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셰프’, 이채민이라는 참신한 배우가 내는 이 퓨전사극의 맛

폭군의 셰프

또 한 명의 ‘문짝남’ 신드롬의 주인공이 등장한 걸까. <선재 업고 튀어>로 변우석이 문짝남 신드롬을 일으킨 것처럼, tvN 토일드라마 <폭군의 셰프>의 이채민에 대한 반응도 예사롭지 않다. 무려 190cm인 ‘문짝’ 그 자체인 훤칠한 키에 작품 속 이헌(이채민)이라는 폭군 캐릭터에 걸맞게 때론 포악한 면을 드러내지만 그러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아려한 연민 또한 느끼게 만드는 모습을 이 배우는 제대로 입었다. 

 

장태유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돋보여서일까. 이헌이라는 미워할 수 없는 폭군 캐릭터를 입은 이채민의 얼굴에서는 여러 다양한 면모들이 포착된다. 눈에 힘을 주고 특유의 지엄한 목소리로 화를 낼 때는 폭군다운 열기가 느껴지지만, 때때로 드러내는 장난기가 가득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는 어딘가 연민을 갖게 만드는 처연함 또한 전해진다. 극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역할이지만, 동시에 그 긴장이 풀어질 때의 코믹함 또한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이채민이라는 배우가 가진 이런 여러 얼굴들은 이 작품 속 이헌이라는 폭군에 제격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음식이고, 그 음식의 맛을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는 풍부한 표현이 담긴 리액션이다. 연지영(윤아)이 만든 요리를 맛보고 미식가다운 맛의 진심을 드러내는 리액션은 적당한 진지함과 더불어 다소 과장된 표현도 나와야 한다. 중요한 건 너무 과하지도 또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선이어야 시청자들도 그 리액션이 진심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이채민의 연기는 참으로 적절하다. 

 

2025년 한국에서 조선시대로 타임리프한 연지영(윤아)이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요리 미션을 보여주는 <폭군의 셰프>는 그 시공간이 결합된 퓨전의 맛도 살려야 한다. 즉 연지영이 파스타 요리를 내놓고 설명할 때나 그 시대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음식을 맛볼 때, 이헌의 리액션은 우스우면서도 그럴듯해야 한다. 당대의 왕 역할을 하면서 판타지로서의 허구적 상황들을 표현하는 연기의 퓨전을 해내야 한다. 사극에서 늘 봐오던 폭군의 모습과 더불어 이를 살짝 비틀어내는 연기를 선보여야 하는데, 이채민은 사극 연기 자체가 처음이어서인지 차라리 이 퓨전에 더 어울리는 면모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채민이 이 작품으로 인기가 급상승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폭군’이라는 최근 웹소설 등에서 혐관 로맨스로 가장 잘 팔리는 역할을 제대로 연기해내고 있어서다. 만인지상의 군왕이지만 폭력적인 이런 폭군의 캐릭터는 최근 중년 이상의 여성들에게 특히 어필하는 판타지 속 인물이 됐다. 그건 폭군 자체의 캐릭터가 좋은 게 아니라, 그런 캐릭터를 요리해가는 과정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폭군의 면모를 보이는 이헌은 연지영이라는 주인공에 의해 변화되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요리가 이헌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다음에는 연지영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 폭군의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폭군의 마음을 움직여 쥐락펴락하는 연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시청자들은 그 관계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폭력적인 겉면 때문에 들여다 보지 못한 이 폭군의 가녀린 내면을 보게 되고 그 상처를 연민하게 만든다. 

 

<폭군의 셰프>는 이처럼 ‘폭군’과 ‘셰프’의 관계 진전을 통해 이 두 캐릭터의 매력이 동반상승하게 되는 드라마다. 매번 죽을 위기를 넘겨가며 요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지영 역할의 윤아만큼, 폭군 이헌 역할의 이채민이 시청자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이유다. 하나의 기막힌 퓨전요리 같은 드라마다. 물론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식재료가 되듯이, 이 작품에서는 윤아와 더불어 이채민이라는 참신한 배우가 제대로 작품의 맛을 내고 있다. (사진:tvN)

밴드음악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말해주는 것

최근 데이식스나 QWER, 실리카겔, 쏜애플 같은 밴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움츠러들었던 콘서트 열기가 더해져 밴드 기반의 아티스트에 대한 팬덤도 커지고 있는데, 이런 변화는 무얼 말해주는 걸까. 

