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왕 루이> 하드캐리 서인국, 남지현이란 보물을 찾다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의 루이(서인국)이 본래 살던 곳은 프랑스의 어딘가에 있는 대저택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마치 중세 프랑스의 귀족들이 살았을 법한 저택에서 전 세계의 한정판 명품들만을 찾아내 쇼핑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루이라는 인물은 현실감이 별로 없다. 지문조차 남아있지 않아 신원조회가 불가능한 그는 마치 비현실의 공간에서 현실 공간을 내려다보며 그 곳에서 물건의 옥석을 가려내는 그런 인물처럼 보인다.

 

'쇼핑왕루이(사진출처:MBC)'

그런 그가 사고로 기억상실이 된 채 노숙자가 되어 서울 한 복판에 등장한다. 비현실의 공간에 살던 인물이 현실의 공간으로 뚝 떨어진 것. <쇼핑왕 루이>가 그리고 있는 건 그래서 이 비현실의 공간에서 살던 루이라는 투명한 종이 같은 인물이 이 이상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그 스스로는 어떤 색깔로 물들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역시 서울이라는 각박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산골에서 자라온 고복실(남지현)이라는 순박한 소녀를 만나 보호를 받는다는 점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서울로 가출한 동생을 찾아 나선 그녀는 동생이 입었던 옷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루이를 발견하고 동생을 찾기 위해 그와 동거하기 시작한다.

 

루이나 고복실이나 서울 살이는 녹록치 않다. 기억을 잃었어도 루이는 과거의 소비습관을 버리지 못해 핸드폰으로 물건 사재기를 하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날리기도 한다. 고복실은 골드라인 닷컴의 본부장인 차중원(윤상현)의 도움으로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백마리(임세미)에게 아이디어를 몽땅 빼앗기는 경험을 한다. 두 사람은 힘겹게 살아가지만 모든 걸 끌어안아주는 긍정적인 고복실과 그런 그녀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여 도움을 주려는 차중원, 그리고 처음에는 이용해먹으려 접근했지만 차츰 이웃으로서 그들을 챙겨주는 조인성(오대환)과 황금자(황영희) 모자 같은 인물들이 그들의 서울 살이를 돕는다.

 

그렇게 된 것은 루이나 고복실처럼 어찌 보면 서울 살이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부적응자들이 의외의 능력을 보이고,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루이는 쇼핑왕시절부터 갖고 있던 물건을 알아보는 재주가 탁월하고, 고복실은 상품 기획에 있어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다. 차중원은 그들의 남다른 면면을 스펙이나 출신 따위와 상관없이 들여다봐주고 그 진가를 알아준다.

 

겉으로 보면 짝퉁 잠바에 바보처럼 어수룩하고 먹는 거나 밝히는 데다 과거 도련님으로 살아왔던 습관 탓에 주변 사람들은 메이드로 만들어버리는 루이지만, 그의 순수함을 알아봐주는 고복실이 있고, 그런 고복실의 따뜻한 마음을 알아봐주는 차중원이 있다. 이 세 사람의 따뜻한 시선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재산 승계를 둔 쟁탈전과 회사 내에서의 살벌한 경쟁들 같은 답답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요소들이다.

 

하필 이 드라마가 쇼핑이라는 소재를 다룬 까닭은 아마도 루이가 타고난 재능으로 보여주듯이 무수히 쌓여있는 물건들 속에 진짜 보물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기 위함이 아닐까. 물건들 틈에서만 살아왔던 루이가 각박한 현실 속으로 떨어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복실이라는 진짜 보물을 찾게 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일 게다. 그리고 이것은 의외로 물질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슴을 건드리는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그 판타지의 중심에 다름 아닌 루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있다. ‘쇼핑왕에서 기억상실을 갖게된 바보스런 현실감 제로의 캐릭터로 변신하는 인물. 서인국은 이 루이라는 하드캐리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내며 배우로서의 새삼스런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아역에서 성인역으로의 변신을 보여주는 남지현의 성장 또한 괄목할 일이지만.

