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이 혼탁한 세상을 이들은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탁류

“우리 아버지 머슴이여.” 디즈니+ 드라마 <탁류>에서 무덕(박지환)의 안사람 작은애(오경화)는 남편이 왈패의 엄지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시율(로운)을 앉혀놓고 다짐을 받아 놓으려 한다. 무덕이 엄지가 된 건 바로 남다른 완력과 싸움 기술을 가진 시율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려서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무덕의 아내가 되어 살게 됐고 그를 살게 해준 무덕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기위해 먼저 자신의 기구했던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근디 흉년에 너무 먹을 게 없어 갖고 울 큰언니 갖다 팔았어. 고다음 보릿고개엔 둘째 언니를 갖다 팔고. 아들은 팔 수 없응께 내 차례가 됐지. 대감집 종으로 팔려 갔는디 역병에 걸려 갖고 피를 토항께 그냥 길바닥에 픽 버리고 가대. 열이 펄펄 나 갖고 눈밭에 누웠는디 추운 줄도 몰랐어.” 사람 목숨이 쌀 줌도 안되는 가치로 평가받던 민초들의 삶이 그녀의 이야기 속에 묻어난다. 살려고 자식을 팔고, 그렇게 팔려간 이는 병에 걸리면 버려지던 그런 시대. 이 대사는 <탁류>라는 작품이 담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잘 드러낸다. 그건 바로 민초들이다. 

 

<탁류>를 쓴 천성일 작가는 물론 <도망자 PLAN B>나 영화 <7급공무원> 같은 현대극을 집필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사극 <추노>로 기억되는 작가다. 그만큼 <추노>라는 작품이 파격적인 명작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망 노비와 그 노비를 잡는 추노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버린 민초들의 삶을 사극을 통해 기록하려 했던 이 작품은 해학적이면서도 비장한 서사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탁류>는 오랜만에 천성일 작가가 바로 그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되돌아온 느낌이다. 저 작은애의 말처럼 이 작품은 가진 것 없이 가난해 가족에게조차 버려진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눈 떠 보니 요 집이여. 저 냥반이 몇 달 동안 괴기도 멕이고 약도 멕이고 그러면서 나를 살려내더라고. 그 길로 쭉 눌러 앉아 갖고 그 사람 각시가 됐제. 그 사람 아주 작지만 선한 마음이 있어. 근디 것도 너무 작아 갖고 없는 거나 매한가지여. 근디 그랴도 쬐끔은 살 자격이 있지 않겄는가. 내가 밥은 잘해 줄랑께 그 사람 등지지만 말어. 응? 약속할 수 있지?”

 

작은애가 시율에게 하는 이 말은 <탁류>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가를 예감케 한다. 그건 이 혼탁한 마포나루의 강물 같은 세상 속에서 가진 것 하나 없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살아나가는가를 그릴 거라는 이야기다. 없어도 설움 받고 버림받는 이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싸우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아주 작지만 선한 마음’들로 버텨낸다. 무덕이 저 작은애의 숨을 이어 붙였듯이, 이제 시율은 무덕과 그 식솔들이 살아갈 수 있게 손을 내밀어준다. 

 

세상은 탁류 그 자체다. 마포나루 왈패들은 몸뚱아리 하나로 먹고 살려 이들의 고혈을 짜고, 관리들은 그 왈패들의 고혈을 짠다. 아무거나 갖다 붙여 세를 받고, 그 세금은 그 위로 상납된다. 사극으로 그려진 옛 세상의 풍경이지만, 지금이라고 다를까 싶은 시청자들도 적지 않을게다. 죽어라 일해도 뭐 하나 나아지는 것 없어 보이는 막막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이런 게 가족입니다. 함께 하면 부러지지 않습니다.” 시율은 싸리비를 예로 들어 자신들이 어떻게 이 험난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를 말한다. 그러자 작은애가 옆에서 장단을 쳐준다. “고럼 같이 먹고 같이 굶고 그게 가족이지.” 이 작지만 선한 마음들은 과연 저 거센 탁류 앞에서 지켜지고 서로를 살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까. 해학적인 인물들에 웃다 보면 어느새 눈물 나는 천성일표 민초 사극에 각별한 애정이 가는 이유다.(사진:디즈니+)

‘텐트 밖은 유럽’, 의외로 이 분들 흥행 보증수표라는 건

텐트 밖은 유럽

“이게 유와 진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예요.” tvN <텐트 밖은 유럽>에서 새로운 캠핑장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유해진이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공기에 “아 상쾌한 공기를...”이라고 말하자, 진선규가 즉석에서 아무렇게나 “상쾌한 공기를-”하고 선창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해진이 “마시며-”하고 뒤를 이어간다. 뒤늦게 합류해 이런 분위기가 아직은 익숙치않은 박지환이 “누구 노래에요?”하고 묻자 운전을 하던 윤균상은 미소를 지으며 ‘유와 진’이라고 유럽에서 활동하는 가수라고 말한다. 