데이식스

최근 주목되는 데이식스와 QWER

지난 10월22일 멜론차트를 보면 로제와 브로노마스가 함께 한 ‘APT.’와 에스파의 ‘UP’ 그리고 제니의 ‘Mantra’ 같은 K팝 아이돌의 음악들이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띠는 건 데이식스다. 데이식스는 멜론 탑100 차트 20위 권에만 최근 발매한 ‘Fourever’ 앨범 수록곡들인 ‘Happy’, ‘Welcome to the Show’는 물론이고 예전에 냈던 곡들인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녹아내려요’, ‘예뻤어’까지 순위에 올랐다. 물론 아이돌 같은 외모에 남다른 밴드 실력을 갖춘 팀인데다, 확고한 팬덤까지 갖추고 있어 이런 차트 상위권 기록이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여러 곡이 동시에 채워지고 있는 건 놀라운 일이다. 늘 아이돌로 대변되는 K팝(이것이 K팝 전체를 지칭하는 건 아니지만 이른바 아이돌 음악이 K팝을 지칭하는 것만 같은 건 실제 현실이다)이 차트를 채우고 있던 풍경과 비교해보면 이런 차트의 변화는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건 마치 밴드음악에 대한 대중적 저변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예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같은 날 차트 20위권에 오른 QWER의 ‘내 이름 맑음’과 ‘고민중독’이나, 버추얼 아티스트 플레이브의 ‘Pump up the volume!’과 ‘Way 4 LUV’, 나아가 ‘선재 업고 튀어’의 ost로 극중 이클립스 밴드의 보컬 역할을 한 변우석이 부른 ‘소나기’가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이들 곡들은 물론 색깔이 조금씩 다르지만, 밴드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가요계에는 ‘밴드 붐’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찍이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잔나비는 물론이고 최근 인기가 급상승해 차트를 올킬하고 있는 데이식스, 남다른 음악 스타일로 현재의 밴드 붐을 견인했다고 평가받는 실리카겔,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의 밴드 결성 과정 자체가 주목받으며 그 위에 실력까지 겸비하면서 밴드 음악의 대중화에 한 몫을 했다 평가받는 QWER 등등 다양한 밴드들이 등장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코로나 시국에 억눌려 있던 콘서트에 대한 갈망이 밴드 음악을 통해 폭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올해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역대 최고 관객수를 경신했고,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역시 3만5천여명의 관객이 몰려 뜨거운 열기 속에 공연을 즐겼다. 특히 이번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는 국내에도 팬덤을 가진 일본의 유명 락밴드 스파이에어 공연에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됐는데, 이건 최근 J팝에 열광하는 Z세대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밴드 음악에 대한 갈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돌 바깥을 찾아보기 시작한 Z세대들

물론 방탄소년단이 군대 문제로 완전체 활동이 정지된 상태지만 솔로로 이어지는 정국이나 진, 지민의 활동에는 여전히 글로벌 팬덤이 결집된다. 또 에스파나 뉴진스, 세븐틴, 르세라핌, 아일릿, 스트레이키즈 같은 K팝 아이돌들의 글로벌 저변 또한 분명하다. 가온차트의 글로벌 K팝 차트를 보면 그 꼭대기를 차지하는 건 대부분 이들 아이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K팝이 아이돌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비슷한 장르의 믹싱과 거기 어울리는 아이돌 특유의 춤과 노래 그리고 뮤직비디오는 이제 K팝 아이돌 음악의 공식처럼 되어 있지만 그래서 클리셰처럼 되어가는 면이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한 목소리는 의외로 국내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아예 태어나서부터 K팝을 듣고 자란 Z세대들의 경우 이제 모두가 똑같아 보이는 이 음악에 대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남들과 다른 나만의 경험을 추구하는 Z세대의 특성상 모두가 듣는 차트 꼭대기의 음악은 오히려 ’개성없음‘으로 여겨지는 추세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나만의 음악을 찾아 아이돌 음악 바깥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밴드 음악이 주목된 이유이고, 최근 갑자기 J팝이 국내 팬덤을 갖기 시작한 이유다. 밴드 음악은 자체적인 악기 연주와 창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그 다양성이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게다가 최근 Z세대가 원하는 라이브 무대에도 최적화되어 있다. 똑같은 음악과 무대에 식상해하는 Z세대들은 라이브 무대의 일회성과 그 대체불가한 시간을 함께하는 것에 열광한다.