이걸 우리가 만들었다고? 어느새 훌쩍 성장한 <집밥>

 

이걸 우리가 한 거야?” 2주 전 담가 두었던 깍두기를 꺼내놓으며 <집밥 백선생>의 제자들은 모두가 반색한다. 압도적인 비주얼. 어머님이 만들어주셨을 때나 먹어봤던 그런 비주얼의 깍두기가 자신들의 눈앞에 놓여있다는 사실이 못내 믿기 어려운 눈치다. 맛을 보니 절로 뿌듯함이 몰려온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깍두기를 가장 맛있게 담갔다는 평가를 받은 김국진은 서로 먹겠다고 달려드는 숟가락 세례를 보고는 영업 끝났습니다를 외치며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마치 가방을 들고 퇴근이라도 하듯 깍두기 담근 통을 들고 나간다. 깍두기를 담그면 어머니에게 갖다 주겠다고 하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던 김국진. 그의 깍두기를 맛본 어머니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걸 보는 김국진의 마음은 또 어떻고.

 

지난 3<집밥 백선생2>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이 요리불능자들이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김국진은 그 흔한 토스트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종혁은 끔찍한 비주얼의 괴식(?)을 만들어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든 바 있다. 그리고 10. 어언 7개월에 접어드는 시간 동안 이들은 같은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변화했다.

 

이제 요리에 파기름을 내거나 양파를 볶아 캬라멜처럼 만들고 갖은 양념을 내놓는 정도는 척척 해낸다. 재료 몇 개만 얘기해줘도 그걸 갖고 뭘 하려는지를 유추해내고 그 맛이 어떨 것이라는 것도 어림잡아 떠올릴 정도다. 그런 그들에게도 깍두기나 파김치 같은 김치 담그는 일은 하나의 장벽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그랬던 그들이 이렇게 제대로 된 깍두기와 파김치를 만들었으니 그저 받아먹기만 했던 김치와 비교가 되겠는가. 밥을 꺼내와 파김치를 얹어 먹고, 라면을 끓여 깍두기와 먹어보는 그들은 아마도 김치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생각할 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이 정성들여 만들었으니 그 과정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 그 맛도 배가 될 수밖에.

 

<집밥 백선생>은 요리 레시피를 배우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런 정보적인 차원만 있는 건 아니다. 요리 과정에서 나오는 깨알 같은 재미들이 있고, 무엇보다 이 요리불능자들이 조금씩 요리의 세계에 들어가는 그 성장과정이 드라마틱하다. 어느 정도 요리를 하던 이들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아무 것도 못하던 그들이 하는 작은 성취 하나하나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이 프로그램은 아주 조금씩 집밥의 의미를 바꿔나가고 있다. ‘집밥하면 당연한 듯 떠오르던 엄마의 밥상이 이제는 누구나 집에서 차려먹을 수 있는 밥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 이처럼 요리에는 담을 쌓고 살던 요리불능자들도 척척 할 수 있으니 누구든 할 수 있는 게 집밥이라고 이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다. 그것도 의무적인 일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놀이로서.

 

다른 요리들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지만 이번 깍두기와 파김치는 그래서 <집밥 백선생>에는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가장 큰 능선처럼 여겨지는 게 김치 담그는 법이 아닌가. 엄마들만이 비법을 알고 있고 그래서 엄마들만 꼭 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던 그 세계가 이제 누구나 할 수 있는 세계로 보여졌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의 가치는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굿와이프>의 시도와 성취 그리고 남는 한계

 

종영한 tvN <굿와이프>의 엔딩은 파격적이다. 김혜경(전도연)과 이태준(유지태)는 이혼하지 않고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남게 된 것. 김혜경의 이런 선택은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던 결말이다. 그것도 <굿와이프>라는 제목에 이런 결말을 낸다는 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온 좋은 아내라는 이미지에 대한 도전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우리네 드라마에서였다면 어땠을까.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이혼을 해서 김혜경이 온전히 홀로 서는 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그것이 윤리적으로도 또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니 말이다. 하지만 <굿와이프>는 보다 실리적인 선택을 하는 여성으로서의 김혜경에 한 표를 던지고 있다. 윤리니 진심이니 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위한 실리적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것.

 

<굿와이프>가 보이는 인간관은 확실히 이 실리에 맞춰져 있다. 처음 변호사 일을 다시 하기 시작했던 김혜경이 직업적 프로로서가 아니라 동병상련의 공감으로 의뢰인을 대하던 모습을 이 드라마는 순수함이나 열정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런 자세는 실리가 없는 아마추어적인 행동이라고 일침한다. 김혜경은 차츰 일에 빠져들면서 이 직업적 프로로서 지극히 실리적인 변호사가 되어간다. 설사 의뢰인이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변호하는 일이 자신이 하는 일이라는 걸 자각한 프로의식.

