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위대한 안현수, 그 뒤엔 위대한 사랑이

 

도대체 얼마나 절박했으면 안현수 선수는 고장 난 몸을 그토록 혹독하게 몰아세웠을까. 그가 무릎 부상으로 여러 차례 수술한 몸을 이끌고 러시아 귀화까지 결심하게 된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시는 스케이트를 탈 수 없을 거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한참 기량이 떨어지는 러시아 선수들과의 대회에서도 입상조차 하지 못한 그는 이렇게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그랬던 그가 다시 몸을 회복하고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 러시아의 영웅이 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당시에는 우리네 언론에서도 안현수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성적 부진과 부상에 시달렸던 그가 아닌가. 하지만 안현수에게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줄기 빛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를 비로소 완벽하게 해준우나리의 사랑이었다. 러시아로 와달라는 안현수의 부름을 받고 찾아간 우나리는 그를 보고 그저 안아주었다고 한다. 그것이 몸도 마음도 상처를 입은 채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안현수 선수를 위해 우나리가 보여준 사랑은 마치 어머니의 그것처럼 헌신적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함께 지내지 못해 선수촌까지 무려 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우나리는 오갔다고 한다. 오로지 안현수 선수가 그녀를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 먼 길을 매일 오가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자그마한 선수촌내의 숙소 맨 바닥에서 갖가지 요리를 해 안현수 선수에게 차려주는 우나라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는 운동선수는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네 어머니들의 마음 그대로일 것이다. 5분이면 뚝딱 해치우는 그 한 끼 밥을 위해 2시간을 준비하고 개수대도 없는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는 우나리의 얼굴에서는 그러나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진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잘 먹는 자식을 보며 흐뭇해하는 어머니들의 마음 같은.

 

그토록 오래 준비해왔던 올림픽에 러시아 대표로 첫 경기를 가지게 됐을 때 우나리가 안현수 선수에게 한 말은 메달을 따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로지 그가 다치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무리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그녀의 사랑에서는 연인 그 이상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그러니 첫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그를 보며 그토록 행복해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헌신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의 기적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스케이트 선수로서는 환갑에 해당하는 나이에 다시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싹쓸이한다는 것은 전문가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드는 일이었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그라도, 또 누구보다 성실하게 연습을 해온 그라도, 그의 몸과 마음을 살뜰히 챙겨준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휴먼다큐 사랑>이 안현수와 우나리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고자 한 것은 그들의 성공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의 끝에까지 갔다가 다시 기적의 주인공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사랑의 힘이었다. 안현수 선수의 이야기는 보통의 서민들에게도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부조리에 무너진 안현수, 사랑이 다시 일으켰다

 

그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또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연인의 마음은. MBC <휴먼다큐 사랑>은 전 세계가 인정한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가 우리의 이름이 아닌 빅토르 안으로 다시 세계 정상에 설 수밖에 없었던 위대하면서도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줬다. 그것은 안현수 개인에게는 거대한 사랑의 이야기였지만, 우리나라의 스포츠 현실에서는 커다란 비극이었다. 나라가 버린 안현수를 사랑이 다시 일으켜 세웠으니 말이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처음 안현수가 평생의 연인이 된 아내 우나리를 만났을 때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최고의 선수였지만 부상과 빙상계 파벌 싸움으로 인해 변변한 팀에 들어가지도 못한 이른바 백수였기 때문이다. 안현수는 자신의 그 상황을 솔직하게 우나리에게 얘기했고, 그녀는 그 얘기를 들으며 가슴이 찢어졌다고 한다. 최고의 선수가 그토록 의기소침하게 된 현실 때문이었다.

 

우리 빙상 대표팀이 세계 대회를 독식하게 되면서 팀 내의 서열문제와 대표팀의 파벌싸움은 더 심각해졌다. 심지어 선배를 위해 1등을 양보하라는 제안까지 받았고 그걸 거부하자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우리 국민들에게 안현수라는 빙상 영웅의 이름을 또렷하게 각인시켰던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관왕은, 그러나 그가 파벌싸움으로 남자 팀에서 떨어져 나와 여자 팀과 연습을 하며 거둔 성과였다. 심지어 왕따설까지 불거졌던 그 상황 속에서 안현수 선수는 얼마나 속이 문드러졌을 것인가.

 

그는 러시아로 귀화를 결심하기 직전까지도 안갈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혔었다고 한다. 하지만 빙상연맹은 그런 힘든 결정을 하게 된 안현수 선수를 다독이기는커녕 러시아에 그를 문제 있는 선수니 받지 말라는 방해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장에서 심지어 우리 대표팀끼리 파벌을 나눠 싸우는 모습에 해외 선수들이 오히려 위로를 해줬다는 이야기는 실로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비록 귀화했지만 안현수 선수를 여전히 응원하게 되는 건 이런 썩을 대로 썩어버린 우리네 현실 속에서 그가 겪었을 고통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이야기면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어울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르뽀 프로그램이 아닌 <휴먼다큐 사랑>에 출연하게 된 건 그의 부활에 우나리라는 항상 뒤에서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헌신적인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처받아 의기소침해진 안현수에게 힘을 주는 존재였다. 그들이 좋아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톰 크루즈가 했던 말, “You Complete Me 당신은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요는 바로 그녀를 지칭하는 말 그대로였다.

 

차가운 러시아의 추위를 녹여버리는 안현수와 우나리의 사랑은 그래서 더 애틋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우리네 현실은 너무나 안타깝다. 세계적인 선수조차 파벌 같은 자기 밥그릇 싸움 속에서 백수를 만들어버리는 나라. 많은 대중들이 안현수의 귀화조차 박수를 쳐주는 데는 이 나라에 대한 답답한 심경이 들어있다.

 

이것은 아마도 안현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부조리한 현실 때문에 백수가 되는 그런 상황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런 문제가 국가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사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현실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위대한 사랑으로 힘겨운 현실을 이겨낸 안현수 선수가 한없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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