 

유해진과 진선규가 <텐트 밖은 유럽>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나 어느새 척 하면 착 하는 호흡을 보여주는 걸 보면, 이들이 본업인 연기의 영역에서 어떤 인물들인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호흡이다. 그러니 누구와 합을 맞춰가고 전체 작품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며 보여주는 것이 다른 연기까지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 

 

물론 영화 <공조2:인터내셔날(이하 공조2)>에서 유해진과 진선규가 캐스팅된 점은 <텐트 밖은 유럽>이 기획되고 그들이 나란히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과 무관하진 않을 게다. 영화 홍보를 위해 예능 프로그램과 공조(?)한 셈인데, 이 프로그램만의 묘미와 재미가 톡톡하니 이런 방식의 홍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영화 속에서는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이들의 진솔하고 매력적인 면면들을 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텐트 밖은 유럽>은 물론 윤균상이야 막내로서 작품 속에서 늘 전면에 서는 역할을 해왔지만, 상대적으로 악역이거나 조연(사실 주연이나 다름없지만) 역할을 많이 해왔던 유해진, 진선규, 박지환의 반전된 면면을 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이것은 유럽의 스위스나 이탈리아 같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눈이 시원해지는 풍광 속에서 소박한 캠핑을 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주는 이 프로그램의 반전 그대로다. 

 

그런데 여기 출연한 유해진, 진선규 그리고 박지환을 다시금 그들이 해왔던 작품들을 통해 되새겨보면 의외로 이들이야말로 흥행 보증수표였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먼저 이번 추석에 원탑 흥행을 거둔 <공조2>에서 유해진과 진선규가 진짜 공조(?)했고, 올해 코로나19를 뚫고 나와 천만 관객을 거둔 <범죄도시2>에서 박지환이 하드캐리했다. 물론 전 시즌이었던 <범죄도시>에서는 진선규와 박지환이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타짜>부터 <베테랑>, <공조>, <택시운전사>, <1987>, <완벽한 타인>, <승리호> 등등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유해진이야 이미 영화는 물론이고 <삼시세끼> 어촌편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흥행이 보증된 배우이고, <범죄도시>부터 <극한직업>, <승리호> 같은 영화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로 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진선규도 마찬가지의 길을 걷고 있는 배우다. 박지환 역시 꽤 오래도록 미친 존재감의 조역을 해오며 최근 들어 <범죄도시2>, <한산:용의 출현> 같은 영화는 물론이고 특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부정 연기를 마치 느와르처럼 보여줘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다. 

 

이러니 이들만큼 핫한 배우들이 있을까. <텐트 밖은 유럽>은 이렇게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한 배우들의 작품 밖에서의 매력을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독특한 아재미와 유머로 편안하면서도 이지적이며 빵빵 터지는 웃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맏형으로서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유해진과, 최근 <작은 아씨들>에서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선보인 아내 박보경에게 “여봉-”하며 닭살 멘트를 하염없이 날리는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진선규, 그리고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시인을 넘어 도인 같은 면면을 보여주는 박지환이 그들이다. 이 매력의 공조는 프로그램도 성공시켰다. 최고 시청률 5.5%(닐슨 코리아)를 기록한 것. 

 

그래서 <텐트 밖은 유럽>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만만찮은 필모와 연기의 세계가 어떻게 깊어지고 대중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는가가 느껴진다. 그건 ‘유와 진’이 척하면 착하고 받아내는 그런 호흡과 앙상블이다. 이들이 연기의 세계에서 체화된 이런 모습들은 <텐트 밖은 유럽>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저들과 하나가 된 것 같은 훈훈한 유대감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조는 그래서 <텐트 밖은 유럽> 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그들이 함께 해온 영화, 드라마 속에서도 빛나는 중이다. (사진:tvN)

‘텐트 밖은 유럽’, 명품 배우들의 소박한 여행이 주는 매력

텐트 밖은 유럽

이 프로그램 어딘가 언발란스하다. 눈은 호강이라고 할 정도로 호사스러운 풍경들을 마주하고 있는데 이들이 그 곳에서 하는 여행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호사스러움과 소박함.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두 요소가 섞여있는데 그게 너무나 마음을 잡아 끈다. 도대체 tvN <텐트 밖은 유럽>이 보여주는 이 언발란스한 매력의 정체는 뭘까. 

