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이혜영이 그려낸 진정한 엄마, 배우의 초상

어째서 이혜영이 하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이토록 가슴을 먹먹하게 할까. tvN 수목드라마 <마더>에서 영신(이혜영)은 결국 모든 이들에게 엄마로서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떠났다. 스스로 얘기했듯 엄마란 낯선 작은 존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사람이라는 걸 온 몸으로 증명하듯 살아왔고, 또 그렇게 떠났다. 

누가 진정한 엄마인가라는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마더>에서 영신이 보여준 면면들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그는 보육원에 버려진 수진(이보영)을 거둬 자신의 딸로 평생을 돌봤다. 어린 시절 겪은 가정폭력과 그래서 친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는 그 상처 때문에 수진은 영신으로부터 계속 도망치곤 했지만, 그 때마다 다시 그가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영신이 항상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그를 기다려줬기 때문이었다. 

수진이 윤복(허율)이를 유괴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영신은 자신과 가족들에게 커다란 위험이 되는 걸 감수하면서 수진을 끝까지 보듬었다. 그는 윤복을 낳은 자영은 엄마가 아니며 진짜 엄마는 수진이었다는 걸 증언했다. 수진이 윤복을 자신이라고 느꼈듯, 영신은 수진을 또한 자신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지만 수진의 동생들인 이진(전혜진)과 현진(고보결) 역시 영신이 낳은 딸들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지만 그들 모두 영신이 자신의 진정한 엄마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영신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나 넘쳐났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의 관계는 혈연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랑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영신만큼 명쾌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있을까.

진정한 엄마가 어떤 존재인가를 드러내는 장면은 마치 솔로몬의 선택의 진짜 엄마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영신과 수진의 친모 홍희(남기애)가 만나는 대목에서였다. 영신은 자신이 죽으면 수진의 엄마가 되 달라고 부탁했고, 홍희는 그걸 차마 수락할 수 없었다. 그러자 영신이 자신이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이 “수진이 낳은 사람”이라고 말했고, 홍희는 그래도 진정한 엄마는 당신이라는 듯 수진의 배냇저고리와 아기 때 사진을 영신에게 주었다. 서로 자기 자식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애틋하게 수진을 생각해왔을 서로를 알고 있기에 상대방의 자식이라는 걸 말하는 두 사람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엄마들이었다. 

이혜영이 연기한 영신이라는 인물은 엄마이면서 동시에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지닌 존재였다. 물론 그 캐릭터가 가진 매력과 예사롭지 않은 대사들이 만나 만들어낸 힘이 분명하지만, 다름 아닌 이혜영이라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런 아우라가 가능했을까 싶다. 그는 품위와 위엄과 우아함이 넘치면서도 동시에 엄마로서의 절절한 마음을 동시에 드러내주는 쉽지 않은 이 인물을 제대로 소화해냈다. 

무엇보다 영신이 극중에서 연기자라는 사실은 이혜영에게는 남다른 공감대로 다가왔던 면이 있다. 과거 윤복의 존재를 알고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 아픈 이야기를 꺼내야 했을 때, 그가 마치 연극을 준비하듯 거울 앞에서 분장을 하는 모습이 그랬고, 마지막 떠나는 순간 윤복이 읽어주는 <우리읍내>의 에밀리 대사를 속으로 읊조리는 모습이 그랬다.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몰랐던 세상이여 안녕”하고 마지막까지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끝내 “엄마”라고 외쳤던 누군가의 엄마였지만 자신 또한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그 모습.

<마더>는 대본과 연출 같은 작품의 완성도도 뛰어났지만 이를 연기해낸 배우들, 이보영, 이혜영, 남기애, 허율 같은 배우들의 놀라운 몰입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줬다. 그 중에서도 엄마이면서 배우로서의 멋진 초상을 만들어준 이혜영의 아우라 넘치는 연기는 작품 전체를 그 따뜻함과 품위로 품어주었다고 보인다.(사진:tvN)

‘마더’, 이보영이 진정한 엄마임을 증명한 허율

그 누가 이들이 진정한 모녀 사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을까. tvN 수목드라마 <마더>에서 결국 수진(이보영)은 혜나(허율)와 밀항을 하려는 와중에 미행하는 형사들에 의해 체포됐다. 창근(조한철)은 수진에게 수갑을 채우고 이렇게 말했다. “강수진 씨. 미성년자 약취 유인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하지만 체포된 수진에게서 혜나는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수진을 엄마라고 부르며 혜나는 “우리 엄마 아프게 하지 말라”고 외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애타게 부르며 흘리는 눈물은 수진을 체포하는 창근의 마음까지 흔들리게 만들었다. 

