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완벽 빙의된 김태리, 그 성장서사에 시청자도 빠져든다

정년이

우리 소리가 이토록 힙했던가.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는 먼저 채공선이 부르는 ‘남원산성’으로 눈과 귀를 매료시킨다. 눈 내리는 어둑한 밤, 유려한 한옥집의 풍광 위로 낭낭하게 울려 퍼지는 ‘남원산성’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이상하게 애절하게 만든다. “소리를 하면은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아 갖고 좋던디요.” 소리꾼이 되고 싶다는 공선에게 명창 임진(강지은)이 화려함 때문이냐고 묻자 공선이 하는 그 말은 소리가 가진 진짜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한 마디로 꺼내놓는다. “이 가슴에 뭐가 탁 맥힌 것맨치 답답하고 외롭고 할 때마다 소리를 하다 봉께는 그리 되었구만이라.” 

 

때는 1931년 일제강점기다. 춥디 추운 겨울 눈 내리는 한데서 달달 떨며 문 열어주길 기다리는 공선네 부녀처럼 서민들의 삶이 고달플 수밖에 없던 시절이다. 가슴 한 가운데 꽉 막힌 무언가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살 수밖에 없던 시절, 소리는 그 막힌 걸 뚫어주고 풀어주는 힘이 되는 어떤 것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1956년 목포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먼저 들려오는 건 “어기야 디야 어기야 어야 디야-” 하는 노동요를 부르며 뻘밭에서 조개를 채취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이다. 전쟁이 끝나고 피폐해진 삶에 그 때라고 가슴 한 가운데를 꽉 막아세우는 답답한 현실이 없었을까. 

 

시장 통에서 잡은 생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가는 정년이네 가족은 번번히 자릿세를 내라며 행패를 부리는 무리들 때문에 힘겨워 한다. 그렇게 현실에 짓밟혀 꿈이라는 건 가져보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노동으로 살아가면서 정년이의 가슴에도 무겁디 무거운 돌덩이가 생겼던 모양이다. 엄마가 그토록 반대하는 소리를 자꾸만 하고 싶고, 그래서 시장통에서 ‘남원산성’을 부른 게 그의 삶에 변곡점을 만들어줬다. 그 소리를 듣고 단박에 천재성을 타고 났다는 걸 간파한 매란국극의 스타 문옥경(정은채)이 그에게 자신이 하는 국극 ‘자명고’의 티켓을 주며 보러 오라고 한 것이다. 그 국극을 보고 난 후 정년이는 드디어 꿈을 갖게 된다. 자신도 문옥경 같은 국극의 스타가 되겠다고. ‘정년이’는 바로 이 청춘이 꿈을 향해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워낙 인기 웹툰으로 잘 알려진 ‘정년이’는 드라마로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할까 싶은 몇 가지 난점들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 첫 번째는 웹툰의 생명력 넘치는 정년이라는 캐릭터를 과연 누가 싱크로율을 맞춰 연기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고, 두 번째는 국극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소리를 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시청자들이 설득될 수 있을만큼의 수준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또한 원작이 가진 퀴어적 색깔을 좀더 보편적으로 만들어내는 게 가능할까 싶은 면도 난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정년이’를 보니 이런 난점들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단박에 알게 된다. 그건 마치 저 첫 장면에 등장하는 명창 임진이 공선의 소리를 듣고 그 진심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은(혹은 문옥경이 정년의 재능을 단박에 알아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세심하게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 대본과 연출 위에서 완벽하게 정년이라는 캐릭터에 빙의된 김태리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얹어져 시청자들을 곧바로 설득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원작이 가진 퀴어적 요소들을 드라마는 직접적인 캐릭터를 통해 그려내기보다는 드라마 전체의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방식을 선택했다. 즉 문옥경과 윤정년의 관계는 마치 새내기를 이끌어주는 선배 같은 관계로 그려지지만 어딘지 그 이상의 애정이 묻어나고, 또 정년에게 애정을 주는 문옥경을 바라보는 서혜랑(김윤혜)의 시선에는 동료 이상의 질투 같은 게 느껴진다. 남성 주인공이 없다는 사실만 봐도, 이 작품이 가진 온전한 여성서사의 색깔을 이해하게 된다. 굳이 퀴어적 요소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아도 여성들 간의 우정과 애정 혹은 애증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우리네 소리가 가진 멋과 아름다움을 유려한 연출과 극적인 대본 그리고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꺼내놨다는 점이다. 국악에 별 관심이 없던 이들도 아마 ‘정년이’를 보게 되면 판소리 심청가에 한 대목인 ‘추월만정’ 같은 곡을 다시금 찾아보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국극이나 국악이라고 하면 어딘가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싶었던 분들조차 매료시키는 연출, 대본, 연기의 삼박자가 아닐 수 없다. 

