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어째서 이 만화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까

 

말도 안 되게 재밌다? 아마도 이 말은 <W>라는 드라마에 딱 어울리는 평가일 듯싶다. 이 드라마의 설정은 한 마디로 만화 같기때문이다. 만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여주인공이나, 현실 세계로 나와 자신을 만든 작가와 한 판 대결을 벌이는 만화 속 주인공이나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W(사진출처:MBC)'

그런데 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말도 안 되게 재밌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거기에는 송재정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뒷받침해주는 판타지의 욕망이 작용한다. 말도 안 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상상. 그것을 눈앞에 던져주고 나름의 법칙들을 세워둠으로써 마치 게임 같은 몰입을 만들어낸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설득되게 된 건 송재정 작가의 치밀한 전략이 깔려있다. 처음 만화 속 세계로 들어온 오연주(한효주)가 빨리 그 회의 연재를 끝내기 위해 강철(이종석)의 뺨을 때리고 키스를 하는 설정은 하나의 유머처럼 처리되지만 그것이 하나의 법칙이라는 걸 은연 중에 인지시킨다. 즉 만화 속에는 그런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걸 유머를 통해 슬쩍 제시해 놓은 것.

 

그러면서 차츰 차츰 다양한 법칙들을 소개한다. 즉 만화 속 세계의 시간은 현실과는 다르며 주인공의 시점으로만 전개된다는 것이나, 만화 속으로 들어간 오연주는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 같은 법칙들이다. 이렇게 마치 게임 같은 법칙들이 조금씩 소개되고 그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게 되자 <W>의 상상력은 더 과감해진다. 이제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이 현실로 빠져나오지만 여기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그다지 개연성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그동안 많은 만화 속 세계의 법칙과 설정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만일 그만한 적응 기간을 두지 않고 처음부터 강철이 현실로 빠져나오는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말도 안 된다는 반응들이 나왔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만화 같다는 건 드라마로서는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타 장르들보다 리얼리티에 대한 요구가 더 크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건 그 자체로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리스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건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전하려는 함의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시그널>에서 시청자들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허용한 건, 그 함의가 진실이나 정의의 실현 같은 이야기의 메시지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W>는 아직 그 함의를 온전히 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흥미롭게 여겨지는 메시지들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것은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말하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고, 혹은 판타지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신과 관계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도 이야기의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송재정 작가의 도전은 박수 받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네 드라마가 가족과 멜로와 몇몇 장르물들 사이에서 마치 도돌이표처럼 어디서 봤던 설정들을 뱅뱅 돌리며 반복하고 있었다면, <W>의 상상력은 그 바깥으로 어디든 나갈 수 있다고 도발하는 듯하다. 늘 되는 드라마의 법칙에만 매몰되지 말고 끝까지 상상력을 밀어붙이라고 <W>는 우리네 드라마들에 말하고 있다

한효주, 이종석만큼 흥미진진한 <W>의 세계

 

역시 송재정 작가의 판타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나인>을 통해 독특한 타임워프의 세계를 보여줬던 그녀가 이제는 <W>라는 판타지의 세계를 들고 왔다. 그 세계는 웹툰과 현실이 교차되는 세계다. 풋내기 의사인 현실 세계의 오연주(한효주)와 웹툰 속 주인공인 강철(이종석)의 만남. 혹은 가상 세계인 웹툰 ‘W’와 그 웹툰을 그리는 현실세계의 부딪침. 어찌 보면 너무 만화 같은 설정이지만 송재정 작가는 그 판타지를 실감나는 흥미진진한 세계로 바꿔 놓았다.

 

'W(사진출처:MBC)'

송재정 작가는 어떻게 이 만화적인 세계를 실감나는 몰입감으로 바꿔 놓을 수 있었을까. 그 첫 번째는 오연주라는 캐릭터의 성공이다. 결국 현실과 웹툰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는 인물로서 오연주라는 캐릭터가 그 과정을 제대로 납득시켜야 시청자들 역시 <W>의 세계에 대한 공감이 생긴다. 오연주를 어딘지 허술하고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하는 코믹한 캐릭터로 세운 건 그래서 대단히 전략적인 선택이다.

 

그녀는 웹툰 W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느끼는 황당함이나 놀라움을 약간은 코믹하게 시청자들에게 전해줘 가상에 대한 몰입에 진지함을 덜어내는 효과를 가져온다. 웹툰의 세계로 빠져든다는 그 이야기를 유머 섞인 농담처럼 던지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별 심리적 저항감 없이 그 설정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게다가 <W>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웹툰의 세계가 가진 흥미로운 설정들을 연달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이 이 세계를 즐기게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웹툰 바깥에서 그림을 바꾸면 그 안의 세계가 바뀌는 설정이나, 주인공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오연주에게는 한 30분 정도 지난 시간이 웹툰 속에서는 두 달이 훌쩍 가버리는 설정. 또 연재물이기 때문에 어떤 엔딩에 걸맞는 극적 상황이 나와야 그 회가 끝나 오연주가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설정 같은 것들이 주는 흥미진진함이다.

 

이 웹툰 세계의 흥미로운 설정은 그대로 오연주와 강철이 가까워지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 웹툰을 꼼꼼히 다 챙겨 본 오연주로서는 강철이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까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강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건 오연주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다. 또 극적 상황을 만들어 빨리 회를 끝내고 현실로 돌아오려고 오연주가 강철의 뺨을 때리고 그래도 안되자 키스를 하는 장면도 은근슬쩍 웹툰 세계의 설정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이 드라마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W>의 세계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게 되는 건, 이 허구성 짙은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예술과 철학에 대한 질문 같은 것일 게다. 결국 이 드라마는 W라는 웹툰을 창조해낸 오연주의 아버지 오성무(김의성)와 강철-오연주의 대결구도를 다룬다. 오성무는 W와 강철이라는 피조물을 만든 신의 위치에 서려한다. 그래서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능동적으로 살아가려 하는 강철을 그는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거꾸로 자신을 죽이려 하는 손길을 의식하고 강철이 그에게 당신 누구야라고 질문하는 장면에서는 신에 대항하는 피조물의 서사가 느껴진다. 이 대목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생각보다 크다. 예술은 절대적 신의 위치에 서 있는 작가의 전유물인가 아니면 일단 주어지면 저 스스로 살아 움직이고 그 내적인 개연성의 룰에 의해 흘러가는 세계인가. 나아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 같은 존재들은 운명을 넘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존재인가.

 

이런 다소 상징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이 있어 <W>의 세계는 그저 허무맹랑한 판타지의 세계에 매몰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로맨틱 코미디와 판타지를 엮어 놓은 듯한 그 가벼운 드라마로 여겨지지만, 그걸 통해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까지를 담아낸다는 것. <W>의 세계가 볼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이유다. 잠시 숨고르기를 했던 송재정표 판타지가 다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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