 아버지의 존재감이 채워 넣었고, 이제 겨우 홍길동이 활빈정의 수장이 되었지만 아직 각성하지 못하고 왕 연산군(김지석)의 뒷배를 봐주는 건달놀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역적(사진출처:MBC)'

사실 이런 느림보 전개가 되리라고는 <역적>의 초반만 해도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길동 아버지 아모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참봉을 죽이고 각성해 노비 처지에서 벗어나 익화리에서 터전을 만들었지만, 충원군(김정태)을 뒤에 업고 복수하는 참봉부인(서이숙)에 의해 익화리 사람들과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그 상황까지가 숨 가쁘게 진행된 바 있다. 

그런데 길동이 충원군에게 복수를 하고 나서 내관 김자원(박수영)을 매개로 연산과 관계를 맺는 이야기는 너무 느슨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아모개의 죽음을 지나치게 긴 분량으로 잡아넣은 지난 회에서부터 느껴졌던 부분이다. 물론 아모개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이 그만큼 컸다는 걸 방증하는 일이겠지만 드라마가 앞으로 나가지 못함으로써 긴장감이 흐트러진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연산이 금주령을 내리고 그걸 이용해 돈을 모아 다시 연산에게 바치는 그 연결고리에서 그나마 긴장감을 유지하게 한 유일한 인물은 김자원이다. 한편으로는 홍길동을 위험인물로 바라보면서도 또한 이용하려는 듯 보이는 이 속을 알 수 없는 내관의 태도가 아니었다면 이 한 회 분량의 이야기는 너무 심심할 수 있었다. 어째서 초반 그 좋은 설정과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걸까.

길동을 중심으로 활빈정 사람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건 이 드라마가 자칫 너무 분위기만 잡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순수노비혈통의 애기장수라는 홍길동에 대한 좋은 재해석을 담아 놓고도 어째서 이런 외관에만 집중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드라마의 힘은 긴장감을 놓지 않는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에서 나온다. <역적>이 그토록 좋은 캐릭터와 재해석을 갖고도 시청률이 오르기는커녕 갈수록 빠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입소문으로 12.5%(닐슨 코리아)까지 올랐던 시청률은 이제 9,7%까지 주저앉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홍길동은 도대체 언제쯤 각성해 연산군과 대적해나갈까. 물론 그걸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이 시청자들로서는 너무나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겉멋을 부릴 일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쭉쭉 뻗어나가는 홍길동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이니.

Posted by 더키앙

홍길동 별명을 발판이로 설정한 '역적' 작가 노림수

“저들이 대감을 하루도 빠짐없이 손가락질하고 대감의 살을 씹어 먹겠다 독설을 뱉었사온대 대감께서는 어찌 저들이 다치는 것을 겁내십니까?” 사관 김일손의 사초에서 조의제문을 찾아낸 길현(심희섭)은 이제 조정에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는 노사신(안석환)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노사신은 길현에게 이렇게 말한다. “몰라 묻는가? 그래 그간 나랏일은 살피지 못하고 그저 전하와 힘겨루기만 하려했던 저들이 어리석고 우매했지. 허나 저들을 단속하여 지혜로운 길로 이끄는 편이 옳았어. 만약 저 어리석은 자들이나마 없어져 이 나라의 언로가 막힌다면 그 땐 이 나라 조선은 어디로 가겠는가.”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이 다루고 있는 건 실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무오사화다. 사관 김일손이 남긴 사초에서 발견된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황후에게 죽은 초나라 왕 의제를 기리는 글)이 사실은 세조의 왕위찬탈을 에둘러 비난한 글이라 해석되며 생긴 피바람에 얽힌 연산 시절의 역사. <역적>은 이 역사적 사실을 가져와 홍길동이라는 인물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연결시켰다. 즉 조의제문으로 인해 연산(김지석)의 역린이 할아버지 세조인 것을 알게 된 홍길동(윤균상)이 소문을 역이용해 충원군(김정태)을 역적의 무리로 엮어낸 것. 

흥미로운 건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덧댄 이야기 속에 이 사극이 전하는 ‘언론’에 대한 생각이다. 결국 그 발단은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조정대신들과 그 이야기들을 더 이상은 듣지 않기로 마음먹는 연산의 ‘불통 정치’에서 비롯된 일이다. 흉흉한 소문들을 ‘불충’이라고 단정하고, 그 소문을 담은 기록을 찾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권력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게 됐던 것. 