 

또 매란국극에 들어가 수련을 받는 일련의 과정들은 마치 K팝 아이돌들이 거치는 연습생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오디션 과정을 거쳐 뽑히고, 그리고 나서 연구생이라는 이름으로 소리부터 춤, 연기를 배우고 무대에 서는(데뷔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담겨 있어서다. 천재적 재능을 가진 정년이가 그를 시기하는 동료들과 경쟁해가며 그려낼 쌍방 성장서사는 그래서 현재의 K팝 한류의 기원이 꽤 오래 전부터 태동해왔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상찬받아 마땅한 건 김태리라는 배우의 존재감이다. 웹툰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것 같은 김태리의 연기는 정년이 그 자체처럼 보일 정도로 동작 하나 대사 하나가 살아 있는 느낌이다. 웹툰으로 보며 저랬을 것 같다는 그 모습을 김태리는 연기를 통해 공감하게 꺼내 보여주고 있다. ‘미스터 션샤인’과 ‘스물다섯 스물하나’, ‘악귀’를 거치며 청춘의 초상 같은 그만의 아우라를 계속 그려냈던 김태리는 이번에도 ‘정년이’를 통해 인생캐릭터를 또 한 번 경신할 모양이다. 정년이라는 인물이 그려낼 꿈을 향한 성장서사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사진:tvN)

코다 소년 려운에 담은 청춘들에 대한 ‘반짝이는 워터멜론’의 응원

반짝이는 워터멜론

“제가 문제를 일으키면 부모님이 욕을 먹어요.” 은결은 비바 할아버지(천호진)에게 숨겼던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내놓는다. “장애인이라 애를 제대로 못 키웠다고. 두 분 다 농인이시거든요. 제가 잘못하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욕을 들으세요. 그래서 제가 잘해야 돼요.” 은결은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인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부모는 물론이고 형 은호의 입과 귀가 되는 보호자 역할을 해왔다. 

 

은결의 아버지는 가족이 모두 위험에 처하면 가장 먼저 은결이를 구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아버지는 가족 모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아빠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될 수도 있다”며 은결이는 분명 “뛰어가서 아빠를 도와줄 누군가를 반드시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어린 은결이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아빠가 말한 것이지만, 그것이 은결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자 책임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tvN 월화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코다로 살아오며 누구보다 더 가족을 위해 노력해온 은결이 비바 할아버지를 통해 기타를 알게 되고 배우는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수화를 통해 침묵의 세계에 살아가는 가족과 소리의 세계인 세상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온 은결에게 불쑥 등장한 기타라는 음악의 세계. 비바 할아버지는 음악의 세계가 수화와 비슷하다며 “손으로 말을 걸고 음으로 돌려받는 것”이라고 했다. 

 

또 코드의 세계는 인생과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코드에는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라는 게 있는데, 메이저 코드가 밝은 느낌을 준다면 마이너 코드는 좀 슬프고 우울한 느낌을 내지. 메이저와 마이너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멋진 곡이 완성된단다. 인생도 마찬가지야. 시련도 있고 기쁨도 있어야 비로소 반짝이는 인생이 완성되는 법이지.”

 

하지만 음악의 세계 깊숙이 빠져들던 은결은 자신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화재가 나는 사건을 겪으며 기타를 내려놓는다. 그 화재로 형과 아버지가 죽을 뻔 하고 집은 잿더미가 됐다. 은결이 그 안에 있다 생각한 아버지가 무작정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은결은 알았을 게다. 아버지가 아니 나아가 이 가족이 얼마나 자신을 의지하는가를.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알쏭달쏭한 제목에도 담겨 있지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청춘의 반짝임을 응원하는 드라마다. 그 이야기를 은결이라는 코다 소년으로부터 시작하는 건,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접어두고 살아가는 삶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건, 가끔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에서 기타 버스킹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을 하는 것이다.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 가족을 버리는 것처럼 여기는 이 청춘은 이 족쇄를 벗어나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까. 