실제로 그는 이 사건을 추적하며 혜나의 친엄마 자영(고성희)이 하는 행동들이 엄마라고 볼 수 없는 비정한 것들이라는 걸 확인한 바 있다. 반면 수진이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설악(손석구)으로부터 혜나를 구해낸 사실에 그 진심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수사를 해온 후배 동료는 수진을 잡기 위해 홍희(남기애)를 미행하며 창근에게 이들을 놓아주자고 말하기도 했다. “팀장님도 봤잖아요. 혜나 엄마. 우리가 오늘 강수진 잡으면 혜나는 다시 그런 여자한테로 돌아갈 수도 있어요. 목숨 걸고 도망친 애에요. 진짜 죽을 뻔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 하루 바보 되고 강수진 놓아주면 안 될까요? 사람들이 다 그러잖아요. 강수진이 정말 애를 아끼는 것 같다고.”

수진의 진심은 우연히 남이섬에서 만나게 된 운재(박호산) 부자와의 인연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운재의 아들과 금방 친해지게 된 혜나 때문에 함께 저녁식사까지 한 운재는 아내가 난소암이었는데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위험하지만 그의 아내는 아이를 위해 기꺼이 함께 모험을 했다는 것. 그렇게 아내는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의 아들은 “엄마의 사랑, 엄마의 용기를” 그냥 느끼고 있다고 운재는 말했다. 

수진은 운재가 한 그 이야기에 용기를 냈다. ‘아이를 위해 기꺼이 함께 모험을 하는 것’이 엄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운재의 아내 이야기를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혜나의 진정한 엄마로서 수진은 그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혜나에게 솔직하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준다. 잘되면 함께 도망칠 수 있지만 잘못되면 자신은 경찰에 체포될 수 있다고. 

과거 수진의 엄마는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살해하고 자신이 경찰에 잡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수진을 보육원에 버리고 가는 모진 선택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수진은 혜나에게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 때로 돌아간다면 엄마에게 끝까지 함께 하자고 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수진은 그렇게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혜나의 마음까지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수진과 혜나는 이제 어떻게 될까. 그저 겉으로 드러난 행적대로 수진은 유괴범이 되고 혜나는 그 비정한 친엄마에게 돌아가게 될까. 그간의 행적들을 통해 수진이야말로 진정한 혜나의 엄마라는 사실을 이젠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핏줄이 같다고 엄마가 아니라는 것. 과연 수진은 그 사실을 입증하고 혜나의 진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진정한 엄마가 되기 위한 수진의 첫 걸음은 지금부터 시작이 아닐까. 결국 진짜 엄마가 누구인가는 그 아이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사진:tvN)

‘마더’가 사회에 던지는 딜레마, 친모라고 엄마인가

그냥 이 엄마와 딸을 진짜 모녀 관계로 살게 해줄 순 없을까. 아마도 tvN 수목드라마 <마더> 시청자라면 수진(이보영)과 윤복(허율)이 그렇게 편하게 엄마와 딸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은 어떨까. 수진은 경찰에 쫓기는 유괴범이다. 그것도 딸 같은 윤복을 유괴한 인물. 

물론 수진이 윤복과 함께 도망치게 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만일 수진이 방치했다면 윤복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엄마 자영(고성희)은 비정하게도 자신의 동거남 설악(손석구)이 윤복을 학대하는 걸 방치했다. 그리고 아이가 사라지자 찾아보려 하기보다는 아이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한다. 

윤복을 납치한 설악이 ‘눈물을 보이면 죽인다’는 자신의 룰을 이야기하며 과거 쓰레기 봉지에 넣어 윤복을 버린 일이 사실상 아이를 죽이려던 것이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그 윤복을 구해낸 수진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의, 아니 엄마의 자격을 가진 인물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윤복을 찾기 위해 그 속으로 뛰어드는 수진은 자신이 엄마라는 걸 그 행위로 증명한 셈이다. 

하지만 법은 이들을 엄마와 딸로 바라보지 않는다. 심지어 자영이 아이를 학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혜나(윤복의 진짜 이름)의 엄마임을 드러내며, 수진이 유괴범이라고 주장한다. 이 사실은 이 사건을 처음부터 추적해온 형사 창근(조한철)이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지만, 그 역시 자신의 직업이 해야 될 법적 의무를 저버리지 못한다. 그는 사실 수진이 혜나를 구해낸 것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그들을 추적한다. 

창근의 마음 속에도 하지만 어떤 흔들림 같은 것들이 조금씩 생겨난다. 수진의 혜나에 대한 진심이 그가 추적해온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추적하면서도 그 이유가 단지 범죄자를 체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바닥에서 얼어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더한다. 그에게는 범법자를 잡아야 한다는 마음과 함께 이들을 지켜내고픈 마음이 조금씩 겹쳐진다.