 

물론 아이돌 음악이 가진 잠재성과 가능성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돌 음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라도 기반이 되어줄 수 있는 밴드 음악 같은 저변들이 폭넓어져야 한다. 밴드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아이돌 음악의 색다른 양분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K팝, 이제는 애프터 K팝을 생각해야 할 때

특히 오래된 지적으로서 여전히 ’아이돌‘이라는 틀에 가둬 놓는 방식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하는 의구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아이돌은 본래 10대 혹은 20대를 대상으로 높은 인기를 얻는 연예인 특히 가수를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언젠가부터 나이의 제한을 받는 용어가 되었다. 보아가 일찍이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 과정을 거치게 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20대만 되도 아이돌로서 나설 수 없는 나이처럼 여겨지던 당시 아티스트들의 데뷔는 더 일찍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아이돌의 범주가 30대 이전의 20대까지를 아우를 정도로 넓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아이돌이라는 개념의 틀은 연습생은 물론이고 데뷔한 그룹의 멤버들조차 이 틀은 그들을 옥죄는 족쇄가 되고 있다. 아이돌 데뷔에 있어서 나이의 제한이 있다는 압박감이 연습생들에게는 초조와 불안을 만들어내고, 데뷔한 후에도 끝나는 시효가 있다는 사실이 아이돌 그룹에도 향후의 나아갈 방향을 흔들리게 만든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팀이 해체되는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저마다의 솔로 활동을 하거나 잊혀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적어도 이 틀을 깨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롱런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K팝이 아이돌 음악을 통해 갑자기 글로벌 무대에 등장함으로써 저마다 그것이 하나의 유일한 방향성처럼 치부되는 건 그 자체로 K팝의 발목을 잡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서구에서는 K팝의 획일성을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서 J팝이나 V팝 같은 새로운 지역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지어 국내의 젊은 세대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취향을 담보할 수 있는 장르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찾아 개인적인 플레이리스트를 꾸미는 중이다. 그래서 이제 ’K’로 지칭되듯, 마치 모두가 다 좋아할 것 같은 음악에는 오히려 시큰둥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차라리 남들이 모르는 인디음악을 찾아 드는 새로운 경향이 생겨나는 것이다. 

 

글로벌하게 사업이 확장된 기획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변화는 마이너한 일이라 여겨질 수 있다.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좀더 보편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더 채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은 그렇게 비즈니스만으로 지속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그보다는 보다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음악들을 내놓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생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밴드 붐이 보여주는 대중들의 갈증을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제 애프터 K팝을 생각해야 K팝의 미래가 보이는 시점에 들어와 있다. (글:시사저널,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선재 업고 튀어’로 연기 앙상블의 힘을 보여준 김혜윤

선재 업고 튀어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최곤(박중훈)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하는 이 대사는 스타가 빛날 수 있는 게 무엇 때문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 스스로 빛나서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를 빛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빛난다는 것이다. ‘라디오스타’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게 스타를 빛나게 하는 존재로서 매니저 박민수를 말하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최애인 유명 아티스트 류선재(변우석)를 빛나게 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임솔(김혜윤) 같은 열성 팬들이라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선재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 임솔이 선재를 되살리고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더해져 15년 전 과거로 되돌아가고 그렇게 과거를 바꿔 현재의 비극을 막으려는 이야기가 바로 ‘선재 업고 튀어’이기 때문이다. 최근 타임리프 같은 판타지를 장치로 활용한 드라마들이 나오고 있는데, ‘선재 업고 튀어’는 여기에 ‘팬심’이라는 강력한 동인을 소재로 끌어왔다. 최애와 팬의 사이가 그것이다. 팬이라면 최애의 비극을 막기 위해 뭐든 못할까. 