<역적>은 이 역사적 사실을 일종의 정보전의 형태로 재해석해낸다. 그러고 보면 길현이 타인의 족보를 얻어 과거에 응시해 합격하고 사관이 된 것이나, 길동이 기방 활빈정을 만들어 양반들의 술판에서 벌어지는 소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이야기 역시 바로 이 조의제문을 통해 생겨난 무오사화를 정보전으로 해석해내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보인다. 밑에서는 길동이 이 무오사화에 충원군을 엮고, 위에서는 사관이 된 길현이 그 충원군의 이름을 듣자마자 연산에게 국문을 해야 한다고 주청함으로써 복수극의 서막이 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고충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주하는 폭군 연산의 이야기는 ‘불통’이 만들어내는 국가적 재앙을 환기시킨다. 결국 제대로 된 언로가 막힌 채 떠도는 소문들에 귀 기울이고 그걸 자의적으로 해석해 권력을 휘두르는 행태는 훗날 연산을 폭군으로 기억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일 게다. 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 잘 살아가고 있다가도 권력자의 말 한 마디에 진실이 왜곡된 채 모든 걸 빼앗기게 되는 사회. 길현이 울분을 터트리고 연산을 돕는 엇나간 행동을 하게 된 것 역시 그 ‘불통’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역적>은 이 불통의 시대에 그저 희생자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거꾸로 이용해 한바탕 세상을 뒤집는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결국 소문을 거꾸로 이용해 충원군을 엮어버리고 그의 무고를 입증할 증인으로서 길동이 서게 되는 설정이 그렇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길동은 충원군의 ‘발판이(말을 탈 때 발판이 되주어 생긴 별명)’가 기꺼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그 발판이 이제 자신을 밟고 오르던 충원군을 무너뜨릴 역전의 장치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발판으로 표징되는 민초들의 역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역적>에서 민초들은 심지어 ‘역창’이라고 불린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민초들을 사회를 좀먹는 ‘전염병’ 취급하는 것. 그래서 참봉 부인 박씨(서이숙)는 감옥에서 피흘리는 아모개(김상중)에게 그 역창들을 모두 몰아내어 나라를 구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역창으로까지 치부되는 민초들이 거꾸로 하나하나 모여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길동이 어떤 흐름으로 만들어 잘못된 세상에 일격을 가하는 <역적>은 그래서 그만큼 시원한 반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청자들이 발판이 길동의 반격에 열광하는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다시 모인 ‘역적’, 미친 세상에 그들이 대적하는 법

“예. 저는 소 키우고 콩 보리 심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아린이 형님들까지 다 무사할 줄 알았습니다. 헌데 그게 아니었소. 우리가 잘 사는 게 우리 손에 달린 일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의 길동(윤균상)이 드디어 각성했다. 그는 아버지 아모개(김상중)가 건달로 사는 것이 싫었고 그래서 아버지와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잘 사는 것이 제 뜻대로 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익화리에서 아모개가 그토록 힘겹게 일궈놓은 터전이 하루아침에 충원군(김정태)의 말 몇 마디로 초토화되었고, 함께 살아가던 가족과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면천하려다 어머니를 보냈고 충원군의 심부름을 안했다가 무릎이 박살났소. 이제 저도 압니다. 세상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사람 꼴로 사는 것을 도저히 두고 보지 않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 놈들이 대단히 나쁜 놈들이어서가 아니오. 그 놈들 눈에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겁니다. 허면 그게 그 놈들 잘못입니까. 아니 우리 잘못이오.”

길동은 남 탓 세상 탓하며 그저 순응하며 살아가려던 것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순응하며 살아가려 해도 가만 놔두지 않는 게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이것을 저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려 한다. 우리 손으로 고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놈들이 우리보고 인간이 아니라는데 예 인간 아니라고 엎드려 있으니 그 놈들 역시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구나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으로 태어나서 나 사람 아니오 하고 사는 놈들하고 뭐가 다릅니까.... 성님들 차라리 앞으로 인간으로 살지 않겠다고 하십시오. 그 놈들이 인간 아닌 것들은 살려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님들. 그리 사시겠습니까? 인간 말고 짐승으로 그리 사시겠습니까?”

<역적> 길동의 각성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개 돼지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어째서 그들이 그저 나라에 순응하지 않고 저들과 대적하려 했는가 하는 이유가 거기 들어있다. 그것은 권력을 잡거나 나라를 뒤집겠다는 대단한 목적이 아니다. 그저 ‘인간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짐승 취급당하며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저 길거리에 나온 촛불들의 뜻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게다. 

<역적>은 이제 아모개의 시대에서 홍길동의 시대로 넘어간다. 아모개가 겨우 겨우 노비 신세에서 벗어나 익화리에 그들만의 터전을 만들어 오순도순 살아가려 했다면, 홍길동은 그것이 이 미친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꿈이라는 걸 알게 되고 따라서 세상에 자신들이 개·돼지가 아닌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 한다. 

