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엄마’, 웃기면서 울리는 배세영 작가 필력에 모두가 인생연기

나쁜 엄마

“진영순이 너 나와! 너.. 어떻게 나한테 이랴. 어떻게 나한테 끝까지 이랴. 나 미친 년 만들어놓고 어딜 간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나는 인정 못햐. 야 요즘 세상에 죽을병이 어딨어? 아니, 못 고치는 병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당장 가서 고쳐 와 이년아! 너 아무 데도 못가 이년아. 그러니까 내 옆에서 평생 나랑 싸워야지, 이년아, 이년아.”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영순(라미란)이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박씨(서이숙)는 영순의 멱살을 잡고 화를 낸다. 그런데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고, 목소리는 감정을 주체 못해 떨린다. 아들 삼식(유인수)이가 도둑질에 감방까지 갖다 와 영순의 아들 강호(이도현)와 늘 비교되는 걸로 마음의 앙금이 있어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대하지만, 그러면서도 영순을 동생처럼 챙기는 따뜻한 인물이 바로 박씨다. 

 

화를 내지만 절절한 마음이 깃든 박씨의 이 묘한 대사는 <나쁜 엄마>의 무엇이 이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끌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배세영 작가는 희비극에 능수능란한 베테랑이다. 코미디를 잘 쓰고, 무엇보다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들어내는 이 작가는 그 웃음 속에 깃든 삶의 비의나 페이소스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코미디의 웃음에는 저마다의 비의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이 작가는 즐거운 반전을 보여주는 인물들과 톡톡 튀는 대사들을 통해 그려낸다. 

 

박씨 역할을 한 서이숙의 연기가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빛이 나는 건 이런 캐릭터의 매력이 이 베테랑 연기자의 연기력을 쿡쿡 찔러 끄집어내기 때문일 게다. 이건 서이숙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이미주(안은진)와 그의 엄마 정씨(강말금)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이 두 사람의 연기자로서의 매력은 피어난다. 딸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정씨는 딸이 강호를 좋아하는 걸 반대한다. 강호가 제 정신으로 돌아온 줄 모르는 정씨는 딸이 자기처럼 남편 수발하느라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 역시 영순을 친 동생처럼 여기고, 그래서 그의 아들 강호가 사고로 7살 기억으로 돌아간데다, 영순마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슬퍼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주 앞에서는 아이들이 강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들의 관계를 반대한다. 딸 걱정 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다. 그런 반대에 미주가 던진 한 마디는 정씨를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든다. “엄마 닮아서.” 미주는 아빠가 그렇게 속을 섞였어도 끝내 아빠를 챙겼던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꺼내놓는다. 미주에게 아빠라는 존재를 엄마가 끝내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다. 

 

<나쁜 엄마>는 이처럼 인물을 단편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 인물이 가진 여러 결들을 겹쳐놓고 그래서 반전의 매력을 꺼내놓는다. 윤항기가 부른 “나는 행복합니다-”를 습관처럼 들으며 애써 밝게 살아가는 영순 역할의 라미란이 그 밝음 밑에 깔린 깊은 상처를 통해, 그 강박 같은 습관이 사실은 불행했던 삶의 깊이를 말해주는 거라는 것까지 표현해낸 것처럼, 차가운 검사에서 7살 아이 같은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따뜻한 강호의 본 모습을 연기한 이도현에게서는 이제 한층 깊어진 연기의 맛이 느껴진다.  

 

도둑질을 하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가볍디 가벼운 방삼식이라는 인물을 연기한 유인수도 그렇다. 그 가벼워 보이는 인물의 뒤에 숨겨져 있는 선한 면모들이 유인수라는 연기자를 통해 제대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조우리 마을 사람들 역할을 한 김원해, 장원영은 물론이고 아역의 기소유, 박다온 또 짧게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트롯백 역할의 백현진에 이 마을에 들어와 어쩌다 ‘귀농 청년’이 된 소실장, 차대리 역할의 최순진, 박천, 또 늘 얼굴에 팩을 한 채 등장했던 이장부인 역할의 박보경까지 <나쁜 엄마>에는 빈틈없이 채워진 인생연기들이 가득하다. 

 

드라마의 긴장감을 끝까지 챙겨준 송우벽, 오태수 역할의 최무성, 정웅인과 그 악역의 희생자가 된 오하영 역할의 홍비라도, 또 카메오로 출연한 류승룡도 빼놓을 수 없다. 배세영 작가는 이 여러 인물들이 겹쳐진 사건들을 코미디와 스릴러, 휴먼드라마를 오가며 풀어가면서도 출연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들의 패러디까지 집어넣는 여유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이런 마을은 없었다. 이것은 조우리인가 천국인가....” 류승룡이 등장해 <극한직업>을 패러디한 대사를 선보이는가 하면, 방삼식과 함께 이미주가 병원에 감금된 오하영을 구출할 때 의사 옷에 안경을 낀 미주를 보며 “아주 슬기로워 보여”라고 하는 대목으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패러디했다. 

