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홀리는 ‘연모’, 말 안 되는 데 박은빈, 로운에 빠져든다

연모

KBS 월화드라마 <연모>는 이상한 드라마다. 말이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또 이 남장여자 콘셉트의 드라마가 어떤 꼬인 관계를 보여줄 걸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도 빠져든다. 정지운(로운)이 달밤에 이휘를 찾아와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은, 사실상 정지운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인 이휘(박은빈)에게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신하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충심인 줄 알았으나 연심이었습니다. 연모합니다. 저하. 사내이신 저하를 이 나라의 주군이신 저하를 제가 연모합니다.” 물론 이 대사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최한결(공유)이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에게 했던 그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 너 좋아해.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 정리하는 거 힘들어서 못해먹겠으니까. 가보자 갈 때까지. 가보자.”

 

당황스럽게도 자신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그 사실을 애써 부인했지만 도저히 그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내놓는 이들의 커밍아웃에는, 그만큼 그들 앞에 놓여진 어떠한 난관들도 좋아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다는 그 진심이 묻어남으로써 보는 이들은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이휘는 정지운의 그 마음을 읽는다. 얼마나 깊이 자신을 연모하는 지를. 그래서 눈빛이 흔들린다. 세자로서 정체를 드러낼 수 없지만 그 조차 뛰어넘어 마음을 전하는 이의 그 절실함이 너무나 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모>는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현대가 아닌 조선시대이고, 정지운이 커밍아웃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왕세자다. 그러니 커밍아웃이 야기할 난관은 더욱 커진다. <연모>의 고백이 훨씬 더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조선시대에 세자에게 그런 말을 건네거나, 그로 인해 진짜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휘 또한 정지운에 대한 연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들이 하는 선택들은 이 멜로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이휘는 정지운(로운)을 찾아와 즐거운 하루를 보낸 후, 비를 피한 자리에서 이휘는 자신이 하고픈 삶과 살아가야만 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웃고 울며 살고 싶지만, 자신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는 운명이라고. 그러면서 정지운에게 지금의 사서직에서 다른 직으로 옮기라고 권한다. 자신은 세자빈 간택을 받아 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그 말을 전하고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 빗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는 이휘에게 이현(남윤수)이 다가와 우선을 씌워준다. 그는 이휘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숨기며 옆에서 연심을 숨긴 채 바라만 보던 인물이다. 그는 이휘에게 “힘든 일이 있었나”보라고 말하며 자신도 오늘이 그런 날이라 말한다. 엇갈린 관계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연모>의 이런 장면들이나 상황, 대사들은 조선사회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세자에게 신하가 임금으로서가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서 연모한다 말하고, 세자 역시 그런 신하와 즐거운 하루를 추억으로 남긴 채 헤어지며 눈물을 흘린다. 술기운을 빌어 신하가 세자에게 볼 뽀뽀를 하고, 세자는 술에 취해 잠든 신하에게 입맞춤을 한다... 이런 게 어찌 가능한 이야기겠나.

 

하지만 이런 불가능도 가능한 일처럼 만들어내고 심지어 그들의 감정에 몰입해 똑같이 울컥하는 마음까지 먹게 만든다는 건, 스토리가 가진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믿게 만드는 그 지점에서 더 강력한 판타지가 생겨나기도 하는 법이다. <연모>는 그런 점에서 시청자들을 홀리는 드라마다. 유려하게 꾸며진 이야기의 매력과 무엇보다 박은빈과 로운의 매력이 더해져 어느새 시청자들을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빠뜨리니 말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저런 게 말이 돼 하면서도 자꾸만 채널을 고정해 놓고 빨려 들어간다. 이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멜로 속으로.(사진:KBS)

‘커프’는 동성애 드라마가 아니다

‘동성애’란 금기의 단어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을 타고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일부에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마치 동성애 드라마나 되는 듯이 여기면서, 우리 사회가 터부시하던 ‘동성애’에 대해 이제 관대해졌다는 섣부른 관측을 하기도 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분명 장치로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를 동성애 드라마라 하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다. 

헐리우드발 감동의 휴먼 드라마, ‘브로크백 마운틴’, 최근 게이 커플이 등장했던 ‘후회하지 않아’는 동성애 영화다. 이 영화들은 그 기본설정 자체가 동성의 커플의 애틋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다만 동성애를 다루는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성애를 통해 인간애를 보여줬다면, ‘후회하지 않아’는 바로 그 동성애라는 자체에 집중하면서 존재와 계급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영화다.