 

“이태리에서 자전거 탄다잉-” 스위스에서 이태리로 넘어와 캠핑장에 자리한 유해진과 진선규 그리고 윤균상은 인근 가르다 호수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사실 풍광으로 보면 호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바다 같은 가르다 호수를 눈에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호사스럽다. 시쳇말로 ‘눈호강’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곳에서 하고 싶어 하는 건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는 것이다. 

 

으리으리한 자동차가 아닌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자전거.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그 속도와 눈높이 때문에 자동차를 탔다면 놓쳤을 아름다운 풍광들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것처럼 아기자기한 거리와 집들이 그렇고, 길가 가득 심어진 올리브 나무들이 그렇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춰 서서 유해진처럼 사진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가며 마주하는 나무에 피어난 꽃들을 괜스레 손으로 만져본다. 

 

길을 잃기고 하고, 그래서 현지 주민에게 어색한 영어로 호수 가는 길을 묻지만, 역시 영어가 어색한 주민이 마구 쏟아내는 이태리 말 앞에 당황하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화려한 영어가 아니라도 소박한 보디랭귀지로 다 통하고, 길은 달리다 보면 결국 원하던 호숫가로 그들을 인도해주니 말이다. 마치 보상처럼 호수가 내주는 파도소리와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이들은 그래서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을 갖는다. 

 

유럽을 여행한다는 건 우리에게는 어쩐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어떤 걸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텐트 밖은 유럽>은 이런 우리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호화로운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의 호사스러운 음식들, 유창한 영어와 잘 꾸며진 리조트 수영장 같은 걸 떠올릴 수 있지만, <텐트 밖은 유럽>은 그건 진짜 유럽이 아니라고 말한다. 

 

호텔 대신 캠핑장을 선택한 것부터가 신의 한 수고, 그 콘셉트의 여행에 딱 맞는 유해진을 위시해 소박하고 진솔한 매력이 넘치는 진선규와 멍뭉미에 착하디 착한 윤균상 그리고 뒤늦게 합류하는 따뜻한 인간미가 가득한 박지환이 섭외된 것 역시 이 신의 한 수에 또 한 수를 더한 선택이 됐다. 이들은 캠핑장에 앉아 마트에서 산 아라비아따 소스를 넣은 파스타에 오징어 숙회를 즉석에서 만든 초고추장에 찍어 먹지만 그걸 ‘이탈리식 가정식 만찬’이라고 표현한다. 

 

아침에 일어나 텐트를 열면 눈앞에 쏟아지는 스위스와 이태리의 풍광을 마주하는 호사가 있지만, 그들은 그 곳에서 소박한 하루를 보내며 즐거워한다.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하다 꼭 여기 현지인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도 하고 싶었다며 가르다 호수에 뛰어든다. 아침으로 사과 한 개를 먹고 누룽지에 달걀찜을 먹는다. 

 

냉장고에 넣어둬야 할 반찬을 냉동고에 넣어 둬 꽁꽁 언 반찬을 마주하면서도 그 당혹스러움을 농담으로 즐겁게 받아들인다. 여름엔 “얼장아찌(언 장아찌)”라고 너스레를 떤다. 또 이탈리아 커피인 줄 알고 샀던 게 설탕이라는 걸 알고는 베트남 인스턴트커피를 마시지만 오페라 음악까지 틀어놓고 이탈리아 기분을 낸다. 대단할 것 없는 여정을 보여주지만 그 곳이 이태리고 그 곳의 자연과 문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는 걸 이들은 진심으로 드러낸다. 

 

피렌체로 들어가는 길이 마치 충남 당진이나 남양주랑 비슷하다고 하는 박지환이나 유럽의 도로를 달리며 경부선 같다고 말하는 이들의 소박한 말들이 유럽이라는 공간과 부조화를 이루는 지점에 <텐트 밖은 유럽>이 주는 매력이 존재한다. 이들이 만끽하다는 건 유럽이라는 공간에서도 누리는 소박한 하루다. 그런데 그것은 시청자들에게도 진짜 유럽의 공기를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고 보니 유럽이라는 눈호강 풍광 속에 펼쳐진 텐트라는 소박함은 이들 배우들의 면면과도 똑 닮았다.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명품배우들이지만 인간미가 넘쳐나는. (사진:tvN)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추앙한 제주의 삼춘들

