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꾸준히, 2016 지상파 연예대상의 흐름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아마도 올해 지상파 <연예대상>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으라면 이 두 단어가 아닐까. KBS 연예대상의 대상으로 김종민이 뽑힌 가장 큰 이유는 <12>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묵묵히 오래도록 꾸준하게 해왔기 때문이다. <12>10년 가까이 된 장수예능이자 KBS를 대표하는 예능인데다, 9년 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에 김종민의 대상은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SBS연예대상(사진출처:SBS)'

SBS 연예대상의 대상은 신동엽에게 돌아갔다. 물론 올해 SBS가 예능에서 거둔 성과 중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미운 우리 새끼>에서 메인 MC 자리를 맡아 재치 있는 진행을 해온 공로가 가장 두드러졌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말했듯이 <미운 우리 새끼>의 진짜 주역이라고 하면 거기 출연하는 출연자들과 그 어머니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SBS가 신동엽에게 대상을 부여한 건 단지 이 프로그램 하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그간 신동엽이 SBS에 해왔던 일련의 공로들이 쌓여 이제 인정받을 만한 단계에 도달했다는 걸 대상이 증명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신동엽은 SBS 공채 1기 출신 개그맨이다. 무려 26년이 흘렀지만 그는 SBS에서 대상을 받지는 못했었고 대신 연예대상 같은 시상식의 사회를 도맡아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올해는 대상 자리에 오른 것. 그의 대상 역시 꾸준히 한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바 역할을 묵묵히 해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번 SBS 연예대상에서 대상만큼 주목받은 건 최우수상을 받은 이광수였다. 최근 <런닝맨> 제작진의 잘못으로 내년 초 종영을 예고한 바 있는 상황이어서인지 이광수는 수상의 기쁨만큼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일일이 감사를 표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광수의 최우수상이 뭉클하게 다가왔던 건 그 역시 <런닝맨>이 달려온 7년 간을 묵묵히 꾸준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26세 때부터 지금까지 7년 동안 정말 행복했고, 과분한 사랑 받아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KBS 연예대상의 김종민, SBS 연예대상의 신동엽, 그렇다면 MBC 연예대상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아직 뚜껑이 열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많은 이들은 <무한도전>의 정준하를 꼽고 있다. 올해 유독 <무한도전>이 대놓고 밀어주었고(?) 그는 거기에 호응하듯 다양한 도전과제들을 하나하나 완수했다. 힙합 도전을 했고 아프리카까지 날아가 아기코끼리 도토와의 우정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캐나다에서 북극곰과 교감하는 미션을 수행하기도 했다.

 

김종민이 KBS 연예대상 그리고 신동엽이 SBS 연예대상을 받고 또 정준하가 MBC 연예대상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건 올 한 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그만큼 새로운 시도보다는 기존의 장수예능 프로그램들이 한 해를 지켜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종민은 <12>이라는 장수예능의 공로가 인정된 것이고, 신동엽은 가뭄에 콩 나듯 피어난 <미운 우리 새끼>라는 새로운 예능과 그간 SBS와 맺어온 꾸준한 관계가 인정됐다고 볼 수 있다. MBC에서 올 한 해 꾸준히 화제의 중심에 들어 있었던 건 역시 <무한도전>이었다. 올해 500회를 맞았던 만큼 그 공로가 인정될 만하고 그 중에서도 그간 약간은 상에서 빗겨 있었던 정준하가 거론되고 있는 것.

 

결과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만일 정준하가 이번에 MBC 연예대상을 받게 된다면 올해의 지상파 연예대상은 묵묵히 꾸준하게 한 자리를 계속 지켜오며 일정 부분 자기 역할을 다 해온 이들의 공로에 대한 치하와 격려의 의미가 크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던 이들과 달리 한 발 뒤로 물러서 있었지만 결코 기여가 적다 할 수 없는 그들에 대한 박수와 지지의 의미.