그리고 언론은 이런 구체적인 사건의 진실에 관심을 그리 두려 하지 않는다. 다만 한 아이가 유괴됐다는 사실과 그 아이를 유괴한 자의 엄마가 유명한 배우라는 사실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이미 용의자로서 그 얼굴까지 공공연하게 노출된 수진은 이제 영락없는 유괴범으로서 사회에 낙인찍힌다. 그 과정을 상세히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이런 현실의 시선이 너무나 비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과연 친모만이 엄마인가. 그래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들도 아이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친모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아동학대는 더 끔찍한 범죄지만, 그 학대로부터 아이를 구해내 도망친 자가 유괴범으로만 지목되는 현실은 과연 합리적인가. 그 어린 시절 겪은 학대와 엄마의 자살로 인해 끔찍한 범죄를 계속 저지르게 된 설악의 최후는 과연 친모라고 해서 모두 엄마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혜나를 수진이 보는 앞에서 죽이려 한 설악을 진홍(이재윤)이 성모마리아상으로 때려 쓰러뜨리는 장면과, 그렇게 도주하는 수진과 혜나가 절의 스님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장면은 그래서 남다른 상징처럼 다가온다. 법이라는 인간의 잣대로서는 비정하기만 한 이들 앞에 펼쳐진 현실 속에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성모마리아나 스님 같은 종교적 차원의 시선이라는 메시지. 어쩌면 구원은 법적 잣대가 아닌 인간을 긍휼한 시선으로 공평히 내려다보는 그 관점으로부터 가능하다는 걸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사진:tvN)

‘마더’ 가정폭력이 만든 비극, 그 비극을 넘어서는 법

tvN 수목드라마 <마더>는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똑같이 끔찍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는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진(이보영)은 엄마가 되는 선택을 했고, 설악(손석구)은 괴물이 되는 선택을 했다. 그 대물림은 어째서 이렇게 다른 선택으로 이 두 인물을 이끌었던 걸까.

그 다른 선택은 이렇게 상처받은 아이들이 그 후에 누군가에 의해 사랑으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았는가 아닌가에 따라 나뉘어졌다. 수진은 영신(이혜영)을 만나 그로부터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수진의 마음에 남은 상처가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세상이 그렇게 모질지만은 않다는 걸 영신을 통해 느꼈을 게다. 

하지만 설악은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자살해버린 엄마가 남긴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상처를 그에게 납치된 어린 윤복(허율)은 단숨에 들여다봤다. “삼촌 그 때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요.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우리 엄마 죽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죠?” 윤복이 설악의 상처를 들여다 본 건 자신 또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설악의 그 깊은 상처와 자책감은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자신에 대한 자책감은 그가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동기로 작용했다. 그는 아이들에게서 용서하지 못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그 아이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엄마들에게서 자신의 엄마를 보는 것이다. 물론 그의 범행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악독한 짓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괴물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마더>가 촘촘하게 잘 짜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건 바로 이 수진과 설악의 대결구도에서 나타난다. 애초에 작가는 이런 두 인물의 대결구도를 통해 가정폭력의 문제, 진정한 부모의 자격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상처를 겪었음에도 누군가는 엄마가 되고 누군가는 괴물이 된 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그래도 남은 희망은 무엇인가를 드러내려 했다는 것이다. 

수진은 어느새 윤복의 엄마가 되어있고, 윤복의 친모가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수진에게 돈을 요구한다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부모 자식으로 이어지는 혈연보다, 피는 달라도 진정한 사랑으로 엮어진 관계가 더 진정한 부모 자식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윤복에게 읽어줬던 동화책의 내용처럼 수진은 끝까지 어디든 아이를 찾아가 꼭 안아주려 한다. 그건 아마도 그를 거둬 사랑으로 키워준 영신을 통해 알게 된 부모의 사랑법일 게다.

그리고 윤복의 구원은 또한 수진 자신의 구원이 되기도 한다. 이미 친모로부터 버림받은 윤복의 상처를 수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그 아픔을 영신이 그래준 것처럼 보듬어 치유해주는 건 수진이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영신이라는 인물에게서 전해진 사랑은 그렇게 수진을 통해 윤복에게 대물림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사람이지만 이들은 그래서 그 어떤 부모 자식보다 더 끈끈한 관계가 된다. 

설악의 과거사까지 밝혀지면서 <마더>가 담으려는 이야기의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그것은 가정폭력이 만들어내는 비극이 어떤 결과로 대물림되는가 하는 것이고 그 비극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수진은 설악으로부터 윤복을 구해내고 이 비극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아이를 유괴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수진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 게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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