 

‘선재 업고 튀어’는 이처럼 타임리프라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장르로 끌어왔지만, 그 비현실이 만드는 황당함 같은 것들을, 그걸 훌쩍 뛰어넘는 팬심으로 채우는 드라마다. 팬들이라면 심지어 가상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진짜처럼 받아들일 정도로 마음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선재 업고 튀어’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두 가지다. 임솔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선재에게 진심인가 하는 걸 믿게 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재가 임솔이 그렇게 최애할 정도로 멋지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 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걸 소화해내는 연기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선재 업고 튀어’는 그걸 성공시킴으로써 최근 시청률 급상승과 더불어 화제성에서 압도하는 드라마로 떠올랐다. ‘눈물의 여왕’이 방영 내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던 화제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드라마가 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5월 1주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결과 1위의 드라마로 등극한 것. 또 주인공 역할인 변우석과 김혜윤에 대한 화제성도 급상승해 각각 출연자 화제성 1,2위를 차지했다. 

 

변우석이 출연자 화제성에서 1위로 떠오른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변우석은 2017년부터 다양한 작품들에 얼굴을 보였지만 두드러졌던 건 2020년 ‘청춘기록’을 통해서였다. 그 후로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악역을 선보였지만 생각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비로소 ‘선재 업고 튀어’로 현재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신인배우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변우석이 이러한 인기를 순식간에 얻게 된 데는 물론 그가 가진 매력과 노력이 우선되었기 때문이지만 김혜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보인다. 김혜윤은 임솔 역할로 변우석이 맡은 선재를 더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줬다. 가만 있어도 멋진 배우이긴 하지만 끝없이 애정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김혜윤의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를 통해 변우석이라는 배우에 입덕하게 되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선재 업고 튀어’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래서 처음 팬심을 공감시키는 김혜윤의 연기에 빠져들고, 그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변우석에 스며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선재 역시 임솔을 처음부터 사랑해온 첫사랑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선재에 대한 매력이 갈수록 커졌고 그건 고스란히 변우석에 대한 인기로 이어졌다.

 

김혜윤은 지금껏 해온 작품들 속에서, 배역에 대한 몰입도가 좋고 그걸 표현하는데 있어서 군더더기가 없는데다 명확한 딕션에 의한 대사 전달력 또한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래서 이번 ‘선재 업고 튀어’에서도 그렇지만 시시각각 감정 변화가 많은 연기에 있어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곤 했다. 때론 소녀처럼 수줍어했다가 때론 명랑하고 때론 슬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런 다양한 감정 표현들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저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혜윤의 첫 주연작이었던 ‘어쩌다 마주친 하루’는 이러한 그의 역량이 온전히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만화 속 단역인 은단오와 자아를 가진 은단오 그리고 작가의 전작만화 속 은단오라는 1인3역을 연기했는데, 만화 속 세계를 그리고 있는 판타지의 난점까지 생각해본다면 이 작품이 김혜윤에게 얼마나 큰 도전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 때도 김혜윤은 특유의 다양한 감정연기를 선보이면서 극중 상대역할들을 돋보이게 했다. 이 작품에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로운, 이재욱 같은 배우들이 그 후로 인기가 급상승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혜윤은 이제 27세의 나이지만 2012년부터 다양한 단역, 조연 등을 거치며 배우로서의 길을 넓혀왔다. 공식 데뷔작은 2013년 SBS에서 방영된 ‘TV소설 삼생이’로 그 후로 ‘야왕’, ‘너의 목소리가 들려’, ‘수상한 가정부’, ‘왕가네 식구들’, ‘나쁜 녀석들’, ‘오만과 편견’, ‘펀치’, ‘닥터스’, ‘푸른바다의 전설’, ‘쓸쓸하고 찬란하시니 도깨비’ 등 다양한 작품들을 거쳤다. 꽤 유명한 성공작들이지만 대부분 단역을 했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던 김혜윤은 2018년 ‘SKY 캐슬’을 통해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이 작품을 연출한 조현탁 감독이 “김혜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설득시킨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는 드디어 주연으로서의 김혜윤이라는 배우의 역량을 분명히 보여줬고, 영화 ‘불도저를 탄 소녀’로 청룡영화상, 한국영화제작협회상, 대종상, 들꽃영화상 등에서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 아직도 교복을 입고 나오는 학생 역할에 어울릴 정도로 동안인데다 20대의 나이지만 연기 폭은 꽤 넓다. ‘SKY캐슬’과 ‘어쩌다 발견한 하루’ 그리고 ‘불도저를 탄 소녀’의 캐릭터가 모두 상이한데다 그 연기 색깔도 다르다는 점은 이 배우가 가진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혜윤의 페르소나가 특히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는 ‘라디오스타’의 대사처럼 연기도 삶도 앙상블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떠오른 건, 그 역시 함께 연기해온 배우들을 빛나게 해주는 그의 연기 덕분이었다. 타인을 빛나게 해줌으로써 자신 또한 빛날 수 있다는 앙상블의 힘을 김혜윤만큼 잘 보여주는 배우도 없다. (글:국방일보, 사진:tvN)