짠하거나 웃기거나, <미운 우리 새끼>의 두 얼굴

 

SBS <미운 우리 새끼>MBC <나 혼자 산다>의 노총각 버전 같은 위치에 서 있다. 이제 쉰을 바라보고 있는 김건모나 역시 비슷한 나이대의 박수홍이 혼자 사는 모습은 웃기면서도 짠하다. 점심이 다 돼서야 일어난 김건모가 밤새 마신 술을 해장하느라 엄마가 해놓은 순두부 대신 라면을 끓여먹는 모습이나, 역시 늦게 일어나 하루 종일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박수홍의 모습은 우습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철없는 아이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미운 우리 새끼(사진출처:SBS)'

하지만 그 모습을 스튜디오에서 엄마들이 본다는 사실은 여기에 또 다른 시선을 겹쳐준다. 모두가 웃을 때 엄마들은 정작 웃지 못한다. “저게 뭐하는 짓이고하는 말이 수시로 터져 나오고, “저러면 안되는데라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묻어나온다. 엄마들은 아들들이 저렇게 궁상맞고 철없게 살아가는 것이 혼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기---결혼으로 흘러간다.

 

그렇지만 리얼한 관찰카메라 속에서 아들들은 엄마들의 이런 걱정과는 달리, 결혼을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다. 김건모는 남자 후배 동생들과 노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밤이면 모여 둘러 앉아 소주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낙으로 여긴다. 박수홍은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 대다가 저녁이면 친구들과 클럽에 가기 위해 밤거리를 떠돈다. 그 역시 친구들에게 혼자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정색하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들은 안색이 굳어진다. 스튜디오에 있는 엄마들의 입장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세상은 점점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래도 내 아들만은 결혼을 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건 아마도 모든 엄마들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아들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다. 엄마들의 생각이 너무 고답적일 때마다 신동엽은 나서서 달라진 지금의 세태를 유머로 섞어 이야기 한다.

 

<미운 우리 새끼>는 이런 엄마들의 보수적인 생각과 아들들이 보이는 때론 보수적이면서 때론 엄마와는 다른 생각들을 어떤 가치평가 없이 그대로 늘어놓는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부장적인 색채를 느끼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엄마들도 그렇지만 아들들도 나이 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가부장적 체계 안에서 살아오며 체득해온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이 들었어도 이들은 결혼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정도로 과거와는 달라진 결혼관을 드러낸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이들이 혼자 살아가는 모습은 엄마들이 생각하기에는 안쓰럽기 그지없지만 정작 그들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들이 혼자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래서 결혼을 지상과제라고 제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혼자 사는 삶 역시 오롯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엄마들은 여전히 며느리 감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엄마들의 생각일 뿐, 아들들은 결혼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대신 연애는 하고 싶고 아이는 갖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을 드러낸다.

 

여러모로 엄마와 아들이라는 프레임은 그 자체로 가부장적 체계의 한 부분을 연장해 보여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이 프레임은 과거의 가부장적 체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그 균열을 보인다. 관찰카메라를 보던 엄마들은 아들의 행동을 보고 말을 들으며 저런 면이 있었나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희비극은 서로 겹쳐 있기 마련이다. 짠한 지점에 웃음이 있다. <미운 우리 새끼>는 웃기다가도 짠해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김건모가 한밤 중 태블릿PC의 대화 앱을 켜놓고 하릴없는 기계와의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웃기기 이를 데 없지만 그건 또한 혼자 살아가는 중년의 외로움 같은 걸 담아낸다. 엄마의 시선은 여기에 겹쳐지고 그래서 다시 기---결혼의 이야기로 돌아가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런 보수적 시선마저도 웃음의 코드로 만든다.

 

관찰 카메라가 어떤 의도적인 목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미세한 변화들을 감지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지금 결혼과 가족이라는 가부장적 프레임에서 홀로 살아가는 이들로 변화해가는 그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거기에는 그래서 안타까움도 짠함도 있고 답답함도 있으며 웃음도 존재한다. 있는 그대로를 그저 담아내고 반응 그대로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 <미운 우리 새끼>가 이런 다층적인 재미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그들이 혼자인 까닭이 보는 눈에 따라 다르듯이, 그 다른 관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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