모두 좋은 영화지만 이 두 영화는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주류영화 속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동성애라는 금기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왕의 남자’를 두고 동성애라는 금기의 벽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왕의 남자’의 성공은 예술과 권력 사이에서의 멋진 줄타기를 보여줬기 때문이지, 공길과 장생이 서로를 바라보는 애틋한 동성애 감정 때문이 아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동성애를 가로막는 사회적 제약이 등장하지 않는다. 동성애 영화가 그렇게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금기와의 관계에서 기인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그런 면이 부각되지 않는 ‘왕의 남자’를 동성애 영화라 부르는 것은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는 컨텐츠들은 과거부터 늘 마이너 문화였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성공한 이유는 그것이 동성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찬(윤은혜)이 자신이 사실은 여자였다고 밝히는 순간, 드라마가 재미없어졌다 느껴지는 것은 동성애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재미의 핵심요소였던 동성애 코드가 빠졌기 때문이다.

시청자도 알고 극중 인물들도 아는 남장여자를, 자신만 남자라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이 정도로 사랑한다!)는 한결(공유)이 사랑스러운 것이지, 한결이 모든 사회적 억압의 틀에도 불구하고 실제 남자를 사랑해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소위 말해 ‘동성애 코드’를 멜로의 장치로서 활용하고 있을 뿐, 동성애 드라마는 아니다. 즉 동성애 소재 컨텐츠와 동성애 코드는 오인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동성애 코드는 지금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류 컨텐츠 속에 이미 훌륭한 장치로서 활용된 바 있다. 그 첫 번째는 아무래도 ‘왕의 남자’가 될 것이다. ‘왕의 남자’가 왕과 장생, 공길 사이의 치정극이 되지 않고 예술가들의 고뇌와 권력의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동성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국민의 4분의 1이 ‘왕의 남자’ 속에 등장하는 동성애를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남사당패의 역할놀이(남녀 구분이 없다)가 갖는 예술적인 승화가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가 애초에 남녀 관계 설정을 버리고 매니저와 한물 간 스타의 남남 관계로 재구성된 것은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동성애 코드는 종종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남녀 관계의 멜로 틀을 벗어 던지기 위한 장치로서도 활용된다.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의리나 우정이 더 참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동성애 코드는 또한 작품의 조미료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주몽’ 같은 남성적인 느낌의 드라마에서도 협보(임대호)와 사용(배수빈)의 동성애 코드가 쓰인 것은 그 설정이 갖는 코믹적 요소와 화제성을 십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발칙한 여자들’에서 상미(사강)의 남편 지환(장동직)이 동성애자라는 설정 역시 드라마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멜로의 재미를 주기 위한 동성애 코드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남장여자란 캐릭터와 금녀의 공간으로서의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동성애 코드에는 종종 남장여자 같은 털털한 이미지의 여성이 등장하는 이유는 여성성으로 억압되던 과거의 캐릭터들에 대한 혐오가 그 출발점이 된다. 소위 말해 예쁜 척 하는(혹은 해야만 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해 현대여성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즉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바로 여성들의 사회적 발언권이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앞서나가는 현 세태의 공감 가는 캐릭터를 창출하는 차원에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면이 있다.

또한 남장여자 같은 중성적 캐릭터의 매력과 더해져 효과를 보고 있는 장치는, 이 캐릭터가 ‘금녀의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억압하는 존재로서 섞이기 어려웠던 남성들 사회에 들어가, 연애나 애정관계가 아닌 (남성과의) 동지관계나 의리를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짜릿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동성애 코드와 항시 같이 미소년들이 등장하는 것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하려는 남성으로서 미소년은 언제나 환타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남성 선택은 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팬시적이고 환타지적인 면이 더 강하다.

‘커피 프린스 1호점’를 비롯한 최근의 동성애 코드는 달라지고 있는 남성-여성의 관계까지를 함의하고 있다. 그것은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이고 해방적인 관계를 구성하기 위해 똑같은 성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환타지지만, 그만큼 남녀 관계에서의 비뚤어진 수직구조들을 벗어나려는 강력한 욕망의 발현으로 읽혀진다. 이들 동성애 코드의 드라마들이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 같은 인간애의 성격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