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달의 연인>에는 이준기와 강하늘이 있다

 

SBS 수목드라마 <달의 연인>에서 이준기의 존재감은 갈수록 무게감을 더해간다. 그가 연기하는 왕소라는 캐릭터는 이 황궁에서 살아가는 다른 황자들과는 이질적이다. 얼굴에 난 상처와 그 상처를 가린 가면은 그의 이질적인 캐릭터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린 나이 어머니 황후 유씨(박지영)에 의해 상처를 입고 버려진 이 비극적인 인물은 스스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공포의 존재, ‘늑대개로 자신을 세운다.

 

'달의 연인(사진출처:SBS)'

그가 정윤 왕무(김산호)를 대신해 살수들을 뒤쫓아 그 본거지를 찾아낸 후, 그들이 황후 유씨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들이라는 걸 알고는 모조리 도륙하고 불을 질러버리는 대목은 그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그는 황후 유씨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하다. 자신을 버리고 사지로 내모는 것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지만, 그들을 모두 도륙한 후 유씨를 찾아온 그는 그녀가 연루된 걸 모두 숨기기 위해 불을 질렀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어머니 황후 유씨의 관심을 갈구한다.

 

상처 입은 짐승 같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지지 않고 토를 다는 해수(이지은)는 그래서 바로 그것 때문에 그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는 해수에게 묻는다. “내가 무섭지 않냐. 왕소는 상처 입은 자신의 얼굴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똑바로 쳐다봐 주는 해수를 통해 조금씩 닫혔던 마음을 허문다. 왕소의 존재감은 이렇듯 강렬한 상처 입은 짐승이 해수라는 한 여인을 만나 조금씩 마음이 풀어지는 그 지점에서 생겨난다.

 

이준기는 눈빛 하나로 이 왕소의 심경변화를 연기한다. 얼굴 가득 피칠갑을 한 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통해 그의 내면 가득한 분노를 표현해낸다면, 그런 그가 해수 앞에서 살짝 풀어진 웃음기 머금은 눈빛으로 변할 때는 마음에 피어나는 변화를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다. 얼굴 한 쪽을 거의 가린 채, 눈빛 하나로 이런 감정의 교차를 표현해내는 건 역시 이준기의 진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해수를 사이에 두고 대척점에 서 있는 왕욱을 연기하는 강하늘 역시 감정을 억누르는 인물이다. 그는 본처인 해씨부인(박시은)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만 마음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왕욱은 타인에 상처를 주지 못하고 차라리 자신이 상처를 입으려는 책임감 강한 선한 인물이다. 그는 끝까지 해씨부인의 옆을 지키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마음이 해수를 향해 있다는 걸 알고는 죽음 직전 그에게 해수를 부탁한다.

 

강하늘 역시 그 반쯤 풀린 듯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이 그 억눌린 캐릭터를 잘 설명한다. 하지만 강하늘의 왕욱 연기에서 주목할 만한 건 그 목소리다. 그는 이 사극에서 가장목소리를 낮춰 작게 말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낮고 작은 목소리가 어찌된 일인지 더 진중하고 깊게 시청자들의 귀에 박힌다. 목소리 자체는 낮고 작지만 그것이 억누르고 있는 깊은 감정 같은 것들이 거기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달의 연인>은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시청률은 난항이고, 연기력 논란은 그칠 줄 모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 사극에 어떤 변화와 희망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이준기와 강하늘이 보여주는 연기와 그 캐릭터들의 힘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준기의 눈빛 연기와 강하늘의 목소리. 이 사극의 많은 단점들을 충분히 채워줄 만큼 그 매력이 충분하다

숫자가 아닌 사람을 보니 세월호의 참상 실감

 

JTBC<마녀사냥> 대신 세월호 참사 관련 소재로 특별 제작된 <다큐쇼>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를 방영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우리의 시선은 줄곧 TV의 상단 우측이나 좌측에 쏠려 있었다. 거기에는 실종자 수와 사망자 수 같은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그 숫자가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바뀔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허물어졌다.

 

'다큐쇼(사진출처:JTBC)'

하지만 숫자는 폭력적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정부의 실종자 발표는 계속해서 오락가락했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라는 희망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가 곧 정정되었고 그 숫자도 계속 바뀌었다. 그 때마다 정부의 변명은 계산 착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계산 착오에 실종자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숫자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가족들에게는 그 숫자 하나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기 때문이었다.

 

<다큐쇼>에서 마련한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세월호 참사라는 막연한 문구 아래 가려진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간다. 그 배에는 두렵다는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준 의로운 분도 타고 있었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받고 구조된 친구는 사망자로 돌아온 친구 앞에서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 그 분의 가족들은 애써 의연하려 노력했다. 자식의 정의로운 선택 앞에 입을 앙다물었지만 그래도 보내는 마지막 길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배에는 마지막 순간에 구조된 부부도 타고 있었다.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부부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모든 시간이 거기에 멈춰 있었다. 아내는 충격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남편은 그 아내를 어쩌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 구조되는 순간 부모와 형제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8세 아이를 함께 탈출시키며 그 부부는 또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도 죽음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배에는 중국인 부부도 있었다. 착실하게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났다는 그 부부는 그러나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 부부의 가족들은 외국인이라고 확인도 되지 않는 상황에 놀라움과 분노를 표했다. 마지막 순간 배에 들어가는 그 부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보며 눈물을 훔치는 유가족들은 결국 이 부부의 영혼결혼식을 치러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배에는 승무원은 맨 마지막이라고 외치며 끝까지 승객들을 구조하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 박지영 승무원도 있었다. 한 생존자는 그녀가 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또 자신을 도와주어 살아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제 겨우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떠난 그녀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진정한 선장이었다는 메모를 남겼다.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 무수한 숫자들과, 막연한 세월호 참사라는 문구가 아니라 그 숫자와 문구 뒤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오열이 남겨져 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숫자가 아닌 그 분들의 면면과 마지막 행적으로 잊지 않고 기억해내는 일. 그것이 아프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해야될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침몰한 배가 아니다. 숫자가 아니다.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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