우리들의 블루스

옴니버스 구성으로 여러 인물들이 갈등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유독 노동하는 모습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침 일찍부터 바다로 나가는 해녀들이 계속 해서 물밑으로 뛰어들고, 새벽부터 열리는 경매장에는 생선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붐빈다. 어시장에는 억척스럽게 생선 대가리를 치는 이와 배고픈 이들의 시장을 달래주는 순댓국을 끓이는 이, 생선에 뿌려줄 얼음을 나르는 이, 한편에서 야채 등을 파는 이와 커피를 파는 이들이 뒤엉켜 소란하다. 어시장 바깥에는 좌판을 늘어놓고 작업복 같은 옷들을 파는 이가 지나는 이들을 유혹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겉보기엔 없어보여도 알짜배기 시장 상인들의 돈을 유치하려 일일이 인사를 다니는 은행장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래서 제주에서 온 몸으로 부딪쳐 살아가는 이들의 땀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양복을 차려 입고 시장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은행 지점장 한수(차승원)는 속 빈 강정이다. 제주에서 하루하루 노동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보기엔 서울 가서 성공해 금의환향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골프 유학을 보낸 딸과 아내 때문에 등골이 휘고 돈을 빌리러 다니는 처지다. 그가 생선 대가리 쳐서 건물 올린 학창시절 자신을 짝사랑한 은희(이정은)의 마음을 등쳐 돈을 빌려보려 한다. 도시 삶의 절박함이 우정, 첫사랑까지 이용해먹게 만든 한수는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하면서도 선뜻 은희가 부친 돈을 다시 되돌려준다. 그리고 무엇이 진짜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가난했지만 억척스럽게 제 길을 열어온 은희를 보며 자신도 새 출발에 용기를 얻는다. 

 

어려서 동석(이병헌)이 좋아했지만 뭍으로 돌아가 결혼해 아이까지 가진 선아(신민아)는 오랜 우울증 때문에 이혼도 당하고 아이까지 빼앗긴다. 절망감에 제주 바다로 뛰어들지만 해녀들이 그를 구해내고, 자꾸만 우울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그에게 동석은 작은 빛을 열어준다. 그런데 그 우울증으로부터 선아를 구원해낸 힘은 놀랍게도 동석이 트럭을 몰고 제주 구석구석 물건을 팔러 다닐 때 녹음해 틀어놓곤 하는 소리다. “프라이판 프라이판 뺀찌 망치 도라이바 윗도리 아랫도리-” 노동의 소리가 우울의 늪으로부터 선아를 삶의 일상으로 끌어올려준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둘도 없는 절친이었지만 공주 대접을 받는 미란(엄정화)과 무수리 취급을 받아도 내색하지 않고 의리를 지켜온 은희의 에피소드에도 노동에 대한 헌사가 깃들어 있다. 우연히 은희의 일기장에 자신을 나쁘고 이기적이며 이중인격자라고 쓴 걸 보게 된 미란이 절교선언까지 하게 됐던 갈등은, 은희가 미란이 일하는 마사지샵을 찾아와 마사지를 받으면서 풀린다. 돌처럼 굳어버린 은희의 등짝에서 미란은 그가 살아낸 삶의 무게를 느끼고, 역시 야무진 미란의 손길에서 은희는 그 역시 공주처럼 살아오지만은 않았다는 걸 느낀다. 그 어떤 말보다 서로의 노동의 흔적이 묻어난 등짝과 손길이 그 자체로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시켰던 것이다. 

 

고등학생 신분에 아이를 덜컥 갖게 되어 부모가 된 영주(노윤서)와 현(배현성) 때문에 갈등이 폭발한 그들의 부모 호식(최영준)과 인권(박지환)의 이야기에서도 자식 하나보며 자신을 희생해온 이들의 노동이 겹쳐지며 화해의 물꼬를 트고, 도시에서 온 깍쟁이에 헤픈 여자라는 소문과 물질에서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 때문에 해녀들로부터 배척당하던 영옥(한지민)은 그 욕심이 다운증후군을 가진 언니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해녀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동하는 이들이 가진 삶의 경륜이나 생명력 같은 것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힘으로 제시된다. 아마도 제주를 굳이 그 배경으로 삼은 뜻 역시 그 척박한 섬의 만만찮은 삶을 살아낸 이들이 치열한 노동을 통해 갖게 된 강인한 생명력을 추앙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량도 별로 없지만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옥동(김혜자)이나 춘희(고두심) 같은 삼춘들이 마치 이 모든 인물들을 넉넉히 품고 있는 제주할망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글:PD저널,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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