 

<나쁜 엄마>는 영화 시나리오 작업으로만 주목받았던 배세영 작가가 드라마 작업에서도 베테랑다운 작품 세계를 펼쳐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코미디의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그래서 웃음 뒤에 숨겨진 눈물을 끄집어내는 이 작가가 들려준 반어법은 비정한 세상을 꼬집는 사회적인 의미까지 담았다. 나쁜 엄마가 아니라 나쁜 세상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벌써 아쉽게도 끝을 내려는 ‘나쁜 드라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아놓고 떠나는 이 드라마에 대한 여운이 이토록 진하게 남았는데. 먼저 간다는 영순에게 “아무 데도 못가 이년아”라고 말하는 박씨의 마음이 이럴까 싶을 정도로. (사진:JTBC)

세상에 나쁜 엄마가 있을까, 나쁜 세상만 있을 뿐(‘나쁜 엄마’)

나쁜 엄마

“부모 자식이 그런 거여. 가타부타 말 안혀도 낯빛만 보면 다 알재. 내 속으로 난 새끼가 어느 날 딱 나타났는디, 서방 놈 바람 나 도망가고 빚쟁이들한테 집안 풍비박산 나서 눈앞이 캄캄했던 그 때 내 얼굴이 돼서 돌아왔어. 근디.. 어떻게 모르겄어... 얼마나 힘들었냐?”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정씨(강말금)는 갑자기 짐 싸들고 돌아온 미주(안은진)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렇게 말하며 꼭 안아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힘든 일을 겪었는지를 따지거나 질책하기보다는 얼마나 힘들었냐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과거가 아닌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좀 있으면 애들 학교도 가고 나도 이제 늙어서 그런가 힘에 부친다. 뭔 일인지는 모르지만 저리 짐을 싹 싸들고 왔을 때는 맴도 싹 정리하고 오지 않았겄냐. 힘들게 왔으니께 힘들어도 같이 살아보자. TV서 어느 가수가 그러더라. 살다 보면 살아진다고.”

 

정씨의 모습은 고스란히 영순(라미란)의 모습과 겹쳐진다. 자식 판검사 만들겠다고 지독하게 공부시켰고, 그래서 검사가 됐지만 교통사고로 7세 기억이 되어 돌아온 아들 강호(이도현). 알고 보니 약한 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진 자들을 위해 법을 휘두르며 괴물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된 영순은 끝내 강호를 탓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다시 강호가 ‘새 삶’을 살게 하겠다 마음먹는다. 넘어져서야 비로소 새 세상을 보고 새로운 꿈을 가질 수 있게 되는 돼지처럼. 

 

<나쁜 엄마>는 일종의 반어법이다. 물론 독하디 독한 나쁜 엄마들이 왜 없겠나. 하지만 그 엄마들도 아이를 처음 가졌을 때는 똑같은 자식 사랑을 꿈꾸는 엄마들이었을 게다. 지독한 현실을 경험하며 억척스럽게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테고, 그것이 엇나간 자식 사랑으로 나쁜 엄마가 되게 했을 게다. 세상에 나쁜 엄마가 과연 있을까. 나쁜 세상만 있을 뿐. 스스로를 나쁘다고 말하는 엄마는 그래서 에둘러 저 지독한 현실을 꼬집는다. 

 

<나쁜 엄마>의 대결구도는 그래서 영순-강호 같은 모자와 우벽(최무성)-태수(정웅인) 같은 돈과 권력에 취한 이들로 세워져 있고 그래서 복수극을 예고하고 있지만, 진짜 대결구도는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부딪침으로 그려진다. 즉 영순이 살고 있는 사람냄새 물씬 나는 조우리 마을과 우벽-태수가 살아가는 속물적인 세상과의 부딪침이 그것이다. 

 

한때 저 속물적인 세상 속으로 들어갔던 강호와 미주는 저마다 상처를 입은 채 다시 조우리 마을로 돌아온다. 조우리 마을은 영순과 정씨처럼 강호와 미주를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꼭 껴안아준다. 그리고 이 마을에 점점 드리워질 우벽과 태수의 마수에 이들은 대항해 싸워나갈 것이다. 