‘선재 업고 튀어’, 이 드라마가 ‘선친자’를 만드는 몇 가지 이유

선재 업고 튀어

‘상친자’에 이은 ‘선친자’의 탄생인가. 한때 대만드라마 ‘상견니’에 푹 빠진 이들을 지칭하던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자)’라는 표현이 최근에는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 빠진 이들을 말하는 ‘선친자’라는 표현으로 재연되고 있다. 혹은 ‘솔친자’나 ‘업튄자’라고도 하는데, 도대체 ‘선재 업고 튀어’의 무엇이 이런 신드롬급의 과몰입 반응들을 쏟아내게 만드는 걸까. 

 

그 중심에는 역시 임솔(김혜윤)이 시간까지 되돌려 그토록 구해내려 하는 최애 류선재(변우석)가 있다. 이미 ‘청춘기록’에서부터 큰 키에 조각 외모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던 변우석 배우인데다, 노래하는 아이돌이자 수영선수 그리고 무엇보다 첫 눈에 반해 임솔에 대한 그 첫사랑을 끝까지 이어가는 순애보의 주인공인 류선재라는 캐릭터를 입어 선친자들 사이에서는, 선재 보는 맛에 월요병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선재 업고 튀어’는 이야기 구조상 바로 이 선재의 위기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걸 애써 되돌리려는 임솔의 타임리프 판타지를 그린다. 최정상 아이돌이었지만 어느 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로 돌아가 선재가 그 가수의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류선재가 괴한에게 피습당하고 그 사건이 2009년 임솔을 납치했지만 류선재에 의해 제압된 범인의 보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임솔은 역시 그 때로 돌아가 과거를 바꾸려 한다.

 

여기서 시청자들은 선재를 구해야 한다는 욕망과 더불어, 그걸 대리해줄 존재로서 임솔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리해주는 인물로 선 임솔을 통해 그가 갖게 되는 슬픔, 안타까움, 기쁨, 설렘 같은 것들이 온전히 전해지는 것. 변우석이라는 배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최애’로 서게 된 선재가 전제되고, 그를 구해내기 위한 임솔의 고군분투에 시청자들이 빠져들게 됨으로써 이 드라마는 강력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역시 중요해지는 건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리해주는 임솔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제대로 몰입하게 만드는 배우의 연기다. 김혜윤은 어떤 칭찬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감정들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무쌍하게 보여준다. 2009년으로 돌아가 대학생으로 만나게 된 선재 앞에서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애써 밀어내면서도 술에 취해 화를 내기도 하고 또 슬퍼하기도 하는 그 감정의 진폭들을 김혜윤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이입시킨다. 

 

선재와 임솔의 이 끈끈한 관계성을 연결시켜주는 장치로서 타임슬립과 연쇄살인범의 범죄가 갖는 힘도 빼놓을 수 없다. 드라마가 계속 긴장감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바꿔 놓았지만 그래서 또 다른 방향으로 튀어가는 긴장감이 필요해진다. 여기서 연쇄살인범이라는 범죄스릴러적 요소가 중요한 힘을 발휘한다. 또한 그 사건을 막기 위한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도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 운명을 바꾸려는 욕망에 동승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재 업고 튀어’가 가진 과몰입 반응을 만드는 요소는 이러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끝까지 해피엔딩에 대한 전망을 복선처럼 깔아 놓는 지점이다. 대학생이 되어 MT를 가는 중에 선배가 “매년 신입생 첫 MT 때 키스한 사람은 결혼까지 간다”는 전설이 있다고 말하고, 에필로그에서 술에 취한 임솔이 선재와 사고처럼(?)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러한 해피엔딩에 대한 전망들이 깔려 있어 시청자들의 마음은 더욱 애닳게 드라마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니 빠져들지” 라고 말하는 ‘선친자’들의 호소가 납득되는 과몰입 장치들이 균형있게 포진되어 있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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