 

이 일에 있어서의 프로의식은 또한 김혜경의 부부생활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즉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순진한 사랑이나 신뢰 같은 걸 추구하던 김혜경은 마지막에서는 마치 파트너십처럼 서로를 이용하는 실리적 관계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태준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도와주는 건 그래서 부부 간의 사랑 때문도 아니고 그를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그녀에게 유리한 선택이라는 것뿐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열린 결말이 아니다. 작품이 하나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그 결론을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은 양갈래로 나뉜다. 개인의 성장을 이뤘으니 해피엔딩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런 실리적 선택이 성장이 아닌 지독한 현실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새드엔딩이 되는 셈이다.

 

어째서 이런 파격적인 결말을 내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이 작품이 미드 원작 리메이크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적인 실리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굿와이프>의 선택은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선악과 윤리를 추구하는 삶이 현실적으로 개인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굳이 왜 그걸 선택한단 말인가. <굿와이프>는 그래서 쇼윈도부부라도 이용가치가 있다면 그걸 활용하면서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문제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하지만 이건 미국 정서이고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개인적 실리보다는 가족과 부부간의 신뢰 그리고 지켜져야 할 것들을 지키면서 얻는 행복에 더 가치부여를 하고 있다. 그러니 <굿와이프>의 선택은 성장이라기보다는 타락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어쨌든 미드 원작이기 때문에 그것을 수용하면서 이런 도발적인 선택의 드라마를 시도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천편일률적인 좋은 아내의 이미지들을 내놓는 여타의 드라마들 속에서 문제적 인물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여겨진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정서적 차이는 한계로 지목될 수밖에 없다. 완성도 높은 좋은 드라마였던 건 분명하지만 미진한 아쉬움 같은 게 남는 건 그래서일 게다.

<닥터스>, 박신혜와 이성경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

 

이제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는 종영을 앞두고 있다. 20%를 넘긴 최고시청률. 최근 지상파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그 능선을 <닥터스>는 어떻게 넘었던 걸까. 흔한 의학드라마처럼 보였지만, 또 달달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였지만 <닥터스>는 여타의 의학드라마와도 또 멜로드라마와도 다른 결을 보여줬다. 그건 관계를 통한 인물의 변화와 성장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닥터스>의 여자주인공인 유혜정(박신혜)과 그녀와 대립적 위치에 서 있던 진서우(이성경)의 변화와 성장은 이 드라마의 색다른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 때문에 불량하게 살아가던 유혜정은 할머니인 강말순(김영애)과 선생님 홍지홍(김래원)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좋은 영향에는 친구였던 진서우 또한 일조한 면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선생님 홍지홍과 유혜정이 가까워진 것을 본 진서우는 그 질시가 그녀를 엇나가게 만든다.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유혜정의 비극(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현실과 마주하게 된)은 그녀가 의사가 되게 한 원동력이 된다. 드라마는 좋은 영향뿐만 아니라 나쁜 영향도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의사가 된 유혜정은 진서우의 아버지인 진명훈(엄효섭)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되면서 본인도 고통스러워진다. 그런 그녀를 다시 되돌리는 건 다름 아닌 홍지홍의 사랑이다. 홍지홍은 복수가 그녀 자신도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끝내는 건 진서우의 변화다. 늘 대립하는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친구로서의 관계 또한 유지해온 진서우는 유혜정을 통해 아버지의 잘못을 알게 되고 결국 그녀에게 사죄한다. 진서우라는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유혜정 역시 변화하고 성장하게 됐다는 것.

 

사실 이런 화해적인 결말이 조금은 미진함을 남길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봐왔던 많은 드라마들 속에서 악역의 최후나 몰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닥터스>가 본래 드라마를 통해 하려던 이야기는 복수극이 아니다. 그건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영향을 받고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걸 뉘우치면서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극적 갈등이 드라마의 관건이라고 얘기되는 현실에서 이 같은 화해적인 선택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닥터스>는 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보다는 그래도 희망적인 화해를 담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닥터스>가 얻어낸 것은 특유의 따뜻함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쳤던 건 바로 그 위로와 위안의 느낌이 충분했던 따뜻함이 아닐까.

 

무엇보다 연기자로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박신혜와 어깨에 힘을 뺌으로써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김래원의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 윤균상과 이성경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의학드라마지만 의술 그 자체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관계의 치유를 보여주었고, 멜로드라마지만 남녀 간의 사랑만큼 인간과 인간의 휴머니즘을 보여준 하명희 작가의 따뜻한 대본의 힘은 힘겨운 현실을 마주한 서민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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