 

조우리 마을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어 저 막강한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과 대적할 거냐고? 그저 착하기만 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것 또한 이 드라마는 반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나쁜 엄마’라는 반어법처럼, 착하기만 해 보이는 조우리 사람들 역시 반어법으로 읽히는 무언가를 저마다 갖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려견에게 호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반려돈(?)을 사자라 부르는 건 그저 농담이 아니다. 그저 힘없어 보이는 그들이 사실은 호랑이고 사자라는 걸 에둘러 말하는 반어처럼 들려서다. 

 

과연 영순과 강호를 위시한 조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을 위협하는 도시의 폭력과 대항해 어떻게 싸워나갈까. 또 그 싸움에서 어떤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안길까.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사람들이 보여줄 비정한 세상에 대한 한 방이 못내 기대되는 대목이다. 나쁜 엄마가 없듯이 그저 착하다고 약한 건 아니라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주려 하고 있다. (사진:JTBC)

 

‘블랙독’, 서현진 통해 끄집어낸 경쟁 사회의 민낯과 그 대안

 

“내가 그동안 도대체 뭘 놓치고 있었던 걸까.” 명문대에 합격한 아이에 환호하고 대학 간 아이들에만 관심을 쏟았던 자신을 뒤늦게 발견한 고하늘(서현진)은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그 반에서 그토록 환하게 웃던 많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이른바 상위그룹 아이들이 잘 되는 것에 취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자신도 모르게 소외시키고 있었던 것. 책상 위에 붙여 놓은 사진들도 다시 들여다보니 빠져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tvN 월화드라마 <블랙독>에서 고하늘이 이처럼 각성하게 된 건 황보통(정택현)이라는 아이 때문이었다. 불우한 환경 때문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황보통은 당장 먹고 살 일이 더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담임인 고하늘은 학교가 재촉하는 대로 문과인지 이과인지를 묻고 있었다. 고하늘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 전에 대학은 갈 것인지, 하고 싶은 건 뭔지를 먼저 물어봤어야 했다는 것을. 고하늘은 그렇게 소외되고 차별받던 황보통이 자퇴서를 내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기간제로 들어와 1년 차에 어떻게든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성적 상위에 있는 아이들만 모은 특별반 이카로스를 맡았던 고하늘이었다. 그래서 특별반에서 대치고등학교 처음으로 한국대 의대에 아이를 합격시켰고 상위그룹 아이들의 명문대 대학 진학률도 높였다. 고하늘은 그 아이들을 ‘내 새끼’라며 한없이 예뻐했지만 그런 빛에는 더 크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있었다.

 

이카로스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이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었던 것. 그 아이들은 이카로스 모집 공고안을 계속 찢어버렸고 특별반을 위한 독서실에 들어가 우유통을 던져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황보통은 억울하게 그런 짓을 한 아이로 오해를 받았고, 결국 붙잡힌 아이들은 차별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토로했다. “차별하잖아요. 진짜 너무하잖아요. 우리 존재가 없다고 신경도 안 써주고 이카로스는 다 퍼주면서 거기 못 들어간 우리 같은 애들은 쳐다도 안보시잖아요.”

 

그 토로에 선생님들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이카로스에 들어가게 된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찾아와 자신들이 원하는 과목과 선생님을 선택하게 해달라고 했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평가받게 된 선생님들도 그들과 똑같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인기 있는 선생님에만 아이들이 몰리고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은 외면 받고 있었던 것이다.

 

<블랙독>이 끄집어낸 건 입시경쟁은 물론이고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겪게 되는 경쟁과 그로 인해 경험하는 소외와 차별의 문제였다. 잘 하는 애들은 더 많은 지원이 가지만 못 하는 애들은 외면 받는 현실.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갖고 못 가진 이들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가 학교든 일터든 마찬가지로 벌어지고 있었다.

 

고하늘은 박성순(라미란) 선생님과 함께 이카로스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수업을 마련하기로 한다. 물론 이런 일들은 현실에서는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지만, <블랙독>의 이 이야기는 그 현실을 꼬집는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무한경쟁 속에 내둘려진 학생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고스란히 우리네 사회가 가진 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그려진다.

 

<블랙독>이 학교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건 지금껏 잘 다루지 않았던 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것보다 더 주목할 건 학생들과 교사들을 똑같은 처지를 겪는 존재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학생들도 우열반이 나뉘어져 차별받고 있지만, 교사도 정교사와 기간제로 나뉘어 차별받는다는 것.

 

경쟁 구조는 그래서 기간제가 정교사가 되기 위해 학생들 또한 차별하는 그 시스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하지만, 그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이 겪는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을 희생시키는 구조. 이것이 경쟁사회가 가진 냉혹한 차별과 배제이고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내가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차별해야 한다니.