지금도 촛불을 마치 ‘역적’ 대하듯 하는 발언들이 흘러나온다. 그들은 여전히 나랏님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들을 어떻게 대해왔는가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역적>의 길동의 각성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하지 못할 때 결국은 개, 돼지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Posted by 더키앙

<씬스틸러>, 즉흥 상황극 예능의 진화

 

어떻게 저런 애드리브를 하지? SBS <씬스틸러-드라마전쟁(이하 씬스틸러)>의 대본은 대부분 비어있다. 기본 상황은 제시되지만 그 안은 온전히 배우들이 채워야 하는 것. 김신영과 황석정 그리고 최은경과 함께 만들어가는 하녀들에서 이규한은 끝없이 난감한 상황 속으로 몰아넣어졌다. 불륜 관계인 김신영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본부인 역할의 최은경도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상황극을 막장으로 몰아가자 이규한은 숨기던 상황들을 모두 털어놓는 것으로 반전을 꾀한다. 하지만 김신영도 최은경도 모두 떠나버리고 남은 하녀 황석정이 숨겨놓은 아들이라며 김병옥을 데리고 오자 결국 충격에 빠진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김병옥에게 담배 피우냐며 사랑의 매를 때리는 것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씬스틸러(사진출처:SBS)'

이라는 상황극에서는 조직원으로 들어간 경찰 역할을 한 김정태가 역시 씬스틸러다운 순발력을 보여줬다. 경찰임을 의심하는 상황들이 계속 제시됐지만 김정태는 그 때마다 특유의 순발력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가방에서 수갑이 발견되자 이런 말까지 안하려고 했는데, 내 아내가 묶는 걸 좋아한다며 오히려 화를 내고, 보스의 여자로 강예원이 등장해 너 나 사랑하기는 했냐고 묻자 사모님 약하셨습니까?”하고 응대하는 김정태는 어쩌면 <씬스틸러>라는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걸 보여줬다.

 

본격 상황극의 이런 묘미는 이미 맛보기로 출연자들에게 제시된 몰래 드라마에서 예고되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자기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출연자들은 놀랍게도 금세 몰입하여 상황을 반전시켰다. 가장 센 상황극으로 이규한과 동성애 설정으로 투입된 정준하는 등장하자마자 그의 뺨을 때리며 그가 바람을 피웠다고 몰아세웠지만, 이규한은 거꾸로 정준하의 뺨을 때리면서 네가 먼저 다른 남자를 만났지 않냐고 말함으로써 상황을 뒤집었다.

 

사실 이런 즉석 상황극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미 신동엽, 김원희가 해서 화제가 됐었던 <헤이헤이헤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또 <해피투게더-프렌즈>에서 유재석과 이효리가 했던 프렌즈 극장역시 이러한 즉석 상황극으로 웃음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씬스틸러>가 다른 점은 예능인이 아닌 진짜 연기자들, 그 중에서도 진짜 씬스틸러들이 직접 출연한다는 점이다.

 

물론 양세형이나 김신영, 정준하 같은 예능인들이 있지만 그들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이다. <씬스틸러>가 집중하는 건 놀라운 애드리브를 보여주는 실제 씬스틸러들의 연기다. 순간적으로 상황에 몰입하고 때로는 공격적인 대응으로 그 상황을 뒤집는 묘미를 선사한다. 그건 웃기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진짜 상황극 속에 몰입해서 보여주는 연기의 흥미로운 세계를 슬쩍 보여주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

 

파일럿팀과 레귤러팀 이렇게 팀이 나뉘어져 한 팀은 대본을 공유하고 다른 팀의 연기자 한 명을 몰아세우는 대결구도는 상황극의 몰입을 더 깊게 만들어낸다. 대본팀은 씬스틸러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붙이고 그 속에서 씬스틸러는 자연스럽게 자신 속에 있는 연기의 잠재성들을 끌어낸다. 이건 실제로 연기를 배우는 이들이 종종 연습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씬스틸러>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프로그램이다. 그 하나는 놀라운 연기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재미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서 슬쩍 슬쩍 드러나는 실제 상황의 난감함이 만들어내는 웃음이다. 과거의 상황극 설정 예능 프로그램들이 보여줬던 것이 주로 후자에 대한 것이었다면 <씬스틸러>는 여기에 연기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전자의 재미를 붙임으로써 훨씬 진화된 형태를 만들었다. 연기와 실제 사이에서 피어나는 놀라움과 웃음. 물론 첫술에 배부르진 않겠지만 <씬스틸러>의 첫발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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