 

그 단서는 이미 비바 할아버지가 어린 은결에게 코다를 설명하며 전한 바 있다. 그는 은결이 가족 중에서 혼자서만 듣고 말할 수 있는 코다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코다가 하는 수화와 음악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해줬기 때문이다.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를 이어주는 사람들이지. 말과 손으로. 그리고 때로는 너처럼 음악으로.” 

 

간만에 느껴지는 따뜻함과 청량함이 있는 드라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비바 할아버지가 은결에게 전하는 음악처럼, 그가 해온 코다로서의 삶이 음악인으로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가족만이 아닌 세상을 향한 존재가 되기를 응원한다. 그 책임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라고 등을 두드려준다. 청춘들에게 뭐든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어른의 시선이 있고, 그게 뭐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청량한 청춘들이 있다. 이 드라마가 첫 회부터 꺼내놓은 진심은 그래서 이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사진:tvN)

<보이스>,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까닭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보고 그냥 채널을 돌린 사람은 없을 듯하다.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에 대한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그 지표는 시청률이 말해준다. 2.3%(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드라마는 3회 만에 5.6%를 찍었다. 벌써부터 작년 최고의 스릴러물로 얘기되던 <시그널>과의 비교가 나온다. 작년에 <시그널>이 있었다면 올해는 <보이스>가 있다는 이야기.

 

'보이스(사진출처:OCN)'

물론 두 작품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 밑에 갈린 정서적인 면들일 게다. <시그널>이 연쇄살인을 막고자 하는 형사들의 간절함이 심지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 판타지까지 허용하게 해줬다면, <보이스>는 생사를 오가는 골든타임에 놓인 피해자를 구하기 위한 형사들의 간절한 마음이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듣는 주인공의 판타지를 허용해주고 있다.

 

강권주(이하나)가 그 판타지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시력을 거의 잃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갖게 된 남다른 청력으로 보통사람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인물이다. 그가 콘트롤 타워에서 귀에 꽂은 리시버와 마이크 하나로 현장상황을 거의 눈앞에 보듯이 진두지휘하고 때로는 미세한 소리만으로 위급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를 찾아낼 수 있는 건 그 판타지적인 능력 때문이다.

 

강권주가 콘트롤 타워를 지키며 전체를 관망하고 행동할 방향을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 손발이 되어주는 건 현장을 뛰는 무진혁(장혁)이다. 그는 강권주가 연결된 통신장비 하나를 의지 삼아 현장에 뛰어든다. 남다른 관찰력과 현장에서의 순발력은 뛰어나지만 길바닥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아내에 대한 기억은 그를 때로는 물불 안 가리고 몸이 먼저 앞서게 만들기도 한다. 강권주의 콘트롤과 무진혁의 현장에서의 능력은 그래서 이 살벌한 사건들에 놓여진 피해자들을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과 만나며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현실의 사건들은 눈을 뜨고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다. 아버지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해온 피해자가 다시 나타난 그 아버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아동학대를 자행하는 두 번째 사건은 그 피해자가 아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계모의 칼에 찔린 채 세탁기 속에 숨어서 강권주와 통화를 하며 구해 달라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는 시청자들에게 공포물에 가까운 충격을 주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아이를 죽이라 사주한 비정한 아버지가 사실 그 아파트의 경비원이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고 그가 무진혁마저 죽이려는 반전은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만들었고, 또한 미리 알아챈 무진혁이 상황을 뒤집어 오히려 그 경비원의 잔혹한 범죄들을 토로하게 만드는 장면은 또 다른 반전의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이야기는 다시 무진혁의 아내와 강권주의 아버지가 동일한 가해자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드라마에 추진력을 달아주었다. 결국 강권주를 믿지 않던 무진혁은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자신들의 가족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를 잡는 궁극의 목표로 달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시그널>도 그렇지만 <보이스> 역시 최근 우리네 대중들에게 어떤 정서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간절함이라는 코드를 담고 있다. 골든타임 내에 구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피해자들이 있고, 자신들의 가족도 그 골든타임을 넘겨 죽음을 맞게 된 트라우마를 가진 형사들이 있다. 피해자들을 어떻게든 구하려는 형사들의 몸부림이 시청자들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보이스>의 예사롭지 않은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에릭, 서현진의 인생작 된 <또 오해영>