 

<블랙독>은 그래서 판타지로나마 그 해결점으로써 차별받는 기간제 교사 고하늘이 똑같이 차별받고 있는 보통의 아이들을 위해 나서는 ‘연대적’ 대안을 내놓는다. 학교의 이야기가 우리네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그 엇나간 경쟁 시스템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가를 깨닫고 연대해야 한다는 걸 이 드라마는 은연 중에 그려내고 있다.(사진:tvN)

‘블랙독’, 죽어라 노력해도 팽 당하는 기간제 교사들의 비애

 

'이상하다. 대답은 해주지만 핵심을 자꾸만 교묘하게 비껴가는 대답. 묘한 불친절. 그리고 이쪽은 지나치게 급하다.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입학사정관이면 적어도 갑을관계는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학생 수가 주는 추세라면 오히려 대학 쪽이 더 협조적이어야 하는데 왜.. 왜 자꾸 갑질을 하는 것 같지?’

 

tvN 월화드라마 <블랙독>에서 고하늘(서현진)은 진학부가 찾아간 한국대 입학사정관에게서 묘한 갑질의 분위기를 읽어낸다. 알고 보니 그 입학사정관은 대치고에서 3년 반을 기간제로 일하다 팽 당한 경험을 한 인물이었다. 정교사 시켜준다고 해서 죽어라 일했는데 결국 그 자리는 도연우(하준)가 차지했다. 그는 기간제 교사가 처한 부당한 현실을 고스란히 겪고는 애꿎은 진학부에 분풀이를 하고 있었던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고하늘의 심정이 어땠을까. 이미 기간제로서 겪는 부당함을 대치고에 오는 날부터 겪어온 그였다. 채용비리에 대한 오해까지 뒤집어쓴 그는 그래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를 챙겨줬던 기간제 교사 송지선(권소현)이 송영태(박지환)의 어이없는 행동으로 기간제라는 게 학생들에게 밝혀지자 그만 두는 사건을 겪었다.

 

송지선은 떠나면서도 고하늘을 걱정하며 쪽지를 남겼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이 아닌 사람 없다.’ 그 짧은 쪽지 안에 그가 얼마나 잡초처럼 짓밟혔는가가 느껴진다. 그래도 그는 새로 온 기간제 교사 고하늘을 모두가 낙하산이라며 백안시할 때 꽃으로 바라봐 준 인물이었다.

 

<블랙독>이 그리고 있는 기간제 교사의 현실은 부당하기 이를 데 없다. 6년 간이나 대치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지내고 있는 지해원(유민규)은 하루하루의 삶이 지옥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정교사가 되는 날만을 기다리며 버텨왔지만 고하늘이 오자 그는 불안감을 느낀다. 교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복도 청소를 자청하는 걸 본 박성순(라미란)이 “선생님이 있어야할 곳은 이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절실함은 무엇이든 하고야 말 기세다.

 

마침 시험문제 오답 문제가 터지면서 상위권 학생들이 모두 불이익을 받게 되자 자구책으로 ‘심화반 부활’ 카드를 꺼내든다. 결국 상위권 학생들을 관리하기 위한 편법인 심화반은 맡게 되면 거의 야근을 해야되는 힘겨운 일이지만 그건 오히려 기간제 교사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해원은 자신이 심화반을 맡고 싶다 나서지만 결정권자인 송영태는 고하늘을 지목한다. 항상 대립하는 박성순(라미란)이 이끄는 진학부를 흔들면서 동시에 문수호 교무부장의 친인척인 고하늘을 자신 밑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적 노림수다.

 

고하늘은 자신을 잘 대해준 진학부 사람들과 박성순을 위해서도 또 공평한 공부의 기회를 가져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심화반을 맡는 일이 어딘가 잘못됐다 여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간제 교사라는 현실은 그를 갈등하게 만든다. 주변 동료 교사를 생각하고, 또 학생들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게 기간제 교사의 현실이라는 걸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블랙독>은 보면 볼수록 어째서 이렇게 부당한 처우를 받는 기간제 교사를 법이 허용하고 있는가가 궁금해진다. 적어도 몇 년을 복무하면 정교사가 되게 해주는 게 합당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몇 년을 일하고도 팽 당할 수밖에 없는 ‘소모품’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 누가 학생들을 위해 진정한 교육에 열성적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자신의 생존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니 말이다.

 

박성순은 그런 고민에 빠진 고하늘에게 “학생들에게는 다 똑같은 선생님”이라고 말하지만, 그게 그리 위안이 될 지는 의문이다. 제도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잘못된 현실을 오로지 학생들을 위해서 감내하라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블랙독>이 꼬집는 기간제 교사의 현실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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