 

서현진이 이렇게 예뻤던가. 에릭이 이렇게 멋있었나. 아마도 tvN <또 오해영>을 보면서 시청자들의 느낌은 비슷할 게다. 드라마가 좋으면 배우들은 더더욱 반짝반짝 빛난다. <또 오해영>이란 작품 속에서 그냥 오해영을 연기하는 서현진이 그렇고, 깐깐하게 소리를 듣고 모으는 박도경을 연기하는 에릭이 그렇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또 오해영>은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웃음이 충만한 드라마지만, 또한 금수저 흙수저를 달리 해석한 듯한 1급수와 3급수의 사랑 이야기로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통쾌함을 안겨주는 그런 드라마다. 1급수에서 그들끼리 만나고 사랑해온 예쁜 오해영(전혜빈)’3급수에서 살아온 그냥 오해영은 박도경이라는 인물을 사이에 두고 급수를 뛰어넘는 사랑을 시도한다.

 

1급수와 3급수의 비교는 그냥 오해영이 항상 괴로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예쁜 오해영이 늘 주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사랑받는 모습을 보이고, 반대로 그냥 오해영은 항상 비교되면서 무시되는 모습을 보일수록 시청자들의 마음은 드라마와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박도경이 그런 느낌을 갖는 것처럼 한없이 그냥 오해영이 짠하게 다가오고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

 

사실 어떤 면으로 보면 전혜빈이 연기하는 예쁜 오해영은 여성 시청자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일 수 있다. 늘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며 예쁜 척하는 듯한 그 모습이 그렇다. 반면 그냥 오해영은 여성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다. 털털하고 솔직하며 한편으로는 동정이 가기도 하는 그런 캐릭터. 그러니 드라마 속에서 그냥 오해영예쁜 오해영이 처한 상황은 그걸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거꾸로 느껴지게 된다. ‘그냥 오해영이 더 예쁜 존재로 다가오는 것. 이것은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낸 마법 같은 장치다.

 

물론 예쁜 오해영역시 나쁜 의도를 가진 존재는 아니다. 그녀가 도경을 결혼식 날 바람 맞춘 데는 그만한 남모를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연이 드러나는 순간 도경은 두 오해영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도경의 캐릭터다. 그는 과연 그냥 오해영이 말하듯 1급수에 살아가면서 그들끼리 사랑하는 그런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는 건 도경이 가진 직업에서 드러난다. 도경은 소리를 찾고 모으는 일에 그 누구보다 깊게 빠져 있다. 그는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빛에도 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지나가는 찻소리 등이 겹쳐지면 그 빛의 소리가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 하다못해 분노한 여자가 찬 깡통 소리도 경쾌한 소리와 화난 소리로 구분해내는 인물이 도경이다.

 

굳이 이 드라마가 도경에게 이런 직업을 부여한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귀 기울이는 캐릭터를 그려내려 한 게 아닐까. ‘그냥 오해영이 말하듯 도경은 현실적으로는 1급수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지만 그는 저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그런 인물이다. 스스로를 3급수라 표현하는 그냥 오해영이 점점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그래서일 게다.

 

하지만 그냥 오해영이 말하는 1급수와 3급수의 세상은 어찌 보면 그녀가 가진 오해이자 편견일 수 있다. 그녀 스스로도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니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급수를 뛰어넘는 사랑이 아니라 애초에 사랑에는 급수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어찌 보면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장르에 이토록 촘촘히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면서 그것을 또한 두 오해영 캐릭터와 도경이라는 인물로 그려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나 균형 있게 그려지고 있어 캐릭터들이 그토록 빛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서현진과 에릭, 그리고 나아가 전혜빈까지 이 작품이 인생작이 될 거라는 기시감은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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